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rose
1. 재회의 시간
어느새 해가 사라지고 달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아홉 시가 가까워진 시간, 창밖은 한밤중처럼 어두웠다. 그 하늘 위로 빛을 내고 있는 것이 별인지 인공위성인지 모르겠다.
서울 하늘에는 가끔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지만 그건 대부분 인공위성이라고 하던데.
지방이라서 서울과는 조금 차이가 나는 모양인지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막 열아홉 살이 된, 뇌까지 근육으로 되어있는 청소년의 감수성을 일깨울 정도로 아름답고 평화롭게.
“아오, 씨발. 쪽도 못 쓰는 것들이 전지훈련은 무슨.”
“9 대 3이 뭐냐? 나 같으면 때려치운다.”
씻고 온 모양인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며 방문을 열고 들어오던 놈들이 깔깔거리고 웃는다.
그렇게 웃고 있는 우리도 며칠 전에 모 학교를 상대로 겁나게 깨졌다는 거 기억이나 할까 몰라.
쯧, 혀를 차는데 눈이 마주쳐버렸다. 어색하게 웃고 있자 대번에 젖은 수건이 날아왔다.
“씻었냐?”
“아직. 좀 한가해지면 씻으려고.”
“한바탕 북적거리다 한가해졌어. 씻고 와.”
녀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걸터앉아있던 창틀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바닥으로 떨어진 젖은 수건을 주워 녀석에게 건네주었다.
“아오, 저 새끼도 데려가. 감독 샘이 왜 저 새끼 PMP는 압수 안 해가셨지?”
“이것은 학습용이기 때문입니다.”
박동민의 거만한 대꾸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좆까. 거기에 드라마만 들어있는 거 다 알거든. 저걸 압수했어야 하는데.”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지. 이 몸이 이걸 숨겨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니들은 모를 거다.”
방 한쪽에 길게 누워 PMP로 드라마를 보던 박동민이 엎드려 있던 몸을 반 바퀴 굴려 천장을 바라보는 상태로 한 손으로는 PMP를 들고 다른 손으로 벅벅 배를 긁어댔다.
“씨발, 더러운 새끼. 가서 좀 씻어!”
“서용주, 네가 마지막 희망이다. 저 새끼 좀 데려가.”
“사양할래.”
방 한쪽에 널어놓았던 수건이 대충 마른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목에 두른 상태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오늘 박동민 옆자리는 서용주의 차지다.”
“그건 좀 부당한데.”
“어이, 박동민 베프.”
“나 그런 놈 몰라.”
꽤나 단호하게 말해보지만 어림도 없었다. 내 가방을 끌어다 박동민의 가방 옆에 나란히 놓는 것을 보며 아무래도 오늘 밤 동민과 함께 나란히 누워 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세면도구와 함께 갈아입을 속옷과 겉옷을 꺼내 옆구리에 끼고 발가락으로 박동민의 옆구리를 쿡 쑤셨다.
“으히히히히.”
발이 닿기도 전에 박동민이 자지러지게 웃으며 허리를 휘었다.
“씻으러 가자.”
“이것만 보고.”
“씻고 나서 봐.”
엄지발가락으로 다시 옆구리를 찌르자 녀석이 몸을 굴리며 숨넘어가게 웃어댔다.
저렇게 간지럼을 타면서 무슨 운동을 해. 축구 할 때 스치는 손에 몸 뒤집고 웃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는다면 사랑스러운 네 PMP 오늘 밤을 마지막으로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
“와, 씨. 그거 진짜…… 무서운 협박이다.”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난 동민이 PMP를 끄고 가방 안쪽 깊숙한 곳에 쑤셔 넣었다.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민을 확인하며 나는 뒤에 있던 녀석들을 돌아보았다.
“Good, 서용주.”
“역시 박동민 베프.”
“그런 사람 모른다니까 그러네.”
짝짝짝, 쏟아지는 박수에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가볍게 대꾸해주자 박동민이 내 목에 손을 걸어 잡아당겼다.
“입었던 빤스를 입에 처넣어버릴까 보다.”
“진짜 비위 상하는 농담이다.”
“농담인지 아닌지 실험해볼래, 서용주?”
씨익 웃는 박동민의 옆구리를 슬쩍 어루만져주고 냅다 녀석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신발을 신고 방을 나와 복도를 빠르게 걸었다. 등 뒤로 아직까지 웃고 있는 박동민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뭐지?”
한창 혼잡한 시간은 지난 것인지 샤워실에는 몇몇 놈들밖에 없었다. 한산해진 샤워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서서 몸에 비누칠을 하고 있는데 옆으로 다가온 박동민이 배를 슬슬 문지르며 말했다.
“뭐가?”
“이상하게…… 배가 고파.”
“식충이 새끼.”
“이상해. 밥 먹은 지 두 시간도 안 되었는데 배고프다.”
사실 조금 허기가 느껴지기는 하지. 전지훈련 온 뒤로 더욱 배가 고픈 것 같다. 잠시 고민하다 나 역시 그러하다는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이자 동민이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학교 급식보다 반찬이 좋아서 그런가. 여기서는 하루 다섯 끼 먹으라고 해도 먹을 것 같다.”
확실히 학교 급식보다 잘 나오긴 하지. 박동민이 오늘따라 옳은 말만 한다며 나는 고개를 재차 끄덕였다.
“새벽에 매점 갈까?”
“처맞고 싶으면.”
“내가 망봐줄게 네가 뛰어갔다 오면 되잖아.”
박동민의 말에 나는 녀석의 가슴팍으로 비누를 던졌다.
“그러다 걸리면 나만 좆 되고?”
“씨발, 그래. 네가 망봐. 내가 갔다 올게.”
박동민은 바닥으로 떨어진 비누를 주워 몸에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어디 남에게 떠넘기려고 하나. 그 정도의 위험도 감수하지 못하고 주린 배를 채우려고 하다니. 이런 비양심적인 새끼를 보았나.
내 말에 박동민이 치사하다며 욕설을 뇌까렸다.
“그래도 복도에 정수기 있어서 다행이야. 사발면만 사 오면 만사 오케이지.”
“감독 샘 밤잠 없는 거 알지? 가끔 복도 순찰하더라.”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아.”
박동민은 나이와 잠의 연관관계에 대해서 한참을 떠들었다. 아무튼 이 새끼 엄청 시끄러워. 차라리 드라마를 보게 둘 걸 그랬나. 조금 후회가 되었다.
동민에게서 비누를 받아 머리를 감고 정수리부터 샤워기로 싹 물을 뿌렸다. 비누기가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물을 잠갔다.
“나 먼저 감.”
“겁나 치사한 새끼.”
“감독 샘한테 들르려고.”
“거긴 왜?”
샤워와 머리 감는 일을 한 방에 끝내려는 모양인지 비누 거품을 잔뜩 내서 몸에 칠하고 머리를 벅벅 문지르던 박동민은 눈에 거품이 들어갔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손을 허우적거렸다.
방향을 잘못 잡아 엉뚱한 곳을 더듬는 박동민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손을 뻗어 물을 틀어주었다.
“니 PMP 꼰지르러.”
“씨발, 서용주. 죽인다.”
“농담. 아무튼 나 먼저 간다.”
동민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는 얼른 샤워실을 나왔다. 물에 젖은 엉덩이에 손바닥이 쫙 감겨서 엄청 크게 소리가 났다.
악, 소리 지르는 것을 보아하니 분명 엉덩이에 손자국이 벌겋게 남겠지. 낄낄 웃으며 박동민이 따라 나오기 전에 복도를 뛰었다.
감독 교사가 쓰고 있는 방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골랐다. 젖은 머리를 잘 닦지 않아서 어깨 위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목에 수건을 두르고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똑똑,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누구냐, 하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저 용주예요.”
“들어와.”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문이 열렸다. 빠끔 고개를 들이밀어 안을 보자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감독 샘이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선생님, 여기 금연 건물 아니에요?”
“너만 입 닫으면 몰라. 무슨 일이야?”
문을 닫고 방으로 올라서서 묻자 감독 샘이 흥, 콧방귀를 뀌며 연기를 내뱉었다. 열어둔 창문으로 희뿌연 연기가 꼬리를 말고 사라졌다.
“핸드폰 좀 잠깐 쓸 수 있을까 해서요.”
“왜?”
“……외할머니 생신이요. 그래도 전화 한 통은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반사적으로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흐음, 하는 감독 샘의 못마땅한 침음에 반짝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감독 샘을 바라보았다.
이쪽을 빤히 바라보며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가 관찰하는 시선에 나는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당당한 얼굴로 생긋 웃었다.
“훈련 온 거 뻔히 아시지만 그래도 전화 안 해드리면 서운해하실 것 같아서요.”
“오 분 안에 끝내라.”
감독 샘의 말을 이해한 나는 넵, 하고 대답했다. 감독 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니 전지훈련 첫날 축구부원들의 손에서 가져간 휴대폰이 가득 담긴 비닐봉지가 보였다. 그 안을 뒤적거려 내 휴대폰을 찾아냈다.
“금방 가져올게요.”
“야, 인마. 여기서 해.”
“아, 쌤! 좀 봐주시는 김에 확 봐주세요.”
“서용주, 까분다. 외할머니께 전화 드린다고 구라 치고 여자 친구한테 전화하는 거 아냐?”
“저 여자 친구 없거든요.”
애인만 있지 여자 친구는 정말 없거든요. 믿어주세요. 저도 거짓말 안 하려고 나름 노력하는 착한 학생인데 왜 저를 못 믿으세요. 두 손을 모아 비비자 감독 샘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오 분이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혹여 감독 샘 마음이 변할까 싶어 급하게 방을 나왔다.
휴대폰 전원을 켜자 지이이이잉 연달아 진동이 울렸다. 부재중 통화 알림과 문자들이었다.
거의 대부분이 하원에게서 온 것들인지라 하나하나 확인해봐야 했지만 오 분이야, 라고 말한 감독 샘의 목소리가 귀에 울리는 바람에 결국 급하게 단축번호를 꾸욱 눌렀다.
뭔지 알 수 없는 팝송 컬러링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듣기 싫은지 모르겠다.
복도가 상당히 시끄러워 근처 비상계단 문을 열고 나갔다. 철컥 문이 닫히며 그나마 주변이 조용해졌다.
초조하게 컬러링을 듣다가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서너 번의 시도 끝에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급하게 형, 하고 하원을 불렀다.
―용주야? 진짜 용주야?
“네, 촬영 중이에요? 전화 왜 이렇게 늦게 받아요?”
―아니, 나 씻다가 나왔어. 진짜 용주 맞아? 우리 용주야?
하원은 몇 번이나 진짜 용주 맞아? 하고 물었다. 이렇게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확인하는 하원의 물음에 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짜 저 맞아요. 무슨 문자를 이렇게 보냈어요? 저 훈련 간다고 말했었잖아요. 휴대폰도 압수당할 거라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런데 어떻게 전화한 거야?
“외할머니 생신이라 전화 한 통 드린다고 하고 휴대폰 받은 거예요. 오 분 안에 다시 가져다드려야 해요.”
―그래? 외할머니 생신이구나.
“아마도 오늘은 아닐걸요.”
언젠가는 생신이겠지만 그게 오늘은 아닐 거다. 게다가 우리 외할머니 돌아가신 지 십 년은 더 된 것 같고.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있어요.”
쉽사리 이해하지 못하는 하원의 물음에 볼을 긁적이며 대충 대답을 얼버무렸다.
하원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돌아가신 외할머니까지 팔아서 휴대폰을 받았다고 하기엔 왠지 내가 나쁜 놈 같았다.
연애를 하면서 느낀 건데, 애인한테는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차마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내가 이 정도로 형이랑 통화하고 싶었다는 마음만 알아줬으면 좋겠네요.
“촬영 잘하고 있어요?”
―응, 용주는? 너무 힘들게 훈련하는 거 아니야?
“전 괜찮아요. 여기 밥도 엄청 맛있게 나오고, 다른 학교랑 시합도 하고, 그래서 배울 것도 많은 것 같아요.”
―다행이다.
하원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용주 못 본 지 이 주일은 더 된 것 같아.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가끔 형 촬영 바쁘면 보름씩 못 만나기도 했었잖아요.”
―그래도 그때는 중간중간 전화 통화라도 했지. 지금은 뭐야. 통화도 못 하잖아. 용주 보지도 못하고, 목소리도 못 듣고.
“미안해요. 조금만 더 있으면 저 서울 올라가요.”
―뭐가 조금이야? 일주일은 더 남았는데. 용주 거짓말쟁이.
하원은 다다다다 말을 하더니 이내 시무룩해져서는 거짓말쟁이, 하고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나도 형 엄청 보고 싶어요.”
―난 너 방학하면 같이 놀 수 있을 줄 알았어.
“동계 전지훈련 갈 거라고 말씀드렸었잖아요.”
―그래도 이렇게 방학 내내 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단 말이야.
“방학 내내 아니에요. 앞뒤로 일주일씩은 시간 비잖아요.”
―너 훈련 가기 전에 이것저것 준비해야 한다고 나한테는 얼굴도 안 보여줬거든?
하원의 말에 동계 훈련 오기 전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머쓱하게 웃었다. 정말 그랬네. 아, 미안해라.
그렇지만 저번 하계 훈련을 빠진 탓에 이번 훈련은 그리 여유로운 마음으로 임할 수 없었다.
평소보다 긴장감과 부담감을 배로 느껴야 했고, 삼 학년을 앞둔 시점에서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많았다.
게다가 신정은 가족과 함께 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동계 훈련을 떠나자는 감독 샘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1월 1일과 2일은 집에서 보낸 뒤에 바로 동계 훈련에 끌려와야 했다.
“미안해요. 이번에 훈련 끝나고 서울 올라가면 우리 많이 놀아요.”
―몰라, 나 삐쳤어.
하원이 팩 토라진 음성으로 대꾸했다. 귀여워 죽을 것 같기는 한데 그런 하원을 달래주며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오 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차며 나는 하원이 형, 하고 작게 그를 불렀다.
―나 삐쳤다니까.
“저 곧 전화 끊어야 할 것 같은데 삐친 상태로 인사도 안 해주고 끊을 거예요?”
―뭐? 안 돼. 전화 끊지 마.
“오 분 훨씬 지난 것 같아요. 저 이러다 감독 샘한테 끌려가서 엄청 맞을지도 몰라요.”
내 말에 하원은 전화를 끊지 말라고도 못 하고, 그렇다고 끊으라고도 말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저 끙끙거리기만 했다.
“요즘 밥 잘 챙겨 먹고 있죠?”
―응.
“이제 닭가슴살 그만 먹어도 된다고 했으니까 끼니 잘 챙겨 먹고. 그렇다고 야식은 먹지 말아요. 형 야식 너무 먹어요.”
―안 먹어. 석진이가 야식집 팸플릿 다 버렸어.
합치면 백과사전 두께가 될 정도로 엄청나게 모아두었던 팸플릿을 다 버렸다니 매니저도 대단하다.
그래도 새로운 팸플릿을 모으기 전까지는 하원이 야식을 먹지 않을 터라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아니, 요즘엔 휴대폰 어플로 시켜 먹으니 별 타격이 없으려나.
“저 서울 올라가면 맛있는 거 해 먹어요.”
―넌 서울 올라오기나 해.
“미안해요, 형. 그래도 일주일만 있으면 형 볼 수 있으니까 정말 좋아요.”
나는 손끝으로 벽을 문지르며 실실 웃었다. 정말 이렇게 말하고 있으려니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 버릴 성싶은 기분이다.
바로 내일이라도 하원을 만나러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괜스레 가슴이 뛰었다.
“나 매일 형 생각해요.”
―말하지 마.
으으, 하고 하원이 앓는 소리를 냈다. 이것이 무엇의 전조인지를 알아차린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랑 말하기 싫어요? 만날 내가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말하지 말래.”
―넌 가끔 너무 야해, 서용주.
“전 별말 안 하는데 형이 야한 생각을 하니까 그렇죠.”
―넌 야한 청소년이야.
“형은 야한 어른이고요?”
―너 올라오기만 해봐.
하원의 꿍얼거림에 나는 큭큭, 웃음을 삼키려다 실패하고 웃어버렸다.
―나 놀리는 거 좋아?
“제가 언제 형을 놀렸다고 그래요?”
―너 지금 웃고 있어.
그거야 이상하게 형이랑 대화를 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니까요. 여전히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 것을 느끼며 나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더듬었다.
진짜 중병이라도 걸린 것 같아. 나는 아직까지도 형을 생각하면 이렇게 이상해져요.
“항상…… 항상 형이 보고 싶어요.”
―용주야.
“무슨 일을 하든 항상 형이 떠올라요. 항상 형 생각해요.”
―……아, 용주 보고 싶다.
“저도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었다. 하원 역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색색, 들려오는 숨소리에 맞춰 나 역시도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어보았다.
“일주일 뒤에 봐요.”
―또 전화 못 하겠지?
“네, 대신 훈련 끝나면 바로 전화할게요.”
―나 기다리고 있을 거야.
과거 보러 한양 간 이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이처럼 하원은 애달픈 목소리로 말했다.
―휴대폰 계속 가지고 있을 거니까 꼭 전화해야 해.
“알겠어요. 서울 올라가서 봐요.”
―응, 밥 잘 먹고 푹 자고.
“형도 식사 챙겨 먹고, 야식은 먹지 말아요.”
―안 먹는다니까.
구시렁거리는 하원의 불퉁거림을 들으며 힘겹게 통화를 끝냈다.
정말이지 전화하는 것보다 전화 끊는 것이 더 힘들다. 이 주일 만의 통화인지라 더욱 아쉽고 애틋한지도 모르겠다.
통화가 끊어진 휴대폰을 손에 쥐고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 ∞ ∞
“집으로 바로 가서 쉬어라. 딴 데로 새는 놈들 나중에 소문 들리거나 걸리면 그날로 숙소에서 집중훈련이다.”
감독 샘의 엄포에 어우,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렸다.
“집에 가서 쉬다가 이 학년들은 2월 1일부터 숙소로 모이고, 일 학년 놈들은 개학하면 바로 튀어 온다. 알았냐?”
“쌤, 2월 1일이면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요.”
“이 새끼들아, 니들 이제 삼 학년이야. 아주 그냥, 정신 빠졌지?”
박동민이 냉큼 손을 들어 말했지만 오히려 감독 샘에게 역공을 당하고 찌그러졌다. 본전도 못 찾을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다.
“2월 1일이다. 까먹었다고 핑계 대고 안 나오는 놈들은 집에 연락할 거니까 각오하고.”
학교 운동장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려 숙소에 모여 있던 우리는 감독 샘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그렇게 벼락보다 더 큰 충격을 가져온 통보를 받았다.
“한 놈씩 나와서 휴대폰 가져가.”
언제나 짬밥 순이라고 이 학년들부터 차례로 나가 자신의 휴대폰을 찾아왔다.
전원이 꺼진 폰을 손에 들고 자리로 돌아온 나는 털썩 주저앉아 휴대폰의 전원을 꾹 눌렀다.
“개학까지 겨우 이 주 남았잖아. 중간에 나오라고 할 줄은 꿈에도 예상을 못 했네. 그거 그냥 다 쉬게 해주지, 이게 뭐야. 쉬는 게 무슨 숨만 쉬라는 건가. 내 마음과 몸의 휴식은 어쩌라고.”
내 옆에 주저앉은 박동민이 작은 목소리로 종알거리며 한탄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하원에게 일주일은 넘게 시간이 있을 거라고 큰소리 떵떵 쳐놨는데.
지이잉, 울리는 휴대폰을 손에 꼭 쥐고 난감한 마음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동안 못 봤던 드라마가 몇 편인데. 그거 언제 다 보냐고.”
가방을 껴안고 울고 있는 박동민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나 역시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동계 훈련을 광주로 내려가서 한 데다, 이번에는 타 학교들과의 시합까지 체계적으로 계획되어있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더 힘든 일정이기도 했다.
일 학년 때에는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이 유독 힘들었지. 뒤통수를 손으로 벅벅 긁으며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집에나 갈란다. 하루는 죽어라 잠만 자고 하루는 죽어라 처먹고 나머지 하루는 드라마 몰아서 봐야지.”
꽤나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운 박동민은 옆에 던져두었던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가?”
“전화 한 통만 하고. 먼저 가.”
감독 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녀석들은 가버린 모양인지 주변이 휑했다. 박동민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터덜터덜 걸음을 옮겨 숙소를 나갔다.
비어버린 숙소에 가만히 앉아있던 나는 휴대폰의 진동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하원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서울 왔어?
“네, 지금 도착했어요. 이제 집에 가려고요.”
―뭐?
전화를 받자마자 여보세요, 도 아니고 서울 왔어? 가 뭐야.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가려고 한다는 내 말에 하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형, 귀 따가워요.”
―집은 왜?
“그럼 숙소에서 훈련해요? 집에 가서 쉬어야죠.”
―그럼 나는……?
하원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이나 내일모레 만날까요? 맛있는 거 해 먹어요.”
―나는 용주가 나 만나러 바로 올 줄 알았어.
애써 활기차게 말해보지만 하원은 여전히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나 엄청 실망했어, 내 기대가 깨어졌어, 나 지금 무지 속상해. 뭐 이런 감정이 절절하게 전달되어오는지라 그런 하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매일 씻기는 했지만 그래도 몸이 찝찝해서요. 빨랫감도 산더미라서…….”
―우리 집에도 욕조 있고, 세탁기 있는데. 우리 집 와서 쉬면 안 돼? 내일이나 모레라니. 그러다 또 시간 안 돼서 못 만나면 어떻게 해?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인데 또 할 말은 조잘조잘 잘도 한다. 하원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잠시 한숨을 내쉬고는 형, 하고 하원을 불렀다.
“나도 형 많이 보고 싶어요. 그런데 이 상태로는 만나기가 좀…… 그래요.”
―왜?
“거기서 빨래해서 입었다고는 해도 옷에서 냄새도 나고요, 저 지금 별로 깨끗하지도 않고 그래요.”
―우리 집 와서 씻어. 내가 빨래해줄게.
그렇게 말하기 전에 형은 형 빨래나 좀 하세요. 그 말이 반사적으로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집에 가지 마. 나 만나러 와. 응? 오늘은 나랑 놀아.
딱히 놀 만큼의 정신이 남아있지도 않은데.
사실 씻고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매일 하는 훈련을 광주 가서 하고 왔다고 곱절로 피곤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상 뭔가를 끝냈다는 것에 휴식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은근슬쩍 내일 만나자고 말을 흘렸지만 하원이 그걸 알아주지 않아서 곤란했다.
“……알았어요. 그럼 지금 갈게요.”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누가 말을 했던가. 지는 것은 그냥 지는 것일 뿐이다. 반한 것이 죄라고 나는 또 이렇게 하원에게 두 손을 들고 패배를 선언했다.
―지금?
“집에 가면 쓰러져서 잘 것 같거든요.”
―나 지금 촬영 중인데.
그러면서 집에 가지 말고 같이 놀자고 해? 이 사람이 정신이 없고만.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런데 나 정말 금방 끝날 것 같아. 우리 오늘 만나자. 응? 우리 집 가서 씻고 좀 쉬고 있으면 내가 맛있는 거 사서 빨리 갈게. 응? 용주야. 용주 뭐 먹고 싶어? 맛있는 거 잔뜩 먹으면서 쉬자. 응? 응? 나 버리고 집에 안 갈 거지? 나 금방 끝나는데 그냥 갈 거 아니지?
정말이지 반한 사람이 죄다. 하원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민하원한테 반한 내 잘못이 크지.
작게 한숨을 삼키며 나는 벽에 뒤통수를 기댔다. 휴대폰 너머로 용주야, 하고 부르는 하원이 목소리가 들렸다.
―집에 가서 쉬고 싶어? 가족들이랑 저녁 먹고 쉴 거야? ……그럼 내일 보자. 용주도 피곤할 테니까 푹 쉬고, 그리고 나중에 보자.
하지만 나는 지금 엄청 엄청 만나고 싶어. 네가 내 말에 네, 하고 가버리면 난 정말 슬플 거야.
그러한 속마음이 절절하게 전달되어오는 바람에 나는 입을 틀어막고 웃어야 했다.
“형, 정말……. 연기하는 사람이면서 대체 뭐예요?”
―왜? 뭐가?
“일부러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아니면 대본 없이는 연기를 못하는 거예요? 진짜 미치겠다.”
삼키지 못한 웃음을 끅끅 흘리며 나는 어쩔 수 없는 마음을 담아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가서 씻고 쉬고 있을게요.”
―정말? 정말 우리 집 올 거야?
“네, 그러니까 촬영 빨리 끝내고 오세요. 늦게 오면 저 갈 거예요.”
―응, 응. 빨리 끝내고 갈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맛있는 거 사 갈게. 우리 맛있는 거 먹으면서 놀자.
놀아봤자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이 전부일 텐데, 뭘 저리 거창하게 말할까. 그러면서도 하원의 말에 네, 네, 대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형 먹고 싶은 거 사 와요. 대신 음식 사 온다고 늦게 오지 말고 간단한 거 사 와요. 알았죠?”
―응, 빨리 갈 거야. 나 갈 때까지 쉬고 있어. 번호 잊어버리지 않았지?
“저 그 정도는 기억할 수 있어요.”
―응, 응. 꼭 우리 집 가 있어야 해. 꼭이야. 나 집에 갔는데 용주 없으면 울 거야.
“형 우는 거 구경하게 집에 가버릴까 봐요.”
―용주 심술쟁이.
내 말에 하원이 불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농담이에요. 촬영 힘내서 하고 오세요.”
―응. 용주야, 좀 이따가 만나. 나 꼭 빨리 갈게.
“네, 조금 이따가 봐요.”
전화만 했다 하면 통화가 길어지지. 겨우겨우 통화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우득, 하고 뼈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는데. 윽,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구르고 있는 가방을 손에 들었다.
어머니한테는 죄송하지만 나는 아직도 광주에 있는 거다. 이제 열아홉인데 하루 정도의 외박은 나쁘지 않지. 애써 스스로를 변명하며 나는 과감하게 오늘의 외박을 결심했다.
오늘 들어가나 내일 들어가나 어차피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머니가 애타게 나만 기다리고 있다고는 생각되지도 않고.
오히려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이는 이쪽이지 않을까. 징징거리는 하원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진짜 반한 사람이 죄라니까.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나는 걸음을 옮겼다.
∞ ∞ ∞
오랜만에 들른 하원의 집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정말이지 좀 치우고 있으라니까. 일하는 아주머니께 매번 구박을 받는다면서도 하원의 널브러뜨리는 버릇은 고쳐지질 않는 모양이었다.
짐가방을 내려놓고 거실 소파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를 주워 빨래통에 집어넣었다.
욕실로 들어가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하원의 옷장을 열어 적당한 티셔츠와 추리닝 바지를 꺼내 입었다.
하원이 돌아올 때까지 조금만 누워있어야지 했던 것이 잠으로 이어진 모양인지, 하원의 침대에 누운 뒤로 기억이 없다.
추운 곳에서 올 하원을 위해 실내 온도를 높여두고 침대에 엎드려 있었는데 적당히 따뜻해진 공기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든 모양이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안녕.”
하원이었다. 지금 막 온 모양인지 두 뺨이 발갛게 얼어있었다. 손을 뻗어 그 뺨을 감싸며 나는 작게 웃었다.
“지금 온 거예요?”
“응.”
“많이 춥죠? 얼굴이 차가워요.”
내 손 위로 겹쳐진 하원의 손 역시 차가웠다.
“으, 진짜 추워. 이렇게 추운데 용주는 어떻게 훈련했어?”
“일단 이불 안으로 들어와요.”
덮고 있던 이불 한쪽을 들어 올리자 하원이 코트를 벗어 침대 아래로 던져놓고 이불 안으로 꾸물꾸물 기어들어 왔다.
코트를 걸어두어야 할 텐데. 하지만 옷걸이에 걸어두고 오라고 말해도 듣지 않을 것이 뻔하고, 지금 급한 건 코트가 아니니까.
이불 안으로 들어온 하원의 몸을 끌어안자 냉기가 전해져왔다. 파르르 몸을 떨자 하원이 슬쩍 몸을 뒤로 물리는 것이 느껴졌다.
“가까이 와요. 떨어져 있으면 춥잖아요.”
“나 지금 차가워. 용주까지 차가워진단 말이야.”
“그래도 안고 있으면 금방 따뜻해지잖아요. 빨리요.”
잠시 주저하던 하원은 가까이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지금 몇 시예요? 잠깐 잠들었나 봐요.”
내 물음에 하원은 곤란한 얼굴로 입술을 오물거렸다. 슬쩍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인 시계를 보자 열한 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일찍 온다고 해놓고.”
“미안. 자꾸 오케이를 안 해주고 다시 찍자고 하잖아. 대충 하고 빨리 좀 끝내줄 것이지. 오늘따라 막 질질 끌면서. 나 엄청 화났어. ……용주도 화났지?”
슬쩍 내 눈치를 보며 묻는 하원을 향해 무슨 화를 내겠냐 싶어 그저 고개만 내저었다.
“그렇다고 대충 찍을 수는 없잖아요. 그런 것으로 화내면 안 되죠.”
마주하고 있는 하원의 이마에 내 이마를 콩 부딪치며 말하자 하원이 그치? 하고 답하며 샐샐 웃는다. 아무튼 속에 여우를 한 백 마리는 감춰두고 있는 것 같다니까.
“늦게 와도 나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아냐, 엄청 걱정했어. 집에 도착해서 문 열면서도 용주 갔을까 봐 엄청 엄청 걱정했어. 아무 소리도 안 나기에 가버렸구나 생각했는데, 용주가 자고 있어서 진짜 기뻤어.”
“그래도 조금은 내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끈질긴 내 물음에 하원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을 하다가 슬쩍 내 눈치를 보고는 배시시 웃었다.
“쪼금.”
조금은 무슨. 저렇게 웃고 있는 것을 보니 아주 기대를 하고 온 모양인데. 은근히 얄밉다니까. 하원의 볼을 살짝 꼬집어 흔들자 우웅, 하고 소리를 냈다.
“잠들지만 않았으면 갔을 거예요.”
“나 우는 거 보고 싶어서?”
“네, 형 우는 거 보고 싶어서요.”
불퉁한 목소리로 대꾸하자 하원이 입술을 쭉 내밀어 내 뺨에 쪽쪽 입을 맞췄다.
“용주 정말 심술쟁이야. 나빠.”
“늦게 와놓고선 나보고 나쁘대.”
“감독한테 사과하라고 전화할까? 삼 주 만에 애인 만나는 날인데 늦게 보내줬다고. 어쩜 이럴 수 있냐고 막 화낼까?”
그럴 마음도 없으면서, 은근히 허풍쟁이. 하원의 코끝을 살짝 물었다 놓으며 됐어요, 하고 말했다.
“맛있는 거 사 왔어요?”
“더 늦으면 용주 갈까 봐 못 사 왔어. 막 뛰어오느라고.”
“거짓말쟁이.”
“정말이야. 진짜 막 급하게 왔다니까.”
“뛰어오긴 뭘 뛰어와요? 차로 왔으면서. 올라올 때도 엘리베이터 타고 왔잖아.”
“현관에서 방까지는 뛰어왔어.”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하는 하원이 귀여워서 나는 잠시 웃어버렸다.
아무튼 말로 당해낼 수가 없어. 점점 더 시간이 지날수록 하원을 이기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반한 게 뭐 그리 큰 죄라고.
“삼 주나 떨어져 있었으면서 나 안 보고 싶었어?”
“네,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형 생각 하나도 안 나더라고요.”
“우와, 용주 나쁘다. 나는 혹시라도 용주가 전화 받지는 않을까 싶어서 만날 전화하고 문자 하고 그랬는데.”
“휴대폰 압수당할 거라고 미리 말했잖아요.”
“그래도 또 모르니까. 내가 보낸 문자 확인했어?”
“아니요, 아직. 뭐라고 보냈어요?”
사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하나하나 다 확인했지만 모른 척 물었다. 내 물음에 하원은 음, 하고 말을 끌었다.
“용주야, 밥은 잘 먹고 있어? 광주는 춥지 않아? 나 안 보고 싶어?”
그런 내용의 문자를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요? 하고 나는 물었다.
“나는 용주가 항상 보고 싶어.”
하원의 손이 목덜미에 닿았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차가운 기운에 살짝 어깨를 움츠리자 하원이 바짝 몸을 붙이고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자고 일어나서도, 밥을 먹을 때도, 촬영할 때도 용주가 많이 보고 싶어.”
차가운 하원의 손이 닿아있는 목덜미에 미미한 열기가 느껴졌다. 머리를 감은 상태로 자버린 탓에 제멋대로 엉클어진 머리카락을 하원의 손가락이 더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잘 때도 용주 생각하면서 자. 용주는 내 생각하고 있어?”
귓가에 바짝 붙어 속삭이던 하원의 입술은 어느새 목덜미로 내려가 있었다. 하원이 속삭일 때마다 열기를 담은 숨결이 목덜미에 감돌았다.
뜨거워.
아까까지만 해도 냉기가 느껴지던 하원의 몸에서 열기가 흐르고 있었다.
“정말 내 생각했어요?”
하원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드러난 이마 위로 입을 맞췄다. 내 물음에 하원은 눈 끝을 접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생각했어. 용주 얼굴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 정말 애타서 죽을 것 같았어.”
하원은 고개를 숙여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듯 하원의 어깨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저도요, 하고 답했다.
“나도 항상 형 생각했어요. 부모님보다 형 생각을 더 많이 해서 난 불효자인가, 하고 반성할 정도였어요.”
“으으, 그럼 난 이미 불효자야. 난 부모님 생각은 일주일에 한 번도 안 하는데 용주 생각은 하루에도 열 번 넘게 하거든.”
하원의 말에 은근슬쩍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하원에게 길들여지는 것 같아. 어디 가서 조련 기술이라도 배워오는 걸까.
“형, 정말 어디서 연애하는 법이라도 배우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게 뭔데?”
“아니요, 그냥 형이 너무…… 듣기 좋은 말만 해서요.”
“듣기 좋은 말이야? 난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항상 용주 보고 싶거든.”
“그러니까 지금 같은 말이요.”
지금처럼 하는 말이 자꾸 가슴을 간질거리게 해요.
차가운 기운이 사라져 부드럽게 날리는 하원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웃었다.
목덜미 위에 내려앉은 하원의 입술 역시 미미하게 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 이제 따뜻해진 것 같아.”
“그러게요. 그럼 씻고 올래요? 배고플 텐데 뭐 해 먹어요. 재료 뭐 있어요?”
재료가 있을 리 없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반찬을 꺼내서 비벼 먹어도 좋을 성싶다. 내 말에 하원은 고개를 내저으며 싫어, 하고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안 차갑지?”
은근슬쩍 티셔츠 아래로 손을 집어넣으며 하원이 물었다. 맨살에 닿는 온기에도 불구하고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리게 된다.
살짝 몸을 굳히자 하원이 얼굴을 들어 “차가워?” 하고 물었다.
“아뇨, 안 차가워요.”
“이렇게 용주랑 있으니까 좋다.”
저도 좋기는 한데요. 가슴 위를 더듬는 하원의 손길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미미한 열기를 담은 손의 움직임이 거칠었다면 뭔가 확실한 반응이라도 내보일 텐데, 하원은 마치 아이가 장난을 치는 것처럼 부드럽게 손을 움직여 배 위를 더듬고 가슴을 매만졌다.
“나 용주 진짜 보고 싶었어. 같이 있고 싶고 안고 뽀뽀하고 싶은데 옆에 없으니까 많이 슬펐어.”
“저도 그랬어요.”
“용주도 나랑 뽀뽀하고 싶었어?”
“보고 싶었다고요.”
하원의 이마에 내 이마를 콩 부딪치며 말하자 하원이 배시시 웃었다.
“나 용주랑 야한 거 하고 싶은데…….”
장난스럽게 하는 말이지만 그것에 담긴 속뜻을 알아차린 나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붉혔다. 언제나 이렇다. 하원은 아이처럼 순수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원의 얼굴 위로 나타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 아닌 기대와 흥분이었기에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히는 것은 언제나 내 차지였다.
차라리 하원이 주저하며 부끄러워했다면 내가 더 용기 내어 하원을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
“형은 항상 저를 부끄럽게 해요.”
“그럼 나 물어보지 말까?”
그것도 조금은 곤란하지만. 나는 대답을 아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곤란해하는 것을 느낀 모양인지 하원이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 항상 이러지 않는데 이상해. 용주랑 있으면 자꾸 불끈불끈거려.”
어디가 불끈거리는지는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 듯했다. 하원의 표현 방식에 잠시 웃어버린 나는 하원의 이마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부끄러운데 기분은 좋네요.”
내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하원은 손을 움직여 내 티셔츠 자락을 잡아당겼다. 손을 움직이기 편하도록 팔을 들어주자 능숙하게 티셔츠를 벗겨낸 하원이 목덜미 아래로 입술을 내렸다.
“너 몸이 더 좋아지는 것 같아.”
“운동해서 그런 거겠죠.”
“탄탄해. 만지는 느낌이 좋아.”
그런 칭찬은 정말 부끄러운데요. 말을 안 하는 것도 머쓱하지만 이런 행위 중에 하원이 말을 하는 것도 엄청 부끄럽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나는 그저 하원의 목덜미만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너 샤워할 때 다른 애들이랑 같이 했어?”
“공용 샤워실이니까요.”
가슴 위에 입을 맞추던 하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진짜? 그럼 막 알몸으로 같이 목욕한 거야?”
“그럼 벗고 목욕하지, 옷을 입고 목욕해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너무해. 다른 애들한테 알몸이나 보여주고.”
“원래 다 그렇거든요. 같은 남자끼리 내외하는 것부터 웃겨요. 학교 숙소에서도 한꺼번에 들어가서 샤워하고 나온다고요.”
내 대답에 하원은 가슴 위로 얼굴을 묻고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이럴 수가. 용주가 다른 남자들한테 알몸을 내보이고 다녔다니. 충격이야.”
“전혀 이상한 게 아니라니까요. 형, 자꾸 이상하게 몰아갈래요?”
손을 내밀어 하원의 뺨을 잡아 살짝 흔들었다. 우웅, 앓는 소리를 내며 하원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용주 몸 보고 막 다른 애들이 이상한 생각 하면 어떻게 해? 용주는 내 건데.”
“아무도 이상한 생각 안 해요. 일단 저부터 다른 놈들 몸을 봐도 아무 생각도 안 든다고요.”
“하지만 나는 용주 벗은 등만 봐도 막…… 막 그렇단 말이야.”
그렇기는 뭐가 그래요. 나는 하원의 콧등을 살짝 물었다 놓으며 타박했다.
“제 몸 보면서 야한 생각 하는 건 형밖에 없을 거예요.”
“용주도 내 몸 보면서 야한 생각 해?”
“야한 생각 안 하면 이런 거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아무튼 사람 부끄럽게 만드는 것도 정말 지능적이라니까. 기어코 내 입에서 부끄러운 대답이 나오도록 만드는 하원을 탓하며 나는 하원의 니트를 끌어당겼다.
겹겹이 입고 있던 니트와 셔츠를 벗기자 그 안에서 헬스로 다져진 몸이 나타났다.
이쪽은 죽어라 땀 흘리며 공 차고 뛰어다녀도 겨우 이 정도인데, 헬스장 가서 트레이닝한 사람의 몸이 나보다 좋다니 왠지 슬퍼졌다.
“용주가 옷 벗겨주니까 기분이 묘해.”
하원의 바지 버클을 풀고 있는데 목덜미를 핥고 있던 하원이 속삭였다. 부끄러운데 하지 말까 봐. 잠시 손을 멈추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저 부끄럽게 하면 안 할 거예요.”
“왜! 난 기분 좋아서 그렇단 말이야.”
“전 계속 부끄러워진단 말이에요.”
“그럼 나 입 다물고 있을까?”
힐끔 나를 쳐다보며 묻는 하원을 향해 차마 네, 하고 답할 수가 없었다.
바지 지퍼를 내리자 하원이 굼실굼실 몸을 움직여 바지를 벗어 던졌다. 뜨거울 정도로 열기를 머금은 것이 묵직하게 닿아왔다.
“방금 전까지 추웠는데 지금은 더워.”
어깨 위까지 끌어 올려 덮고 있던 이불을 내리며 하원이 숨을 내뱉었다. 슬슬 나도 더운 열기가 몰려오고 있음을 느끼던 차였기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원의 말에 긍정했다.
“아, 용주 냄새다.”
바지를 끌어 내려 벗기고 몸을 완전하게 겹친 하원이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순간 찌릿하고 전기가 통하는 기분을 느꼈다.
“나 있잖아, 꿈에서 용주 나왔다.”
가슴 위를 쓸어대던 손가락이 작게 솟은 유두를 잡아 문지른다. 찌릿한 감각에 절로 발가락이 뒤틀렸다.
“꿈에서 뭐 했어요?”
하원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야한 거.”
“좋았어요?”
“음…… 그래도 진짜 용주랑 하는 게 더 좋아.”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네. 하원의 솔직함에 또다시 웃어버렸다. 호선을 그리는 입술 위로 하원이 입을 겹쳤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가 밀려 들어와 호흡이 가빠졌다.
아이와도 같은 순수함 뒤에 드러나는 것은 어른의 모습이었다. 진득하게 맞물리는 입술과 혀를 물고 핥으며 나는 남자의 얼굴을 한 하원을 바라보았다.
부드럽게 가슴을 문지르고 유두를 잡아 비트는 손길에 허리가 휘어졌다.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전신으로 퍼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하원의 등을 끌어안았다.
탄탄한 어깨, 불거진 등 근육을 손으로 더듬자 하원의 흥분이 손끝으로 전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얄궂은 손가락에 괴롭혀지던 유두가 하원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강하게 빨아들이는 감각에 나도 모르게 허리를 움찔거렸다.
움푹 팰 정도로 하원의 어깨를 힘주어 쥐고 작게 신음을 내뱉자, 하원이 뾰족하게 혀를 세워 작은 유두를 톡톡 건드렸다.
“장난치지…… 말아요.”
“하지만 귀여워.”
남자 가슴을 빨면서 귀엽다는 소리도 하지 말라고요. 부드럽게 흘러내려 가슴 위를 간질이는 하원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나는 작게 헐떡거렸다.
길고 곧은 손가락은 가슴과 배 위를 배회하다 속옷 아래로 파고들었다. 흥분으로 솟구친 성기에 하원의 손가락이 닿았다.
“아…….”
“훈련 가서…… 혹시 몰래 했어?”
“그럴 리가 없잖아요.”
짧은 신음에 하원이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숙소도, 샤워실도 공용이라고요. ……거기서 ……자위하면 저 변태라고 소문나요.”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축이며 나는 힘겹게 하원의 질문에 답했다.
“난 용주 생각하면서 혼자 했는데.”
그런 것까지는 말해주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말하는 대신 나는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원이 뻣뻣하게 서 있는 성기를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감싸 쥔 탓이었다.
“형…….”
“너 엄청 흥분했어.”
제발 상황 설명 좀 하지 말아줄래요. 흥분해 있다는 것을 형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충분히 느끼고 있거든요.
부끄러움에 몸을 떨며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몸을 아래로 내린 하원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속옷을 벗겼다.
꿈틀꿈틀 움직여 자신의 속옷까지 벗어버리고는 내 것 못지않게 흥분한 것을 내 허벅지 위에 문질러댔다.
뜨겁다. 크고 단단한 물건이 허벅지 안쪽으로 비벼질 때마다 불길이 치솟는 기분이었다. 입술을 벌리고 숨을 내뱉은 탓에 목구멍이 메말라 아픔이 느껴졌다.
쿠퍼액이 흐른 성기를 손에 쥐고 문지르자 질척거리는 소리가 이불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뜨겁게 열이 오른 성기와 손바닥이 마찰되며 쾌감의 온도가 서서히 상승하고 있었다.
아플 정도로 발기한 성기가 하원의 손아귀에서 문질러지며 나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허리를 뒤틀었다.
“형…… 잠깐만…….”
어떤 기교도 없이 부드럽게 잡아 문지르며 흔드는 손길에 흥분한 나는 급박한 목소리로 하원을 불렀다. 하원의 등에 두른 손에 힘이 들어가 나도 모르게 하원의 어깨에 손톱을 박았다.
“아…….”
하원이 짧은 신음을 귓가에 토해냈다. 열기를 가득 품은 습한 숨결에 귓가가 진득하게 젖어들었다.
몸서리칠 정도로 음습한 열기, 이불 속에서 느릿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아플 정도로 발기한 성기에 감긴 손이 느리게 움직이며 쾌감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내 신음 섞인 애원에도 불구하고 하원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느리게, 그리고 강하게 문질러지는 감촉에 나는 하원의 등을 끌어안고 끙끙거렸다.
땀이 배어나는 콧잔등을 하원의 어깨에 문지르다 정수리 끝까지 밀려오는 쾌감에 하원의 목덜미를 잘게 깨물었다.
“하읏…… 아…….”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을 것처럼 움직이는 손에 의해 진득한 쾌감의 잔재를 뱉어내고 나른한 신음을 흘려보냈다.
성기를 문지르던 손이 질척거리는 정액으로 젖어들었다. 사타구니를 적시는 기분 나쁜 축축함에 몸서리치며 나는 아직까지도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하원의 손을 붙잡았다.
“잠깐만이라고…… 했잖아요.”
“아껴서 뭐하려고.”
투정 어린 내 말에 하원은 작게 웃으며 물었다. 아무튼 평소에는 아이처럼 굴다가도 꼭 이럴 때만 능글맞아진다니까.
웃고 있는 하원의 등을 살짝 꼬집으며 타박해보지만 별로 타격을 입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 한 번도 안 했었나 봐. 엄청 진해.”
젖은 손을 이불 안에서 꺼낸 하원이 보란 듯 손바닥을 쫙 펼쳤다.
하원의 손바닥을 질척하게 적시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나는 얼굴을 붉히며 손을 뻗어 협탁 위에 놓인 티슈를 뽑아 하원의 손을 벅벅 닦아주었다.
“나 놀리면 좋아요?”
“놀리는 거 아냐. 그냥 좋아서 그래.”
내 귀를 아프지 않게 앙, 물었다 놓으며 하원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용주 냄새도 좋고, 용주 몸도 좋고, 용주 목소리도 좋아.”
목덜미에 콧잔등을 비비며 하원이 속살거렸다. 간질거리는 숨결에 어깨를 움츠리자 혀를 내밀어 날름 목덜미를 핥아 올린다.
“나도 엄청 흥분했어. 막 아프려고 그래.”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허벅지 위로 비벼지는 하원의 성기가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손을 내려 허벅지에 문지르고 있는 것을 더듬어 잡자 하원이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용주 손만 닿았는데도 갈 것 같아.”
이미 손으로 가버린 사람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네요. 하원의 말처럼 아플 정도로 발기한 것은 손에서 넘칠 지경이었다. 성기 밑동부터 선단까지 부드럽게 문질러주자 하원은 젖먹이 강아지처럼 끙끙 신음을 흘렸다.
“있잖아, 바나나 향 찾았어.”
낑낑거리던 하원이 손을 뻗어 협탁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이내 뭔가를 꺼내 들며 말했다. 하원이 들고 있는 것은 예전 딸기 향을 진하게 뿜어내던 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딸기 향이 문제가 아니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바나나 향도 좋을 것 같아서.”
내 턱을 혀로 날름날름 핥으며 하원은 강아지처럼 종알거렸다. 손가락으로 툭, 젤 뚜껑을 열자 달콤한 바나나 향이 콧속으로 확 밀려들었다.
“맛있는 냄새.”
그 맛있는 냄새가 조만간 내 엉덩이에서 날 거라고 생각하자 조금 슬퍼졌다. 앞으로 딸기와 바나나를 과일 그대로 생각하기엔 좀 힘들지 않을까.
찰흙을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하원은 젤을 손바닥에 짜서 문질러댔다. 얼굴 가까이에서 진하게 나는 바나나 향에 머리가 어지러운 것도 같았다.
하원의 손에서 흐른 젤이 가슴 위로 똑 떨어졌다. 그것을 하원이 손가락으로 가볍게 문질렀다.
약간의 점성을 가진 액체가 가슴 위로 부드럽게 펴 발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가만히 숨을 죽이고 하원의 손가락에 신경을 집중했다.
아직까지 흥분의 여운이 남은 탓에 도드라져 있던 유두를 하원은 젤이 묻은 손끝으로 꾸욱 눌렀다가 손가락으로 살짝 비벼 올렸다. 아릿한 통증과 함께 희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여리고 약한 것을 만지는 것처럼 두 손가락으로 느리게 비비던 유두를 놓고 하원은 손을 내려 한 번의 사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 성기를 잡았다.
“형, 잠깐…….”
사정 후의 나른함과 탈력감으로 늘어져 있던 성기에 하원의 손이 닿자 약간의 통증과 함께 긴장이 몰려왔다. 쾌감을 동반한 감각에 나는 황급히 하원의 손을 잡았지만, 젤로 젖은 하원의 손은 이미 부드럽게 내 성기를 감싼 뒤였다.
“으…… 하아…….”
나는 다급하게 잡았던 하원의 손을 놓는 대신 하원의 팔을 느리게 문지르며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내 뺨과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슬쩍 나를 바라보던 하원은 손바닥에 한 차례 더 젤을 짜 성기 위로 문질렀다. 약간의 차가운 감각에 몸을 떨었지만 그것조차도 흥분을 돋우는 매개체가 되었다.
다시금 흥분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는 성기와 고환, 그리고 회음을 느리게 문지르던 손이 엉덩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 손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고 있는 나는 슬쩍 허벅지를 벌려 하원의 움직임을 도왔다.
“용주한테서 엄청 달콤한 냄새가 나.”
몸을 내린 하원이 젤로 젖은 가슴 위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으며 속살거렸다. 그 달콤한 냄새가 바나나 향이라고는 말하지 않기를 바랐다.
다시 흥분한 성기가 하원의 가슴 언저리에 비벼지고 있었다. 그것을 의식한 모양인지 하원은 상체를 움직여 자신의 가슴에 내 성기를 마찰시켰다.
“비벼지는 느낌이 엄청 야해.”
그건 형 가슴에 거시기를 비벼대고 있는 제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아요. 나는 뒤통수를 베개에 느리게 문지르며 말을 삼켰다.
하원의 젖은 손가락이 애널을 파고들고 있었다. 꾸욱 입구를 벌린 손가락은 젤의 도움을 받아 안쪽 깊은 곳까지 밀려 들어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물감에 나는 하원의 어깨를 틀어쥐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힘들어?”
하원이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뇨, ……괜찮아요.”
하원은 성기 위에 넘치도록 젤을 짰다. 점성의 액체가 느리게 회음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엉덩이 아래에 깔린 시트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젤을 펴 바른 손가락이 하나 더 파고들었다. 다리를 벌린 상태로 엉덩이에 힘을 빼며 하원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설핏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핥고 있던 하원과 시선이 마주쳤다.
“흐으…… 힘들어.”
“그건 제가 할 소리죠.”
하원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으며 예쁜 뺨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이 하나 더 밀려 들어옴이 느껴졌다.
뻐근한 통증과 함께 거북스러움이 느껴져 절로 인상이 써졌다. 찌푸린 미간 위로 하원이 입을 맞추며 미안, 하고 속삭이는 것이 들렸다.
“괜찮아요. ……오랜만이라서 ……그래요.”
내 말에 하원은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얼굴을 해요.”
“용주 아픈 것 같아서.”
“안 아파요. 안 아프니까 빨리해요.”
하원의 턱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아픈 것보다 부끄러워서 먼저 죽겠어요.
아직까지도 활짝 벌린 다리 사이로 하원의 손가락이 드나들고 있었다. 하원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쿨쩍쿨쩍 소리가 들려 더욱 낯부끄럽게 만들었다.
“괜찮을까?”
하원은 내 얼굴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다니까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하원이 내벽을 휘젓던 손가락을 빼내고 하체를 내렸다.
허벅지 위에서 묵직하게 문질러지던 것은 금방이라도 파정할 것처럼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서 있었다. 아플 정도로 발기한 것을 용케 참고 있었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손가락이 드나들며 풀어진 애널에 하원의 성기 끝이 닿았다. 뭉툭한 귀두가 힘주어 애널을 파고들었다. 느리게 밀고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하원의 어깨에 매달려 숨을 내뱉었다.
“아파?”
“한 번 더 물어보면 물어버릴 거예요.”
내 대답에 하원은 킥 웃음을 흘렸다. 남은 끙끙거리고 있는데 웃어? 괘씸한 마음에 엉덩이에 콱 힘을 주자 하원이 으으, 하고 신음을 흘렸다.
“용주야, 나 아파.”
“엄살쟁이.”
“엄살 아니야. 엄청 아파.”
눈가가 붉게 물들어있었다. 젖은 눈가를 혀로 쓸며 하원의 목덜미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몸에서 힘을 빼자 그 틈을 타고 하원이 안쪽 깊은 곳까지 밀고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흐읏…….”
성기 끝부분이 내벽의 안쪽에 닿는 것을 느끼며 나는 짧게 신음을 흘렸다.
“끝까지 들어갔어.”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하원이 작게 속삭였다. 그러네요. 땀으로 젖은 하원의 등줄기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엉덩이가 한계로 벌어져 하원의 것을 머금고 있었다. 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작지 않은, 오히려 큰 축에 속하는 것을 엉덩이로 받아내다니 은근히 나도 대단한 것 같다. 이유 모를 뿌듯함을 느끼며 나는 작게 웃었다.
“용주 웃으니까 막 울려.”
어디가 울린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 의미를 충분히 알아들은 나는 웃음을 멈추었다.
“왜 웃었어?”
하원은 촉촉하게 젖은 속눈썹을 들어 올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형이 예뻐서요.”
“나보다 용주가 더 예쁜데.”
“형이 더 예뻐요.”
“아냐, 용주가 훨씬 더 예뻐. 용주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예뻐. 그래서 좋아.”
뺨에 쪽쪽 베이비 키스를 하며 하원이 속살거렸다. 귓가가 간질거린다. 하원의 등을 꼬옥 껴안으며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나 있잖아.”
하원은 약간의 울먹임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힘든데 움직여도 돼?”
정말이지 못 살겠다. 나는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분명히 붉어졌을 거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리자 하원이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슬쩍 허리를 움직였다.
깊은 곳에 박혀 있던 것이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가 쿡 밀려 들어왔다. 예민해진 내벽이 성기로 자극받으며 안쪽에서부터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안아줘.”
하원은 내 머리를 사이에 두고 두 팔을 짚은 상태로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커다란 어깨 위로 나를 내려다보는 하원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어져 있었다.
아플 정도로 강렬한 쾌감에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하원은 느리게 허리를 움직였다.
“용주야, 안아줘.”
금방 파정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발기한 성기가 내벽을 한계까지 벌리고 쑤셔 박혔다가 빠져나가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벌어진 두 다리 사이로 하원의 탄탄한 허벅지가 닿았다. 턱, 턱 부딪쳤다 떨어지는 하체를 느끼며 나는 두 손을 벌려 하원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더 세게 해도 좋아요.”
채워지지 않는 쾌감에 목말라하면서도 제 욕심을 채우지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는 하원을 알기에 나는 하원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하원이 침대를 짚고 있던 손을 내려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예쁘다고 생각했던 손이 내 허리를 단단히 잡아 끌어당겼다. 동시에 퍽, 하고 하원의 성기가 아래를 치고 들어왔다.
“흐읏…….”
정수리를 울릴 정도로 강한 자극이 전해졌다. 예상치 못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으며 침대 시트를 그러쥐었다.
목덜미를 물었다 놓으며 하원이 고개를 들어 입술을 들이밀었다. 턱과 입 주변을 핥아대던 하원이 입술을 벌리고 혀를 집어넣었다. 아프지 않게 잘근잘근 씹어대자 하원이 앓는 소리를 냈다.
허리 아래쪽으로 치대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졌다. 예민한 내벽은 빠져나갔다 밀려 들어오는 성기에 자극받을 때마다 파르르 떨어댔다.
저린 감각에 발가락을 비틀며 하원의 허리를 허벅지로 옥죄었다. 납작 엎드리듯 내 가슴 위로 상체를 바짝 붙인 하원이 나를 끌어안은 상태로 허리를 강하게 움직여댔다. 퍽, 퍽 소리가 울릴 정도로 하체가 맞부딪쳤다.
굵은 것이 후벼 파듯 안을 밀고 들어온다. 감각이 마비되는 것처럼 얼얼한데 성기가 파고드는 내벽은 한껏 예민해져서 파고드는 방향까지 의식할 정도였다.
다리를 들어 하원의 허리에 감으며 나는 파도치듯 움직이는 하원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용주야, 용주야…….”
잔뜩 찌푸린 콧잔등을 목덜미에 문지르며 하원이 애달프게 내 이름을 불러댔다. 땀으로 젖은 목덜미를 쓸어내리며 나는 하원의 귓불을 진득하게 핥아 올렸다.
“좋아…… 용주가 좋아.”
“아…… 흐읏…….”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차를 타고 서울에서 광주까지 다녀올 때에도 멀쩡했던 속이 하원의 목소리에 멀미를 하는 것처럼 울렁거렸다.
단어가 되지 못한 신음을 흘리며 나는 하원의 등을 껴안았다. 안을 파고드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었다. 가슴 위로 떨어지는 땀방울이 잘게 부서져 흩어졌다.
엉덩이로 까슬한 음모가 닿는 것이 느껴졌다. 젤과 쿠퍼액으로 젖은 음모는 성기가 한계까지 밀고 들어올 때마다 엉덩이에 질척한 감각을 남기며 닿았다 떨어지곤 했다.
찔꺽찔꺽 유쾌하지 않은 소리가 고막을 가득 채웠다. 하원의 할딱거리는 숨소리가 가빠졌다.
허리를 잡고 있던 손을 내려 하원이 내 다리를 잡아 벌렸다. 양옆으로 활짝 벌어진 탓에 골반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양손으로 허벅지를 잡아 벌리고 하원은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하원의 가슴 위로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토해내는 신음이 열기를 더하고, 허리의 움직임이 거세어졌다.
하원이 엉덩이를 잡아 벌리고 깊은 곳까지 치고 들어올 때마다 뇌가 울릴 정도로 거칠게 몸이 흔들렸다.
아플 정도로 꿰뚫려 신음조차 내지르지 못하는데도 이상하게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하원의 얼굴만큼은 자세하게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어 하원의 뺨을 살짝 어루만졌다. 쿵, 쿵 흔들리는 움직임으로 손끝에 하원의 뺨이 닿았다 떨어진다. 긴 속눈썹을 아래로 내리깔고 있던 하원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힘겹게 뻗은 손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젖어있었다. 나는 가까스로 하원의 목덜미에 손을 감아 끌어당겼다.
“……형.”
거칠어진 목소리로 하원을 불렀다. 허겁지겁 입을 맞추는 것과 동시에 내벽 깊은 곳에 성기가 쿡 처박혔다. 흐으, 하고 맞물린 입술 사이로 하원의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읏…… 아…….”
쿵, 거칠게 처박힌 것이 느리게 빠져나갔다 다시 밀고 들어왔다. 급박하게 파고들어 안쪽 깊은 곳에 처박힌 성기가 데일 것처럼 뜨거운 액을 쏟아냈다.
꿀럭꿀럭 성기 끝에서 흐르는 정액이 뜨겁게 달구어진 내벽을 적시며 성기와 내벽의 틈을 가득 메웠다.
하아, 하아. 귓가에 울리는 하원의 숨소리는 장마철의 공기처럼 습하고 무거웠다. 귓가를 적시며 끈적끈적하게 달라붙는 그 숨결에 어깨를 떨며 나는 하원의 젖은 등을 느리게 쓸어내렸다.
∞ ∞ ∞
“근육이 많이 뭉쳤어.”
하원은 내 어깨를 손으로 잡아 누르며 속삭였다. 입욕제를 푼 욕조의 거품이 하원의 움직임을 따라 찰랑찰랑 흔들렸다.
반신욕 할 때 사용하면 좋다고 하원이 자랑하듯 말했지만, 이제까지 한번 써보지 못했던 딸기 향 입욕제였다.
욕실을 가득 채운 딸기 향에 조금 어지러워진 나는 등 뒤에 자리 잡고 앉아있는 하원에게 머리를 기댔다.
“운동 엄청 열심히 했나 봐.”
사실 운동한 것보다 형이랑 침대에서 했던 일이 더 피곤하고 힘들었다는 것을 형은 모르겠죠.
처음에는 아파? 하고 물으며 욕심껏 움직이지도 못하던 사람이 나중에는 정신을 놓고 두 번, 세 번 실컷 해버리는 바람에 허리 아래로 감각이 사라져버린 기분이었다.
욕실에 들어올 때도 부축을 받아서 치질 걸린 사람처럼 엉거주춤 꼴사납게 걸어왔음을 떠올리자 입안이 썼다.
“향기 엄청 좋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원은 몽글몽글 올라와 있는 욕조의 거품을 손으로 휘저으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형 얼굴…… 뭐랄까, 굉장히 개운한 표정이네요.”
“개운해? 글쎄, 그런데 나 기분은 엄청 좋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생글 웃어버리는 얼굴에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질 않았다. 뒤통수를 하원의 어깨에 느리게 문지르며 나는 작게 한숨을 흘려보냈다.
“아파?”
“아픈 것보다는 그냥 조금…….”
“조금?”
내뱉은 신음에 하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것에 또 아파요, 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머쓱하게 웃을 뿐이었다.
“……열심히 운동한 것 같은 기분이에요.”
“이거 입욕제, 스트레스랑 몸의 피로 같은 것도 풀어주는 거라고 하더라. 잘 산 것 같아.”
애초에 몸의 피로를 쌓을 일을 안 만들면 될 텐데. 그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단순한 이 남자를 어찌하면 좋을까. 한숨을 삼키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형.”
“응?”
내 손을 잡아 깍지도 끼고 손가락을 조몰락거리며 놀고 있는 하원을 조용히 불렀다.
“형 지금…….”
섰어요? 하고 묻고 싶은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엉덩이 사이를 꾹꾹 누르는 것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을래요?
아이처럼 손장난을 하며 놀고 있는 하원에게 지금의 상황을 자각시킨다면 이대로 욕조 안에서 뭔가 일을 치를 성싶은 기분에 나는 아니에요, 하고 고개를 흔들며 애써 웃었다.
“촬영은 어땠어요?”
“힘들었어. 엄청 엄청 피곤하게 만들어.”
“힘내요. 한 달만 더 하면 종방이잖아요.”
“글쎄, 얘기 들어보니까 연장할 것 같던데.”
하원은 턱으로 내 어깨를 꾹꾹 누르며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청률이 정말 높게 나오나 봐요.”
“그래도 그렇지. 적당한 선을 몰라. 인기가 있든 없든 미리 정해두었던 걸 그대로 밀고 나가야지, 줏대 없이 질질 끌어서 늘이긴 왜 늘려? 이해를 할 수가 없다니까.”
어찌 보면 하원의 말도 일리는 있다. 단순히 촬영을 하기 싫어 부리는 투정이 아니라, 하원은 진정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작가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연장을 해서 더 좋은 결말이 나올 수도 있잖아요.”
“연장해서 좋은 결말 나오는 거 못 봤어.”
“이번엔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형이 있으니까 난 왠지 믿음이 가는데.”
“용주는…… 말도 예쁘게 해.”
하원은 손가락으로 내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엄마 말, 선생님 말은 안 들어도 용주 말은 꼭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야.”
그렇다고 내 말을 다 들어주는 것도 아니면서. 고개를 돌려 하원을 힐끗 쳐다보며 웃었다. 거품을 뺨에 묻히고 있는 하원의 얼굴을 끌어당겨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놓았다.
“말 안 들으면 혼내고, 말 잘 들으면 칭찬해줘야 할 것 같네요.”
“혼나는 건 싫은데 칭찬은 좀 기대된다.”
“좋은 것만 바랄 수는 없죠. 상이 있으면 벌도 있는 거고, 당근이 있으면 채찍도 있는 거고.”
“그럼 벌은 그렇다 치고 상은 뭐 줄 건데?”
허리에 손을 감아 나를 바짝 끌어당겨 안으며 하원은 귓불 아래에 입술을 묻은 상태로 작게 물었다.
“뭐 줄까요? 노트 한 권? 연필 한 자루?”
“상이 좀 박하다.”
“와, 노트와 연필을 무시하다니.”
“나 어른인데. 이제 나이도 한 살 더 먹었는데.”
형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아요. 스물넷이 아니라 이제 겨우 네 살 된 아이처럼 종알거리는 하원의 가슴에 몸을 기대며 나는 발끝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진한 딸기 향에 익숙해지고 나니 적당히 따뜻한 물과 거품 입욕제에 슬슬 몸의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럼 뭐가 좋을까요?”
“뽀뽀.”
뭐만 말하면 뽀뽀래. 힐끗 눈을 흘기자 하원이 헤헤 웃었다.
“말 잘 들으면 뽀뽀 한 번, 엄청 잘 들으면 뽀뽀 두 번. 엄청 엄청 잘 들으면 뽀뽀 세 번.”
“그럼 칭찬 할 일 없으면 뽀뽀 안 하는 거예요?”
내 물음에 하원이 헛, 하고 입을 다물었다. 데구루루 눈을 굴리는 폼을 보아하니 그것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지. 웃음을 흘리자 하원이 치, 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 뽀뽀하고 싶은데…… 빨리 상 받을 일 해봐요.”
내 말에 하원은 음, 하고 뭔가를 생각하더니 욕조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원의 가슴에 기대고 있던 나는 급하게 떠밀린 상체를 세우며 에구, 하고 신음을 삼켜야 했다.
“나가서 침대 시트 갈 거야. 그리고 다시 와서 용주도 씻겨주고.”
“그전에 형 거품부터 씻어내고 나가요.”
아무튼 의욕만큼은 최고라니까. 당장에라도 욕실을 달려나가려는 하원을 붙잡아 세우자 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샤워기로 몸의 거품을 씻어낸 하원이 타월로 몸을 대충 닦아내고 욕실을 빠져나갔다.
반쯤 흥분하여 서 있는 성기를 망각할 정도로 그의 의욕이 얼마나 드높은지 알 수 있어서 한숨 반, 웃음 반 섞인 신음을 내뱉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엉망이 된 시트를 갈고 금방 다시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욕조의 물이 미지근해질 때까지도 하원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체 뭘 하고 있는지 조용하기마저 했다. 설마 시트 갈다가 혼자 자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서서히 공기가 차가워짐을 느끼며 나는 욕조에서 일어났다. 거품이 사그라진 욕조의 물이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샤워기를 틀어 몸에 묻은 비누기를 씻어냈다.
“으…….”
허리와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둔통에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게다가 엉덩이 사이에서 미처 빼내지 못한 정액이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다 좋은데 이건 정말…… 힘드네. 닫힌 욕실 문을 힐끔 쳐다보고는 다리를 벌렸다. 한 손에 샤워기를 쥐고, 다른 손으로 엉덩이 사이를 슬쩍 문질러보았다.
한참 동안 하원에게 괴롭혀져 예민해진 구멍에 손가락이 닿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미끄러운 비누기의 도움을 빌려 슬쩍 손가락을 애널 안으로 집어넣었다. 정말이지 내 엉덩이 사이로 내 손가락을 집어넣는 일만큼은 익숙해지질 않는다.
이제껏 타의로 넓혀져 있었던 탓에 손가락은 어렵지 않게 내부로 밀려 들어갔다. 손가락을 구부려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정액을 긁어내자 내벽이 자극받으며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꾹 이를 깨물며 두어 차례 더 남아있는 것을 빼내고 샤워기로 깨끗하게 몸을 씻었다.
대체 뭘 하기에 아직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지? 욕조에서 나와 타월로 젖은 몸을 닦고 허리 아래를 대충 둘러 감쌌다.
욕실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았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욕실 문을 열고 나가자 어두운 방에 하나둘 켜진 촛불이 보였다.
“앗, 뜨거워.”
저러다 불이라도 내면 어쩌려고.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에 매끄러운 하원의 등이 뽀얗게 빛나고 있었다.
협탁 위에 아기자기한 초를 올려놓고 하나하나 불을 붙이는 일에 온 신경을 쏟아붓고 있어 내가 나온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문틀에 기대어 조용히 하원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요즘 많이 파는 아로마 향초는 하트 모양, 별 모양, 원 모양 등 아기자기하게 귀여웠다. 그 작은 초를 협탁 위에 예쁘게 올려놓고 하나하나 불을 붙이고 있으니 이제까지 조용했던 모양이지.
급하게 갈아놓은 침대 시트가 약간 비뚤어진 것을 보며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성냥을 몇 번이나 새로 켜서 불을 붙이던 하원이 이윽고 촛불 켜는 일을 끝내고는 허리를 폈다. 큰일을 해낸 사람처럼 후우, 크게 한숨까지 내쉬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협탁과 창틀에 올려놓은 촛불들을 뿌듯하게 둘러보던 하원이 손을 뻗어 협탁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을 뒤적거려 무엇인가를 꺼내 드는 것이 보였다.
“……어…….”
해맑게 웃으며 뒤로 몸을 돌리던 하원이 욕실 문에 기대어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게 뜬 눈이 귀여워 작게 웃자, 하원이 흠칫 놀라며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황급히 등 뒤로 숨겼다.
뭐지? 그전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하원이 저렇게 놀라 뒤로 감추는 것을 보니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다.
빤히 바라보자 하원이 울 듯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웃었다.
“왜…… 왜 벌써 나왔어? 조금 더 있지.”
“물이 식어서요. 초 예쁘네요.”
“예뻐?”
당황하여 말을 더듬던 하원은 내 말에 반색하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히히 하고 웃는 얼굴에 뿌듯함이 서렸다. 성큼 걸음을 옮겨 하원에게 다가갔다.
“시트 갈고 여태 이거 했어요?”
“응. 촛불 너무 뜨거워.”
하원이 한쪽 손을 내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 손을 잡아 호, 하고 입김을 불어주자 하원이 뺨을 붉히며 웃었다.
“미리 준비해뒀던 거예요?”
“응, 용주 오면 불 켜놔야지 했는데 내가 너무 늦게 와버렸어.”
사실은 용주 온다고 연락 오면 미리 준비해두려고 했어. 하고 말하는 하원은 아쉽다는 듯 쩝, 입맛을 다셨지만 그래도 칭찬받아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생글 웃고 있었다.
그런 하원의 손을 잡아 끌어당기며 나는 슬쩍 하원이 뒤에 감추고 있던 것을 뺏어 들었다.
“어!”
“…….”
뭘 숨기고 있는지 꼭 알아내야겠어, 라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눈에 띄게 당황하며 감추는 하원을 골려주고 싶은 생각에 나는 하원의 손에서 뺏어 온 것을 눈앞에 들어 올렸다.
“……이거.”
“나는 그냥…….”
잘못을 저지르고 혼이 나는 일만 기다리는 아이처럼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하원이 우물거렸다.
“그냥 정리하려고…….”
“새거 꺼낸 것 같은데요.”
아직 뚜껑을 열지 않은, 한 통 가득 차 있는 러브젤을 하원의 눈앞에서 보란 듯이 흔들어댔다.
“……이거 말고 서랍에 또 있어요?”
“아냐, 없어.”
“확인해봐도 돼요?”
“있어, ……두 개 더.”
물어보기 무섭게 돌아오는 대답에 피식 웃어버렸다. 손을 뻗어 하원의 볼을 가볍게 잡아 흔들자 하원이 우웅, 엄살 섞인 신음을 흘렸다.
“형, 몇 번이나 한 줄 알아요?”
“한 번? 두 번?”
“거짓말하는 건 나쁜데.”
“세 번? 네 번? 기억이 안 나.”
얼마나 정신을 놓고 했으면 기억이 안 나겠어요. 반성해야 해, 정말.
하원에게 젤을 돌려주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말끔하게 세탁하여 말려둔 것인지 시트는 보송보송했다.
축축하게 젖은 수건을 벗어 침대 아래로 내려놓고 이불을 끌어당겨 덮었다.
“왜 그러고 있어요?”
“응?”
러브젤을 손에 쥔 상태로 멀거니 서 있는 하원을 부르자 주춤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아무튼 네 살 먹은 아이도 아니고 뭐 그렇게 시무룩해져서는 있어. 손을 내밀자 하원이 쭈뼛쭈뼛 다가왔다.
“몇 번 해줄까요?”
내 물음에 하원은 눈을 끔뻑거렸다.
“시트도 잘 갈았고, 촛불도 예쁘고. 뽀뽀 몇 번 해줄까요?”
내 말에 하원이 방싯 웃으며 세 번, 하고 말했다. 잡은 손을 끌어당기자 침대 위로 올라온 하원이 웃으며 입술을 쭉 내미는 것이 보였다.
∞ ∞ ∞
“일 학년 때는 못 느낀 거였는지, 아니면 이번이 정말 힘들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훈련은 너무 빡셌던 것 같아요.”
“삼 주 동안 구르고 온 거야? 감독이 윤석진만큼 독해?”
악독함의 비교 대상으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음을 윤석진은 알까.
윤석진의 악행을 구구절절 고해바치는 하원이나 하원의 안 좋은 버릇이나 습관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윤석진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매니저에게 약간의 동정심을 느꼈다.
“아마도 더할걸요.”
“와, 엄청 독한가 보다. 킹 오브 더 킹이야?”
“네, 정말 최강이죠.”
하원의 표현에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훈련 스케줄이 엄청 계획적이고 체계적이라서 놀랐어요.”
“그전 훈련 때에는 안 그랬어?”
하원의 물음에 잠시 일 학년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힘들기는 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니…… 마음가짐의 차이일 수도 있겠네요.”
“부담감이라든지 책임감 같은 것?”
하원은 평소에는 한없이 아이 같은데 가끔은 정말 어른이구나 할 때가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로, 내가 명확하게 말하지 않아도 정확하게 캐치해서 말해주는 것이었다. 때때로 이게 대체 뭐지, 하고 빙 둘러 말하다가 하원의 말을 듣고 아, 그거구나. 하고 깨닫기도 했다.
“역시 그런 거겠죠.”
고개를 끄덕이며 하원의 말에 긍정하자 하원이 귓가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잡아 배배 꼬며 작게 웃었다. 하원이 내뱉은 숨결이 귓가의 솜털을 간질였다.
“그런데 전지훈련은 항상 그렇게 멀리 가서 해?”
“동계 훈련은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그랬던 것 같아요. 작년에도 그랬거든요. 이번에는 광주에서 전지훈련 유치를 대대적으로 하는 바람에 가게 된 거지만. 그래서 그런지 더 괜찮았던 것 같아요.”
“나쁘지 않았다니 다행이네.”
“네, 숙소도 그렇고 식사도 그렇고 꽤 좋았거든요.”
내 몸에 포개어지듯 뒤에서 등을 끌어안고 있던 하원은 손을 쭉 뻗어 내 손을 겹쳐 잡으며 깍지를 꼈다. 손등으로 하원의 부드러운 손바닥이 닿으며 온기가 전해졌다.
“다친 곳은 없고? 운동이 나쁜 건 아닌데 너무 격해서 걱정이야.”
“어디 다쳤다면 이렇게 형이랑 있지도 못했을걸요.”
다치기 전에 감독 샘에게 엄청 깨지겠지. 게다가 크게 다칠 정도로 격한 몸싸움이 일어나는 럭비도 아니고,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꼭 그렇게 멀리 가서 해야 하나? 여기도 찾아보면 잔디 깔린 축구장이 있을 텐데.”
“전지훈련이잖아요. 게다가 그냥 공만 뻥뻥 차다 오는 게 아니라 다른 학교랑 시합도 하고.”
“다른 학교에서도 온 거야?”
“당연하죠.”
웃으며 답하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힐끗 고개를 돌려 하원을 바라보자 설핏 미간을 찌푸리고는 아랫입술을 꾹 깨무는 모습이 보였다.
“왜요?”
“그럼 샤워실…… 다른 학교 애들이랑도 같이 썼겠네.”
“공용이라니까요.”
그놈의 샤워실. 아직까지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인가. 정말 못 말리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 어깨에 턱을 기대며 칫, 하고 하원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럼 작년 전지훈련 갔을 때에도 샤워실 같이 썼었어?”
“그 이전에 학교 숙소 생활할 때에도 샤워실은 공용이라서 애들이랑 같이 샤워했다니까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일을 왜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지 모르겠네. 대중목욕탕 가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걸까.
손을 뒤로 뻗어 하원의 머리를 더듬자 얼굴을 움직여 내 손에 자신의 뺨을 비벼댄다.
“난 용주랑 같이 샤워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형이랑 걔들이랑은 다르죠.”
작게 웃으며 말하자 그래도, 하고 불퉁한 대답이 돌아왔다.
“걔네들이 용주 보고 막 이상한 생각 하면 어떻게 해.”
“무슨 생각이요?”
“그러니까 막…… 덮치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 절대 안 해요.”
형이야말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작게 혀를 차며 뒤통수로 콩, 하고 하원의 머리를 박았다.
“그렇지만 나는…… 용주 샤워하는 거 보면 막…… 못 참겠단 말이야.”
“그게 그 녀석들과 형의 차이라고요.”
“아냐, 남자는 짐승이야. 용주 몰래 이상한 생각 하고 있을지도 몰라. 막 나중에 덮치거나 하면…….”
“제일 짐승이 할 소리가 아니에요.”
깍지 끼고 있던 손을 들어 하원의 손가락을 앙 물며 말했다. 턱을 기대고 있던 하원이 어깨를 장난스럽게 핥다가 이를 세워 잘근잘근 깨물면서 진짠데, 하고 중얼거렸다.
“용주 샤워하는 거 엄청 야해.”
이제껏 이 자세로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공기가 달라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불과 오 초 전까지만 해도 보송보송한 분위기였다면 순식간에 끈적끈적하게 바뀌어버렸다.
그건 몸을 겹치고 있는 상태로 아래를 세워버린 하원의 탓이 컸다.
“형…….”
엉덩이 사이를 쿡쿡 찌르는 감각에 나는 몸을 살짝 앞으로 움직이며 하원을 불렀다.
“왜 그래?”
약간의 간격을 두고 떨어진 내 허리를 잡아 품으로 확 끌어당기며 하원이 물었다. 그걸 몰라서 묻는 것인가. 아까보다도 더욱 가깝게 겹쳐진 몸으로 하원의 흥분이 전해져왔다.
“형, 청춘인 건 알겠지만…… 좀 곤란해요.”
“뭐가?”
“아까……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고요.”
나를 곤란하고 부끄럽게 만들려는 건가. 모른 척 묻는 것인지,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귀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모른 척하며 최대한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려 했지만 말끝이 살짝 떨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냥 이러고만 있을 거야.”
차라리 모른 척할 것을 그랬나. 엉덩이 사이로 성기를 느리게 문지르는 하원의 행동에 목덜미를 붉히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왜 이렇게 긴장해?”
단단하게 굳은 배를 손바닥으로 느리게 쓰다듬으며 하원이 물었다. 그거야 형이 거기를 세워서 제 엉덩이 사이에 비비고 있으니까요.
허벅지 안쪽에 문질러지던 것은 가끔 방향을 잃어 회음을 쿡 찌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발가락을 움찔거릴 정도로 저릿한 감각이 전해져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용주야.”
“……왜요.”
대답하면 안 돼. 지금 대답하면 하원이 무슨 말을 하든 다 들어주게 될 것을 알고 있기에 절대 대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원망스러운 입은 저절로 왜요, 하는 말을 내뱉은 후였다.
“훈련 다녀와서 힘들어?”
훈련보다 하원과 침대 위에서 벌인 일 때문에 힘든 것이 더 컸다. 하지만 벙긋거리는 입술 사이로 나온 것은 희미한 신음뿐이었다. 하원의 손가락이 부어있는 애널 주변을 배회하다 그 입구를 살짝 누른 탓이었다.
“뜨거워. 상처 난 건 아닌데…… 부었나 봐.”
의사도 아니면서 남의 엉덩이를 벌리고 진단 내리지 말아요. 불퉁한 말을 삭이며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하원이 작게 부스럭거리더니 이내 엉덩이 사이로 미지근한 것이 흘러내렸다.
“형…… 잠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나는 급하게 고개를 돌려 하원을 불렀지만 말을 끝맺지 못했다. 질척질척한 것이 엉덩이 사이에 발리고 애널 안으로 손가락 하나가 느리게 밀려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침대 시트를 그러쥐며 나는 나지막한 신음을 흘려보냈다.
“안쪽은 더 뜨거워.”
하원이 목덜미 위에 입술을 댄 상태로 속삭였다. 흘러내린 머리카락과 함께 내뱉어지는 하원의 숨결에 목덜미 안쪽의 솜털이 바짝 서는 기분이었다.
내벽을 느리게 문지르던 손가락이 안쪽에서 한 바퀴 빙글 돌면서 빠져나갔다. 희미한 신음을 내뱉으며 엉덩이를 움찔거리자 한껏 흥분하여 서 있는 성기를 하원이 들이밀었다.
“그냥…… 이러고만 있는다면서…….”
“넣기만 할게. 응? 용주야, 응?”
허벅지 사이로 다리를 집어넣어 슬쩍 벌어진 틈으로 하원이 하체를 밀어붙였다. 쿠퍼액으로 젖은 성기가 쿡 엉덩이 사이를 찔러댔다. 부어서 열이 오른 애널이 곧 들이닥칠 하원의 성기를 기대하듯 벌름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 몸인데도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아. 야하고 음란하게 반응하는 내 몸이 이상하고, 그러면서도 그 변화를 이겨낼 수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끌려가 버린다.
“거짓말쟁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귓가로 넣기만 할게, 칭얼거리는 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 말라고 해도 결국엔 할 거면서 꼭 이렇게 허락해 달라고 떼를 쓴다. 하릴없이 못 이기는 척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하원이 허리를 꽉 끌어당기며 달아오른 내부로 성기를 밀어 넣었다.
“아…… 아으…….”
좋게 말해도 예쁜 신음은 아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신음을 내뱉으며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몸의 안쪽 어딘가가 간지러운 것 같았다. 몸을 벅벅 긁는 대신 시트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나는 신음을 삼켰다.
느리게, 느리게, 하염없이 안쪽으로 들어올 듯싶던 하원의 성기가 어느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형, 진짜 너무해요.”
손에 얼굴을 묻은 상태로 중얼거리자 하원이 내 허리를 바짝 끌어당겨 안으며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이렇게…… 이렇게 하고만 있을게.”
누가 거짓말쟁이 아니랄까 봐. 그렇게 말하는 지금도 아닌 척 허리 움직이고 있는 거 다 느껴지는데 거짓말이다.
남자는 다 짐승이야, 하고 말했던 하원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 민하원이 제일 짐승이라는 말은 왜 안 하는 건데.
열기 섞인 한숨을 귓가에 토해내는 하원을 느끼며 나는 희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삼 주 훈련한 것보다, 그 삼 주 뒤에 형이랑 있는 시간이 더 힘든 것 같아요.”
“나는 용주 못 만난 삼 주가 더 힘들었는데.”
“그러면서 은근슬쩍 허리 움직이지 말아요.”
내 핀잔에 하원은 흐응, 콧소리를 냈다. 애교 부리지도 말아요. 귓가에서 콧소리 내지도 말고.
하원이 칫, 하고 입술을 삐죽이며 실수인 척 성기를 깊게 처박았다. 내벽 깊숙한 곳을 꾹 찌르며 박힌 성기에 나는 흡,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굳혔다.
“용주는 심술쟁이야. 내가 얼마나 용주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면서.”
“그걸 왜 몰라요? ……나도 형 보고 싶었는데.”
“내가 용주 보고 싶었던 만큼?”
“네, 그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이요.”
아니야, 하고 부정의 말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하원은 조용했다. 이 사람이 또 왜 이래? 하원이 조용하면 오히려 불안해진다.
슬쩍 고개를 돌려 하원을 바라보자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던 하원이 시선을 마주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럼…….”
“그럼?”
“그럼 나 움직여도 돼?”
잠시 주저하던 하원이 슬그머니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기가 막힌 물음에 나온 것은 웃음이었다. 어이없는 얼굴로 웃고 있음을 하원도 알아차렸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형, 아까 전부터 계속, 쭈욱 움직이고 있었거든요.”
“그래?”
“네, 그래놓고 새삼 왜 물어요?”
사람 부끄러워지게 왜 물어봐요. 그렇게 물어봐놓고 지금도 허리를 들썩거리고 있으면서. 말이랑 행동이 좀 일치해봐요.
나는 손등에 뺨을 기대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나를 감싸듯 안으며 하원이 물었다.
“그럼, 나…… 움직여도 된다는 거지?”
그렇게 물어보기 훨씬 전부터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니까 그러네. 대답하지 않는 내 등을 가슴으로 내리누르며 하원이 하체를 튕기듯 쳐올렸다.
흣, 흘러나오는 신음을 손등으로 꾹 막았다. 열이 오르는 목덜미를 짐승처럼 이를 세워 베어 물며 하원이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신음했다.
아무튼 못 말려. 결국 이렇게 휘두를 거면서 뭘 그렇게 약한 척 끙끙거렸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그게 이 사람의 방식인지도 몰라. 그렇게 여리고 약한 모습으로 배를 드러내고 낑낑거리다가 쓰다듬어주려고 다가가면 그사이에 목덜미를 물어버리는 아주 지능적인 짐승인지도 모르겠다.
“하으으…… 형, 흐읏…….”
목덜미에 토해지는 열기 가득한 신음을 느끼며 나는 등줄기를 타고 전해지는 쾌감에 몸서리쳤다. 오싹할 정도로 온몸의 신경이 살아나고 있었다.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은 손, 목덜미를 물고 빨아대는 입술, 등을 덮고 있는 가슴, 그리고 엉덩이 사이로 밀려 들어오는 크고 단단한 성기. 남자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용주 안쪽이 따뜻해. 부드럽고.”
그야 몇 번이나 이렇게 들락거려서 풀어진 상태에 반신욕까지 한 상황이니까. 처음 할 때처럼 꽉 조일 리가 없지. 그럼에도 하원이 흥분하기엔 충분한 모양이었다.
끝을 보기 전까지는 중간에 멈출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완전히 포기하는 마음이 되었다. 편하게 마음을 먹자, 몸까지 편해져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진해지는 바나나 향기의 단내에 현기증을 느끼며 허리에 감긴 하원의 손을 꽉 잡아 쥐었다. 등 뒤로 물결치듯 움직이는 하원의 율동에 침대가 출렁거렸다.
“이번만…… 흣, 이번만 하고, 정말 쉬는 거예요.”
이번에는 포기했지만, 이다음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다짐을 받아내듯 묻자 목덜미를 핥고 있던 하원이 흔들 인형처럼 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용주 피곤하지? 용주 푹 쉬라고 나 조용히 있을게. ……용주야, 시간 늦었는데, 지금 엄청 밤인데……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돼?”
허락을 구하는 말이었지만, 마치 거부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아래를 쑤시고 들어오는 성기에 힘이 들어갔다. 퍽, 소리를 내며 처박히는 성기가 내벽 안쪽을 찔러 올렸다.
“하읏, 으…… 도착했다고 집에 연락 안 했어요. 오늘은 여기서…… 흐으, 자고 가려고…….”
“정말?”
마치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하원이 움직임을 멈추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커다란 물건이 아래를 꽉 채운 상태로 멈춰있는 것도 부담이 되는 일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럼, 집에 갈 거라고 생각했으면서 이렇게 해대는 거였어요? 다리가 후들거려서 걷지도 못할 것 같은데.”
“그건…… 오랜만에 용주를 보니까 좋아서. 그런데 정말 오늘 자고 갈 거야?”
“지금 밤이 아니라 새벽이에요. 집에 가기엔 이미 늦었잖아요. 형 아까 열한 시에 온 거 기억 안 나요?”
“흐응, 그래도. 용주가 갑자기 간다고 할까 봐 계속 걱정했어.”
“자고 갈 생각이기는 한데, 형이 계속 힘들게 하면 갈 거예요.”
“아냐, 나 용주 힘들게 안 해. 용주 푹 쉬게 해줄 거야. ……나 그만할까? 뺄까?”
안에 들어와 있는 성기는 전혀 빠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입으로는 잘도 종알거린다. 그 속내가 빤히 보이는데도, 나는 고개를 흔들어 하원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이번만 해요. 그리고 자는 거예요.”
“응, 나 용주 말 잘 들어. 용주 푹 자라고, 내가 자장자장 해줄게.”
자장자장 하기 전에, 일단 안에 들어와 있는 것부터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이미 한껏 흥분해 밑을 채우고 있는 물건을 죽이라고 할 수도 없고, 야박하게 빼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얼른 움직여서 끝내주면 참 좋을 텐데, 하원은 내가 자고 간다는 사실에 기뻐 지금의 상황을 잊은 모양이었다.
“형.”
“응?”
“……계속 그러고 있으면 저 힘들어요. 하던 건 마저 해야죠.”
얼굴에 침대에 푹 묻은 상태로 웅얼거렸다. 내 입으로 이런 소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목덜미로 열이 올랐다.
내 지적에 퍼뜩 놀란 사람처럼 하원이 아, 소리를 냈다. 허리를 잡고 있던 손이 배 안쪽을 파고들어 와 내 허리를 단단하게 감쌌다.
“용주 진짜, 왜 이렇게 예쁘지?”
벌겋게 열이 오른 뒷덜미에 입을 맞추며, 하원이 감탄처럼 속삭였다.
“용주야, 용주야.”
다시 느리게 허리를 움직이며 하원은 달콤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연거푸 불러댔다. 귀가 녹아버릴 정도로 달콤하고, 부드럽고,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목소리에 가슴이 뻐근해졌다.
“진짜 좋아해. 용주가 너무 좋아서 죽을 것 같아.”
“흐으, 응…… 죽지, 하읏, 죽지는 말고요.”
“아냐, 정말, 하아…… 진짜 죽을 것 같아. 하루에도 몇 번씩, 용주 생각할 때마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막 가슴이 쿵쿵거려.”
허리를 부드럽게 밀어 올리면서도, 성기로 내벽을 문지르고 안쪽의 예민한 지점을 눌러 자극하는 것에 충실했다. 거칠지 않게 충분히 쾌감을 끌어내는 움직임에 나는 호응을 하듯 몸을 들썩거렸다.
엉덩이를 높이 들어 올려 하원의 사타구니에 바짝 붙이고, 안쪽으로 성기가 파고들 때마다 허리 아래에 바짝 힘을 주어 조여댔다.
“아, 용주야. 용주 너무 좋아.”
날개뼈 위에 이를 세워 긁듯이 빨아들이며 하원이 신음을 흘렸다. 등허리로 떨어지는 하원의 입술과 체온, 땀방울이 예민한 피부를 자극했다.
“형, 하읏, 아아…… 좋아요. 형, 좋아요.”
허리에 감긴 손에 힘을 주어 바짝 끌어당기며 성기가 더욱 깊게 들어왔다. 안을 가득 채우는 물건을 조이며, 나는 하원의 팔뚝에 닿아 비벼지던 내 물건을 손에 쥐었다.
한쪽 팔로 침대를 짚어 몸을 지탱하고, 몇 번이고 사정하여 한껏 예민해진 성기를 손으로 잡아 문질러댔다. 하원이 그런 내 손을 겹쳐 잡고, 엄지로 귀두를 문질러 비볐다.
“형, 형. 하앗, 앗…….”
몇 번의 손놀림에 나는 비명과도 같은 신음을 지르며 묽은 액체를 쏟아냈다. 양도 적고 거의 물빛을 띠는 맑은 액이 손을 적셨다.
번개처럼 머리를 관통하는 쾌감에 등허리를 세우고 바짝 몸을 굳혔다. 내 등 뒤에 달라붙어 있던 하원이 속도를 높여 아래를 파고들었다.
들썩거리던 몸이 밀려 침대에 엎어지고, 그런 내 엉덩이를 밀어붙이며 흉기와도 같은 커다란 성기가 밑을 가득 채웠다.
퍽, 하고 엉덩잇살이 밀릴 정도로 안을 파고든 물건이 뜨거운 것을 콸콸 쏟아냈다. 내벽을 뜨겁게 적시는 정액이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끼며, 나는 느리게 한숨을 뱉어냈다.
한참 동안 파정하던 하원이 무거운 숨을 내뱉으며 내 등 뒤로 쓰러지듯 몸을 겹쳤다. 뜨거운 가슴이 들썩거리는 게 느껴졌다.
“등이 빨개. 온몸이 다 빨갛게 달아올라서 예뻐.”
목덜미부터 어깨, 날개뼈 위로 촘촘히 입을 맞추며 하원이 속삭였다. 나른한 몸 위로 떨어지는 깃털같이 가벼운 입맞춤에 나는 흐릿한 웃음을 흘렸다.
“이제 정말 쉬는 거예요.”
“응, 용주 목소리 엄청 피곤하게 들린다. 졸려?”
“네. ……나른하고, 피곤하고, ……졸립고.”
나는 엎드린 상태 그대로 답하며 눈을 깜빡거렸다. 아, 이제는 정말 한계구나 하고 느꼈다. 내 몸의 한계를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지는 않았는데. 언제나 현실은 잔인한가 보다.
아래를 자극하지 않도록 천천히 물건을 빼낸 하원이 내 위에서 내려왔다. 옆에 누워서 나를 품에 안고 이불을 가슴까지 끌어 올린 하원은 조금 전에 한 말을 지킨다는 것처럼 내 가슴을 손으로 토닥토닥 두드렸다.
“이렇게 있으니까, 용주 아가 같아.”
“아가는 잠이 많은 거 알죠? 지금만큼은…… 아가처럼 잠 좀 자야겠어요.”
나는 이제 하원이 무슨 말을 해도, 무엇을 요구해도, 무슨 행동을 해도 눈을 감고 잠들어버릴 성싶었다. 졸음이 잔뜩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하원이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씻는 건 일어나서 하자. 지금은 푹 자. 용주 자고 일어날 때까지 옆에 있을게.”
“형도 좀 자요. ……나랑 같이.”
“응.”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슴을 도닥이는 손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규칙적으로 가슴을 도닥이는 손길에 나는 순식간에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