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8화 〉 나들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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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슬슬 대답해주지 않을래? 레이시를 보고 싶거든.”
레이시가 에일렌에게 젖을 먹이고 미스트가 먼저 욕실에서 씻고 있을 무렵, 엘라는 블랙마켓에서 술을 밀매하는 조직, 데이 드렁커의 수장 앞에서 하품을 늘어지게 내쉬면서 테이블에 다리를 올렸고, 수장은 그런 엘라의 행동에 실시간으로 위가 뚫리는 수준의 스트레스를 느끼기 시작했다.
갑자기 쳐들어와서 자기 명령을 따를지 아니면 자기 명령을 거부할지 정하라고 하지 않나,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뭐라고 대답할 수 없다고 말하자 아갈레타의 암살자들을 정리할 테니 자기 명령을 따르라고 하지 않나…….
상대가 멍청하고 힘만 센 사람이었다면 모험가 길드의 질 나쁜 모험가에게 지명 의뢰를 넣거나 조직의 불량배들로 손 좀 봐달라고 부탁할 수 있겠지만, 상대방은 한 나라의 왕족이자 오라토리엄 왕국 최강의 마법사.
힘으로나, 권력으로나, 재력으로나, 지력으로나 전부 다 밀린다.
아니, 사실 이 정도로 힘과 권력의 차이가 심하게 벌어져 있으면 굳이 머리를 안 쓰고 힘으로 밀어버리면 된다.
아무리 국가가 체포비용과 사회적 이익을 비교해서 묵인하고 있다고 해도 자기는 범죄조직이고 엘라는 법의 집행자 역할도 할 수 있는 사람.
정의는 엘라에게 있고, 힘도 엘라에게 있다.
자기는 그냥 길 가는 버러지와도 같은 사람.
그렇기에 수장은 덜덜 떨면서 엘라를 쳐다봤고, 엘라는 수장의 반응에 다시 한번 하품을 늘어지게 하다가 지루하다는 얼굴로 수장을 바라봤다.
“어차피 너에게 선택지는 없지 않아?”
여기에서 자기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면 왕족의 이름으로 즉결 처형할 생각이다.
엘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기지개를 켰고, 수장은 그런 엘라의 말에 울상을 짓다가 대체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건지 이유라도 알자고 말했다.
그러자 확실히 아무런 이유 없이 명령을 따르라고 한다면 안 들을 거 같아 엘라는 데이 드렁커의 수장과 간부에게 자기가 이러한 명령을 내리는 이유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아갈레타의 녀석들이 내 아이를 가지고 협박해서 치워버리게. 그냥 내 목만 노렸으면 적당히 지부 몇 개 털고 끝내려고 했는데 선을 넘더라고.”
“……미친.”
자살하고 싶으면 얌전히 자랑하는 비약이나 처먹고 뒤질 것이지 왜 엘라를, 그것도 가족을 건든단 말인가?
조직원의 가족을 건드는 순간 전면전쟁이라는 걸 모를만큼 아갈레타가 멍청한 녀석들이 아닐 텐데?
애초에 상대방의 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준의 녀석들이라면 그 정도 암살 가문이 될 수조차 없을 텐데 왜 이런 말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되는 짓을 했단 말인가?
데이 드렁커는 진짜 알 수 없다면서 머리를 벅벅 긁다가 최대한 불쌍한 척 울상을 지으면서 자기들의 힘은 아무리 세력의 힘이 쇠하고 있는 아갈레타라고 해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고 말했고, 엘라는 그런 데이 드렁커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데이 트루퍼라며? 너네 특수부대. 암살자는 아니지만 나름 쓸모있는 전사 같은데 걔들을 써도 안 될 거 같아?”
“헉……. 그, 그들은 어떻게?”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술에다가 이상한 거 섞어 파는 애들을 데리고 아갈레타 가문에 가자고 말했을 거 같아? 다연히 다 알고 있지, 너네들의 경제적 규모까지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데이 드렁커의 수장을 바라보는 엘라.
엘라는 데이 드렁커가 어떻게 조직을 키워왔고 특수부대로는 어떤 존재들을 키우며 그들의 실질적인 힘이 어느 정도인지까지 전부 알고 있다면서 킥킥 웃었고, 수장은 그런 엘라의 말에 덜덜 떨기 시작했다.
“너희는 범죄조직치고는 꽤 질이 좋아. 응, 범죄라고 해봐야 술에다가 회색 영역에 있는 약초를 탄 와인을 밀거래를 했다는 것밖에 없고, 기술 유출이나 종자 유출은 안 시켰어. 조직에서 개인적으로 키우고 있는 특수 부대의 경우에는 귀족들은 거의 다 하는 일이지. 굳이 따지자면 그냥 조금 건방진 상인? 그 정도지.그러니까 너희라면 연관되어도 딱히 문제가 없어. 그렇지?”
마약은 거래하지 않는다.
일반 시민과 접촉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잔혹한 짓도 하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회색 영역에서 활동한다.
이렇게 활동하는 건 데이 드렁커가 착해서가 아니다.
데이 드렁커가 와인 로드라고 불리는 교역로를 먹기 전에는 수많은 조직이 나타났다가 지워졌고, 그들은 그런 조직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최대한 오래 살아남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하지만 그 이유야 어떻게 됐든 데이 드렁커라는 조직은 왕가에서 써먹기 딱 좋은 조직이다.
대놓고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며 공창가의 지분을 사들여서 보호비를 받을지언정 사창가를 만들어서 불법 성매매를 하지 않았으며 인신매매나 불법마약 제조도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특수 목적의 약초를 사들이는데 구매 용도를 다르게 세탁해서 세금을 적게 내고, 국가에 공지한 것보다 규모가 큰 용병단을 운용하고 있는 것밖에 없으며, 그 정도는 다른 귀족들도 관행이라고 하니 귀족들이 이 사안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일도 없다.
그러니 여기 이 조직이다.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봤고, 수장은 눈물을 삼키면서 다시금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인 이유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저희가 뒷골목에서 보호비니 뭐니 하면서 힘깨나 쓰는 흉내를 낸 것 맞습니다만, 왕궁에서 일하는 병사들과 비슷한 수준일 뿐입니다. 하지만 아갈레타 본가의 사람들의 힘을 생각해보십쇼.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데이 트루퍼라고 부르는 용병 조직도 아갈레타의 독세례면 다 죽습니다. 네?”
“이상하네, 코카트리스랑 싸워서 이길 정도면 독에 대한 대처는 되는 거 같은데……. 바질리스크와도 싸운 적이 있다는 건,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커흡!”
“뭐, 바질리스크의 독은 독이 아니라 저주에 가까우니 저주 대항이라고 어떻게 무마시킬 수 있지만, 코카트리스는 아니잖아? 코카트리스는 모래주머니에 모래를 담으면서 독을 만들어내고 그걸 쏘아내는 녀석이잖아. 그 녀석을 사냥한 건 어떻게 설명할래?”
“그, 그건……!”
“이걸로 2번 봐줬어.”
“아흐윽…….”
울고 싶다.
수장은 선대로부터 데이 드렁커라는 조직을 물려 받고 운영하면서 수많은 일을 겪었지만, 지금만큼 힘든 적은 없었다며 눈물을 글썽이다가 엘라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수장의 질문에 싱긋 웃더니 딱히 특이한 건 안 시킬 거라고 말했다.
“어차피 너희에게 그렇게 무력을 바라지 않아. 내가 필요한 건 인력이지 무력이나 권력이나 재력이나 이런 게 아니거든.”
“그으……, 그 말씀은 저희가 목격자가 되어줬으면 한다는 겁니까?”
“응, 역시 회색 영역에서 아슬아슬하게 장사만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이라 그런지 눈치가 빠르네.”
“또 시키실 일이 있으시죠?”
“당연하지. 아갈레타 수준의 정보망을 유지하라고는 말하지 않겠어. 다만 아갈레타 가문이 장악하고 있던 지역의 정보망을 데이 드렁커가 먹어줬으면 좋겠는데……. 아갈레타 가문의 본가는 멀리 있지 않고, 그 녀석들도 캘러미티 가문처럼 본가만 날려버리면 아무것도 못하겠지.”
“헉…….”
“왜 그래? 내가 캘러미티 가문을 날려먹은 건 공공연하게 돌아다니는 소문이잖아? 이런 일을 한다면 못 들었을 리도 없고.”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도시 전설적인 일이라…….”
“뭐, 공공연하게 말하거나 캘러미티 가문에 대해 파해치려고 하는 짓만 안 하면 왕국의 사냥개들도 딱히 너를 힘들게 하지는 않을 거야. 반대로 알아내려고 한다면……, 음~. 너희가 좋아하는 사냥개의 개먹이가 되지 않을까?”
앞의 사냥개는 왕국의 블랙옵스, 뒤의 사냥개는 문자 그대로 사냥개.
그 이야기를 들은 수장은 자기 운은 여기까지고 이제 죽는구나 싶어 한숨을 푹 내쉬었고, 엘라는 그런 수장의 반응에 손을 내밀면서 씩 웃었다.
“난 악마는 아니야. 어디까지나 할 수 있는 일만을 시킬 테니, 그렇게 겁먹지 마.”
“……알겠습니다.”
이미 한계를 넘어섰는데.
수장의 입에서는 그런 말이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차올랐지만, 엘라의 웃음을 보자 도저히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어 수장은 엘라의 손을 잡았고, 엘라는 수장이 자신의 손을 잡자 그렇다면 준비부터 하자고 말했다.
“준비요?”
“그래, 나들이 갈 준비.”
“그……, 제가 뭘 하면 됩니까? 공주님께서도 알다시피 저희 데이 드렁커는 암살자나 청부업자가 아닙니다. 기껏해야 왈패나 용병입니다. 이 이상의 일은 한 번도 경험해본 적도 없고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계획이 있다면 좀 더 자세하게 알려달라고 말하는 수장.
엘라는 그런 수장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갑자기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자기를 쫓아오면 어떻게 되겠냐고 물어봤고, 수장은 엘라의 말에 작게 소리를 냈다.
일의 규모가 너무 커져서 어떻게 할지 머리가 안 돌아갔는데 평범하게 준비구나.
그렇게 생각한 수장은 적당히 자작극이라도 꾸밀까 물어봤고, 엘라는 수장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싱긋 웃었다.
“너희들 품목 중에 럼 있지? 포도당으로 만든 거.”
“네? 네. 있습니다. 팔고도 있고요.”
와인으로 이 영토가 부유해지기 전, 와인을 만들 때와 비교하면 포도의 대부분 버리기 때문에 법으로 금지해둔 포도 럼 제조.
지금에서야 부유해져서 그런 이유로 럼 제조를 막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와인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위해서인지 아직도 금지하고 있었고 몇몇 애주가는 데이 드렁커를 통해서 포도 럼을 구하고 있었다.
럼을 좋아하는 엘라도 몇 번인가 선물을 받았었기에 기억하고 있었고, 엘라는 그걸 이용하자고 말했다.
“슬슬 술 배송 시기가 시작되지? 조금 이르긴 하지만, 작년에 만든 저급 와인을 배송하기 시작할 시기지. 동시에 저급 와인처럼 통이 커다랗고 다량의 술을 배송하면 눈을 속이기도 쉽고.”
“…….”
“여기까지 말하면 대충 알아 들었지?”
“넵…….”
“스토리는 대충 이래. 너는 애주가의 부탁을 받고 잘 숙성시킨 포도 럼을 배송하려고 했어. 거친 알코올의 향기가 코를 찌르면서도 새콤한 포도향이 애교를 부리듯 코끝을 간질이는 고급럼을. 하지만 내가 여기에 오는 바람에 검문이 심해져서 럼을 숨길 수 없게 되었고 사과의 의미로 고급 와인을 선물하기로 했고. 덩달아 상인 흉내를 내기 위해서 내게 고급 와인을 헌상하는 쪽으로 가자. 나는 그 와인을 마시고는 왕궁에다가 왕궁에 쓰일 와인을 교역할 수 있게 해주지.”
“네?”
“어차피 사용인들이 마실 와인이고 경매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줄 뿐이야. 그렇게 기대하지 마. 하지만 이걸로 너는 정식 상인의 신분을 얻을 수 있어. 귀족은……, 네 힘으로 무리겠지.”
“끄응…….”
“그러니 거기에서 만족해. 레이시에게는 내가 설명할 테니 너희는 진짜 상인 흉내를 내면 돼. 용병을 많이 끌고 다니는 상인.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평소에 하던 것처럼 거절을 할 수 없게 몰아세운 다음 먹이를 던져주는 엘라.
데이 드렁커의 수장은 엘라의 이야기를 전부 듣자 처음과는 다르게 이건 딱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시련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고, 엘라는 수장의 대답에 씩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그렇게 알고 3일 정도 뒤에 출발할 거야. 서류 준비해둬.”
“네, 알겠습니다.”
“아샤, 돌아가자.”
“응.”
엘라의 말에 블랙마켓을 빠져나오는 아샤.
아샤는 밖으로 나오자마자 펼쳐지는 화사한 정원의 모습에 눈을 깜빡이다가 꽃을 한 송이 꺾었다.
“뭐해?”
“아니, 에일렌이 좋아할까 싶어서. 요즘 따라 손을 자주 움직이던데.”
“……하긴 그러네. 장난감이나 좀 사갈까? 부드러운 블록 같은 거면 되려나?”
슬라임을 굳힌 제품이라면 비싸긴 해도 좀 험하게 굴려도 다치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아샤에게 가는 길에 조금 들렸다 가자고 말했고, 아샤는 엘라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더니 지도를 보면서 앞장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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