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첫째 아이, 둘째 아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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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커녕 연애를 한 적도 없는데 아이를 가진 것 같다.
레이시는 미네르바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엘라가 구해줬었던 테이머들의 책에서 보면 관계가 깊은 테이머와 동물들은 부모와 자식, 연인간의 관계와 비견되는 연결을 가진다더니 이런 의미였을까?
레이시는 그런 자신의 생각에 키득키득 웃다가, 이내 어떻게 하면 미네르바를 달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레이시에게 있어서 미네르바는 이미 더 없이 특별한 존재였다.
한 번은 사지를 같이 넘나들기도 했고, 매일매일을 같이 지내면서 엘라나 미스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도 말할 수 있었다.
왜냐면 미네르바니까.
미네르바와 자신 사이의 일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특별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그런 관계.
가족도, 친구도, 그렇다고 애완동물과 그 주인의 관계도 아닌 미묘한……, 애매모호하다고 말하기에도 뭔가 이상한 그 관계.
그런 관계를 특별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다 다른 특별함을 같은 특별함이라는 단어로 말하는 건 미네르바가 싫어할만 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과 미네르바는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미네르바가 원하는 건 관계를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단어.
아무리 상대 마음을 잘 모른다지만,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레이시는 휴식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침대에 먼저 들어가서 투덜거리는 미네르바를 달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좋아한다로는 안 된다.
그런 건 수십 차례나 더 속삭이던 말이니까.
그것보다 미네르바는 미네르바만 들을 수 있는 말을 원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침대에 들어가 삐진 척 등을 돌리고 있는 미네르바의 옆구리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흠칫 떨면서 몸을 살짝 돌리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자신을 보자 꺄륵 웃으면서 옆구리를 마구 간질이기 시작했다.
“으갸아악!?”
“에잇! 에잇! 언제까지 삐져있을 거예요?”
“뭐, 뭐하는 거냐!?”
“그냥요. 자자고요. 날개 주실래요?”
“으으으으…….”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행동에 당황하다가 이내 스트레스 때문에 장난을 안 치면 못 배기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자신의 날개를 내주었다.
그러자 미네르바의 날개를 덮고 천천히 눈을 감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레이시의 볼을 콕콕 찌르다가 이내 레이시를 품에 끌어안고 레이시와 함께 잠에 빠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오랜만에 늦잠을 잔 레이시는 기지개를 쭉 켜다가 얌전히 자는 미네르바의 볼을 몇 번 찔러봤다.
그러자 싫다는 듯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레이시의 손길을 피하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작게 웃다가 미네르바가 일어나자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 으웃……, 주, 주인도 잘 잤나?”
레이시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오늘은 휴일이니 좀 더 쉬어도 된다고 말하며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질문에 잠시 쭈뼛거리다 레이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계속 입을 다문 채 침대 위에서 레이시를 껴안았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포옹에 작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럼 오늘은 잔뜩 늘어질까요?”
“으, 으응. 그것도 좋다.”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에 고개를 파묻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어주다가 침대에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처음 했던 말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는 레이시.
미네르바는 그런 레이시의 얼굴을 보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레이시의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으응?”
계속해서 레이시의 눈치를 보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행동에 조심스럽게 깍지를 끼고 미네르바와 눈을 마주쳤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와 눈을 마주치자 얼굴을 붉히며 천천히 레이시의 뺨을 쓰다듬었다.
“하고 싶어요?”
“휴, 휴일이니까…….”
“으으응~. 어떻게 할까요?”
미네르바와 몸을 섞는 게 싫은 건 절대 아니다.
처음에는 하피의 습성이 그대로 남아서인지 자신을 배려해주지 않고 매번 거칠게만 해서 힘들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확실히 자신을 배려해주고 감정을 교류해주니까.
하지만 지금 이렇게 몸을 섞으면 뭔가 미네르바가 원하는 특별한 관계를 만들지 못 할 거 같다.
그렇게 말하자 미네르바는 복잡한 얼굴을 하고서 레이시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레이시의 말대로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긴 하지만, 성욕도 쌓일 대로 쌓였다.
“으, 으으으…….”
“아하하…….”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앓는 소리를 내면서 레이시의 손을 약하게 깨무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행동에 작게 웃다가 미네르바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면서 어떻게 하면 특별한 관계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특별한 관계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거겠지?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 증거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특별한 관계인데 갑자기 그 증거를 만들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연애 경험이 많았다면, 아니, 최소한 멜로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기라도 했다면 조금 나았을 건데.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품 안에서 고민하다가 미네르바를 힐끗 쳐다봤고, 이내 애완동물이니까 목줄이라도 채워볼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금방 그만둬버렸다.
다른 건 몰라도 그렇게 목줄을 채우고 돌아다니기엔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고개를 좌우로 저은 다음 미네르바를 쳐다봤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쳐다보지? 주인.”
“으음~ 미네르바는 가끔씩 저에게 테이밍된 걸 후회하지 않나요?”
“가,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처음에는 미네르바가 그냥 부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란 걸 아니까 궁금해졌어요. 솔직히 처음 계약하려고 했을 때, 거절 할 수 있었죠?”
“…….”
레이시의 말에 눈을 깜빡거리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미네르바.
그러다가 미네르바는 예전에는 몰라도 지금은 절대로 후회하거나 그러지 않는다면서 레이시를 꽉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포옹에 그런 걸로 화내거나 오해하지 않는다며 작게 웃었다.
그러자 미네르바는 안심하면서 레이시를 껴안고 있는 팔에 힘을 풀고서 왜 그런 걸 물어봤냐고 원망하듯 레이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자신은 레이시와 좀 더 사이가 좋아지고 싶어서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왜 레이시는 이런 걸 물어보는 걸까?
미네르바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레이시를 껴안고 투덜거렸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투덜거림에 어색하게 웃다가 이런 질문을 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미네르바는 저의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거죠?”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자신의 말에 대답하자 미네르바의 손에 깍지를 끼고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엘라는 제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사람이에요. 미스트는 제게 메이드 일이나 이것저것 다양한 걸 가르쳐준 사람이고요. 아샤는 스승님 같은 느낌이네요.”
“나는……?”
살짝 기대하는 얼굴로 레이시를 쳐다보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얼굴을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미네르바의 양쪽 뺨을 가볍게 꼬집으며 배시시 웃었다.
“미네르바는 잘 모르겠어요.”
“……우.”
레이시의 대답에 충격을 받았다는 듯 눈을 이리저리 흔들다가 레이시의 품에 파고드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반응에 자신이 말을 잘못 말했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렇지만, 미네르바가 뭐라고 말하기 무척 어려운 걸요.”
“왜지……?”
“미네르바는 언제나 제 곁에 있잖아요? 제가 말하지 않으면 언제나 저를 보고, 저를 도와줄 수 있는 곳에서, 제게 손을 뻗어주잖아요. 연인도, 가족도, 사제 관계도 그런 관계를 표현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
“미네르바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특별해서 그래요.”
그래서 더욱 특별한 관계를 의미하는 물건을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엘라와 특별한 무언가를 만든다고 한다면 엘라가 자신에게 한 것처럼 장신구를 건네주면 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건 엘라에게 선물하기 미안할 정도로 조약한 물건들이니까, 3개월간 저금한 돈으로 같은 모습의 팔찌를 산 다음 엘라에게 해주면 좋지 않을까?
염주 팔찌 같은 건 일하는 데 방해가 안 되니까.
미스트라면 장신구 같은 것보다 향수를 건네줄 거고, 아샤는 그런 건 됐으니 훈련할 시간이나 비워두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미네르바는 아마 자신이 해주는 거라면 뭐든 좋다고 말하겠지.
장신구를 해줘도, 향수를 해줘도, 같이 시간을 내더라도…….
그렇기에 뭔가 미네르바를 특별히 기쁘게 해줄 수 있는 물건을 떠올리기가 무척 어렵다.
미네르바가 원하는 게 특별한 것이니 미네르바만이 기뻐할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자 피식 웃으면서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시간은 많으니까 같이 고민해볼까요?”
“으응…….”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산책이라도 나가지 않겠냐고 물어보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미네르바가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자고 말한 게 신기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미네르바를 보다가 좋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정리하는 게 안 되면 산책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으니까 산책을 하고 나면 미네르바에게만 줄 수 있는 좋은 게 떠오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미네르바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다음, 엘라와 미스트의 허락을 받고서 저택 근처에 있는 작은 정원에 갔다.
작다고 해도 반지름 10m의 커다란 정원이지만.
저택과 왕궁을 일직선으로 잇는 곳에 위치한 정원이라 왕궁에서 일하는 사람도 꽤 많이 나온 모습.
미네르바는 그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가 애완견의 목에 걸린 목줄을 쳐다봤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목줄이 없는 개나 고양이에게는 애정을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도, 목줄이 있는 개나 고양이에게는 자신처럼 대화가 통하지 않음에도 입을 맞추고 뺨을 비비는 등의 애정표현을 했었다.
……그렇다면 대화가 통하는 자신이 목줄을 하면 저 개나 고양이들보다 훨씬 좋은 걸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엘라와 미스트, 아샤는 사람이라면서 목줄을 안 하려는 것 같지만, 자신은 하피.
저들의 말로는 인간종이 아니니 사람도 아니고, 자신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니 좋은 도구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자신의 발상에 감탄하면서 레이시에게 개의 목줄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걸 원한다.”
“에……?”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며 요청하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그런 미네르바의 모습에 진심인 거냐면서 되묻다가 당황한 듯 손을 휘젓다가 목줄의 정체를 말해주었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자신이 저럴 원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목줄은 애완동물에게 채우는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애완동물은 애정으로 기르는 동물을 뜻한다. 나는 인간들 기준에서는 동물이고, 레이시의 애정을 원하니까 목줄을 차도 상관 없지 않나? 아니, 오히려 그렇게 해야 할 거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생각해도 완벽한 이유다.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레이시에게 목줄을 채워주면 좋겠다고 조르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미네르바의 말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정말로 틀린 말이 아니라서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한숨을 내쉬면서 미네르바를 쳐다봤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에게 자신의 말이 틀린 거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요……?”
“으응? 빨리 해주면 좋겠다!”
“…….”
왜 그런 대답이 나온 걸까?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당당하게 요구하는 미네르바의 얼굴을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다가 이내 피식 웃으면서 미네르바의 볼에 입을 맞췄다.
약간 엉뚱한 대답이긴 했지만, 이런 게 미네르바니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미네르바의 손을 잡고 귀족들이 모여 사는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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