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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라스트-59화 (59/162)

59화

능력이 돌아왔다.

예전처럼 문을 여닫을 수 있으며, 공백 기간이 무색하게 예전보다 섬세한 제어가 가능했다. 다만 오랜만에 능력을 쓴 탓에 범위를 상정할 때마다 겁이 났다. 1을 생각하고 움직였는데 5 이상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거리를 뒤덮은 슬라임 같은 괴수의 몸을 문으로 통제하고, 그 안에 있던 대부분의 눈을 문 사이에 끼워 자르거나 짓이겼다. 문 사이에 낀 눈들 사이로 튕겨 나가서 무사했던 눈들은 하윤을 찾아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괴물들의 눈은 하윤에게 닿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괴수가 거세게 기운을 내뿜으며 몸을 부풀렸으나 문에 짓눌려 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그사이 괴수의 힘에 휘말린 일반 장병이 총을 치켜들었다.

찰나의 순간, 하윤은 총구와 괴수의 핵과 통하는 문을 열었다. 서른두 개의 문이 열리고, 총알 하나 빠져나갈 만한 아주 좁고 긴 길이 열렸다.

일반적인 화기로 괴수에게 피해를 줄 순 없었다. 하지만 괴수도 생명체다 보니 핵이라고 통칭할 만한 주요 기관에는 달랐다.

총알은 하윤이 서른두 개의 문으로 만든 길을 통해 괴수의 핵을 꿰뚫었다. 핵을 꿰뚫자마자 괴수의 투명한 몸이 곧장 불투명한 회백색으로 변했다.

‘정말로 힘이 돌아왔다.’

굳이 총알로 핵을 부술 필요는 없었으나, 하윤은 자신의 힘이 얼마큼 돌아왔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직 어색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으나 그간 공백을 생각하면 어색함이 없는 게 이상했다. 아니, 이상하리만치 적었다.

하지만 뭐라 하든 힘이 돌아왔다. 전율이 돋았다. 흥분을 이기지 못한 하윤은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코피로 가슴팍을 흠뻑 적시고, 일어나지 못한 채 먼지 그득한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어도 마냥 좋기만 했다.

‘드디어.’

꿈이 아니라 실제 힘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제 서이주를 꺼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윤은 얼굴을 감싸 쥔 채 흐느꼈다.

‘선생님, 선생님!’

그간 자신을 짓눌러 오던 죄책감을 한 꺼풀이나마 벗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곳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지 않았다.

‘씨발.’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하윤은 주먹을 그러쥔 채 몇 번이고 문을 열려고 했으나 자꾸만 어그러졌다. 대신 왼쪽 손목이 금방이라도 잘려 나갈 것처럼 시리고 아팠다.

이 통증이 아직은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씨바아아알! 아아아아아악!”

온몸을 관통하던 쾌감이 일순 분노로 뒤바뀌었다. 하윤은 화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내리쳤다. 그러나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화가 난 만큼 내려쳐지지 못했다. 비단 팔뿐만이 아니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무겁게 느껴졌다.

“씨발…….”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 때문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 그제야 밀려들었다. 이명과 현기증이 밀려들고, 온 내장이 엉기는 것만 같은 고통에 하윤은 진땀을 흘렸다. 신음 대신에 입술을 악물었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듯 눈앞이 흐릿하고 눈꺼풀이 무거웠다.

겁이 났다.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깨어났을 때 또다시 아무 힘도 쓰지 못할까 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김하윤으로 돌아갈까 봐.

하윤은 잠들지 않으려 눈꺼풀에 힘을 주다가, 마지막 힘을 다해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어떻게든 잠들지 않으려는 노력이었으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 머리를 박는 것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그러다가 다시 깨어난 건 한기 때문이었다. 몸을 웅크리며 덮을 것을 찾던 하윤은 이내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 눈을 떴다.

“…….”

정신을 잃었던 사무실 안이 아니라 낯선 복도 앞이었다. 주변에는 하윤과 비슷한 신세의 환자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부상자가 많아 일 층 로비에 간이 진료실을 만들었는데, 인원을 수용할 수 없어 비교적 상태가 괜찮은 사람들을 천막 밖, 복도로 빼놨다는 것이었다.

간이진료실 일을 돕던 봉사자는 깨어난 사람들을 능숙하게 달랬다.

“덮을 거랑 물, 간단한 식량을 층별로 조금씩 모으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리고 갖고 온 지원품은 대기표 번호랑 이름 적고 가져가시고, 타인에게 양도하지 마세요. 그럼 다 꼬여요. 꼬여.”

봉사자의 말에 하윤은 제 손에 쥐어져 있던 종이를 펼쳤다. 426번. 빠른 번혼지 늦은 번혼지 알 수 없었다.

언뜻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주워듣자니 빠른 번호일수록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았다. 그들은 안쪽 간이진료실 내부에서 응급처치 중이고 구급차가 우선 호송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윤은 멀뚱히 간이 진료실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신이 들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윤은 곧장 문을 확인했다. 하윤의 걱정을 안심시키려는 듯 문은 하윤의 눈앞에서 벌컥 열렸다. 들어오라는 양 흔들리는 문을 보던 하윤은 순간 현기증이 돌아 바닥에 주저앉았다.

“조심해, 조심. 여기 맨바닥이라 잘못 엎어지면 무릎 깨져.”

하윤은 제게 당부를 건넨 사람에게 고개를 꾸뻑이고는 벽에 몸을 기댔다. 아직 어질어질한 게 다시 눈이 감겨 왔으나 눈을 감고 싶지 않았다.

‘능력은 쓸 수 있어.’

“……밖에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요?”

“밖에? 방송 들어보면 괴수를 해치우긴 해치웠다는데, 아직 청소하는 데 좀 걸린다나 봐.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사상자가 엄청났다던데.”

직접 괴수에게 노출된 사람은 죄다 죽었다.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나 초능력자들은 사망까진 가지 않고 일부만 통증을 호소하여 병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사태가 심각한 만큼 건물 내 대피 기간이 길어질 예정이라고 했다.

“아마 상태가 심각한 앞 번호만 우선으로 구급차가 호송해 갈 거야. 우리같이 경상이야 괜찮아지면 병원 안 가고 그냥 사무실에서 대기하다가 밖에 나가는 거고.”

말을 하던 사람은 이내 하윤의 몰골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말하다 보니 우리라고 엮었지만, 하윤의 상태가 다소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냥 좀 쉬고 있으면 다 해결될 거야. 괴수는 잡았다잖아.”

괴수의 사체를 수습하고 도로와 수도를 다 점검한다 치면 얼마나 걸릴까. 하윤은 집에 가고 싶었다. 능력이 없어진 게 아니라면 집에 가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물론 최소한의 알리바이를 위해 지하철을 타거나 하는 등의 모습은 남겨야겠지만.

‘배도 고프고.’

허기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밀려왔다.

‘무경이 없을 때 먹어야 하는데.’

무경의 앞에선 액체나 딱딱한 음식 외엔 씹어 삼키기 어려웠다. 액체에도 건더기가 있으면 안 됐고, 딱딱한 음식도 양이 많으면 먹기 어려웠다. 그러나 무경과 함께 식사할 때가 많지 않아 문제라는 생각도, 고칠 시도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게는 달가운 현상이었다. 무경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도움을 줬으니까.

‘집에 뭐 있지?’

하윤은 집 냉장고에 무엇이 들었는지 생각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수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화장실에 올 정신이 없는 것일까. 마침 로비 옆 화장실이 텅 비어 있었다.

‘일단 집에 가자.’

저 하나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마 한 이틀 지나고 다시 들어간다 한들 400번대의 환자가 이송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냥 알아서 반창고나 붙이고 집에 가서 밥 한술 먹고 잠 좀 푹 잔 다음, 동네 병원에나 가라고 하면 모를까.

하윤도 그럴 계획이었다. 밥 좀 먹고, 잠도 푹 잔 다음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동네 병원에서 치료받을 것이다. 왜 건물 밖에 있다고 하면 괴수 때문에 미쳐서 저도 모르게 기어 나와 있었노라고 하면 어찌 되지 않을까.

‘아니면 그냥, 그쯤 해서 회사로 가서 합류하든가.’

하윤은 빈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을 땐 문밖은 화장실이 아니었다.

이번 괴수 출현으로 인해 구간이 축소되고 무정차 구역이 더러 생겼지만 그래도 열차 운행 시간은 똑같았다.

하윤은 회사와 그나마 가까운 통제 범위 밖에 해당하는 개봉역 근처로 이동했다. 꼴이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고 놀랄까 봐 걱정했으나, 다행스럽게도 마주치는 사람이 없었다. 가까스로 승강장에 들어간 때가 막차 시간을 오 분여 남겨 뒀을 때였다.

하윤은 멍하니 벤치에 앉아 있다가 자판기를 발견했다. 과자와 티슈 등을 파는 자판기였다. 하윤은 반가운 마음에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나 지갑이 없었다.

“음…….”

휴대전화도 없었다.

“하, 진짜. 가지가지 하네.”

능력이 없었으면 지하철도 타지 못했을 것이다. 하윤은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리다가 조그맣게 웃었다. 기분이 엿 같은데 그 와중에 아주 조금은 좋았다. 하지만 또 좋아하기엔 기분이 더러웠다.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지하철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얼마 안 있어 열차가 들어온다는 신호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하윤은 안전문 앞으로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때마침 건너편 승강장의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우웅 하는 특유의 큰 작동 소리에 하윤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주었다. 곧이어 열차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열차에 올라탄 하윤은 의자에 오물이 묻을까 봐 앉지 못하고 반대편 출입문 앞에 기대섰다. 그때 다시 엘리베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지 않았는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하윤과 비슷한 또래의 청년과 휠체어를 탄 노인이었다.

“……?”

하윤은 눈을 부릅떴다. 건너편 엘리베이터 문 바로 앞에 [문]이 있었다. 위치가 교묘해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를 위치였다.

가슴이 쿵쿵 뛰고 왼쪽 손목이 간질거렸다. 하윤은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열차를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열차의 출입문이 닫히고 얼마 안 있어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을 열었다가 상대가 알아차릴까 봐 쉽사리 손댈 수 없었다. 결국,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뚱어리만 재촉했다. 그러나 이미 거의 끝 차를 탄 탓에 금세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

열차가 역을 지나치는 순간, 하윤은 근처에 있는 가장 작은 문을 열었다. 그 탓에 몸을 비틀고 있는 노인의 얼굴은 보였지만, 휠체어를 밀고 있는 청년의 얼굴을 볼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을 보기 더 힘들었다.

청년 고개를 숙인 채 계속해서 휠체어를 밀었다. 얼마나 세게 미는지 노인이 탄 휠체어의 바퀴가 안전문에 닿아 쿵쿵 소리를 냈다.

때마침 건너편 승강장에도 열차가 곧 도착한다는 알림이 울렸다. 하윤이 타고 있던 열차는 이제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하윤이 문을 당겨 볼 수 있는 거리의 한계에 다다랐다. 막 문을 닫으려는 찰나, 건너편 차선에 열차가 들어오고 승강장에 바람이 훅 불었다.

휠체어를 밀던 청년이 고개를 든 건 그 순간이었다.

문이 닫히고 더는 청년의 얼굴을 볼 수 없음에도 하윤은 움직일 수 없었다.

문틈 사이로 보인 얼굴이 생각하던 것과 달랐다.

왜냐하면, 그 청년이 자신과 똑 닮았기 때문이었다.

십 년 전 김하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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