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6화 〉 다음 행선지는…….3
* * *
“풍경 좋네요.”
류타 남작의 마을에서 떠난 날의 밤.
야영을 준비하던 레이시는 기지개를 쭉 켜면서 하늘을 올려다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날이 맑아서 그런지 별이 잘 보이네.”
“에헤헤, 에일렌도 별, 좋아하나 봐요.”
“반짝거리잖아. 그래서……, 궁금한 거 있지?”
“에헤헤…….”
엘라의 말에 배시시 웃다가 웜에 대해서 물어보는 레이시.
아샤에게 미리 이야기를 들었었던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자세한 건 자기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일단 어느 정도 지능이 있고, 고블린과는 반대로 사람에 도움이 되는 익마인 건 확실해. 덩치가 덩치라서 병충해에도 강하고 대형 곡창지대에서는 영주가 사비를 써서라도 웜을 키워내기도 해.”
“으음, 땅에 영양분이 많아지니까?”
“그런 것도 그런 건데 땅이 부드럽게 갈리거든. 도로만 봐도 딱 알지 않겠어? 소를 사용하더라도 갈기 힘든 땅도 쉽게 갈아주니까 땅을 고르는데 드는 힘이 엄청 줄어들어. 나는 잘 모르겠지만, 농사에서 가장 힘든 게 땅을 가는 거라 하더라고.”
아무리 부드러운 땅이라도 그걸 쟁기로 일일이 다 갈아버릴 거면 몇 날 며칠이 걸려도 다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 돈을 부담하더라도 웜을 키워서 생산량을 늘리는 게 낫다.
거기에다가 웜이 각광 받는 이유는 땅을 쉽게 갈고 땅에 영양분을 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애초에 공격성이 없어.”
“네?”
“철저하게 식물성이고 방어력이 뛰어나지만 조이는 힘이라고 할까 그런 건 뱀보다 약하고 도망치는 것만 잘하거든. 시체를 청소하기도 하고 사람이나 가축의 배설물을 먹기도 하니까 슬라임과 함께 청소부로 쓰기도 해. 특히 슬라임은 처리할 수 있는 양이 적지만 웜은 슬라임보다 처리할 수 있는 양이 많으니까.”
“의외로 많은 곳에서 쓰이네요.”
“응, 말했잖아. 기본적으로 익마라고. 그래서 안 죽이고 두 마을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도와줄 수 있다면 레이시의 의견을 따르고 싶네.”
“에헤헤…….”
“그럼 웜의 여왕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아요?”
“웜의 여왕이라……. 이것도 잘몰라! 무리의 우두머리라는 건 알고 있고 우두머리와 계약한 테이머들도 있다는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게는 쓸모가 없거든. 내가 하는 일은 대부분이 몬스터를 처리하고 무언가를 박살내는 일이지 무언가를 비옥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니까.”
엘라의 말에 멀뚱멀뚱 엘라를 쳐다보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다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다른 녀석들보다 마력이 많고 똑똑해. 그리고 강하……. 음, 웜이 강해봤자 거기에서 거기니까 강하다는 건 넘기자. 하여튼 다른 일반적인 웜보다는 뛰어나. 이렇게 다량의 웜을 자신의 지배에 둘 정도라면 꽤 많이 뛰어난 거겠지.”
“으응…….”
“뭐, 위험하지는 않으니까 네가 얼마나 잘 대화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우선 가고 나서 이야기를 더 하자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스트에게 다가가서 미스트에게도 웜에 대한 걸 물어보기 시작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엘라보다는 상세하게 대답해주기 시작했다.
웜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웜의 약점, 습성까지…….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와서 머리가 조금 어질어질했지만, 레이시는 엘라가 말해준 것보다 훨씬 유용한 정보에 어떻게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배시시 웃었다.
“얼마나 남았을까요?”
“글쎄요? 이르면 내일 점심쯤이려나요? 애초에 류타 남작과 교류를 자주 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니까요.”
이것도 마차가 아니고 에일렌이 없었다면 하루만에 도착했을 거라고 말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늘어지게 하품하면서 미스트에게 기대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머리를 가볍게 끌어안고서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내일 일하려면 일찍 자야죠. 새벽에 출발할 거니까 빨리 주무세요.”
“네에~.”
원래라면 불침번을 서야겠지만, 에일렌을 돌보는 것으로 대신했기에 레이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스트의 볼에 입을 맞추며 고맙다고 속삭였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입맞춤에 배시시 웃다가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스트가 불을 피우는 순간, 길의 건너편에서 등불인지 뭔지 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등불을 든 사람이 가까이 오는 건지 점점 커지는 불빛.
불빛은 아직 멀리 있었지만, 아샤는 그 불빛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다녀오겠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고, 레이시는 아샤가 일어나자 침을 꿀꺽 삼키면서 엘라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엘라는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닐 거라고 말해주었고, 다행히 엘라의 말대로 아샤는 무기를 집어 넣은 채 엘라를 불렀다.
“그 영지의 사람들이야.”
“아, 그래? 무슨 일이지?”
“에, 엘라 파우스트 공주님을 뵙습니다!”
“인사는 됐어. 너희들은 우리가 갈 곳의 영지에서 왔다고 들었는데 왜 이 야심한 시각에 움직이고 있지? 맹수가 안 무섭나?”
엘라의 질문에 침을 꿀꺽 삼키다가 이내 긴장을 덜어낸 듯 사정을 설명하는 남자들.
각자 숏소드를 든 사람들은 자기는 영주님들끼리 의논을 나누는 모습을 견디지 못해 다른 영지의 영주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을 보내기 위해 움직였다고 말하면서 현재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흠, 농사는 괜찮은데 도로가 다 망가져서 축제를 열 수 없게 되었다고?”
“네. 저희 마을은 축제때 식량이나 생필품을 교환하는데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면 올해 겨울을 나기 힘들 겁니다.”
“저축은 안 했나?”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아이가 많이 태어나서 더 따뜻하게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거기에다가……, 영주님들께서 마을끼리는 상생해야 한다면서 이번에 홍수로 재해가 난 곳에 물품을 보내주셔서……. 물론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건 옳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영주님이 베푸신 것처럼 다른 사람의 온정을 기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흐음, 그래?”
눈을 잠시 감더니 안 그래도 류타 남작이 자기에게 이쪽으로 가달라고 부탁했으니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말했고, 남자들은 엘라의 말에 얼굴이 확 밝아지더니 이내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감사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됐다면서 손을 휘휘 내젓더니 자기는 잠을 자겠다고 말하는 엘라.
엘라는 레이시에게 들어가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 안에 들어가서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영주님이라는 분들 엄청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러게. 참 이상한 게 이런 변경의 귀족들이 수도의 귀족들보다 훨씬 귀족 같단 말이지.”
“아하하…….”
“뭐, 어쨌든 좋은 사람들인 건 거의 확실하니까 할 수 있는 지원은 해주도록 해볼까?”
기지개를 쭉 켜더니 마차 안을 뒤적거리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가 뭘 찾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엘라를 바라보았고, 엘라는 레이시의 시선에 피식 웃으면서 통신구라면서 수정 구슬을 꺼내들었다.
“마력을 많이 쓰는 데다가 받는 쪽에서도 대기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잘 안 쓰는데……, 일이 급한 거 같으니까 쓰는 거야. 거기에다가 모험인데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 모험하는 맛이 안 살잖아.”
“에헤헤, 그래도 저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거죠?”
“뭐, 그렇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수정구를 작동시킨 엘라는 레이시가 자기를 계속해서 바라보자 부끄럽다면서 괜히 레이시의 볼을 찔렀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장난에 배시시 웃다가 엘라에게 기대다가 수정구에 빛이 들어오자 조용히 엘라에게서 떨어졌다.
그러자 엘라는 레이시에게 안 떨어져도 된다는 듯 레이시를 껴안으면서 병력을 지원해줄 수 있겠냐면서 공병부대를 요청했다.
“웬만하면 한동안 휴가를 못 받은 100인 규모의 공병부대 2부대면 좋겠는데……. 여기에서 수박 축제가 열린다고 하더라고. 작전 시간은 길게 짠 다음에 축제 즐기고 원래 부대로 복귀하게 해줘.”
“알겠습니다. 그럼 공작님과 후작님께 여쭈어보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수고해.”
짧은 대화를 끝낸 다음 수정구를 다시 집어넣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행동에 눈을 깜빡이다가 당황한 얼굴로 이렇게 쉽게 군대를 빌릴 수 있는 거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대를 빌리는 것도 아니고 중대를 빌리는 건데 그렇게 많은 조건이 걸려 있을 리가 없지 않냐며 키득키득 웃었다.
“나는 왕족이니까 중대 하나 정도는 원하는 때에 차출할 수 있어. 거기에다가 빌리는 게 직접적인 전투와 관련된 게 아니라 공병이니까 아마 빌려주는 쪽에서도 ‘대민지원을 할 때 필요하니까 빌리는 거구나~.’라고 생각할걸?”
“으응~.”
“거기에다가 아마 밖에 있는 사람들처럼 사방으로 도움을 요청하러 갔으니 정보부가 그 정보를 모아서 중앙에 올리겠지. 그럼 그게 보고서가 될 거야.”
“헤에에.”
엘라는 레이시의 감탄에 피식 웃으면서 처음 보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면서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손길에 가볍게 머리를 흔들다가 엘라와 매트리스에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해가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출발할 거라고 말해주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눈을 비비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양이의 고삐를 쥐었다.
“그럼 에일렌을 부탁드릴게요. 흐아아아아암…….”
“네, 그럼 운전 조심해서 해주세요.”
영지에서 도움을 요청하러 나왔다는 사람들과 걸음을 맞춰서 마차를 운전하는 레이시.
한여름이라지만 새벽이라 그런지 레이시는 미네르바에게 날개를 빌려줄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조심스럽게 레이시를 안아주면서 나른한 얼굴로 햇빛을 쬐기 시작했다.
“으음……, 저기.”
“네? 무슨 일이십니까?”
“웜이 도로를 엎은 거죠?”
“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마차를 운전하고 있자 가만히 있기 심심했는지 사람들에게 마을에 대해서 물어보는 레이시.
레이시는 웜이 약한 몬스터라는 것 같은데 죽일 생각은 해보지 않았냐고 물어봤고, 사람들은 레이시의 질문에 머리를 긁적이다가 웜을 죽이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공격성은 없습니다만, 저희가 이 칼로 찌른다고 한들 웜은 땅속으로 도망쳐서 회복할 겁니다. 몸이 반쯤 잘려나가도 한 달이면 회복할 정도로 회복 속도도 빠르고요. 그리고 저항이 없는 동물을 죽이는 건……. 먹을 수 있는 몬스터였다면 겨울을 나기 위한 식량을 위해서라면서 죽였겠지만, 웜은 먹지 못합니다.”
“아하…….”
“그래서 보통은 살충 마법을 사용합니다만, 그렇게 되면 농사가 망합니다. 그래서 한쪽 영지에 웜을 몰아놓고 살충 마법을 쓰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저희야 어느 쪽이 힘들든 같이 농사를 짓고 같은 밥을 먹던 사이라 도와줄 생각이었습니다만……, 일단 서로 다른 마을이라 책임 문제가 생긴다고 하더군요.”
“귀족의 일이니까요. 저도 잘 모르지만, 영주의 일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쿠르통 님께서는 자기는 살날이 얼마 안 남은 늙은이이니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하시고 반대로 진 님께서는 젊은 자기가 더 잘 견딜 수 있으니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하시고 난리입니다…….”
“아, 아하하…….”
“두 분은 피만 안 이어졌지 거의 부자 관계라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고민하다가 내놓은 결론이 어딜 가서든 지원을 받으면 되지 않을까해서 아침 일찍 출발한 겁니다.”
“그렇구나. 그럼 저녁쯤에는 도착하는 거예요?”
“네, 이 속도로 움직이면 늦어도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희가 나왔을 땐 회의를 끝내고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움직였으니까요.”
“그렇구나. 힘내세요.”
말을 끝내자 조금은 지쳤는지 한숨을 깊게 내쉬는 사람들.
레이시는 그런 사람들에게 물을 건네주면서 서로 힘내자면서 웃었고,사람들은 레이시의 웃음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면서 운 좋게 만나게 된 엘라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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