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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124화 (124/542)

〈 124화 〉 수호신의 복장­2

* * *

얼떨결에 가만히 들어갔는데 본선에 진출하게 된 레이시.

레이시는 처음에는 갑자기 본선에 나가게 되자 당황하면서 심사관을 바라봤지만, 다른 참가자나 심사위원들이 아무 말도 안 하자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리고 레이시는 예선 심사장에서 쫓겨지듯 밖으로 나오고 말았고, 미네르바는 레이시를 보고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뿌듯해져서 레이시를 끌어안고 헤실헤실 웃었다.

그러자 레이시는 눈을 깜빡이다가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때울까 고민하다가, 이내 본선 땐 수호신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수호신을 조사하러 가보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수호신이라는 것의 정체는 뭐고 그 의상은 뭘까?

아무래도 궁금하다.

그리고 지금은 모험가로 소개했으니까, 모험가다운 행동을 해보고 싶다.

그렇게 말하자 미네르바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도망칠 거라고 말하며 레이시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렇게 사람을 해하려는 사람은 없다며 싱긋 웃으며 군것질을 위해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닭꼬치 드실래요?”

“좋다.”

“미네르바는 매운 맛 좋아했죠?”

“음.”

막 미네르바와 만났을 때의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하피라 닭꼬치 같은 것에 기분이 상하면 어떻게 하나 망설이기도 했지만, 레이시의 걱정에 대한미네르바의 대답은그런 레이시의 걱정을 깔끔하게 날려주었다.

인간도 원숭이 같은 걸 먹을 때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데 왜 자기가 닭을 먹는데 죄책감을 느끼냐는 미네르바.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었다.

레이시도 원숭이가 꼬치나 수프 같은 걸로 나오면 조금 꺼려지긴 하겠지만, 못 먹을 것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 대답을 들은 뒤로 레이시는 아무거나 먹음직스러워 보이면 미네르바와 나눠먹기 시작했다.

“어서옵쇼!”

“닭꼬치 5개 주시겠어요?”

“예입~! 15000하랑 되겠습니다!”

“여기요.”

돈을 건네자 레이시의 얼굴을 보고 잡담을 시작하는 상인.

상인은 레이시에게 언제 이 도시로 왔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상인의 말에 어떻게 자기가 외지인인 걸 알았냐면서 닭꼬치를 입에 물었다.

그러자 상인은 껄껄 웃으면서 레이시 정도의 미인이라면 자기가 기억했을 텐데 전혀 모르니까 외지인이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그런 상인의 말에 레이시는 상인이 손님들에게 으레 하는 겉치례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상인은 의외로 진심이었다.

레이시 같이 예쁜 사람이 단골이 된다면 주변 남자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까.

축제 때마다 예쁜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기 위해 혈안이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상인은 레이시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며칠 동안 머물 건지, 그리고 그 동안 뭘 할 건지 알아내기 위해 최대한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채 레이시를 쳐다봤다.

“그래서 아가씨는 여기에 무슨 일로 왔나요?”

“으음~ 부끄럽지만, 의뢰 때문에 미인 선발 대회에 나가게 되어서요.”

“그렇습니까?”

“의뢰만 아니면 안 할 텐데…….”

“네에? 왜죠?”

“제 주변에는 저보다 예쁜 사람밖에 없는데 그 사람들이 저보고 예쁘다고 나가라잖아요. 아마도 놀리는 걸 거예요.”

금방 자신의 방문 목적을 밝히는 레이시.

상인은 그런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가 최소한 일주일은 여기에 머물겠구나 싶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레이시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이시만 하더라도 눈이 절로 돌아갈 정도로 예쁜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더 예쁘다니……?

그게 과연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싶어 상인은 레이시에게 농담도 잘한다면서 웃다가 누가 그렇게 예쁘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남은 꼬치를 미네르바에게 건네주면서 미네르바도 예쁘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미네르바의 얼굴을 바라보는 상인.

자기도 작지 않은 키인데 살짝 위로 올려봐야 하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상인이 자기를 바라보자 눈을 찡그리며 상인을 노려봤고, 상인은 미네르바의 시선에 흠칫 떨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예쁘다, 못생겼다.

이렇게 딱 두 개로 나눠서 말하자면 확실히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굴이 워낙 사나워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드는 데다가 하피라 대등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가져봐야 전부 하피일 건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레이시는 몇 배나 나았다.

품에 안으면 안에 쏙 들어오는 몸집에 미네르바와 다르게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분위기.

거기에다가 야차라면 논의가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미친 척하고 사람을 죽이겠다고 말하지만 않으면 사람으로 생각하는 쪽으로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고, 결혼하고 아이를 가지면 배우자의 종족을 따른다.

대도 이을 수 있고, 성격 좋고 얼굴도 예쁜 와이프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상인은 레이시가 낫다며 레이시를 칭찬했고, 레이시는 상인의 칭찬에 떨떠름한 얼굴을 하면서 미네르바를 바라봤다.

그러자 부드럽게 웃으면서 레이시의 볼을 만지작거리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웃음에 배시시 웃다가 역시 미네르바가 자기보다 더 귀엽다고, 더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미네르바의 입가를 가볍게 닦아주었다.

상인은 자기 기분을 생각해서 띄어주는 거고…….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네르바에게 닭꼬치를 하나 더 넘겨준 다음, 상인에게 궁금해 하던 것을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여쭈어봐도 괜찮을까요?”

“뭐든 물어보십쇼!”

“미인 선발 대회에서 수호신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수호신이 어떻게 생겼나요?”

“아, 그거 말입니까? 토끼입니다.”

레이시의 질문에 싱긋 웃으면서 대답하는 상인.

레이시는 상인의 의외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상인을 쳐다봤고, 상인은 레이시의 반응에 이해한다면서 토끼가 배그의 수호신인 이유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흐에?”

“배그 영지는 오라토리엄 국가 역사상 가장 많은 전투가 일어난 곳이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태어나야 했는데, 그렇게 보면 토끼가 적당하지 않습니까? 3초에 임신을 확정시키는 그 허리 놀림! 그러면서도 1년 내내 발정기인 정력! 다산과 정력의 상징이지 않습니까?”

“…….”

“주인이 싫어한다.”

“아, 아앗! 죄송합니다! 하하! 이거 아가씨께……. 크흠! 하여튼 닭과 비슷하게 빠르게 키울 수 있고 고기도 그럭저럭 많고 튼튼한 모피를 얻을 수 있으니, 토끼가 이 배그 영지의 수호신이 되었습니다.”

“그, 그럼, 그 수호신의 옷이라는 게…….”

“바니복입니다.”

“…….”

배그에서 가축으로 기르는 혼 레빗의 가죽은 무두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소가죽보다 몇 배는 질겨지는 특성이 있어 갑옷을 만드는 데 알맞은 소재가 되었다.

성장도 빨리 6개월이면 어지간한 성체 닭만큼의 고기가 나오고, 척박한 배그의 땅에서 자생하던 동물이라 키우기도 꽤 쉽다.

그리고 그런 실리적인 이유를 제쳐두더라도 토끼는 배그에서 중요한 존재였다.

배그의 땅은 몬스터들도 살기 힘들어할 정도로 척박한 땅이었다.

지금은 땅에 비료를 뿌리고 온갖 기술을 동원해서 농업용수를 끌어당겨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됐지만, 전에는 그런 걸 전혀 할 수 없어 사냥으로 모든 걸 떼워야했다.

그렇다고 사냥이 수월하냐고 물어보면 그것도 아니었다.

멧돼지에 늑대에 하이에나 같은 맹수에 초식동물이라고 있는 동물들도 물소나 메머드 같은 맹수급 동물들이라 사냥을 나갔다가 도로 사냥당해서 도망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보니 사망자보다 많은 아기를 낳는 게 중요했고, 토끼는 그런 면에서 사람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쉬지 않고 번식을 시도하고 몇 번의 절정을 하더라도 금방 회복해서 교미하려드니까!

그야말로 강인한 생명력의 본보기!

그렇기에 배그의 수호신은 토끼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바니는 배그를 대표하는 복장이 되었다.

상인은 그렇게 설명하며 질 좋은 바니 코스프레를 하고 싶으면 좋은 가게를 알려주겠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상인의 말에 어색하게 웃다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엘라에게 달려갔다.

“엘라아아아아!”

“이 반응은 알았나 보네?”

“수호신 복장이라면서요!? 무슨 그런 파렴치한 옷이 수호신 복장이에요!?”

“이 도시를 지킨 건 사람이지만, 그 사람을 지탱한 건 토끼인 걸? 그리고 바니가 파렴치하긴 하지, 그렇지만모두가 파렴치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파렴치하지 않은 게 아닐까?”

“뭔 헛소리에요!?”

“에이, 헛소리라니. 진심이야.”

레이시의 반응에 대충 올게 왔다며 키득키득 웃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웃음에 엘라가 자기를 놀리려고 일부러 숨겼다는 걸 깨닫곤 화를 내며 엘라에게 따졌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쿡쿡 웃으면서 바니는 음탕한 옷이 아니며 혀를 내밀었다.

그러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엘라를 노려보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그렇게 바니가 싫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좋다, 싫다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냐며 엘라를 쳐다봤다.

“그런 걸 입으면 인간으로서 소중한 무언가가 날아갈 거예요.”

“그래?”

“네.”

“너무하네, 이 도시 사람들을 사람으로서의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

“……그,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요!?”

“그럼 입어줄 거지? 그 사람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엘라의 말에 부들부들 떨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푹 숙이는 레이시.

어떻게 해도 바니를 피할 수 있는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입기 싫다고 말하면 자기가 했던 말을 지키지 않는 게 되어버리고, 그렇다고 수치스럽다고 말하면 다른 사람들을 수치심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드는 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생각하자 레이시는 눈물을 글썽이며 엘라에게 안겼고, 엘라는 이번에는 좀 심했다는 걸 깨닫고 레이시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노출 최대한 줄여줄게.”

“훌쩍……, 정말요?”

“응. 본선에 나간 것만으로도 충분히 노력했으니까 괜찮아. 최대한 가리도록 노력해볼게.”

“우, 우으으으…….”

“그럼 옷 보러 갈까?”

“……아까 전까지의 감동, 돌려주세요.”

“아하핫! 갑옷 보러 가자는 거야. 가죽 갑옷. 실전에서 쓸 것도 구하자.”

“그것부터 말하세요.”

“왜? 바니복, 싫다고 했으면서 기대하고 있었던 거야?”

레이시의 볼을 쪼물거리며 키득키득 웃는 엘라.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행동에 눈을 가볍게 흘기다가 고개를 돌린 채 엘라의 품에서 벗어났고, 엘라는 레이시가 자기 품에서 벗어나자 아샤를 부르고 루룬이 알려준 대장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죽을 주로 다루는 건지 불의 열기보다는 가죽의 냄새와 망치질 소리가 들리는 대장간.

엘라는 아샤에게 레이시의 갑옷을 골라달라고 말했고, 아샤는 엘라의 말에 철갑은 안 입히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철갑은 관절에 제한이 걸리잖아. 그리고 레이시를 철갑을 입어야만 하는 장소까지는 데려가지 않을 거고.”

“……우응. 제가 가면 엘라가 더 위험해지니까요……. 믿고 기다려야겠죠……?”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내가 할 말은 없지.”

레이시가 훈련한 건, 그리고 자기가 가끔 일부러 레이시를 죽일 듯이 괴롭히는 건, 레이시가 엘라의 곁을 지키고 싶어서였는데…….

하긴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저렇게 기습에서만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는 게 더 낫지.

아샤는 레이시의 대답에 그렇게 생각하다 대장간 안에 들어갔고, 대장장이는 레이시와 아샤가 들어오자 흠칫 떨다가 이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이 애에게 갑옷을 주고 싶어. 미인 선발대회에 나가긴 할 건데, 그거 말고도 실전에서도 쓰긴 할 거니까 튼튼하게 만들어줘. 방어력은 그렇게 좋을 필요는 없고, 한 방 견딜 수 있을 정도로만 만들어. 대신 내구성은 진창을 굴러도 견딜 수 있게 튼튼하게 만들어. 갑옷의 외형은 저기에 걸린 것처럼 해줘. 장식은 딱히 필요 없고, 안전성을 중시해서 만들어주면 하는데. 기한은……, 3일 내로 준비해줘. 여기 루룬 마케르크님의 주문서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아샤의 주문.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였지만, 대장장이도 아샤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 대화하자 레이시는 눈을 깜빡거리면서 치수를 재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를 보다가 다음에는 바니복을 준비하러 가자고 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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