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맹수 조련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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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자들을 협박하고 마차로 돌아온 엘라는 레이시가 자는 걸 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뺨을 콕콕 찔러봤다.
레이시는 알까?
지금 자기가 처음으로 애인을 위해서 남에게 시비를 걸고 왔다는 걸.
……마음 같아서는 레이시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고 숨겨두고 싶었지만, 자기가 마음대로 그렇게 했다간 레이시에게 미움을 받겠지.
그게 무서워서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고 처음으로 살의를 품고 협박을 가했다.
대놓고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저울에 놓고 제대로 생각하라고 협박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보통엔 협박하기 전에 일단 저지르고 봤는데…….
“풉…….”
뭐, 그런 건 모르는 게 낫겠지.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의 뺨을 계속해서 쓰다듬었고, 레이시는 미네르바를 껴안고 자고 있다가 누가 자꾸만 뺨을 만지자 몸을 뒤적이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으응……?”
“깨웠어?”
“후아아암……, 저, 왜 마차 안에 있어요……?”
“자다가 떨어질 거 같아서 데리고 왔지.”
“으으응.”
엘라의 말에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다가 하품하면서 작은 창문을 여는 레이시.
레이시는 아샤와 미스트에게 사과하며 다시 하품했고, 아샤는 그런 레이시의 목소리에 피곤하면 자라면서 가볍게 이마를 때렸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붉어지는 레이시의 이마.
레이시는 자기 이마를 붙잡고는 볼을 부풀렸지만, 아샤는 키득키득 웃다가 레이시에게 얼른 자라며 손짓했다.
“어차피 이 근방에는 일 없고, 야영지에 도착해도 할 일 없으니까 자.”
“그치만 지금 자면 나중에 못 잘 거 같은데…….”
“흐응, 하긴 낮잠 자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네.”
레이시의 말에 아샤는 슬쩍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 해가 높게 떠있는 숲.
하지만 숲의 밤은 평지보다 훨씬 빠르게, 그리고 급하게 온다는 걸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다고 말하다가 오늘은 야영지에 못 들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네……? 왜요?”
“첫 번째 야영지에 너무 일찍 도착해서 두 번째 야영지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늦었네. 대충 정박하고 야영해야할 거 같아.”
“……괜찮아요?”
“지도를 보면 이 근처에 수원이 있으니까 괜찮아. 여럿이서 쓰기에는 작지만, 우리들끼리 쓰면 괜찮을 거 같아.”
중간에 엘라가 빠져나가지 않았다면 도착했을 텐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아샤는 잠시 미스트를 바라보다가 미스트가 싱글벙글 웃자 혀를 차면서 마차를 계속해서 몰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야영지였다.
배그가 아직 작은 영지였을 때 사용하던 야영지.
야영지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잡초가 무성히 자라나 있었지만, 그래도 모닥불을 피우는 장소만큼은 돌로 구분해둬서 아샤는 잡초를 뜯어내고 건초로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레이시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왜 잡초는 안 쓰냐고 물어봤고, 아샤는 레이시의 질문에 잡초를 손으로 비벼서 즙을 내 레이시에게 보여줬다.
“땅에 있던 건 수분이 있어서 불이 잘 안 붙거든. 그리고 불이 붙어서 연기가 확 올라와서 눈이 매워.”
“헤에에…….”
“뜯어내고 한 3~4시간 있으면 좀 수분기가 사라지니까 그때 넣어야 해. 장작이 없다면 말이지.”
미스트가 건네주는 말린 장작을 모닥불에 넣으면서 늘어지게 하품하는 아샤.
아샤는 웬만해서는 장작을 쓰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스트와 함께 이것저것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럼 난 새벽에 야영해야 하니까 좀 일찍 잘게.”
“저녁 안 드시고요?”
“오면서 육포랑 커피랑 엄청 먹었어. 배 안 고파.”
“그래도 과일이라도 드시고 주무세요. 금방 깎아드릴게요.”
“사과 같은 거면 그냥 껍질채 줘.”
“오렌지라서 껍질 채 드시기 힘드실 거예요.”
과도를 꺼내며 웃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웃음에 손 조심하라고 말한 다음 불을 좀 더 키우기 시작했고, 이내 마른 나무에도 불이 붙기 시작하자 잡초를 손에 쥐고 물기를 쫙 빼낸 다음 모닥불에 던졌다.
그러자 약간 솟아오르는 연기.
물기를 빼긴 빼내서 연기가 확 올라오지 않았지만, 조금은 눈이 매워진 아샤는 한숨을 내쉬면서 손으로 부채질을 하다가 레이시가 오렌지를 들고 오자 입 안에 털어넣었다.
맛을 느끼기는커녕 제대로 씹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호쾌하게 입 안에 오렌지를 던져넣는 아샤.
아샤는 레이시에게 잘 먹었다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다음 마부석에 앉아 자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아샤를 보다가 편하게 자라면서 담요를 덮어주고는 모닥불 앞에 앉았다.
사과를 굽고 있는 미스트와 늘어지게 하품하다가 들개가 자기를 쳐다보자 잡아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다가 엘라의 옆에 앉았고, 엘라는 책을 읽다가 레이시가 자기 옆에 앉자 허리에 팔을 두르고는 책을 덮었다.
엘라는 앞으로 수도로 돌아가면서 해결할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쭈뼛거리면서 엘라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그……, 호랑이를 사냥하러 가신다고요?”
“응. 길이가 꼬리를 제외해도 4.5m 정도 되는 대호라서 평범한 군인이 떼거지로 몰려가도 못 죽여서 내가 처리하기로 했어.”
“……몸 길이가 4.5m요?”
무슨 유전자 조작 공룡이라도 되는 건가요?
몸 길이가 4.5m라면 높이는 대략 3m 정도 되는 건가?
호랑이가?
엘라의 말에 레이시는 대략 걸어다니는 5톤 트럭을 떠올리고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이상한 생각을 하고는 엘라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엘라는 왜 그러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혹시 호랑이도 타볼 수 있을까 생각했을 뿐이라면서 머쓱하게 뺨을 긁었다.
“이상한 생각이죠?”
“흐음……, 그러네, 말도 산양으로 바꿨겠다, 호랑이 테이밍 해볼래? 사냥개 대신에 쓰면 좋겠네. 걔 데리고 사냥 대회에 나가자.”
“……주변 귀족들이 기절할 거예요.”
“재밌겠네.”
자기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진심으로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반응에 당황했지만, 엘라는 멈출 생각이 없는지 미스트에게 가능할 거 같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말에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더니 미스트는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면서 한 번 제압해보겠다고 말했고, 들개를 사냥하고 온 미네르바는 그런 미스트의 말에 볼을 부풀리면서 레이시를 껴안았다.
“나로는 부족한가 주인?”
“아, 아뇨! 그런게 아니라, 그냥 궁금하잖아요…….”
“주인은 덩치가 큰 동물이 좋나?”
당장이라도 부엉이로 변신할 기세로 레이시를 쳐다보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미네르바의 손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고, 이내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미네르바가 좋아요.”
“그런데 왜 또 호랑이인지 모르겠다. 산양은 내가 못하는 걸 할 수 있으니 그렇다 쳐도, 호랑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할 수 있지 않나?”
“그냥 커다란 동물이 있다는 게 신기해서 그랬어요. 그리고 마냥 죽이기도 조금 그렇잖아요? 사람을 헤치는 걸 재미로 그러는 거면……, 그런 거면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걸 해결하고 싶어요.”
“흐으응…….”
레이시의 말에 잠시 눈을 가늘게 뜨다가 뺨을 비비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레이시가 너무 착해서 문제라며 죽일 건 죽이면 된다고 잔소리했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이유를 알고나서 그렇게 해도 안 늦지 않냐며 싱긋 웃었다.
미네르바를 믿는다면서 뺨을 쓰다듬어주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손길에 잠시 눈을 가늘게 뜨다가 레이시를 껴안고 화도 못 내게 치사하게 군다면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입에 구운 사과를 넣어주면서 믿는다고 말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자기만 믿으라면서 레이시를 뒤에서 강하게 끌어안았다.
“흐응.”
“왜요?”
“아니, 흐음……. 다음 일은 네가 해결해볼래?”
“에……? 제가요?”
“응, 미네르바 혼자서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니까 네가 도와줘서 해결해봐. 테이밍하든 구제하든 상관없어.”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당황하면서 엘라를 쳐다봤다.
뭔가 말하고 싶은 건 많지만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일을 처리하라니……?
레이시는 자기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엘라를 쳐다봤지만, 엘라는 뭐든 경험이라며 레이시에게 일을 맡기기로 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슬슬 레이시가 평범한 메이드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미인 대회나 다과회 같은 곳에만 레이시를 데리고 다니다보면 레이시가 자신의 애착인형 정도로 소문날 가능성이 있다.
그런 관계도 나쁘지 않지만, 레이시가 원하는 관계대로 되려면 레이시는 최소한 준 남작이나 남작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이번 일처럼 레이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레이시가 해결하게 해서 공을 미리 쌓아두는 게 좋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레이시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레이시가 테이밍한 미네르바가 군대가 제압하지 못한 호랑이를 제압하든, 레이시가 그 호랑이를 테이밍하든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군대조차 처리하지 못한 일을 메이드 한 명이 처리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레이시의 힘이 평범한 사람 수준이 아니란 걸 알게 될 거고 그러면 레이시를 쉽게 건들지 못할 것이다.
남한테 두들겨 맞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무섭게 보이는 거니…….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를 응원하면서 힘내라고 말했고, 레이시는 이미 결론을 내버린 엘라의 말에 눈을 깜빡이면서 당황했다.
하지만 그런 당황도 잠시 엘라도, 미스트도 자기를 바라보면서 믿는다는 얼굴을 하자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테이밍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으니 내가 처리하는 게 맞겠지.
미네르바가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겠지.
상대가 호랑이니까 상공으로 20m 정도 날아다니면 도망칠 수도 있을 거고.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엘라에게 잘 부탁한다며 인사했고, 엘라는 힘내보라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럼 군자금으로 1000만 정도 줄 테니까 알아서 해봐.”
“네에. 힘낼게요!”
군대도 처리하지 못하는 녀석을 처리하는 거니 1000만이라고 해도 돈이 조금 부족할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레이시가 기합을 넣고 밥을 먹기 시작하자 키득키득 웃으면서 지도를 펼치면서 다음 도시는 어디인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루룬의 마케르크 가문과 꽤 친분이 있는 사이.
레이시가 이 일을 해결한다면 마케르크 가문에 말하도록 부탁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엘라는 레이시에게 안 늦게 자라며 손짓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인 다음에 미스트, 미네르바와 함께 마차에 들어갔다.
그리고 평소보다 약간 이른 새벽 3시 반.
레이시는 잠에서 깨서 하양이에게 물과 건초, 과일을 건네주며 자기가 할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미네르바는 호랑이 잡아본 적 있어요?”
“많다. 하지만 엘라가 말한 크기의 호랑이는 처음이다. 그런 건 쉽게 발견할 수 없으니까.”
“그런가요…….”
“오우거라는 것과 비슷한 크기다. 하지만 그렇게 크다면 오우거보다는 강하겠지. 오우거는 인간의 군대가 모이면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으니까.”
“으응……, 그렇겠죠?”
총이라도 들고 있으면 몰라 날붙이를 들고 자기와 키가 똑같은 맹수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아프리카에서는 사자를 죽이는 부족이 있다지만, 그 사자는 키가 1.2m를 조금 넘기고, 몸의 길이도 꼬리를 빼면 1.8m 정도인 되지 않는 몸무게도 200kg 전후의 사자.
키가 3m에 몸길이가 4.5m의 호랑이라면 일단 날붙이를 들고 사냥하는 건 절대 무리다.
그쯤 되면 가죽을 벨 수는 있어도 칼이 근육에 막혀서 안 들어가는 수준일 테니까.
“……일단 거기에 가면 조사부터 해볼까요?”
“흐음, 알겠다.”
뭐, 그렇게 고민해봐야 답은 안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일단 엘라에게 도움을 요청한 도시에 가면 조사부터 해보자고 말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의 지붕에 올라탔다.
“그럼 출발할게요!”
“응, 조심해서 운전해.”
목적지는 도시 미아크.
목적은 호랑이의 처리.
그렇게 중얼거린 레이시는 천천히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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