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 쓸데없는 내기3
* * *
“돌아가면 뭐 할 거예요?”
“응? 뭐야……, 벌써 돌아가고 싶어졌어?”
“네?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다음 일을 알아야 대처할 수 있겠다 싶어서요.”
“……조금 무서워?”
“……에헤헤.”
엘라의 말에 작게 웃다가 스튜 그릇을 내려놓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아샤가 왔으니 긴장한다고 짐작하더니 레이시처럼 스튜 그릇을 내려놓으면서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레이시를 안심시킬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엘라는 우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싶어서 지금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일정을 레이시에게 말해주었다.
“아마 왕궁으로 돌아갈 거야. 아샤가 여기에 왔다는 건 아샤가 나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을 전부 죽였다는 게 왕궁으로 전해졌을 거니까 한 번 얼굴을 봐야지.. 가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내가 직접 얼굴을 봐서 왕궁 안에 블루드의 추종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니까.”
“……블루드라는 왕자님. 엘라를 그렇게 싫어해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볼케릭과 엘라가 싸우는 것도 살벌했었다.
엘라가 존댓말을 하고 존중의 말을 하긴 했지만, 그 속뜻은 할 일을 다 한 자기를 건들이면 죽이겠다는 뜻이었으니까.
사이가 나쁜 형제 사이라고 해봐야 최대한 말을 아끼고 물리적인 접촉을 피하려는 게 전부였었던 레이시.
그런 레이시에게 있어서 물리적인 접촉도 피하지 않겠다는 듯 기를 세우고 싸웠었던 볼케릭과 엘라의 말다툼은 꽤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블루드라는 사람은 그런 충격적인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것이었다.
진심으로 엘라를 죽이려고 했다.
엘라를 죽이기 위해서 살아있는 것에 약을 집어넣어 미네르바와 자기를 떨어트리고 자기를 붙잡아서 노리개로 만들어 엘라를 협박하려고 했다.
그리고 엘라에게도, 미스트에게도, 아샤에게도 사람을 보내서 그 세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
세 사람이 아무런 상처도 없이 이겼다는 것같지만…….
하여튼 블루드는 어머니가 다르다고 해도 엘라를 죽이기 위해서 움직였고, 그 때문에 실제로 자기는 죽을 뻔 했다.
이게 과연 남매간에 할 짓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엘라를 바라보자 엘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블루드는 나를 싫어하는 게 아냐.”
“네? 그럼 싫어하지도 않는데 죽이려고 하는 거예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블루드는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그러지 않아.”
“네……?”
좀처럼 알아들을 수가 없는 엘라의 말.
레이시는 엘라에게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겠냐면서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말하기를 주저하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레이시에게 블루드에 대한 걸 말해주었다.
“그 녀석은 뭔가 죽일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는 녀석이야. 아니, 자기 마음에 드는 대로 일이 흘러가기만 한다면 길거리에 있는 사람을 이유없이 태연하게 찔러 죽일 녀석이지.”
“……그거, 싸이코패스인가 뭔가 하는 그런 거예요?”
“아니, 또 그런 건 아냐. 그런 거라면 아예 감정이 없어야 하는데 그러지는 않거든. 감정이 있어, 있는데 그냥 그러는 거야. 그냥, 하고 싶어서, 사람을 죽이는 거라고.”
엘라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키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의 격정적인 모습에 조금씩 겁을 먹으면서 엘라의 눈치를 살폈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한 번 숨을 고르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리고 그 녀석이 나를 죽이려는 이유는 왈라데아 연맹국과 오라토리엄 왕국을 전쟁 붙이려고 그러는 거야.”
“……네?”
“그 녀석들의 추종자는 창녀의 자식인 내가 오라토리엄의 이름을 대고 행동하는 것이 되는데 왜 부모 양쪽 다 왕족의 피를 물려받은 블루드는 오라토리엄의 이름을 대지 못하는 거냐며 소리를 지르겠지만, 블루드에게는 그게 아냐. 나는 전쟁의 도화선 같은 거지. 그 녀석은 나를 죽이고 조사한다면서 양국에 전쟁을 붙이고 그 전쟁을 구경할 생각이야. 그래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거고.”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긁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키다가 엘라의 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이내 이상한 게 떠올라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엘라를 바라봤다.
“그런데 엘라…….”
“응?”
“왜 꼭 엘라를 노려요? 전쟁을 하고 싶으면 그……,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굳이 전쟁을 하고 싶다면 엘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죽여도 전쟁은 일어나잖아요.”
“그런 식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소규모에서 끝나.”
“네……?”
“블루드가 아무리 공작을 잘해도 그런 일은 언젠가는 반드시 들켜. 블루드는 한 명이고, 상대는 국가니까.”
“어…….”
“그리고 다른 왕자나 공주가 죽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누가 조사할까?”
“그거야 당연히 오라토리엄 왕국에서 조사하겠죠?”
“그렇지, 그들은 정당한 왕의 후계자니까. 거기에는 다른 나라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 그건 정치적으로 다른 나라에 간섭하겠다는 거니까 다른 국가에서 제지하거든. 그런데 나는? 나는 그냥 평범한 왕족이야.”
엘라의 말에 멍하니 엘라를 바라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에게 여기까지는 이해했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무조건 들키게 된다는 건 알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엘라는 싱긋 웃더니 자기가 블루드의 수하에 의해 죽었을 때의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내 죽음을 조사하는 건 정치적인 이유가 없어. 평범한 왕족이 죽은 거니까. 그러니까 타국이 개입하기 쉽지. 블루드는 그래서 나를 죽이려는 거야. 나를 죽이고 양 국가를 개입시키고, 서로 죽이고 죽여서 쉽게 끝나지 않게 하려고.”
“그, 그런!? 그러면 그냥 당장에 체포하면 되지 않아요!? 위험하잖아요!”
“뭐로 체포할 건데?”
“뭐로 체포하기는요……, 암살자를 보냈잖아요.”
“증거 있어?”
“에?”
“증거가 없어. 말로는 누구라도 블루드의 수하라고, 아버지의 지인이라고 말할 수 있지. 그런데 그건 그냥 말이야. 아무런 증거도 되지 않아. 그래서 확실한 물증이 없으면 블루드가 왕궁에 와서 인사해도 나는 이를 드러내는 것밖에 할 수가 없어.”
엘라의 말에 아연실색하는 레이시.
엘라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법이라는 건 오차를 발생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고, 아무리 큰 범죄를 저질렀다는 심증이 있어도 물증이 없으면 움직여서는 안 되니까.
하지만 자기가 암살을 당할 뻔했는데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니,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심장인 걸까?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레이시가 질린다는 얼굴로 자기를 쳐다보자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어주면서 쓰게 웃었다.
확실히 이런 사고방식은 평민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지닌 레이시에게는 충격적이겠지.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자기도 왕족이라지만, 블루드도 왕족.
아니, 엄마가 창녀인 자기와 다르게 양쪽 다 왕족의 피가 이어진 블루드가 왕족으로서의 입지는 더 강했다.
그러니 자기가 블루드를 처리하려고 한다면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물질적 증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건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구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크고 작은 분쟁을 일으킨 광인답게 이런 쪽에서는 철저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이왕 말하게 된 거 레이시와 결혼을 미루는 이유도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거 때문에 너와의 결혼을 망설이는 거야.”
“네……?”
“블루드를 어떻게 하지 못한 상태에서 너와 결혼하면 블루드는 너를 노리겠지. 힘들 거야. 엄청……. 암살 시도도 더 받게 될 거야. 그거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고 있었어. 2년 정도 뒤면 어떻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2년 뒤 셰런 미인 대회에서 이기고 결혼하자고 말한 거야.”
“그런…….”
엘라의 말에 잠시 말을 더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레이시는 아직 다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엘라가 왜 암살 시도를 받는지 알겠다면서 한숨을 내쉬다가 엘라를 꽉 안아주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뭘, 네가 더 고생했지. 암살자에게 당하고 그러고…….”
“에헤헤……. 그나저나 이렇게 됐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뭐가?”
“으응, 결혼이요. 암살자 때문에 위험해서 못 했다면서요. 근데 지금은 왕궁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위험할 거 같은데…….”
“하고 싶어?”
“으음~ 한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지만, 저는 어떤 형태로든 엘라의 곁에 있고 싶으니까요.”
엘라에게 머리를 기대면서 숨을 깊게 내쉬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면서 레이시를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엘라의 온기에 작게 웃다가 엘라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엘라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기도 이미 레이시가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 지경이 되버렸으니까 레이시와 헤어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에는 미친 새끼가 한 마리 설쳐서 걱정했지만……, 지금은 레이시도 공격을 당하는 입장이니 지금처럼 보호하려는 건 거의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지금 셰런 미인 대회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건 레이시가 정치적인 입지가 끝.
그런데 과연 그런 게 필요할까?
레이시는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거고, 자기도 한 30즈음에는 모든 일을 그만두고 저택에서 여생을 즐길 거다.
가끔 사냥하고, 가끔 놀러다니고, 가끔 카지노에서 방탕하게 놀기도 하고, 레이시와의 생활을 즐길 생각이다.
딱히 정치적인 입지가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니 지금 결혼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엘라는 자기 생각이 괜찮은지 미스트와 아샤를 바라봤고, 두 사람은 서로 잠시 생각에 잠기듯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각자의 대답을 내놓았다.
미스트는 상관이 없다는 대답을, 아샤는 진지하게 고민만 한다면 엘라의 뜻을 따르겠다고.
그러자 엘라는 점점 지금 결혼하는 게 최적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엘라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올렸다.
마치 어떤 대답을 해도 이해한다는 듯.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엘라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키더니 이내 아샤의 의견을 수용하자고 생각한 다음 레이시의 콧잔등에 입을 맞춘 다음 레이시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그럼 왕궁에 가서 좀 더 고민해보자.”
“……에헤헤.”
엘라의 대답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대답에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연신 입을 맞췄고, 레이시는 엘라의 입맞춤에 얼굴을 붉히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엘라에게 안겼다.
“그럼 한 며칠만 더 쉬다가 돌아가자.”
“네에~.”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려놓았던 스튜를 다시 먹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무거운 이야기가 끝나자 곧바로 레이시에게 안기면서 자기도 안아달라며 조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어리광에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밥을 다 먹으면 십자말풀이를 마저 풀자면서 미네르바와 약속을 잡았다.
그러자 배시시 웃으면서 떨어지는 미네르바.
엘라는 두 사람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미스트와 아샤에게 조심스럽게 레이시와 결혼하려면 뭐가 필요할지 물어봤다.
“글쎄요? 당장에 결혼 발표를 한다고 하면 레이시가 꽤 괴로워질 거예요. 공주님이 가지고 노셨던 분들은 아직 자기에게 기회가 있고 레이시만 없어진다면 공주님의 애정을 자기가 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평민 사냥 같은 것도 다시 일어날 수 있어. 남작은 거의 이름뿐인 계급이고 레이시의 공식적인 직책은 메이드니까. 그러니 그 부분도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러려고 너를 고용한 건데.”
“알아. 그래도 내가 다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확신하지 못하니까 레이시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야겠지. 아니면 레이시가 힘을 키우던가.”
“흐으으음…….”
“저도 아샤의 의견에 동의해요. 저희가 아무리 감싸줘도 주변 귀족들이 계속 레이시를 갈굴 건데 그건 레이시가 견디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요.”
두 사람의 의견에 한참 고민하다가 일단 생각해두겠다고 말하는 엘라.
미스트와 아샤는 엘라의 대답에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미네르바와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레이시의 모습에 쓰게 웃으면서 계속해서 레이시의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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