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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123화 (123/542)

〈 123화 〉 수호신의 복장­1

* * *

“흐응, 루룬이 보냈다고?”

“네. 미인 대회에 쓸 옷과 액세서리들을 보냈다고 하네요. 저주나 축복이 걸린 물건은 없고요, 여기 편지가 있습니다.”

미스트의 말에 마차에 걸터앉더니 궤짝을 먼저 열어보는 엘라.

엘라는 궤짝 안에 있는 옷들과 액세서리들을 보고는 눈을 깜빡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평상복들이었다.

유행을 타지 않는 단정한 옷, 수도의 처녀들이 아름다움을 뽐내기 위해서 입는 유행을 타는 옷, 그리고 조금 구식이지만 소화만 할 수 있다면 고풍스러운 멋을 자랑하는 옷까지.

그리고 그 다음에 눈에 띄는 건 갑옷과 무기.

변경의 사람들이니 무술의 소양을 보는 걸까?

마지막으로 보이는 건 배그의 수호신 같은 동물을 형상화한 옷.

그걸 본 엘라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궤짝을 닫고서 편지를 읽었다.

편지에는 궤짝 안의 옷이 3개의 부류로 나누어져 있었던 것처럼 미인 대회도 3단계를 걸쳐서 진행되며, 그 안에 있는 옷을 사용해주면 감사하겠다고 적혔었다.

이상한 건 루룬이 적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예의를 차리고 있다는 것.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미스트를 보면서 정말 루룬이 보낸 것 같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질문에 아무 말 없이 웃으면서 어떨 거 같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아무리 헤어진지 오래 됐다고 해도 전 여친의 글씨체를 잊을 리가 없지 않냐며 편지를 곱게 접더니 그대로 불태워버렸다.

루룬이라면…….

정말로 루룬이라면 이렇게 궤짝을 보내는 게 아니라 자기 드레스룸을 통으로 빌려주겠지.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마케르크 가문의 사람도 참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이렇게 루룬을 흉내내서 말하지 않더라도 자기는 마케르크 가문을 도와줄 생각이었다.

변경의 실질적 지배자인 루룬이 레이시를 홍보해주면, 그만큼 해야 하는 일이 줄어드니까.

“재밌네. 다 늙어빠진 노인네가 자기 딸내미의 필적을 흉내내서 여자 문체로 편지를 쓰다니. 그런데 그 늙은이는 자기가 이러니까 루룬에게 실질적 권한을 빼앗긴 걸 알까?”

“네, 알고 있는 눈치더군요. 알면서도 반복해서 루룬 님께 영주 자리를 넘기려는 것 같습니다. 그 일로 국왕님께 편지를 자주 보내더군요.”

“흐응……, 이해는 안 되지만 자기보다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에게 영주 자리를 맡긴다는 건 좋은 선택 같아.”

결국 높은 자리는 능력있는 사람이 차지하는 게 좋으니까.

그렇게 말한 엘라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미스트에게 레이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고, 레이시가 미네르바와 손장난을 치면서 다가오자 싱긋 웃으면서 궤짝을 두들겼다.

“미녀 선발 대회의 일정이 나왔네.”

“네?”

“심사를 총 3번 해서 종합점수를 매긴대. 첫 번째는 그냥 일반 옷, 두 번째는 무장한 모습, 세 번째는 수호신의 옷이야.”

“수호신이요?”

엘라의 말에 눈을 빛내는 레이시.

하긴 생각해보면 고블린이나 마나나 마법도 있는 있는 세계니까 수호신 같은 게 있어도 이상하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레이시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엘라를 쳐다봤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그렇게 기대되냐고 물어봤다.

“수호신이라잖아요!”

“킥킥! 하긴 레이시는 마법도 좋아했지?”

“에헤헤……. 신기하잖아요!”

“미인 선발 대회 나갈 마음, 생겼어?”

“제가 나가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코스프레 한다고 생각하고 노력할게요!”

“풉, 그래. 그럼 칭찬은 그만하게 해줄까?”

“정말요!?”

“응. 레이시가 마음을 다잡았다면 굳이 할 필요는 없지.”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억지 칭찬을 안 하게 해주겠다는 엘라.

엘라의 말에 레이시는 환하게 웃으면서 엘라를 끌어안았고, 엘라는 레이시의 포옹에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빨리 미인 선발 대회에 나간 레이시를 보고 싶다며 웃었다.

그러자 엘라의 볼을 꼬집다가 웃음을 터트리는 레이시.

그리고 자고 일어난 레이시는 상인들의 칭찬 속에서 루룬이 기다리는 배그로 마차를 몰았다.

엘라가 칭찬을 억지로 안 해도 된다고 말한 걸 옆에서 지켜봤으니, 사람들의 본심인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의외로 정말로 미인 선발 대회에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다가, 말도 안 된다며 웃음을 터트리며 마차를 몰았다.

그런 대회에서 이긴다면 엘라나 미스트, 미네르바나 아샤겠지.

그렇게 칭찬에 어깨를 으쓱이며 부끄러워하다가 자기가 한 생각이 말도 안 된다고 부정하기를 며칠 반복하자 레이시는 루룬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서 오세요. 엘라, 레이시 양. 환영할게요.”

“에, 그러니까…….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의 메이드 레이시가 루룬 마케르크 님을 뵙겠습니다…….”

“예의 안 차려도 돼. 여기가 공식적인 자리도 아니고, 루룬도 시종도 없이 날 찾아왔으니까.”

“그런 거예요?”

“네. 그렇답니다. 아……, 그리고 레이시 양. 죄송한데 한 가지 부탁을 해도 괜찮을까요?”

“네? 무슨 부탁이요?”

“대회가 이미 시작해서요. 예선전을 바로 치루어주셨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아……, 지금요?”

“네, 사용인들을 시켜서 화장을 도와드릴게요.”

“됐어. 네 사용인들보다는 미스트가 훨씬 나아. 안 그래?”

“으음, 확실히 엘라의 말이 맞네요. 레이시 양의 체형이 제 애인과 비슷하니 그녀의 옷을 입어주실 수 있나요? 일상복은 레이시 양이 지금 입고 있는 것으로도 괜찮은데……, 갑옷과 수호신의 옷은 없으시죠?”

레이시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르게 대화를 주고 받는 엘라와 루룬.

레이시는 두 사람의 대화에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스트가 자기를 욕실에 데리고 가서 목욕물을 준비하기 시작하자 아무 생각 없이 욕조에 들어갔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미스트에게 씻겨지고 로션 같은 걸 몸에 바르는 레이시.

몸의 뒤쪽 부분을 미스트에게 맡긴 레이시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마사지베드에 엎드려 있다가 미스트가 평소에 입던 옷을 가지고 오자 쭈뼛거리면서 옷을 입었다.

그리고 레이시의 얼굴에 화장을 해주는 미스트.

“최대한 자연스럽게 할게요.”

“네?”

“이쪽 봐봐요.”

레이시의 눈 근처에서 손가락을 튕기며 시선을 끄는 미스트.

레이시가 눈을 돌려 그쪽을 바라보자 미스트는 레이시의 뺨을 가볍게 잡고 화장해주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오랜만에 미용실에 간 느낌에 미스트의 손길을 따라 움직이며 멍하니 생각을 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화장이 끝났다는 말에 거울을 본 레이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바뀐 느낌이긴 한데 대체 뭐가 바뀐 건지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자 미스트는 작게 웃으면서 입술에 물기를 머금게 하는 것과 눈가에 약하게 크림을 발라주었다고 말했다.

“레이시의 얼굴은 과하게 하면 오히려 이상해지니까요.”

“그런가요?”

“네. 본편이 좋은 사람들이 그렇더라고요.”

본편이 좋은 사람들은 이미 밸런스가 너무 완벽해서 건들기 힘들다며 웃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칭찬에 쭈뼛거리다가 일단 예선 시합에 가자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참, 공주님의 메이드라고는 밝히지 않는 편이 좋을 거예요.”

“네? 왜요?”

“공주님의 이름을 말하면 최소한 본선까진 프리 패스거든요.”

본선에 진출하면 사람들이 많아서 지위만으로 판단하진 않지만, 예선은 사람 몇 명에다가 참가자밖에 없으니 심사자들이 겁에 질려서 통과시키겠지.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참가자들이 투덜거리는 소리가 날지도 모른다.

해봤자 실제로는 그렇게 안 예쁘다거나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소리가 끝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엘라의 이름에 먹칠을 할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레이시를 그렇게 말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레이시의 외모라면 딱히 뒷배가 없더라도 예선 정도는 통과할 수 있을 거다.

거기에다가 루룬이 직접 볼 테니, 더러운 거래도 없겠지.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절대로 엘라의 이름을 말하지 말고 미네르바와 함께 여행하는 모험가라고 말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뭔가 재미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뭐가 그렇게 재미있을 것 같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모험가라고 말하는 게 재미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엘라가 저 버리면 모험가되려고 했는데, 이제야 모험가라고 말하게 됐잖아요.”

“아하……. 후후, 이제는 레이시가 떠난다고 해도 놓아주지 않을 건데요? 저도 그렇고.”

“에헤헤…….”

레이시의 말에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알아차리는 미스트.

누리지 못한 자유를 원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해봤지만, 그런 건 아닌 거 같았다.

그냥 마법을 보고 눈을 빛냈던 것처럼, 어린아이들이 흔히 가지는 로망이라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미스트는 레이시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어주며 작게 웃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웃음에 배시시 웃다가 미네르바와 함께 다녀오겠다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미네르바와 함께 예선 시험장에 들어가는 레이시.

시험장에 있던 사람들은 레이시와 미네르바가 들어오자 떠드는 걸 멈추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미네르바의 모습에 압도되어서, 나중에는 두 사람의 외모에 감탄해서.

미네르바가 레이시를 지키겠답시고 먼저 시험장에 들어섰을 때, 시험장 안 사람들은 미네르바의 인형을 보고 겁을 지레먹었었다.

커다란 덩치와 날개에 몬스터종인 하피, 거기에다가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

그 모습에 사람들은 몬스터가 쳐들어온 건가 싶었지만, 미네르바의 목에 있는 초커를 보고는 미네르바가 테이밍된 몬스터라는 걸 눈치챘다.

다른 도시라면 몰라도 변경백의 영지인 이곳은 그런 것에 익숙했으니까.

그리고 미네르바가 테이밍 된 몬스터라는 걸 알아차린 사람들은 레이시가 미네르바의 손을 잡고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며 웃자 잠시 의아하다는 얼굴을 했다.

저렇게 유순해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미네르바를 테이밍 한 걸까?

그러다가 레이시의 이마에 달린 뿔을 보고 레이시가 얼굴만 예쁘장한 괴물이라는 걸 깨닫고는 침을 삼키며 레이시를 쳐다보게 되었다.

“어……, 안녕하세요! 루룬 마케르크님께서 여기에 오면 된다고 하셔서 왔는데…….”

“아, 아아! 알겠습니다! 여기 번호표입니다.”

“감사해요. 수고하세요.”

번호표를 건네받자 상인들에게 보여줬던 웃음을 짓는 레이시.

번호표를 건네준 사람은 배그에서는 볼 수 없는 세상 부드러운 미소에 멍하니 얼굴을 붉혔고, 주변 사람들도 레이시의 미소를 멍하니 보다가 본선에 진출하는 자리 중 하나는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미네르바를 테이밍할 정도로 강하면서도 저토록 여유로운 미소라니…….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공존하는 레이시의 모습에 몇몇 참가자는 참가를 취소할 정도로 시험장 안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술렁임을 만든 레이시는 태평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사람들을 보고 예쁘지 않냐고 물어보며 배시시 웃었다.

“주인이 더 예쁘다.”

“에이~ 미네르바도 상인분들 흉내 내는 거예요? 그런 거 안 해도 미네르바가 얼마나 저를 좋아하는지는 잘 안다고요?”

미네르바의 말에 꺄르륵 웃으면서 볼에 입을 맞춰주며 미네르바를 달래주는 레이시.

정작 미네르바는 그런 레이시의 반응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그 누가 레이시만큼 피부가 깨끗하고, 몸매가 아름답다는 거지?

전부 피로에 찌든 근육을 하고 있거나 밸런스를 신경 쓰지 않고 엉덩이를 커 보이기 위해 골반을 뒤로 빼서 몸의 균형이 안 맞는데?

미네르바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레이시가 제일 예쁘다고 말했고,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말에 계속 웃으며 볼에 입을 맞춰주었다.

그러자 말하는 걸 포기하고 레이시를 껴안고 애교를 부리기만 하는 미네르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심사관들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레이시를 본선에 진출시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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