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2화 〉 망친 데이트3
* * *
“레이시도 한 마리 가지고 놀래?”
“아, 아하하하……. 그나저나 용은 이빨이 많나 보네요? 용아병이 이렇게 많이 나오다니.”
“응? 그야 드래곤 나름이지. 드래곤은 일단 드래곤이라는 종으로 묶기는 하지만 같은 종이 맞을 정도로 형상이 다르거든. 거기에다가 꼭 용의 이빨이 아니더라도 용의 피와 마력만 제대로 먹으면 아무 동물의 뼈로도 저렇게 되고.”
“으응, 그렇구나. 몬스터는 신기하네요.”
“뭐, 대부분의 고블린처럼 유인원급 인종이나 오크나 트롤, 오우거처럼 지성은 있어도 적대심밖에 없어서 공존을 못 하는 아인종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부정한 마력을 먹나 정순한 마력을 먹나에 따라 달라지거든.”
“아하…….”
“내가 사냥한 마수 중에서 제일 끔찍했던 건 오징어와 초롱아귀, 사자, 염소가 뒤섞인 녀석이었어. 수륙양용으로 사교도들이 키운 건데 인위적으로 진화시키다가 실수로 양분을 너무 줘서 제어를 벗어났다고 하더라고.”
“사신이 아닌가요?”
“아니, 사신의 수육체로 쓸려다가 실패한 거지. 사교도들이 연구하는 거야 한 가지야. 사신 강림에 규칙성을 파악하는 것. 뭐, 내가 볼 땐 영 쓸모없는 짓이지만.”
용아병의 머리를 걷어차면서 어깨를 으쓱이는 아샤.
레이시는 블루드의 수하로 추정되는 사람이 전쟁에서 사신을 소환했었다는 말을 떠올리고는 아샤에게 데이트 도중에 미안하지만 사교도들에 대해서 더 말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말해줄 수는 있는데……, 좀 역겨운 이야기일 건데?”
“괜찮아요. 엘라랑 아샤를 도와주고 싶어서 듣고 싶은 거니까요.”
“뭐, 캘러미티 가문보다는 덜 역하니까 상관 없나?”
“……대체 캘러미티 가문은 뭐였어요?”
“1000년 넘게 인위적으로 인간을 교배시켜서 유전자 조작을 일으키고 뇌 조작에 한 해에 아이만 100명 넘게 낳는데 그 중 살아남았던 게 3년에 한 명 수준이었던 가문.”
“그랬었지.”
아기 때부터 모유에 독을 섞어 먹인다는데 정상일 리가 없지.
아샤의 말을 들어보면 살아있는 생명을 가지고 이런저런 짓을 한다는 것 같기는 하지만, 뇌 수술을 이렇게 정확하게 할 정도면 생물 실험을 덜 했던 것 같지도 않고…….
대체 암살 가문이라는 게 뭐길래 사교도도 한 수 접어주는 거고, 엘라는 대체 10살 때 무슨 짓을 하고 다녔던 걸까……?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그래서 사교도의 실험이 왜 쓸모 없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자기가 본 사신의 특성을 말해줬다.
“규칙이 없어.”
“네?”
“규칙이라고는 전혀 없어. 한 가지 확실한 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수와는 다른 방식으로 주변을 파괴한다는 거야.”
“어떻게 달라요?”
“마수는 그래도 정상적인 방식을 따라서 죽이지. 물어 죽인다거나 독을 뿌려 죽인다거나 그런 식으로.”
“사신은 달라요?”
“음, 뭐랄까? 자세하게 설명하긴 어렵네. 전쟁터에서 소환된 사신은 몸이 유리로 되어 있는 물덩어리였거든?”
“네? 네.”
“거기에서 비친 햇빛에 닿으면 불에 타서 감전되어 죽었어.”
“……?”
“그리고 시체에 나타난 증상은 동상이고. 그리고 그 빛은 1초에서 5초 사이에 한 번씩 성질이 바뀌어서 어떤 땐 그림자로 변했는데 그림자에 닿는 순간 몸이 얼어 붙어서 감전사하기도 했어.”
햇빛에 비쳐서 불에 타서 감전되어 죽는다고?
거기에다가 나타나는 증상은 동상인데 할 때마다 달라져??
레이시는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아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아샤는 대충 이해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더니 자신의 흉터를 가리키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이건 사신이 날린 회복마법을 쳐냈더니 도끼에 생긴 흠집과 똑같은 상처가 팔에 생겼어. 그런데 웃긴 건 회복은 제대로 됐다는 거야.”
“……?”
“그런 거야. 그냥 모든 게 랜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그저 무규칙적으로 나와. 심지어는 그 녀석들의 수명, 외형, 그 모든 게 랜덤이라서 어쩔 땐 수레바퀴처럼 생긴 것에 날개만 돋아나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눈마다 다른 상태 이상 마법을 걸기도 했는걸.”
“어, 어으으으음?”
아샤의 말에 좀처럼 감을 잡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레이시가 정상이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평민들의 경우에는 그런 게 있다고 하면 정신 나간 놈이라고 비웃거든.”
“에에.”
“의도적으로 정보를 차단하고 있기도 하고……, 솔직히 소나 돼지, 그리고 고블린이나 원형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 마수나 신수를 봤던 사람들에게 ‘세상에는 유리로 된 물웅덩이 같은 생명체가 있는데 그 녀석에게 햇빛을 쏘면 매번 다른 성질의 빛을 반사해요!’라고 말해봐야 얼마나 믿겠어?”
“그건……, 그러네요.”
자기도 엘라와 아샤가 직접 만나지 않았다면 믿지 않았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다가 아샤에게 몸을 기댔고, 아샤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블루드가 사신을 소환하려고 하는 건 아마 최후의 보험 같은 거라고 말해주었다.
“엄청 강한 게 나오면 좋겠지만, 쪽박을 차더라도 우리에게 압박을 주는 거지. 자신의 군대 사이에 사교도들이 있으니 귀찮은 일을 당하기 싫으면 그들부터 치우고 죽여라는 거지.”
“으으응. 그것만 해도 상당히 귀찮거든.”
“아샤, 괜찮은 거죠?”
“괜찮아. 그 정도 일은 어렵지 않거든. 수가 문제이긴 한데……, 대군전에 대한 건엘라의 일이지 내 일이 아냐.”
“그래도요. 다쳐도 제가 보살펴줄테니까, 꼭 무사히 오시는 거예요?”
“그래, 그럴게.”
레이시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면서 달래는 아샤.
아샤는 잠시 한숨을 내쉬다가 이 동굴에 대해서는 흑창 기사단에게 미리 말해줘야겠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다음에 올때도 다시 생겨 있을지 물어봤다.
“아마 그러지는 않을 거야. 두 달 동안 용의 피와 마력을 잔뜩 먹어서 생겨났을 테니까. 하지만 주의 정도는 줘도 괜찮으니까 말하는 거야.”
“그건 그러네요.”
“그나저나 나비도 슬슬 죽였을 테니까 돌아가볼까?”
“아, 네.”
아샤의 말에 나비를 떠올리고 환하게 웃는 레이시.
아샤는 그런 레이시에게 다시 한번 입을 맞춘 다음에 레이시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눈을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고, 이내 저 멀리서 느껴지는 나비의 체취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멀리도 갔네.”
“네?”
“마력으로 코를 강화하고 있는데도 꽤 희미하게 느껴져서. 아무래도 멀리 간 거 같아.”
“나비가 뭘 죽이려고 한 걸까요?”
“글쎄? 마력만 느끼고 바로 달려갔으니 나도 자세한 건 몰라.”
확실한 건 학자와 신관, 정령술사를 호위하면서 처리할 수 있는 녀석은 아니라는 것.
그렇게 말한 아샤는 레이시에게 가보면 알 거라면서 레이시를 데리고 뛰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나무가 선으로 보일 정도로 빠르게 뛰자 그렇게 멀리 있냐고 물어보며 고개를 돌렸다.
“으응. 저기에 있네요.”
“그러게.”
발을 빨리 움직여서 무언가를 뜯어먹는 나비에게 가는 아샤.
레이시는 아샤가 멈추자 아샤의 품에서 내려오면서 나비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나비는 고기를 뜯어먹다 말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와아……. 맛있어요?”
“갸르릉~!”
“으응?”
“왜 그래?”
“나비, 좀 작아지지 않았어요?”
레이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타고 왔을 때랑 비교했을 때 조금 작아진 것 같다면서 나비의 이마를 쓰다듬었고, 나비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배를 내밀면서 레이시에게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으응? 착각인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이시.
원채 덩치가 커서 조금 작아진 것 같으면서도 너무 커서 구별이 안 간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나비의 턱을 간지럽혀주면서 다시 씻어야겠다면서 나비의 콧잔등에 입을 맞췄다.
“일부러 헤엄치려고 그러는 건 아니죠?”
“갸아앙!”
“푸훗. 그럼 돌아갈까요?”
“그르으!”
“푸풋.”
나비의 대답에 작게 웃으면서 엎드린 나비 위에 올라타는 레이시.
“으응, 역시 좀 작아졌으려나?”
그리고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의문에 나비가 레이시의 마력을 많이 빨아들여서 몸의 형태가 변화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테이머가 한 동물에게 그렇게 애정을 펼치는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의 마력을 잔뜩 먹고 자라난 동물 혹은 몬스터는 다른 존재보다 특별해지니까 그런 거거든.”
“진화하는 거예요?”
“천천히 성장하는 거지. 성장이 끝나면 아예 다른 종처럼 변해서 편의상 진화라고 부르는 거고.”
아샤의 말에 레이시는 나비의 이마를 쓰다듬다가 나비에게 너무 급하게 성장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고, 나비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속도를 줄여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하하…….”
천천히 움직이라는 거는 아니었는데.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좋은 게 좋은 거라면서 아샤에게 안겨 눈을 감았고, 아샤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레이시를 껴안고 조용히 바람을 즐겼다.
용과 거인의 피로 땅이 더러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상쾌한 바람.
아샤는 그 바람을 즐기면서 한참을 평야를 달리다가 이내 저 멀리서 흑창 기사단과 조사단이 보이자 나비에게 말한 다음 레이시와 함께 기사단에게 갔다.
“흑창 기사단! 조사단 건물을 만든다고 해서 연구는 없을 텐데?”
“아, 대장!”
“대장……? 마리아, 네가 왜 거기에 있어?”
“가웨인 공자가 도와달라고 해서요.”
“흐응…….”
마리아의 말에 가웨인을 힐끗 쳐다보는 아샤.
가웨인은 아샤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다가 아샤가 계속해서 쳐다보자 겁을 먹고 시선을 돌렸고, 아샤에 대해서 잘 모르는 흑창 기사단은 침을 삼키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
잘은 모르지만 아샤는 엘라와 마찬가지로 전쟁에 보내놓으면 승리를 가져다주는 대륙 최강의 기사.
뭐가 뭔지 감도 안 잡히는 마법을 쓰는 엘라와는 다르게 적어도 뭘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무기를 쓰는 아샤이기에 기사들은 더더욱 긴장하면서 아샤를 바라봤고, 조사단원들은 인원수가 줄어들자 마수가 몰려와도 가볍게 처리하던 기사단이 긴장하자 덩달아 긴장하면서 아샤를 바라봤다.
“……레이시, 레이시.”
“으응? 왜요오오?”
“잠시만 저 두 사람을 봐줄래?”
“으으응.”
아샤의 부탁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마리아와 가웨인을 바라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두 사람을 빤히 쳐다보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마리아를 불렀고, 마리아는 레이시의 호출에 움찔 떨면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파, 파이티잉…….”
“컥!?”
“힘내요?”
“고, 공주비님이 추천해주셨잖아요……!”
“아하하하하…….”
마리아 한 쪽에서만 느껴지는 애정.
레이시는 그런 두 사람의 사이에 어색하게 웃다가 아샤를 바라봤고, 아샤는 나비의 등 뒤에서 내려오며 소리내어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핫!”
“아씨이! 대장님!”
“지금 벽천화 기사단 단장은 너거든?”
“시끄러워요! 놀리지나 마세요!”
“됐고, 오늘 레이시랑 데이트 나왔다가 용아병 나오는 곳 봤거든? 동굴 같은 곳에는 들어가지 말고 나나 엘라를 불러. 너희들끼리 들어갔다간 부상자 나올 거야.”
“뭐래요? 용아병 정도는 저도 박살낼 수 있거든요?”
“넌 그렇다쳐도 네 뒤에 있는 저 인간들은?”
“……흑창 기사단은 살 수 있지 않을까요?”
“호위의 기본은?”
“기본적으로는 전투의 회피와 부상을 입지 않는 거죠.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의 곳에서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적을 죽이고 빠져나올 것. 그렇게 하는 이유는 저희가 다치면 호위대상이 위험해지기 때문이고, 그래서 저희는 더더욱 수비적인 전술을 골라야 하죠.”
“그럼 용아병이 20기 정도 있는 동굴을 압도적으로 돌파하는 동안 중형과 소형 마수가 돌아다니는 곳에 5명은 되는 문관을 지키려면 몇 명의 기사가 필요할까?”
“……한 17명? 저랑 용아병을 잡을 기사 둘에, 한 명당 호위를 3명이 붙으면 딱 17명이겠네요. 좀 여유가 있으면 20명?”
“우리랑 같이 온 기사의 수는?”
“30명이죠……?”
“그러면 연구 속도가 얼마나 느려지지?”
“…….”
“고집부리지 말고 나 불러라.”
“넵…….”
“뭐, 너도 나이가 나이니까 데이트를 하고 싶은 건…….”
“와아아악!”
아샤의 말에 얼굴이 붉어지는 마리아.
레이시는 그런 마리아의 모습에 쿡쿡 웃다가 아샤에게 팔짱을 끼며 너무 놀리지는 말라고 말하면서 다시 한번 파이팅이라 작게 속삭였고, 마리아는 악의 없는 레이시의 응원에 몸을 베베 비틀어가며 절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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