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2화 〉 계획 파괴자 미네르바4
* * *
“성벽이 꽤 크네요. 저번 도시에서는 성벽이 없었는데.”
“마차는 아샤에게 맡기고 먼저 가. 돈이랑 이런 건 안 부족하게 넣었고, 시세도 알게 됐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럴게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레이시.
레이시는 신분증과 돈을 챙기더니 미네르바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와 데이트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얼굴로 레이시의 손을 잡았다.
“빨리 가자! 주인.”
“아하하하, 안 도망가요.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자, 그럼 우리는 우리 일이나 할까?”
미스트에게 에일렌에게 맡기고 마부석에 앉는 엘라.
아샤는 자기 옆에 앉은 엘라의 얼굴에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이런 일이라면 미스트가 낫지 않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아샤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였다.
“미스트가 나오면 저쪽에서도 경계를 해버리니까 말이야.”
“너는 안 하고?”
“암살자 특유의 비이성적인 나태함이지. 같은 암살자는 기묘할 정도로 경계하면서 그 외의 사람은 어떻게든 암살할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 거기에다가 아갈레타 가문에서는 캘러미티 가문이 멸문한 게 미스트의 작품이지 내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아……. 확실히 그런 게 있긴 하지.”
캘러미티 가문의 주요 인사는 전부 미스트의 암살로 사망했고, 엘라가 처리한 것은 정면에서 공작을 펼치는 공작부대뿐.
그러다 보니 전사들이 엘라에게 내리는 평가와 암살자들이 엘라에게 내리는 평가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고, 본인도 그 차이에 대해서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특히 아갈레타는 캘러미티와 비슷한 방법으로 육성된 가문이라 그런지 미스트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경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라는 그렇게 경계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 내가 한 번 암살 당할 뻔한 전적이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그거 네가 상처를 회복한 이후로는 전부 실패하지 않았나?”
“나머지는 캘러미티 가문의 암살자들이 시도한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아갈레타 입장에서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되지도 않는 암살을 시도했다가 전부 실패한 걸로 인식하겠지. 그리고 유일하게 성공에 가까워진 암살은 캘러미티의 작품. 자기가 성공하면 캘러미티를 앞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 발언은 암살자답지 않은데.”
“애초에 암살자라는 건 돈이든 마약이든 대가를 받고서 사람을 대신 처리해주던 사람들을 말하는 거잖아. 아갈레타도 그런 거야. 뭐, 이제는 시간이 흘러서 권력욕에 제대로 절여진 것 같다만.”
“권력욕 때문에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라……, 비이성적이네.”
“그 캘러미티조차 오만에 절여져서 미스트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어. 그런 걸 생각해본다면 적당히 적대적인 태도만 취하고 있는 아갈레타는 이성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그런가? 어차피 다 죽일 거잖아.”
“그렇지.”
아갈레타 가문은 충분히 이성적이었다.
캘러미티 가문에 대한 열등감과 그의 표출로 엘라를 노리긴 했지만, 실제로 죽이려고 들지는 않았고 돈과 권력의 그 사이에서 열심히 줄타기하면서 당주가 바뀐다면 용서해줄 수 있는 범위에서 움직였었다.
하지만 아갈레타의 비전 스킬을 습득한 사람이 미스트에게 죽은 것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암살자 가문이라는 건 원래 한 명의 강한 암살자에 의해서 가문의 힘이 정해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강한 암살자라도 정보가 없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며, 이런저런 연줄이 없으면 암살을 꾸밀만한 상황을 만들어내기가 힘들 뿐만이 아니라 어찌저찌 전면전으로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고 해도 스킬의 특성 때문에 전면전에서 약한 암살자는 호위를 뚫고 사람을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미지수다.
그러니 좋은 암살자 가문은 힘보다는 그런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연출력에 있고, 아갈레타는 그런 면에서 꽤 뛰어난 가문이었다.
“하지만 비전 스킬을 잃어버리면서 고위급 요인을 쉽게 죽일 수 없게 되어버렸고, 그 탓에 몇몇 가문은 아갈레타와 연을 끊고 다른 암살자 가문, 혹은 청부업자 가문과 연을 맺었지. 자연스럽게 아갈레타 가문은 힘이 약해졌고 권력과 돈을 잃었어.”
“그래서 캘러미티의 잔재를 긁어모아 미스트와 협력하려고 했다는 거군.”
“응. 그런데 말이야……, 미스트만 건들었으면 말이지? 나도 봐주려고 했단 말이지? 그야 그렇잖아? 가문이 사라졌는데 살아있던 적통 후계자를 발견해서 사용인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거 말야? 꽤 자주 있는 일이잖아?”
“……그치.”
기사나 병사 가문에 소속되어 있다면 확실히 자주 있는 일이다.
도적을 소탕하면서 죽거나 몬스터를 소탕하면서 죽거나 적국을 상대하다 죽거나 범법을 저지르다 죽이 않으면 그들의 죽음은 어디까지나 명예로운 죽음이고, 분가나 사용인들이 후계자를 찾아서 다시금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건 꽤 흔한 이야기다.
아갈레타의 이번 일도 그런 종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암살자이니 명예를 따지지 않고 실속을 찾으려 했고, 캘러미티의 유일한 생존자를 암살자 가문의 사람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훌륭한 자기증명이 되어서 떨어졌던 주가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으니까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갈레타 가문은 정중하게 서신을 보내고 금은보화를 내밀며 만나달라고 부탁해도 모자랄 일을 사람을 협박해가면서 진행했다.
그것도 에일렌을 소재로 레이시를 협박했다.
그걸로 미스트의 주인인 엘라의 분노를 얻고 말았고, 그 때문에 지금 이렇게 자연재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곧바로 죽일 생각?”
“응? 뭐,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은데 그랬다간 저 데이 드렁커라는 녀석들을 데리고 온 이유가 없잖아. 적어도 데이 드렁커가 여기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움직일 때까지는 움직일 수 없어. ……정예만 데리고 왔으니까 아마 2주 정도만 여기에 있으면 되겠지.”
“좀 오래 걸리네.”
“어쩔 수 없잖아. 저 녀석들은 미스트가 아니라고.”
혀를 쭉 내밀면서 미스트가 직접 나섰다면 하루만에 끝났을 거라고 말하는 엘라.
아샤는 엘라의 말에 그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 작전에 불안요소는 뭐가 있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아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마도 누군가가 아갈레타 가문을 공격해서 아갈레타 가문의 경계심이 강해지거나 아갈레타 가문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딱히 이상은 없을 거야.”
“흐응. 그렇구나.”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있겠어? 아하하하하!”
“그건 그러네.”
엘라의 웃음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를 옮기는 아샤.
아샤는 시장을 둘러보다가 모빌이 보이자 마차에다가 모빌이라도 달지 않겠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좋은 의견이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두 사람이 에일렌에게 줄 모빌을 살 때 레이시는…….
“으음, 바가지잖아요……. 10만 하랑이라면서 왜 20만이 된 거예요? 메뉴판에도 없었는데.”
“하아!? 아가씨……, 그래서 돈을 못 내겠다는 건가?”
“처음에 웨이터 씨가 말한 10만 하랑밖에 못 내겠네요.”
식당에서 시비가 붙었다.
시비가 붙은 이유는 식당의 사람이 레이시가 외부인이라는 걸 깨닫고 바가지를 씌운 것.
레이시는 메뉴판에 있는 가격과 영수증에 쓰여져 있는 가격이 다른 것에 항의했고, 식당 주인은 그런 레이시의 항의에 귀찮은 귀족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계속해서 레이시와 말싸움을 이어갔다.
“20만 내놔. 안 그러면 신고하겠어.”
“다른 사람들도 10만이라고 들었는데 20만이라고 하는 건 못 줘요. 계산할 때 제가 웨이터에게 물었었다고요.”
“쓰읍, 그 웨이터가 신입이라서 실수 했다고 했잖아!”
“그럼 저희와 똑같은 메뉴를 먹고 10만만 내고 간 사람은 뭐예요?”
“이 아가씨가 진짜 험한 꼴 보고 싶어!?”
“당신이 잘못했는데 왜 제가 험한 꼴을 봐요?”
“하……, 진짜.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
귀족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한 만큼 믿는 구석이 있는지 웃옷을 벗는 가게 주인.
그런 주인의 팔에는 거미와 사마귀가 섞인 듯한 문신이 있었고, 상인은 그런 문신을 자랑하면서 자기 뒷배로 누가 있는지 알고 있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더러운 눈으로 레이시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못하면 몸으로 돈을 받겠다고 외쳤고, 그런 상인의 말이 신호였는지 가게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레이시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숨을 푹 내쉬는 레이시.
예전이었다면 돈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면서 20만을 주고 가게를 빠져나왔겠지만, 지금 레이시는 적어도 자기에게 부당하게 폭력을 가하려고 하는 사람을 그냥 보고 넘어갈 정도로 겁이 많지는 않았다.
“미네르바.”
“응, 주인.”
“데이트를 망쳐서 죄송해요.”
“아니다, 주인. 내가 돼지를 먹고 싶다고 해서 생긴 일이잖나.”
“에헤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나저나 미네르바.”
“응?”
“죽이진 마요.”
“히, 알겠다. 주인.”
“하……?”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상인.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의 머리 옆으로 뭔가 빠른 속도로 날아가자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서 굉음이 났던 곳을 바라봤고, 이내 벽을 뚫고 날아간 왈패가 보이자 입을 쩍하니 벌렸다.
사람을……, 사람을 저렇게 던졌다고……?
가게를 운영하면서 강한 사람들은 몇 번이고 봤었고 모험가가 다른 모험가를 집어 던지는 걸 본 적도 있지만, 사람이라는 게 저런 식으로 던져질 수 있던 거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한 상인은 자기가 사람을 잘못 건들였다는 생각에 당황하면서 레이시를 바라봤다.
“경비에게 넘겨서 재판을 받을게요.”
“너, 너! 내 뒷배가 누군지 알아!?”
“몰라요.”
“아갈레타 가문이야! 귀족이라면 알고 있겠지!? 응!?”
“…….”
자기 문신을 가리키면서 죽고 싶지 않다면 미네르바를 진정시키라고 말하는 상인.
하지만 레이시는 그런 상인의 말에 에일렌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네르바.”
“응.”
“이 사람은 기절도 시키지 마세요. 알겠죠?”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채찍을 꺼내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상인이 불러낸 사람들을 전부 땅이나 천장, 벽에다 박아버렸고, 상인은 레이시가 멈추지 않자 레이시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정말로 죽고 싶은 거냐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상인에게 천천히 다가가더니 그대로 상인의 멱살을 부여잡고 한 손으로 천천히 상인을 들어올렸다.
“내 아이를 협박 도구로 삼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거죠?”
“힉!?”
“안내하세요.”
“네, 네헷……!?”
“걱정마세요. 죽이지는 않아요. 단지……, 단지 전원 감옥에 넣어주지 않으면 안심하고 에일렌을 돌볼 수 없을 것 같거든요.”
에일렌이 누구길래……!
상인은 레이시의 말에 그렇게 생각하면서 식겁하면서 제정신이냐고 소리쳤지만, 레이시는 상인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에일렌과 관련된 일에 자기가 이성을 잃을 거 같냐고 물어보며 상인을 의자에 거칠게 밀었다.
“저는 제정신이랍니다.”
싱긋 웃으면서 상인을 바라보는 레이시.
“범죄자는 체포해서 경비에게 넘기는 게 상식이잖아요?”
“그, 그건…….”
“그러니까 물어보겠는데……, 그 아갈레타 가문은 어디에 있어요? 말하지 않으면, 미네르바를 어떻게 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레이시는 화를 참기 위해서 억지로 웃으면서 상인을 바라봤고, 상인은 그런 레이시의 웃음에 벌벌 떨다가 미네르바를 바라봤다.
“음.”
칼을 손가락으로 접더니 흥미를 잃었다는 듯 돌돌 뭉쳐버리는 미네르바.
상인은 그런 미네르바의 행동에 자기에겐 선택지가 없다는 걸 깨닫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상인의 대답에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미네르바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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