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아저씨!”
“……아버지.”
백진하는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난도질되어 있었다. 그때 백진하가 떨어졌던 곳에서 중년 사내 하나가 내려왔다.
남자는 오십 대쯤 되어 보였다. 곱슬머리에 흰머리가 희끗했고, 얼굴은 적당히 타고 주름져 있었다. 자주 웃는지 눈가엔 특유의 주름이 져 있었고 알이 큰 안경을 썼다. 눈은 크지 않았고, 뻐드렁니 때문에 입이 튀어나와 있었다.
카키색 체크 남방에, 원래 색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더러워진 앞치마와 토시를 하고 있어 전투 요원이라기보단 어디 공방에서 일하는 사람 같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어느 동네에서나 있을 것같이 평범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곤죽이 된 백진하를 따라 나왔다. 정황상 그가 범인일 가능성이 컸다.
남자는 코를 훌쩍이다가 안경을 고쳐 썼다.
“아휴, 비가 비가. 뭐 이렇게 새벽부터 하늘 무너진 듯이 내려? 앞을 볼 수가 없네.”
그는 토시로 안경을 대강 훑어 내리다가 하윤과 무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입을 벌린 채 둘을 훑어보았다.
“이야. 때깔 곱다. 생각보다 물건이 좋네?”
하윤은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남자의 평범한 생김새 때문인지, 아니면 어디서 봤는지 퍽 익숙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때 무경이 하윤의 손을 잡아 제 뒤로 보냈다.
“김득철.”
무경의 입에서 나온 소리에 하윤은 다시 남자를 바라보았다. 뒤늦게 뉴스에 나온 수배 사진을 떠올렸으나 남자는 사진보다는 젊어 보였다. 하윤이 미리 짐작한 대로 덥수룩하던 수염을 밀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자신을 긴가민가한 눈으로 바라보는 하윤을 향해 활짝 웃었다. 환한 웃음이 어째 기분이 나빴다. 하윤은 그의 손목을 살폈다. 남자는 인터폰으로 봤던 남자의 손과 똑같이 알이 주렁주렁한 팔찌를 끼고 있었다.
“꼬맹이들이 날 알아보네? 눈썰미가 아주 좋아.”
김득철은 뿌듯해하며 웃다가 쓰러져 있는 백진하에게 다가갔다.
“어디이 보자아.”
김득철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백진하의 머리채를 단단히 그러쥐었다. 그러고는 백무경을 향해 들이미는 시늉을 했다. 무경이 움찔거리자 뭐가 그리 좋은지 껄껄 웃었다.
그러다가 마침 생각 났다는 양 아! 소리를 내더니 백진하의 머리를 아예 돌려 버렸다.
우둑!
고개가 돌아선 안 될 방향으로 돌아갔다. 백진하가 여태 숨이 붙어 있었다면 지금 죽었을 것이다.
“아…….”
머리가 얼얼하고 배 속이 차가워졌다. 지금 본 광경을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지나치게 충격을 받으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그 말 그대로였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는 징조도 없이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무경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윤은 마찬가지로 힘주어 그를 붙잡았다.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바닥이 진동하더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갈라진 도로 파편이 무경의 힘에 흔들렸다. 그러나 김득철은 개의치 않아 했다. 그는 백진하의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새끼는 죽어서도 목이 뻣뻣하네. 이러면 나중엔 더 뻣뻣해진다구. 그럼 영 못써.”
굳기 전에 미리 주물러 줘야 한다는 둥 늘어놓던 김득철은 백진하의 턱을 붙잡았다.
“순순히 붙잡혔으면 흉한 꼴 안 보여 줬을 텐데. 애들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김득철은 정말 화를 내는 양 거친 소리를 냈다. 까무잡잡한 피부가 검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이내 제풀에 가라앉히곤 고개를 저었다.
“에구, 그래. 저도 사정이 있었겠지. 마누라랑 자식새끼 구한답시고 이리 뛰고 저리 뛴 거겠지.”
김득철은 잡고 있던 백진하의 턱을 움직여 백진하가 말하는 시늉을 했다.
“여보, 도망쳐요!”
우스꽝스레 백진하 흉내를 내던 김득철은 주머니에서 둥그스름한 나무토막을 꺼냈다. 손에 쥐고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심상찮아 보였다. 이어 그는 백진하의 옷을 들쳤다.
옷자락을 들자마자 옷에 걸려 있던 장기가 쏟아졌다. 이미 백진하의 배가 반쯤 날아가 속을 훤히 드러나 있었다.
하윤은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짓누르다가 눈을 부릅떴다. 하윤의 감정에 동조하듯 수십 개의 문이 들썩거렸다. 하윤이 무경과 잡은 손을 놓자마자 무경은 김득철을 향해 튀어나갔다. 무경의 염동력이 김득철의 손에 들린 나무패를 노렸다.
나무패는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며 김득철의 손을 빠져나가 무경의 손에 들어갔다. 김득철을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쳐들었다. 그와 동시에 김득철의 머리 위로 날아오른 무경은 그대로 김득철을 돌려 찼다.
“어억!”
무경의 발에 제대로 맞은 김득철의 머리가 단말마와 함께 으깨졌다. 김득철은 힘없이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무경은 긴장을 놓지 않은 채 그대로 염동력을 쏘아 보았다. 쏘아진 염동력은 바닥을 부서트리며 파편을 끌어들였다.
파편들은 김득철의 몸을 꿰뚫다 못해 켜켜이 쌓였다. 김득철은 순식간에 돌무더기에 짓눌렸다.
“…….”
힘을 퍼부었고 상대가 쓰러졌으나 어째 석연치 않았다. 무경은 주변을 경계했다. 그사이 하윤은 백진하를 향해 달려갔다. 서둘러 김득철이 올려놓은 옷자락을 내렸다.
“……아, 아저씨.”
백진하의 창백한 얼굴이 낯설었다. 반쯤 뜨여 있는 눈을 감기며 하윤은 무경을 올려다보았다. 무경은 방독면을 벗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무경의 희게 질린 낯에 슬픔이 가득했다. 애써 침착을 유지하려 했으나 울음으로 가슴팍이 거칠게 오르내렸다.
그때, 김득철이 묻힌 더미에서 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분명 김득철 쪽에서 났는데, 움직임은 바로 아래서 느껴졌다. 하윤과 무경은 동시에 몸을 굴렸다.
숨이 끊어져 축 늘어져 있던 백진하가 바닥을 짚고 허공으로 다리로 반원을 그리며 일어났다. 날카로운 움직임에 허공엔 수막이 번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백진하는 익숙한 준비 자세를 잡았다.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달리, 상의 사이로 몸속에 남아 있던 내장이 쏟아졌다. 그것도 모자라 백진하는 거추장스럽다는 양 자신의 내장을 갈무리했다.
암만 봐도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윤은 김득철이 묻혀 있을 돌무더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김득철이 손에 쥐고 있던 나무패는 무경이 빼앗았다. 같은 생각을 했던지 무경은 하윤을 향해 나무패를 쥐고 있던 손을 보였다.
다른 여유분이 있었던지, 아니면 이미 넣어 놓고 넣는 척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윤은 마른 침을 꼴깍였다. 백진하는 그에게도 부모나 다름없었다. 작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으나 이대로 백진하가 이용당하게 둘 수 없었다.
백진하는 무경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무경이 바닥을 차올리며 염동력을 쏘아 보냈으나 그는 예상했다는 양 몸을 돌려 피하며 손을 뻗었다.
‘너무 빨라.’
무경과 진하의 합이 너무 빨라 하윤으로선 쫓아갈 수가 없었다. 진하의 손이 보일 땐 유효타를 먹은 무경이 어딘가에 처박혔을 때였다. 그러나 무경 또한 가만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끊임없이 진하를 공격했다.
뼈를 부러트리고, 목을 꺾고, 척추를 끊거나 터트렸으나 진하는 이 모든 것들이 상관없다는 양 움직였다.
‘젠장.’
하윤은 무장세력의 무기를 집어 들었다. 대인용 화기라는 게 못마땅했으나, 지금은 찬물 더운 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위도 심상찮았다. 이미 문은 뭔가를 쏟아낼 듯 잔뜩 부풀어 있었다.
문은 휘어질 대로 휘어졌고, 그 틈새로 괴상한 팔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괴수일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진하는 기운을 정제하듯 손과 발의 동작을 부드럽게 풀었다. 으스러졌던 팔과 다리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맞붙었다. 또한, 하윤과 무경은 진하의 동작이 단순히 회복을 뜻하는 것이 아니는 것을 알아차렸다.
“…….”
하윤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질끈 감았다 뜬 그의 눈동자에 금빛 테두리가 떠올랐다. 하윤은 무경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가 봤을진 몰랐으나 봤다고 믿어야 했다. 동시에 하윤은 백진하의 발을 향해 총을 쏘고 달아났다.
백진하는 돌아보지 않은 채 하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단순하고도 빠른 동작에 수막이 떠오른 것과 동시에 충격파가 하윤을 향해 날아갔다.
주변에 있던 자동차가 형편없이 일그러졌으나, 하윤을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세찬 바람이 옷자락을 흩날렸다. 하윤은 짧게 숨을 내쉬며 다시 백진하를 향해 총을 겨눴다. 그러나 총을 발사하는 순간, 거리를 접힌 백진하가 그를 향해 다리로 내리찧었다.
쿠쿠구궁!
발로 내리찧었다고 볼 수 없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저 밑에 있었으면 어떤 꼴이 되었을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백진하는 곧장 동작을 바꿔 하윤을 공격했으나, 그의 공격은 하윤에게 닿지 않았다. 이유를 찾듯 백진하의 눈동자가 하윤을 훑었다.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눈동자에 하윤은 이를 악물었다.
코앞이었다. 빗나가기도 어려운 거리였다. 하윤은 즉시 남은 총알을 백진하의 머리를 향해 쏟아냈다. 총구 바로 앞에 연 서로 다른 문이, 백진하의 머리를 향해 총알을 인도했다.
퍼퍼퍽!
백진하의 머리통 반절이 박살 났으나, 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문이 가리지 않은 틈을 찾아 하윤을 붙잡았다.
“……!”
우악스러운 힘에 하윤의 팔이 빠졌다.
“으……아아악!”
이대로 팔을 뜯어낼 것 같았다. 눈앞이 벌겋게 보일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찾아 들었다. 그사이 힘을 모은 무경이 백진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백진하는 하윤을 잡은 채로 무경을 차올렸다. 다리가 하늘을 향해 위로 쭉 뻗은 순간, 무경은 주변에 있던 돌로 백진하의 왼 다리의 오금을 쳤다. 빠각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이 으스러지고 백진하가 휘청거렸다.
무경은 곧장 백진하의 가슴팍을 밀쳤다. 그가 중심을 잃고 떠오른 순간 염동력으로 그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주변이 움푹 내려앉을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콰과과광!
백진하가 내리꽂히던 자리에 존재하고 있던 세 개의 문이 동시에 열렸다. 공간이 겹친 곳에 발을 디딘 백진하의 육체가 종잇장같이 찢겨 나갔다. 찢기기 직전까지 백진하의 손은 무경의 목덜미를 잡아채려 했다. 가까스로 피했으나 손끝에 긁혀 상처가 생겼다. 피가 스멀스멀 새어 나왔으나, 무경은 신경 쓰지 않았다.
갈기갈기 찢긴 뒤에야 백진하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무경은 찢긴 백진하의 목구멍에서 이상하게 생긴 나무패를 발견했다.
무경은 목에 박혀 있는 나무패를 뽑아내며 이를 갈았다.
“이 개……새끼가.”
아마도 백진하의 턱을 잡고 말하는 척할 때 이미 넣었던 모양이었다.
꼭 김득철의 손에 놀아난 기분이었다. 그는 이미 죽고 없는데도 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빠르게 손뼉을 쳤다.
하윤과 무경은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죽었다고 생각한 김득철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징글맞기 짝이 없었다.
“늙어 관절 닳아빠진 것들보다 새끼가 쓸데가 많아서 잡으려 한 건데, 서이주가 생각보다 괜찮은 새끼를 낳았네.”
김득철은 정말 잘되었다며 기쁜 얼굴로 손뼉을 쳤다.
“거기다 뜻밖에 수확도 있고.”
하윤은 김득철을 보며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역하기 그지없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잔혹한 마음이 떠올랐다. 뒤통수가 얼얼할 정도로 화가 난 것과 달리 생각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
하윤은 치솟는 구역질을 가까스로 참으며 김득철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조금 전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가 보였다.
김득철은 원래도 본래 나이보다 나이 들어 보였으나, 지금은 더 나이가 들어 중년보단 노년에 가까워 보였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것도 한몫했다. 나이 차가 나 보이니 형제나 다른 가족으로 착각할 만했으나 이상하게 이쪽이 진짜 김득철 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까 그게 본체가 아니었나?”
“무슨 말이야?”
“조금 전이랑 달라.”
“다르다고?”
“……?”
무경은 TV 화면으로 봤던 수배 사진을 보고 곧장 김득철을 알아보았다. 그런 그가 지금의 김득철을 두고 달라 보이느냐 묻고 있었다. 하윤은 김득철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수염이 있어. 아까 전보다 나이 들어 보이고, 흰머리도 많아. 그리고…….”
팔찌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