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3화 〉 계획 파괴자 미네르바5
* * *
“여기군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으리으리한 저택을 바라보는 레이시.
상인은 그런 레이시의 미소에 미쳤다고 생각하면서 이건 자살행위라고 레이시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이시는 그런 상인의 말이 들리는 건지 들리지 않는 건지 미네르바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뭔가 속삭였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저택의 대문에 다가가 발을 슬쩍 들었다.
부엉이가 한쪽 다리로 나뭇가지를 붙잡 듯이 한쪽 다리를 드는 미네르바.
상인은 그런 미네르바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미네르바는 그 순간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면서 문을 발로 강하게 걷어찼고, 아마도 강철로 만들어졌을 문은 그대로 나뭇가지처럼 꺾이더니 저택의 벽에 박혔다.
“아, 실수했다. 문에다 박게 하려고 했는데 실수로 벽에다가 박았다.”
“아하하, 괜찮아요. 잘 했어요.”
“주인, 나온다.”
“네. 전부 처리해주세요.”
미쳤다, 그리고 잘못 건들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가지를 안 씌우는 건데……!
상인은 레이시와 미네르바의 대화를 듣고는 다시 한번 그렇게 생각하면서 침을 연신 삼켜대기 시작했고, 이내 저택 안에서 아갈레타의 사람들이 튀어나오자 조용히 침을 삼켰다.
지금 이 저택은 아갈레타 본가의 사람들이 머무는 저택이 아니었다.
본가의 저택은 좀 더 안쪽, 도시의 상류층이 사는 곳에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아갈레타의 사람들은 사용인 마저도 중급 모험자는 어렵지 않게 때려눕힐 수 있는 정예들.
상인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레이시와 미네르바가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자기 목숨은 여기에서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네르바! 죽이지만 않는다면 전부 부러트려도 괜찮아요. 전부 제압해주세요.”
“알겠다.”
그런 생각은 미네르바의 날개가 펄럭이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까 전에 보였던 모습은 몸풀기도 안 된다는 듯 의심이 사라지는 것보다 더 빨리 사라져서는 사람을 발로 걷어차버리는 미네르바.
그 뒤로 미네르바는 사람을 공처럼 걷어차고 주먹으로 치고, 잡아 던지면서 레이시에게 이빨을 드러낸 모든 사람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치려고 준비하던 사람의 머리를 땅바닥에 꽂아버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주인의 말대로 전부 살려둔 채로 쓰러트렸다.”
“잘했어요~. 안아드릴까요?”
“에헤헤헤…….”
레이시의 말에 배시시 웃으면서 팔을 벌리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를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다가 이내 적당히 강해 보이는 사람의 다리를 잡아 땅에서 뽑아냈고, 레이시에게 뽑힌 사람은 그대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부러진 다리를 잡혀서 뽑히다 보니까 억지로 차단한 감각 이상으로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사람의 비명에 눈을 깜빡이다가 미네르바가 한 것처럼 휭휭 휘두르다가 비명이 나오지 않자 적당히 사람을 놓아주고 그 사람 앞에 쪼그려 앉았다.
“저기, 이름을 말해주시겠어요?”
“커헉……, 헉…….”
“이름.”
“스, 스트란.”
“좋아요, 스트란 씨. 제 얼굴을 알겠어요?”
눈을 깜빡이면서 스트란에게 질문을 이어가는 레이시.
스트란은 처음에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선명한 녹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그리고 이마에 난 작은 뿔을 보자 본가에서 공문을 내렸었던 목표물이라는 걸 깨달았고, 레이시는 스트란이 자기를 보고 흠칫 놀라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 분가라고 들었어요. 저와 미네르바를 본가로 안내해줬으면 하는데, 괜찮겠죠?”
“왜, 왜에…….”
“그야, 에일렌으로 협박하려고 한 것에 대해서 따지기 위해서죠.”
눈을 가늘게 뜨면서 스트란을 바라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이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짐승도 자기가 사랑하는 존재를 공격하면 죽일 듯이 달려드는데 자기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면서 눈을 가늘게 떴고, 스트란은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아갈레타를 건들고서 멀쩡하게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싱긋 웃더니 자기를 얌전히 보내주지 않는다면 미네르바에게 명령해서 전부 쓰러트릴 뿐이라고 대답했고, 스트란은 그런 레이시의 대답에 이를 갈면서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라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으음……, 정말 이해가 안 되는데요……. 용서할지 말지는 제가 정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선공을 맞았는데?”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이시.
레이시는 한참을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말로 하면 안 듣는다는 걸 깨닫고 눈빛을 차갑게 만들다가 손가락을 펼쳐 스트란의 이마를 가볍게 찌르면서 연정의 야차의 스킬을 사용했다.
아직 완전하게 진화되지 않았지만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지 알고 있는 스킬.
그 스킬을 사용하자 스트란은 레이시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스트란의 반응에 눈을 깜빡이다가 본가로 안내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이번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스트란.
상인은 그런 스트란의 대답에 당황하면서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상인의 시선에 이제 상인은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다.
“그래도 바가지는 혼낼 거예요. 알겠죠?”
“힉…….”
“자, 돌아가세요. 당신을 끌고 다니면서 바가지에 대한 벌은 이걸로 충분하겠죠?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 혼나요?”
“네, 넵…….”
혼내는 걸로 아갈레타와 시비를 건다고……?
상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레이시의 움직임에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일단 레이시가 봐줄 때 도망가자고 생각하고는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고, 레이시는 그런 상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스트란의 안내를 받아 본가로 갔다.
이미 본가에서는 연락을 받았는지 다급하게 나와서 레이시를 노려보는 아갈레타의 암살자들.
암살자는 다들 몸 여기저기가 기형적으로 변했거나 독에 물들어서 피부색이 이상하게 변해 있었고, 아갈레타의 당주는 그런 암살자들 사이로 나와서 레이시에게 다가갔다.
“거기서 멈춰라, 찢어죽이기 전에.”
그러자 당주를 막는 미네르바.
당주는 엘라나 아샤도 아니고 고작해야 하피 주제에 자기에게 명령조로 말하자 눈가를 움찔 떨다가 이내 알겠다면서 미네르바가 말한 자리에 서서 레이시에게 인사했다.
“리차드 아갈레타, 인사드립니다.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이신지요?”
“네, 맞아요.”
“이번에 저희 분가에서 일으킨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저희들이 진심으로 레이시 루피너스 남작님을 공격했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증거로……, 원하시는 게 있다면 최대한 들어드리겠습니다.”
“음…….”
어차피 지금까지의 레이시의 성격을 생각해본다면 레이시가 요구할 건 에일렌의 안전이다.
그런 거라면 어차피 원래 계획이 실패한 지금 충분히 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 당주는 히죽 웃으면서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뭐든 들어주는 거냐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싱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럼 엘라에게 가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합당한 벌을 받으세요. 당주님하고 전원이요.”
“……네?”
“왜요? 범죄자가 멀쩡히 돌아다니는 걸 볼 수는 없잖아요? 그것도 에일렌을 죽이려고 한 극악무도한 범죄자가요. 그러니까 감옥에 얌전히 들어가주세요. 그럼 안 싸울게요.”
눈을 깜빡이다가 그게 아니라면 여기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자기는 엄마이니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거라며 그것 말고는 봐줄 생각이 없다고 말했고, 당주는 그런 레이시의 말에 한참을 헛웃음을 들이키다가 그 하피가 자기들의 공격을 전부 다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며 반문했다.
아무리 하피가 강하다고 해도 이 수를 상대로 레이시에게 아무런 상처가 안 생기는 건 무리다.
특히 이상할 정도로 공격성이 없는 레이시라면 더더욱.
그렇게 생각한 리차드는 칼을 꺼내면서 레이시를 협박했고, 레이시는 그런 리차드의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만약 여기에서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엘라도 그렇게까지 험하게 사람을 다루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을 죽이거나 살인교사를 한 횟수를 겹쳐서 징역 몇백 년 정도에서 끝났겠지.
하지만 저 사람들은 칼을 들었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된 이상 봐줄 생각은 없었다.
저렇게 자기를 협박하는 사람을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자기가 위험해지는 건 둘째치고 에일렌이 위험해지니까.
저번에 있었던 일 이후 그렇게 생각하게 된 레이시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미네르바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미네르바.”
“응. 주인.”
“전부 죽여요. 상관 없어요. 아, 그래도 저 사람만은 살려두세요.”
“알겠다. 스킬은…….”
“써요.”
“알겠다.”
레이시의 명령에 마력을 끌어올리더니 칼바람을 일으키면서 그대로 사라지는 미네르바.
미네르바가 사라지는 동시에 뿌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이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사람들을 보다가 자기를 죽이기 위해서 달려드는 사람을 보고 나비를 소환했다.
“나비야, 후려쳐.”
그 순간 앞발만 먼저 소환되어서 암살자를 후려쳐버리는 나비.
암살자는 나비의 팔에 얻어맞자 그대로 데굴데굴 구르다가 축 늘어졌고, 레이시는 죽은 게 확실한 암살자를 가만히 내려보다가 눈을 그대로 돌려 미네르바를 눈으로 쫓고 있는 당주를 쳐다봤다.
레이시의 시선을 느낀 당주는 미네르바가 자기를 노리고 있는데도 어쩔 수 없이 레이시를 쳐다봤고, 레이시는 나비의 호위를 받으면서 채찍을 꺼냈다.
“에일렌을 죽이려고 한 사람. 당신은 용서 못 해요. 알죠?”
“이, 이게에에에!”
“시끄러워요.”
있는 대로 힘을 쏟아서 팔을 휘두르자 그대로 어깨가 날아가서 사라지는 당주.
당주는 레이시의 공격에 순간 멍하게 있다가 입술을 꽉 깨물면서 레이시가 왜 변했는지 이유를 추측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당주의 모습에 미네르바를 불렀다.
“미네르바, 다리.”
“응, 부쉈다.”
“커흑……?”
레이시의 명령에 당주의 다리 양쪽을 부러트리고 떨어지는 당주를 잡아채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 모습에 눈가를 파르르 떨다가 에일렌을 위해서라며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에일렌을 노렸고, 저를 죽이려고 했어요. 그리고 아예 못 만날 거라고 생각한 그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여기 이렇게 제 눈 앞에 있어요. 천운인지, 불운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여기 제 앞에 있다고요.그러니 저는 당신을 죽일 거예요. 당신을 엘라에게 데리고 가서 저를 죽이려고 했다는 걸 말할 거고 에일렌을 죽이려고 했다는 걸 전부 말할 거예요. 알겠어요?”
떨리는 손끝을 주먹을 쥐는 것으로 가린 레이시는 미네르바에게 다른 한쪽 팔도 부러트리라고 말했고, 미네르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대로 팔을 부러트린 다음 레이시에게로 끌고 갔다.
그러자 레이시는 하급 포션을 꺼내더니 당주의 팔을 부어서 피가 흐르지 않게 지혈했고, 그런 다음 미네르바에게 엘라와 아샤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봤다.
“음……, 으음……. 이쪽으로 오는 거 같다.”
“그래요?”
“응, 그렇다. 저기에서 마력이 느껴지지 않나?”
“으음~ 잘 모르겠어요. 저는 마력이라던가 그런 건 잘 모르니까요.”
그냥 몸에 있는 힘을 그대로 가감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뿐, 무언가를 탐지하는 기술이 생겼다거나 노하우가 생긴 건 아니다.
그렇기에 레이시는 자기는 미네르바가 느끼는 걸 느끼지 못한다고 대답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잠시 눈을 감은 다음 엘라와 아샤의 기척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날뛰는 걸 감지했는지 엘라와 아샤가 뛰어오고 있다고 말하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말에 정말 다행이라면서 당주의 입에 채찍을 돌돌 감아서 재갈을 물리듯 물린 다음 미네르바에게 안겼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포옹에 작게 눈웃음을 치다가 당주가 헛짓거리는 하지 않는지 관찰하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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