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원 라스트-17화 (17/162)

17화

하윤은 말을 마치자마자 김득철이 묻힌 더미를 향해 달렸다. 하윤이 달리자 김득철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경은 곧장 바닥에 힘을 불어넣었다. 더미와 이미 부서진 도로의 파편이 떠올라 다른 김득철을 노렸다.

‘팔찌를, 팔찌를 찾아야 해.’

그래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인터폰 화면에서 흔들리던 팔찌와 서이주의 얼굴만 어른거렸다.

하윤은 떠오르기 시작한 파편을 문으로 밀쳤다. 더미 밑에는 곤죽이 된 김득철이 보였다. 곧장 팔찌를 끌러 팔에 꼈다. 제게 달려드는 김득철을 피해 하윤은 가까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걸음을 내디디는 순간, 팔찌의 장식품들이 일제히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

평소에 다니던 통로가 아닌, 낯선 기분이 들었다. 하윤은 최대한 빨리 출구로 빠져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무경과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단점은 김득철이 가까운 거고.’

그때 큰 폭발음과 함께 무경이 소리쳤다.

“김하윤, 도망가!”

바락 지르는 소리에 하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머리 위에 있던 문이 부서진 통로에서 거대한 괴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

하윤은 욕설과 함께 일대의 문을 동시에 열었다. 떨어지던 괴수가 공간의 틈에 갈갈이 찢겼다. 괴수는 단말마를 지르며 숨이 끊어졌으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갈가리 찢긴 괴수의 시체가 파도같이 쏟아졌다.

하윤은 곧장 코앞에 있는 문을 열었다.

“으윽!”

그러나 직접 들어가기 전에 쏟아진 시체의 파도에 떠밀려 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빠져나온 뒤에도 그 여파로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다가 에어컨 실외기에 부딪혀 가까스로 멈췄다. 빠진 어깨를 부딪히는 바람에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숨이 턱 막혔다.

“커헉!”

하윤은 어깨를 움켜쥐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가까스로 신음을 참으며 아픔이 가시길 기다렸다. 가까스로 숨을 내쉴 수 있게 되자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더러워진 방독면을 벗어 던지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멀리 왔는지 하늘에 해가 쨍쨍했다. 바닥에 쌓인 흙먼지들을 봤을 때 비 구경도 못 해 본 곳이었다. 하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가득 메웠던 검은 문은 보이지 않았다.

‘여긴 어디지.’

일단 자신이 있는 곳은 이 층짜리 상가 건물 위였다. 에어컨 실외기가 있고 보일러실을 겸하는 창고도 있었으며, 갓 넌 빨래가 그득한 빨랫줄도 있었다.

슬쩍 아래를 보자 사람들이 아침을 맞이하여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건을 실은 트럭들이 오가고, 택시 한 대가 골목길로 들어오기도 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광경이지만 지독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혹시 자신이 환상을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마침 건너편 건물에서 문을 TV를 트는 게 보였다. 하윤은 옥상 난간에 몸을 숨긴 채 문을 열어 TV를 훔쳐보았다.

TV 주인은 연신 채널을 돌렸으나, 트는 족족 속보가 방영되고 있었다.

[에이, 시팔. 아침부터 밥맛 떨어지게 개같은 뉴스만 계속 나오네.]

TV 주인은 결국 채널을 돌리길 포기했다. 채널은 뉴스에 고정되었지만, 하윤이 원하는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피가 우선이라 안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듯했다. 지원 여부도 확실하지 않았다. 이 또한 안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범위 내에 있던 사람이 보낸 영상만 반복해서 나오고 있었다. 영상에선 하윤이 본 검은 문이 아닌, 일렁이는 검은 구름 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뭔가가 자꾸만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윤은 엿보던 문을 닫고 즉시 고개를 돌렸다.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며 가방에서 호신 무기를 꺼내 들었다. 사람이면 잠시 충격 정도는 줄 수 있고, 괴수면 잠시 주의를 끌 정도는 됐다.

신경 써서 주위를 살피자 아까 구르면서 미처 살피지 못했던 흔적들이 보였다.

‘피. 그리고 발을 끈 흔적.’

흔적을 살폈을 때, 의심되는 장소는 하나밖에 없었다.

‘보일러실.’

창고에 가까운 보일러실. 바깥으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으나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옆에는 보일러실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었다. 마늘 말린 것과 각종 잡동사니가 켜켜이 쌓여 있었고, 바닥엔 굳어 버린 작은 페인트통이 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부근의 벽엔 피 묻은 천으로 누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상처를 입은 채로 벽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어째 상황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윤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로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 선 순간, 하윤은 문 밑에 끼인 옷자락을 먼저 발견했다.

“…….”

가슴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울컥 치솟았다. 하윤은 끓어오르는 울음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드드득.

얇은 문을 긁는 소리와 함께 숨 헐떡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귀에 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윤아?”

절 부르는 한마디에 가까스로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졌다.

“선생님, 선생님 아저씨가, 아저씨가!”

울음으로 목소리가 번져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윤은 이내 꺽꺽거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울음이 먼저 나왔다. 문 너머서도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잠시 들렸다가 그쳤다.

“흐으으…….”

방울방울 흘러내린 눈물이 턱에 고였다. 그러나 더 울 수 없었다. 하윤은 무경에게 돌아가야 했다.

보일러실은 겉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좁았다. 보일러가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서이주도 몸을 욱여넣은 게 고작이었다.

“이번 결혼기념일에, 서해에 가기로 했는데. 못 가게 됐네.”

서이주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숨을 내쉬자 복부에서 피가 우르륵 솟아올랐다. 하윤은 서이주의 복부와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서이주도 백진하도 낯이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기념일엔……. 일찍 일어나고 싶지 않았어. 느지막이 일어나서 밥 먹고 산책하다가, 노을을 보려고 했지. 아니, 꼭 바다가 아니어도 상관없었어. 그냥, 둘이서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어. 무경이도 너도 떼놓고. 너희 둘이야 둘이 있을 때 제일 좋을 테니까. 그런데…….”

하윤은 가방에서 응급 키트를 꺼내 서이주의 복부를 틀어막았다. 팔 한쪽이 빠져 동작이 원활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처치하기 힘드니 말하지 말라고 했으나 서이주는 오히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지만, 눈에선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가 김득철을 너무 얕봤어. 그놈은 혼자 도망친 게 아니야. 아니, 도망칠 필요가 없는 놈이거든.”

“선생님.”

서이주는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올렸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그놈은 인형을 만드는데 도가 튼 놈이야. 자기 인형을 만드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본체는 어디 있는지 몰라. 하지만 인형을 만드는 덴 필요한 재료가 있어.”

하윤은 김득철의 희끗희끗한 머리를 떠올렸다. 그가 무엇을 소모했을지 대강 감이 왔다. 자신의 생명력을 불어넣었어야 했으리라.

“하지만 똑같이 만들지는 못해. 대신 사람들에게는 똑같이 보이도록 하지.”

아주 감쪽같이. 서이주가 덧붙인 말에 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정부 단체가 그놈의 주요 자금줄이야. 하지만 한 놈만 잡은 게 아니었지. 인형을 만드는 건 많이 만들수록 능숙해지는 법이거든. 실험 자료를 내놓는 건 배 아픈 일이지만, 그놈은 자기 솜씨에 자신이, 있었어.”

서이주의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삶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리고 실험을 진척시키며, 그놈은 확인해 보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 그래서.”

서이주는 가쁜 숨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숨이 쌕쌕거리고, 얼굴엔 이제 핏기가 없다 못해 푸르러졌다.

“금지된 문의 열쇠를 만들고 직접 열어, 보기로 한 거야. 서울 한복판에서. 그리고 내, 내 눈앞에서.”

그러나 문의 열쇠는 완성된 것이 아니고,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완성하기엔 부품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김득철은 잡았던 누군가가 순순히 목숨을 내놓았으면 완성되었겠지만, 그가 탈출하면서 재료를 빼돌렸기 때문에 그녀에게 차례가 돌아왔다고 했다.

하윤은 서이주의 말을 듣는 즉시, 그것이 누구인지 떠올렸다.

‘문태강.’

익숙한 이름이었다. 이어 그와 관련하여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게 뭔지 기억나지 않았다.

“미친 새끼. 그래서 나한테 와서 문을 열어 달라고 한 거야. 날 잡아서 열쇠를 완성시키고 인형으로 만들어서 열쇠를 쓰게 하려고 했지. 미친 새끼가 열쇠는 만들었는데, 어떻게 쓰는지 몰랐거든.”

서이주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파란 낯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그녀는 쥐고 있던 총을 내려놓고 허리 뒤로 손을 넣었다. 작고 예리한 단도를 꺼낸 그녀는 다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하지만 문을 열지는 못해도 문을 부르기는 불렀지. 그리고 안에 잠들어 있던 것이 스스로 기어 나오려고 하고 있을 거고. 하지만, 하지만!”

서이주는 끅끅 우는 소리를 냈다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 미친 새끼가 사람을 너무 대단하게 본 거야. 그런 문을 내가 열 수 있으려고?”

서이주는 김득철이 그런 줄도 모르고 저를 보자마자 줄줄 늘어놓은 멍청이라고 욕했다.

“선생님.”

“그 새끼들은 문지기들의 능력을 강화하면 미궁의 문도 열고 닫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최고의 문지기를 만들려고 했지. 아, 죽겠다. 너무 힘들어.”

서이주는 말하다 말고 하하 웃었다.

“우리가 샛길을 만들 때 문에 이름이 남는 건, 우리가 그 길을 열고 길을 트고, 다시 닫기 때문이지. 다시 말해 우리가 이전에 다니지 않은 곳의 문을 닫기 위해선 문을 열어야 한다는 거야. 내 말 알아듣겠니?”

하윤은 고개를 저었다. 서이주의 말이 알 것 같으면서도 알아듣기 힘들었다. 눈물범벅이 된 채 코만 훌쩍거리자 서이주가 쯧쯧 혀를 찼다.

“이래서 천재들이란.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니까 왜 안 되는지 모르지? 그리고 너무 울지 마. 이제 선생님이 닦아 줄 수도 없어.”

하윤은 대답 대신 코를 훌쩍였다.

“열지 못하면 닫을 수 없다. 미궁의 문이 저절로 열린다면, 그땐 우리가 감히 닫을 수 없어. 꼭 외워 둬.”

나중에 시험 칠 것이라고 말한 서이주는 또다시 공허하게 웃었다.

“하윤아.”

“…….”

“더 늦기 전에 문을 열고, 다시 닫아.”

“무슨…….”

“열쇠를 찾았구나.”

“……!”

언제 다시 총을 쥐었는지 서이주는 하윤에게 총을 겨눴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가늠하듯 하윤을 바라보다가 고단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녀는 방아쇠를 당겼으나 총알은 나가지 않았다.

달칵, 달칵. 탄창 빈 소리만 들렸다. 그녀는 이제 진짜든 가짜든 가릴 처지가 아니라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무경이를 부탁해. 걔는 너만 있으면 되거든. 너희 둘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직접 하려 했는데 이제 더는 안 되겠다.”

서이주는 하윤의 손에 단도를 쥐여 준 뒤 자신의 눈가를 톡톡 두드렸다. 그것을 끝으로 서이주는 더는 눈을 뜨지 못하고 눈꺼풀만 파들거렸다. 힘겹게 숨을 꺽꺽거리던 그녀는 남은 힘을 쥐어짜 말을 맺었다.

“열쇠를 완성하렴.”

몸 안의 모든 것이 아래로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윤은 서이주를 흔들었다.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배웠음에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

“선생님.”

울음으로 발음이 형편없이 뭉개졌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후두두 떨어졌다.

서이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하윤이 흔드는 대로 흔들릴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