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번외)미네르바의 과거
* * *
미네르바의 가족은, 여타 다른 하피들과 다르지 않았다.
발정기가 찾아오면 남성을 납치하고 강간하여 아이를 낳고 기르고, 그것을 반복하다 강대한 적을 만나면 토벌당한다.
그런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인생을 사는 하피들에게 미네르바는 이상한 존재였다.
발정기를 단 한 번도 겪지 않은 아이.
그리고 동시에 15년만에 와이번을 단독으로 사냥해서 혼자서 먹어치우는 강력함.
모든 게 자신의 가족과 달랐던 미네르바는 자연스럽게 배척의 대상이 되었고, 미네르바도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태어날 때부터 저들과 자기가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으니까.
자신은 다른 하피들이 겪는 발정기도 겪지 않았고, 수컷 사냥에는 흥미가 동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강자와의 결투에만 조금씩 심장이 뛰었으니까.
그렇기에 미네르바는 자신의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는 것에 대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사냥한 고기를 혼자 먹을 수 있어서 좀 더 좋았다.
그렇게 생각하던 미네르바는 오늘도 사냥한 사자의 머리통을 짓눌러 으깬 다음 날고기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고, 고기…….”
“……? 뭐지? 수컷.”
“이걸 줄 테니까 나도 고기를 줘……. 한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뭐냐? 그건. 쓰레기인가?”
“채, 책이야! 꽤 비싼 거야! 이걸 팔면 고기 4근은 나온다고!”
“……근?”
“그, 그러니까……. 이 정도 돌의 무게만큼의 고기를 얻을 수 있어!”
“……이런 게?”
그리고 그날은 자기와 다르게 며칠 동안 사냥에 실패한 언니의 수컷이 자신에게 고기를 달라고 조르던 날이었다.
책이라고 부르는 이상한 것을 들이밀며 고기를 달라고 하는 수컷.
미네르바로서는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되는 거래였다.
굶주리고 있는 와중에도 그걸 먹지 않은 걸 보면 먹을 수 없는 것일 텐데 그것의 몇 배의 부피를 지닌 고기와 거래할 수 있다니…….
사기인 걸까?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언니에게 다른 수컷을 적당히 잡아주고 눈앞의 수컷을 죽일까 고민했지만, 잠시 후 다리를 천천히 내리며 수컷에게 고기를 넘겨주었다.
변덕.
어차피 고기라면 썩을 정도로 사냥할 수 있고, 수컷이 죽으면 언니가 히스테리를 부리기에 선택한 변덕이었다.
자신이 죽인 고기를 그냥 통째로 던져주며 책을 받아가는 미네르바.
수컷은 미네르바가 고기를 통째로 넘겨줘서인지 물이 묻으면 안 된다면서 자신이 입고 있던 넝마 같은 옷도 건네주었고, 미네르바는 수컷의 말에 입과 손을 닦은 다음 책을 펼쳤다.
글을 읽을 수 없었기에, 책의 내용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읽을 수 있는 건 삽화로 들어간 그림뿐.
“…….”
그림의 내용은 복잡하지 않았다.
뭔가 동물을 부리는 듯한 사람이 여러 동물과 친구가 된 다음, 드래곤을 처단하는 이야기.
동화는 여타 다른 동화들과 마찬가지로 끝에선 주인공과 히로인이 입을 맞춘 채 결혼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미네르바는 그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하다.
뭐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는데, 그림을 보니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자신의 심장이 어디에서 더 크게 뜨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손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수컷의 그림을, 그리고 두 번째로 암컷의 그림을 가리는 미네르바.
“……으응?”
그렇게 비교하자 미네르바는 자신의 심장이 암컷의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볼 때, 더욱 크게 뛴다는 걸 느끼며 날갯짓했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발정기가 오지 않는 건, 암컷이 더 좋기 때문인 듯 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이상한 것도 이해가 된다.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그날 이후로 그림을 계속해서 쳐다보면서, 언니나 엄마의 수컷들에게서 암컷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닥치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림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언니들이나 엄마는 중간 크기의 멧돼지도 혼자 사냥하지 못하고 잡은 고기도 서로 싸우며 나눠야 하는 약자였고, 자신은 와이번마저도 혼자서 사냥할 수 있는 강자였으니까.
그들이 굶주릴 때를 기다리다가 고기를 들고 가면, 그들은 그들끼리 이야기하다가 암컷의 그림을 미네르바에게 주었다.
처음에는 살이 아직도 포동포동하게 올라와 있는 남성이 책 같은 걸 주었다.
동화와는 다르게 뭔가 실제 사람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책.
그것이 상인의 카탈로그라는 건 꿈에도 몰랐지만, 뭔가 심장을 강하게 때리는 것 같은 책이라 미네르바는 그 책을 수십 번도 반복해서 읽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거래한 그림은 갑옷을 입은 암컷의 그림이었다.
마찬가지로 실제 사람을 그린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격하게 싸우는 전사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 암컷의 갑옷은 산산조각 부서져서 맨살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미네르바는 이번에는 별로 그 그림을 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할 정도로 심장이 크게 뛰었기에, 가끔씩 심장이 뛰지 않을 때만 그 책을 읽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건네준 책은 반쯤 헐벗은 암컷들이 수컷이 입고 있는 천 쪼가리로 가슴과 하복부에 가리고 있는 책이었다.
뭔가 살색 투성이의 그림.
자신도 자신의 언니도, 그리고 자신과 거래하는 수컷들도 살색 투성이였는데, 이상할 정도로 그 그림에만 반응하는 자신의 심장.
미네르바는 그런 심장의 반응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다가 책을 덮어서 조심스럽게 물이 닿지 않는 곳에 책을 보관했었다.
그 다음부터는 한동안 고기를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었다.
가을이 오면서 사냥감이 풍족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냥저냥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고기를 먹게 되었으니 책을 거래하지는 못 하겠지.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한 달 정도는 새로운 책을 포기하고 자신이 읽던 책을 무한히 반복해서 읽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수컷들은 다시 미네르바를 찾았다.
“고, 고기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 언니들이 고기를 안 주나?”
“양이 적습니다…….”
그 이유는 미네르바와 거래하면서 고기를 실컷 먹던 것과 다르게 고기를 원하는 만큼 못 먹기 때문이었다.
늘 굶주리는 건 견딜 수 있지만, 배불리 먹다가 굶주리는 건 견디기 힘들다.
그렇기에 미네르바의 언니의 눈을 피해서 책을 건네주는 수컷들.
미네르바는 그런 수컷들의 행동에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다음, 잠시 후 수컷들만한 멧돼지를 들고 던져주었다.
“알아서 먹어라.”
그리고는 책을 빼앗고 수컷들을 쫓아내는 미네르바.
책의 내용은 여성들의 나체가 잔뜩 그려진 책으로, 춘화집이었다.
잡지 같은 것보다는 훨씬 중요하고 가족 사진보다는 훨씬 하찮은 책이었기에 아끼고 아끼다 고기와 거래한 수컷들.
수컷들은 내심 아쉽다는 듯 미네르바가 든 책을 바라봤지만, 미네르바는 그런 수컷들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책을 바라봤다.
그리고 인생의 첫 발정기를 겪는 미네르바.
하지만 자위라거나 그런 걸 배우지 못한 미네르바는 숨을 헐떡이다가 그대로 잠에 빠졌고, 그런 생활은 며칠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수컷들은 그런 미네르바의 반응에 한 가지 수단을 생각해냈다.
모계 사회의 동물들이……, 아니, 야생에서 수렵해서 먹고 사는 동물이라면 고르는 자연스러운 선택지.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녀석에게 가서 배우자가 된다.
아니, 성노예라도 좋다.
어차피 성노예라면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미네르바의 성노예가 되는 게 낫다.
그렇게 생각한 수컷들은 미네르바가 잠들자 천천히 미네르바에게 다가갔고 이내 미네르바의 가슴을 있는 힘껏 쥐었다.
미네르바의 언니들과 엄마를 상대하면서 얻은 경험으로 계산한 힘.
하지만 그 힘은 잘못 적용되었고 미네르바는 자신을 덮치려고 하는 수컷을 보고는 혐오감을 느끼며 그대로 수컷의 목을 비틀었다.
마치 닭의 목을 비틀 듯 가뿐하게.
수컷들은 그 모습에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숲속의 사슴조차 도망치지 못하게 제압하는 미네르바에게서 맨발의, 그것도 미네르바의 가족에게 납치당할 정도의 약자들이 도망칠 수 있을 리가 만무했고 수컷들은 차례대로 죽었다.
그리고 엄마의 수컷만이 남았을 때 미네르바의 가족들은 빠르게 날아와서 미네르바에게 공격했다.
이유는 자신의 종마가 죽었기 때문.
여기에서 물러나면 미네르바가 자신의 가족을 지배하고 날뛸 게 틀림 없었기에 온 가족들은 미네르바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미네르바는 자신의 가족들도 죽이기 시작했다.
언니 둘은 공격하는 시점에서 죽여버렸고, 다른 가족들도 어렵지 않게 죽였다.
그리고 엄마를 죽이려 할 때, 엄마의 종마가 미네르바에게 이상한 마법을 사용했다.
강제로 스킬을 사용하게 하는 저주.
엄마의 종마는 저주를 배웠었고, 미네르바에게 죽은 사람들의 목숨과 영혼을 사용해서 미네르바의 몸을 쉐이프 시프트 상태로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그 수컷은 실컷 웃었다.
쉐이프 시프트는 신체의 힘이 강해지긴 하지만 거대 새 형태에서 변화하지 않으니까, 엄마와 다른 가족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미네르바를 저주했다.
그리고 미네르바의 분노를 사고 미네르바가 진심을 내게 만들었다.
애초에 미네르바가 봐주고 있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던 수컷은 미네르바의 발에 짓눌려 상체가 고깃덩이로 변했고, 그와 동시에 다른 가족들도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나무에 걸리게 되었다.
그러나 저주는 풀리지 않았고, 미네르바는 마치 동굴에 갇힌 듯한 갑갑함을 느끼며 천천히 정신이 깎여나갔다.
눈치챘을 때는 케이지에 갇혀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들이 와서 자신의 몸을 살피고선 포기하고 돌아가기를 반복하며, 미네르바는 단념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영원히 자신의 형태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단순한 새가 되어서 살아야할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렇게 포기하게 되었을 때, 미네르바는 야차와 인간, 그리고 수인족으로 이루어진 한 사람의 무리를 만나게 되었다.
“…….”
잠을 자다가 눈을 뜨고 깜빡거리는 미네르바.
미네르바는 잠에서 덜 깼는지 날갯짓을 몇 번 하면서 눈을 비비고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서 앓는 소리가 들리자 미네르바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달았다.
어제 실컷 하다가, 마지막으로 레이시와 키스하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렸었다.
그렇게 생각한 미네르바는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다 레이시를 보고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유약한 주인이라고 생각했다.
힘을 지니고 있는데 도망치고, 미약한 상처에도 정신이 망가질 정도로 약한 사람.
그렇기에 처음에는 적당히 레이시를 도와주고 도망치려고 했었다.
그러나 미스트가 소환한 악마의 마력에 노출된 걸 치료해주다 몸을 섞은 이후 좀 더 머물기로 했고,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레이시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하면서, 그렇게 싸우는 게 싫으면서도 왜 엘라를 따라가려고 하는 걸까?
엘라의 몸에서 나는 피 냄새를 맡으면 엘라는 아마 수백, 수천의 목숨을 빼앗은 자이고 그만큼 위험한 곳에 가게 될 텐데, 왜 억지를 부리는 걸까?
그리고 왜 나는 그런 억지를 보고 있음에도 이상하다고만 생각하고 자신을 도와달라는 레이시를 싫어할 수가 없는 걸까?
레이시가 자기보다 약한 건 분명한데 레이시가 강하게 말하면 이길 수가 없고 명령을 따르게 된다.
테이밍 스킬 때문이 아닌, 진심으로 따르게 되고 만다.
거기에다가 더 이상한 건 그렇게 자기보다 약한 사람의 말을 따르고 있는데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좀 더 명령을 받고 싶었다.
“책에서 봤었다…….”
이게 바로 콩깍지가 씌였다는 건가?
미네르바는 레이시와 함께 배운 글로 읽은 책을 떠올리다 배시시 웃으면서 아직 자는 레이시의 머리 옆에 팔로 짚고서 조용히 레이시의 얼굴을 바라봤다.
녹색의 머리카락, 다른 생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드러운 뿔.
귓가를 자극하는 앓는 소리와 평소에도 맡을 수 있는 부드러운 냄새와 암컷의 냄새가 뒤섞인 냄새…….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모든 걸 천천히 읽다가 이내 레이시를 꽉 끌어안았고, 레이시는 자신을 포옹하는 감촉에 천천히 눈을 뜨고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인사했다.
“흐아아암……, 으으응?잘 잤어요? 좀 일찍 일어나셨네요?”
“꿈을 꿨다.”
“헤에~ 무슨 꿈인가요?”
“모르겠다. 주인의 얼굴을 보니 잊어버렸다.”
“에헤헤, 그게 뭐예요?”
“일어날 때까지 참았으니 키스해주면 안 되나?”
“으응~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지금도 좋다. 이 닦고도 좋다. 주인이 입을 맞춰주는 게 중요하니까.”
“아하하…….”
미네르바의 애정표현에 어색하게 웃다가 가볍게 볼에 입을 맞추는 레이시.
레이시는 나머지는 이를 닦고 하자며 웃었고 미네르바는 레이시의 말에 헤실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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