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이유4
* * *
낮잠을 잔 다음 천천히 눈을 뜨는 레이시.
레이시는 씻고 나왔는지 옆에서 옷을 입고 있는 아샤를 보고는 천천히 웃는 얼굴로 죽어가기 시작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반응에 한숨을 내쉬었다.
“후회할 거라고 했잖아.”
“아, 아아아…….”
“……우선 씻고 와.”
“……네.”
아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레이시.
아샤는 레이시의 반응에 잠시 떨떠름한 얼굴을 하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레이시의 옷에 탈취제를 뿌린 다음 창문을 열고 물을 마셨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어서 그런지 더욱 시끄러워진 거리.
아샤는 거리에서 올라오는 소음에 눈살을 가볍게 찌푸리다가 레이시가 나와서 옷을 입자 저녁을 먹고 들어갈 건지, 그냥 갈 건지 물어봤다.
그러자 레이시는 자기 배를 살짝 만지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고 말했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근처 적당한 가게에 레이시를 데리고 갔다.
샌드위치와 함께 커피를 파는 가게.
“맛이 어때?”
“으, 으응…….”
아샤의 질문에 샌드위치를 입에 물고는 우물거리는 레이시.
아삭거리는 식감이 혀에 닿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맛이 느껴지지 않자 레이시는 당황하다가 아샤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아샤는 대충 예상했다는 듯 맛이 없지 않냐며 작게 웃었고,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거의 아무 맛도 안 나네요…….”
“그럼 내가 뭔가를 할 테니까 그 다음에는 어떤 맛이 느껴지는지 말해봐.”
“네? 네…….”
똑같은 샌드위치니 변할 리가 없는데…….
레이시는 아샤의 말에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샤가 뭘 하는지 기다렸다.
“다른 가게 말고 여기에 온 이유 말인데, 여기는 다른 가게들이랑 다르게 내가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맛집이거든. 공유하려고 온 거야.”
“에? 진짜요?”
“응, 호스트 바에서 1차로 논 다음에 2차는 자리를 비켜줬거든. 대장이 있으면 아무래도 편하게 못 노는 데다가 내가 잘 노는 편도 아니니까. 그래도 왕궁에는 복귀를 새벽 2시에 한다고 했으니 일찍 들어가지는 못하고 돌아다니다 발견한 곳이야.”
“헤에에…….”
“내가 구해준 사람의 부모가 하는 곳이라 소개받은 것도 있지만, 맛있더라고. 다시 먹어봐.”
“으음…….”
아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한번 샌드위치를 입에 무는 레이시.
그러자 이번에는 신기할 정도로 생생한 맛이 느껴졌고, 레이시는 입 안에서 터지는 맛에 눈을 깜빡이다 아샤를 바라봤다.
“이제 맛, 느껴져?”
“네, 네에……. 어째서?”
“여기에 오고 나서 바로 앉았을 땐 네가 사랑을 느낄 건덕지가 없다가, 지금은 사랑을 느낄 이야기가 생겼잖아? 그래서 그런 거야.”
“헤, 헤에에…….”
“지금껏 네가 먹은 것들은 전부 미스트가 조리했거나 엘라나 미스트가 고심한 것, 혹은 두 사람이 직접 먹여준 거겠지? 그래서 맛을 느낀 거야. 반대로 네게 있어서 사랑이 없는 것들을 먹으면 아무런 맛도 못 느끼고 체력 회복도 덜 되고.”
“그렇구나…….”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하지는 마, 잔뜩 화난 얼굴을 해도 두 사람은 너를 좋아할 테니까.”
“그, 그건 알아요.”
아샤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는 레이시.
레이시는 자기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며 투덜거렸고 아샤는 레이시의 말에 키득 웃다가 슬슬 돌아가자며 남은 샌드위치를 입에 넣었다.
“말, 돌려받으면 아마 엘라와 미스트의 귀에까지 이야기가 들어갈 거야.”
“으읏…….”
“너무 긴장하지는 마. 최악의 경우엔 내가 중재해줄게.”
“중재를 받는 것 자체가 최악인걸요.”
“킥킥! 하긴, 그것도 그렇다.”
사랑 다툼에 타인의 중재가 들어간다니, 그것만큼 웃긴 일도 없지.
아샤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레이시를 안고서 왕궁으로 돌아갔고, 저택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엘라와 미스트를 보고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공주라는 사람이 저택 앞에서 메이드가 언제 돌아오는지 고개를 내밀고 기다리는 모습이라니…….
퍽 웃기는 모습.
아샤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레이시를 말에서 내려준 다음 엘라에게 걸어갔다.
“왜 저택 앞에서 기다리는 거야?”
“글쎄?”
아샤의 질문에 피식 웃으면서 아샤의 뒤에 있는 레이시와 눈을 마주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와 눈을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다가 아샤의 뒤에 숨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상세한 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호스트 바에 갔다가 기사단이 외박할 때 쓰는 여관에 들어가서 몇 시간.
……한 거겠지?
아샤의 몸에서 미약하게 술 냄새가 나는 걸 보면 술도 마신 거겠고.
엘라는 그렇게 레이시에 대한 걸 생각하다가 레이시에게 안기라는 듯 조용히 팔을 벌렸다.
그러자 먼저 씻는 게 좋지 않겠냐며 목욕물을 데워뒀다고 말하는 미스트.
엘라는 미스트에게 레이시는 자신이 씻길 테니까 미스트는 오늘은 쉬는 게 어떻겠냐며 물어봤고, 미스트는 엘라의 권유에 목욕하는 게 휴식이니 씻게 허락해줄 수 없냐며 되받아쳤다.
“아하하, 나중에 같이 야식이라도 먹을 건데.”
“야식 준비는 제가 해야겠죠?”
“음, 아니, 이번에는 내가 해보려고.”
“공주님이 요리를 하신다니……, 그런 건 야영 같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하지 않게 되어있어요. 제가 할게요.”
“싫어. 취미야.”
“어머, 공주님의 취미는 독서잖아요?”
“그리고 배운 걸 실천하는 것도 취미지. 잘 알잖아?”
“……아아~.”
이래서 도망쳤구만.
확실히 평소에 하던 것처럼 별 영양가 없는 잡담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
하지만 그 안에 있는 분위기가 달랐다.
평소에는 그냥 조용함이 싫어서 엘라가 헛소리를 하고 미스트가 받아주는 거였다면, 지금은 명백하게 자기가 생각한 게 더 좋다고 말하는 상황.
어린애들끼리 서로 자기 장난감이 더 좋으니 자기하고 놀자고 떠드는 것 같은 모습에 아샤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레이시를 바라봤고, 레이시는 아샤의 시선에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매일 저런다니까요…….”
“애들도 아니고 저게 뭐래?”
저런 건 아카데미 학생들이나 하는 짓일 텐데…….
아샤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아직도 자기가 레이시와 씻고 야식 준비를 하겠다고 말하는 두 사람.
아무리 봐도 양보할 기색이 안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아샤는 머리를 긁다가 레이시는 씻고 왔으니 굳이 씻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두 사람을 중재하기 시작했다.
“야식은 너희 둘이 준비해. 어느 쪽이 레이시의 취향에 맞춰서 만드는가로 싸우면 되잖아.”
“…….”
“…….”
“참고로 레이시는 요리의 맛을 요리에 담긴 애정으로 판단하니까, 그편이 좀 더 낫지 않아? 이렇게 계속해서 레이시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도 안 좋고.”
“그건…….”
아샤의 말에 시선을 돌리는 엘라.
미스트도 내심 레이시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조심스럽게 아샤의 시선을 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레이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아샤를 끌어안았고, 아샤는 레이시의 포옹에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더니 자기는 숙소로 돌아가도 괜찮겠냐고 물어봤다.
“에에……, 왜요?”
“왜냐니, 나는 기사니까 기사 숙소에 가서 자야지.”
“같이 있어 주면 안 돼요?”
“…….”
“두 사람 감당하는 거 못 한다고요…….”
“하아, 알았어. 오늘은 그럼 신세 좀 질게.”
“에헤헤……, 고마워요.”
레이시의 부탁에 결국 손을 들어버리는 아샤.
엘라는 아샤의 반응에 능글맞게 웃으면서 아샤를 쳐다봤고, 아샤는 엘라의 시선에 크게 헛기침하다가 레이시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쭈뼛거리면서 나오는 미네르바를 보고 대체 뭘 하면 미네르바가 왜 저렇게 됐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아샤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꼬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웃고 있는 미스트.
미스트가 웃고 있을수록 미네르바의 얼굴은 점점 사색으로 물들었고, 레이시는 그런 두 사람의 얼굴에 어색하게 웃다가 미네르바를 안아주었다.
“죄송해요……. 많이 힘들었죠?”
“우으으으…….”
앓는 소리를 하면서 레이시의 품에 파고드는 미네르바.
레이시는 평소와 다르게 힘이 하나도 없는 미네르바의 모습에 어색하게 웃다가 엘라와 미스트를 바라봤고, 두 사람은 드디어 이성을 되찾았는지 헛기침하면서 시선을 피했다.
“반성하고 있어.”
“…….”
“크흠!”
“또 싸우면 스승님에게 또 갈 거예요.”
“치, 치사해!”
“치사하고 뭐고 그렇게 자기가 저를 더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 싫은걸요.”
“그래도…….”
“흥.”
자신의 말에도 레이시가 고개를 돌리고 미네르바를 끌어안자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엘라.
엘라는 자기가 얼마나 레이시를 좋아하는지 말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자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잘 알고 있으니 그렇게 유치하게 다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이 좋았던 사람이 저 때문에 싸우는 거, 보고 있기 힘들다고요.”
“딱히 싸운 건 아닌데…….”
“그렇죠, 싸운 건 아니죠……. 그래도 그러다가 기분이 상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 말아주세요. 그런 거 안 해도 두 사람이 저 좋아하는 거 잘 알고 있으니까요.”
엘라의 말에 부끄러운 듯 쭈뼛거리면서 말하는 레이시.
레이시가 미네르바의 날개로 자신의 얼굴을 살짝 가리자 엘라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다가 아샤를 원망하는 눈으로 노려봤다.
아샤만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침대로 끌고 가는 건데…….
하지만 아무리 원망하더라도 레이시는 자신과 미스트의 기 싸움에 질려서 도망쳤었고, 이미 아샤와 몸을 섞고 왔다.
레이시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에, 그리고 스스로 정한 규칙마저 어길 생각은 없었기에 엘라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고, 아샤는 엘라가 자신을 노려보다 뭔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셔츠의 단추를 하나 풀어봤다.
그러자 나타나는 약간 붉은 멍.
엘라는 아샤의 목덜미에 남은 키스 마크를 보더니 아샤를 째려봤고, 아샤는 그런 엘라의 모습에 웃음을 참다가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핫! 풉, 푸하하핫! 아핫! 아하하핫!”
웃음을 참지 못하겠는지 소파의 등받이에 팔을 걸고는 한참을 웃는 아샤.
아샤는 엘라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고는 레이시의 어깨에 팔을 둘렀고, 미네르바는 아샤의 행동에 레이시를 꽉 끌어안았다.
‘앗’하는 사이에 두 사람 사이에 껴안기게 된 레이시.
레이시는 두 사람의 포옹에 당황했지만, 이내 금방 진정하면서미네르바의 등을 토닥이면서 아까부터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엘라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엘라는 레이시가 하는 걸 막을 생각이 없다는 듯 웃다가 레이시가 미네르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시무룩하게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고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렇게 안 안아주면서…….”
“……아, 아하하하.”
애도 아니고 이런 거로도 질투하는 건가요…….
레이시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그런 말을 실제로 해버리면 엘라가 질투를 그대로 드러날 거 같아서 그냥 고개를 돌렸고, 엘라는 레이시의 행동에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렸다.
잘 쳐다보고 있다가 시선을 피해버리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잖아…….
그래도 이런 걸 그대로 말해봐야 좋을 건 없겠지.
안 그래도 처음 질투라는 걸 하면서 부끄러운 짓을 해버렸던 엘라는, 이제는 자신이 레이시의 마음을 읽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주도권을 쥐는 건 자신.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그래왔고, 또 자신의 능력으로 그렇게 되게 만들었기에 엘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자존심을 지켰다.
그리고 때맞춰서 야식을 들고 오는 미스트.
미스트는 엘라의 얼굴이 보기 드물게 심술맞은 얼굴이 되어있자 금방 상황을 파악하고 엘라의 잔에 약간은 뜨거운 차를 내려주었다.
“힘드네요.”
“…….”
뭔가 이것저것 생략되었지만, 단번에 이해가 되는 미스트의 말.
엘라는 미스트의 말에 미스트를 잠시 흘겨보다가, 이내 자기도 퍽 웃긴지 작게 웃으면서 차를 홀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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