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8화 〉 일은 대충 임기응변으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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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응……, 꽤 많이도 남겼네.”
영주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왕족의 권한으로 영주가 은닉해둔 재산을 모조리 빼앗은 엘라는 한 여관을 빌린 다음 여관 안에서 영주의 자산을 계산하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많은 돈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작은 마을을 만들거나 큰 도시에서도 도시의 지도를 바꿀 수 있을 수준의 공사를 할 수 있는 돈.
자기가 보기 전에 헌납하겠다고 나섰다면 형벌을 줄여서 귀족 작위의 박탈만은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엘라는 혀를 내두르며 옆에 앉아있는 레이시를 봤고, 레이시는 바닥에 깔린 황금과 보석, 예술품을 보고는 정신이 나간 듯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저번에 정보를 사러 갔을 때도 그렇고 돈에 대한 감각을 왕족 수준으로 맞추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되지 않은 모습이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리면서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엘라를 깨웠고, 레이시는 엘라의 입술이 볼에 닿자 정신을 차리고 엘라를 바라봤다.
“이게 다 뭐에요?”
“뭐긴 불법적으로 거둔 세금으로 만든 물건들이지. 나 참, 그렇게 세금을 거두면 장부에 좋든 싫든 티가 나는데 그걸 감췄다고 감추는 게 더 웃기더라고.”
“아…….”
이래서 정치인들이 정치 생명에 위험이 가든 말든 아득바득 위로 올라가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건가?
자기 월급으로 계산하면 죽을 때까지 일해도 만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수준의 돈에 레이시는 눈을 깜빡이다가 그래도 범죄는 안 된다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품에 안겨서 슬라임 블록을 가지고 놀던 에일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는 레이시는 이제 어떻게 할 거냐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주를 감옥에 가둔 다음에 국왕님이 보내주시는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요?”
“음, 기본적으로는 그렇지. 임시 영주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임시 영주가 심판관과 이런저런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면 우리 역할은 끝.”
“며칠 뒤에 온대요?”
“글쎄, 일이 일이니까 한 4일 내로는 오지 않을까? 왕가에서 이 일을 급한 일이라고 판단하면 용혈마 같이 희귀품종의 말이 아니라 와이번이나 그리폰 같이 하늘을 날 수 있는 녀석을 타고올 테니까 좀 더 빠르겠네. 그래도 이틀은 기다려야 하지만.”
“여기 수도에서 멀지 않아요?”
“멀기는 한데 특수한 업무가 생겼을 때는 속도가 중요하니까 사람을 보내기 위한 몬스터를 이용할 거야. 와이번이나 그리폰은 그 대표 주자고.”
“그렇구나. 으음……, 왕궁에서는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마 사람을 빨리 보낼 걸? 다른 급한 일들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듣기로는 급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황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으니 와이번에 태워서 보낼걸?”
“법이 무겁네요…….”
“당연하지, 한, 두 명에게 사기를 치는 게 아니라 이건 3만 명에게 사기를 친 거라고? 그것도 그냥 사기가 아니라 출신과 지위를 이용한 사기. 이런 사기의 경우에는 각자 피해를 입힌 금액만큼 옥살이를 시키는데 3만 명이니까 3만 년은 살아야 해.”
“3만 년이나 살 수 있어요……?”
“무리지. 그냥 법상으로 그렇다는 거야. 세금으로 빼낸 돈의 3배를 토해내면 무사히 해방시켜줄 거야.”
“참고로 그 금액의 3배면 얼마에요?”
“글쎄? 몇 년 전부터 빼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장부에 적힌 기준대로 형벌을 내리겠지? 그렇다면 대략 9000억. 대략 중형 국가 부처에서 쓸 예산 수준이네.”
“…….”
“10년 전 장부까지만 있었으니까 그 정도네.”
“참고로 이 보물들의 가치는 다 합치면 얼마에요?”
“250억밖에 안 되네. 저택에 있는 물건들을 조사 중인데 가구가 보통 가구도 아니고 예술품들도 전부 진품이라고 밝혀지고 있으니 그거 다 국고로 회수해서 세크트의 주민에게 도움을 주는데 쓸 거야.”
“그렇구나…….”
전생의 정치인과 다르게 엄청난 엄벌이다…….
물론 그 위치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본다면 이런 종류의 형벌을 받는 게 옳다지만, 이렇게까지 형벌을 내릴 줄은 몰랐던 레이시는 이런 건 확실히 전생보다 낫다고 생각하면서 웃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웃음에 어깨를 으쓱이면서 레이시를 안아주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한동안 경치 좋은 곳에서 쉬지 않을래? 저번에도 이맘때쯤에 놀러가지 않았어?”
“그거 가을 아니었나요?”
“늦여름이었죠.”
“아하……. 그렇구나……. 으응, 그럼 어디로 갈까요? 저번에는 호수에 갔잖아요.”
“그러네. 근처에 커다란 강이 있는데 거기에 갈래? 거기에서 낚시라도 하자.”
“낚시요?”
“응, 낚시. 미스트, 이 근방에 유명한 낚시 포인트가 있지 않아?”
“있어요. 큰 강이라서 배 띄워서 낚시할 수도 있고 강변 나루터에서 낚시를 할 수도 있어요. 하구 쪽에 가면 바닷물고기와 민물고기 다 낚이고 상류 쪽에 가면 민물고기만 낚이네요. 어느 쪽이 좋아요?”
“아, 아하하하…….”
미스트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다가 시선을 피하는 레이시.
엘라와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두 사람의 질문에 두 사람과 낚시는 잘 안 어울려서 잘 매치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응? 왜?”
“그야……, 엘라는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건 별로 안 좋아할 거 같고, 미스트는 시간을 보낼 거면 주변 풍경을 홍차를 마시면서 즐길 거 같아서요.”
“아샤와 미네르바는 어울리나요?”
“어음…….”
미스트의 말에 아샤와 미네르바를 바라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한참을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아샤라면 낚시를 즐길 것 같기도 해요.”
“미네르바는?”
“그……, 엘라.”
“응?”
“미네르바는 애초에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먹었잖아요. 강으로 급강하해서.”
“……아.”
레이시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웃음을 터트리는 엘라.
엘라는 하긴 그건 그렇다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그래서 하류로 가고 싶은지 상류로 가고 싶은지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엘라는 어디에 가고 싶은지 물어봤다.
“이번에는 엘라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요. 저번에는 제가 가고 싶은 곳 같잖아요.”
“음~. 그러면 하류 쪽으로 가자. 뱃놀이하고 싶어.”
“뱃놀이인가요오오~.”
눈을 깜빡이면서 뱃놀이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레이시.
하지만 배를 타는 일이 매우 드물었던 현대의 사람 특성상 레이시는 뱃놀이라고 해봐야 떠오르는 게 없었고, 다른 때와 다르게 아예 짐작 가는 것도 없었던 레이시는 엘라에게 뱃놀이를 하면 뭘 하냐고 물어봤다.
“뭐……,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냐. 평소에 하던 걸 배에서 할 뿐이지. 그래도 큰 배를 빌려서 하는 거니까 조금 신기하긴 할 거야.”
“큰 배요?”
“응. 마차는 좀 작잖아.”
“배, 빌리는 거죠?”
“응, 아무리 그래도 아공간에 배 같은 걸 집어넣을 수 없으니까.”
무게나 크기에 제약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배 같이 무게도 무겁고 크기도 큰 걸 아공간에서 끄집어내면 마력 잔향이 크게 남아서 행선지를 들키고 만다.
애초에 평소에 배를 탈 일이 없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눈을 깜빡이다가 레이시를 보면서 놀러 갈 곳이 정해졌으면 이제 일이나 하자면서 기지개를 켰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뭔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냐고 물어봤다.
“음……, 딱히 없네.”
“에에…….”
“하지만 정말 없는걸? 애초에 나도 할 일이 없고.”
“……그래요?”
“응.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할 일은 다 끝났어.”
“영주가 도망치면요?”
“현상금 사냥꾼이 붙지. 근데 이 상황에서 현상금이 붙으면 기본이 귀족작위 박탈에 ‘생사여부 상관없음’이 붙어서 100% 죽어.”
“살려서 오면 뭔가 돈을 더 주지 않나요?”
“그래도 어지간하면 죽여. 죽이고 머리를 잘라서 국가에 제출하는 게 시간이나 노력 대비 보상이 더 커. 필시 생포 옵션이 붙는 건 정말 중요한 범죄자에게나 붙이지 이런 영주에게 붙지 않아.”
“어떤 범죄자에게 붙는데요?”
“국가 기밀을 팔아넘긴 사람들. 3급 이하의 기밀을 판 사람은 몰라도 2급 이상부터는 무조건 생포하고 정보가 얼마나 새어나갔는지, 정보를 누구에게 팔았는지,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그 정보도 알아내야 하니까 무조건 생포야.”
“그렇구나……. 2급 기밀은 어느 정도에요?”
“한 군단에 대한 것? 정보가 새어나가면 국가 방어에 어느 정도 차질이 생길 수준의 기밀이야. 참고로 3급은 한 영지에서 생기는 문제 정도야.”
“으음…….”
엘라의 말에 이야기의 사이즈가 자신의 상상보다 크다는 걸 느끼고 어색하게 웃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신경 쓰지 마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가볍게 꾹 눌렀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길에 눈을 깜빡이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같이 올라갈까? 미스트, 아샤. 여기에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기록해줘. 미네르바는……, 미네르바는 어떻게 할 거야?”
“주인하고 있을 생각이다.”
“레이시는?”
“에일렌하고 놀아줄래요. 요즘에 블록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해서요. 그나저나 저희는 안 도와줘도 괜찮아요?”
“응, 괜찮아. 어차피 기록은 다 해뒀거든.”
히죽 웃으면서 도장만 찍으면 된다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고했다고 말했고, 엘라는 레이시의 칭찬에 작게 웃으면서 에일렌과 놀자면서 에일렌의 볼에 입을 맞췄다.
엘라는 계속해서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추면서 레이시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였고, 레이시는 엘라의 속삭임에 얼굴을 붉히다가 에일렌을 껴안은 채로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엘라는 자기를 바람 맞히는 거냐며 투정 부리다가 위로 올라갔고, 미스트는 그런 엘라의 뒷모습에 레이시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도 지금이 끝일 거라며 키득키득 웃었다.
“글쎄? 그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아?”
“후후후, 글쎄요?”
“묘한 신경전은 그만 두고 올라가기나 해. 이 바보들아.”
아이를 낳은 사람과 아이를 낳을 예정인 사람.
물론 낳는 건 레이시지만, 그런 조건으로 묘하게 경쟁하고 있자 아샤는 한숨을 내쉬면서 일부러 소리내서 도장을 찍었고, 엘라와 미스트는 그런 아샤의 행동에 언제 기 싸움을 했냐는 듯 아샤를 놀리기 시작했다.
“미안~ 레이시와 아이를 가진 우리끼리 이렇게 놀아서~.”
“소외감을 느꼈다면 죄송해요~.”
“……씨. 험한 말 하게 하지 마라.”
“푸헤헤헤!”
“푸후후훗!”
“싸우자는 거지? 응? 계급장 떼고 한 번 싸워볼까?”
“야만적이네.”
“집안일로 승부하는 거라면 안 질 자신이 있는데 말이죠.”
“씨…….”
이 녀석들하고는 말다툼을 하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한 아샤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이내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손을 휘휘 저었고, 엘라는 한결 기세를 꺾고 한숨을 내쉬는 아샤의 모습에 미스트와 아샤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건넨 다음 미네르바와 함께 에일렌과 노는 레이시에게 다가갔다.
환하게 웃으면서 에일렌의 장난을 받아주는 레이시.
에일렌이 정체불명의 블록 모형을 만들어내도 잘했다며 칭찬해주는 레이시의 모습을 바라보자 엘라는 쓰레기들을 상대하면서 마모되어 가던 마음이 회복되는 것 같아 작게 웃으면서 레이시를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엘라의 포옹에 놀란 듯 눈을 뜨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에일렌을 안아 엘라를 보게 했다.
“엘라 엄마 왔네요~.”
“에일렌에게 계속 그렇게 말할 거야?”
“그치만 엘라는 엄마잖아요?”
“아니, 그건 맞지만.”
조금 부끄러운데.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에일렌이 자기 얼굴을 쳐다보다가 레이시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손만 뻗자 웃음을 터트리면서 에일렌의 손에 자신의 손가락을 내어주었다.
그러자 조심스럽게 엘라의 손가락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슬라임 블록을 가지고 노는 에일렌.
엘라는 그런 에일렌의 모습에 조심스럽게 에일렌을 껴안고서 레이시가 한 것처럼 에일렌과 놀아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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