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일상, 데이트, 일상1
* * *
“엑……?”
자신의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에 당황하며 눈을 비비는 레이시.
레이시는 아무래도 졸려서 나오는 눈물인 것 같다며 어색하게 웃으며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눈물을 닦자 다시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그런 눈물에 당황하며 엘라를 쳐다봤다.
화살을 맞았을 때처럼 아프지도 않고, 엘라가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고 억지로 자신을 떼어놓으려고 했을 때처럼 슬프지도 않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계속해서 어색하게 웃다가 다급하게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 그러니까……, 소, 속옷도 샀는데 그거 불편하더라고요. 아하, 아, 보여주려고……, 입었는데.”
“…….”
“엉망, 아, 아하하…….”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면 이어갈수록 레이시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레이시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는데 울음이 멈추지 않는다니…….
감정이 주체가 안 된다.
그런 생각에 레이시는 천천히 목이 조여지는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런 공포는 레이시의 울음을 더욱 키우기 시작했다.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숨을 억지로 참았다가 숨이 막힐 때쯤 토해내는 울음.
그렇게 억지로 울음을 참아내려고 하자 한계를 맞이했는지 레이시는 결국 펑펑 울며 눈을 비비기 시작했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를 조용히 안아주었다.
위로해주고 싶지만, 섣불리 괜찮다거나 자신은 신경을 안 쓴다는 말도 못하는 엘라.
엘라는 이때만큼 자신의 몸이 망가졌다는 것이 싫었던 적이 없다고 생각하다 레이시의 손을 아래로 내리고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눈을 닦아줬다.
“손으로 닦으면 아프잖아.”
기껏 한다는 말이 이런 거라니.
진심으로 남을 위로하는 방법 정도는 배우는 게 좋았을 텐데.
엘라는 멍청한 말이라고 생각하다가 다시금 레이시를 안고 말없이 등을 토닥여주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레이시의 등을 계속해서 토닥여주는 엘라.
다행히 그런 노력만으로 충분했는지 레이시의 울음은 점점 줄어들었고 엘라는 레이시의 울음이 잦아들자 다행이라며 레이시를 천천히 눕히기 시작했다.
“우선…… 잘까? 옆에 있어줄 테니까.”
“흐끅…….”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침대에 눕는 레이시.
레이시는 엘라의 손을 잡고 한참을 엘라를 보다가 엘라가 말 없이 계속 손을 잡아주자 천천히 잠들었다.
그러자 엘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미스트에게 읽을만한 책을 부탁했고 레이시의 침대에 앉아 계속해서 미스트가 가져다 준 책을 읽었다.
물론 책의 내용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마음을 정리하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읽는 책일 뿐이었으니까.
한 번쯤은 읽은 책 같았지만, 그것도 상관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조용히 책을 덮고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이내 미스트가 구해준 다른 책을 펼쳤다.
월경주기와 그 증상에 관한 것들이 적혀있고 또한개개인의 특성은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적은 책.
엘라는 책을 조금 읽다가 신경질적으로 한숨을 내쉬며 책을 마법으로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지워버린 다음 레이시의 옆자리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부드럽게 흐트러지는 레이시의 머리카락.
엘라는 레이시가 자다가 깨지 않도록 머리카락을 몸에서 떼어낸 다음 부어오른 눈가를 조심스럽게 만졌다.
어째 레이시와 만날 때마다 레이시를 울리는 거 같다.
이번에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지만, 그런 현상이 두 번이나 겹쳐서 일어나자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레이시를 떼어놓는다거나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지만…….
뭔가 자신이 잘못한 걸까?
엘라는 그런 생각에 다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마법도, 돈도, 권력도 이런 일에는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구나.
그렇게 생각하던 엘라는 긴장이 풀려 졸음이 몰려오자 하품을 하면서 피식 웃었다.
하긴 인간이란 죽을 듯이 슬퍼도 밥은 먹고 싶고 잠은 자고 싶은 녀석들이었지.
그렇게 생각한 엘라는 침대에 앉아 레이시의 손을 잡고 그대로 쪽잠을 자기 시작했다.
가벼운 낮잠을 생각하고 잤지만, 그동안의 피로가 몰려온 건지 그대로 뻗어서 땅거미가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자버린 엘라.
엘라는 문을 여는 소리에 한쪽 눈을 떴고 미스트가 램프를 들고 오자 하품을 늘어지게 하면서 레이시를 봤다.
“아마 저녁은 안 먹을 거 같네. 먹어도 조금만 먹을 거니까 샌드위치나 카나페 같은 걸로 준비해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불, 좀 더 두꺼운 걸로 가져와줘. 조금 얇네.”
“네.”
레이시가 자다가 더워서 옷을 벗고 버둥거렸다길래 준비한 이불.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안 어울리는 이불에 미스트는 새 이불을 꺼내서 레이시를 깨워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잠시 망설이는 엘라.
곤히 자는 사람을 깨워도 괜찮은 걸까?
거기에다가 그 사람이 꽤 아픈 상태일지도 모르는데…….
엘라는 손가락을 잠시 꼼지락거리며 망설이다 이내 이대로 가다 몸살이 걸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 레이시의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으으응…….”
“레이시, 잠시 괜찮을까?”
“네?”
엘라의 목소리에 하품하면서 일어나는 레이시.
레이시는 자리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한 손이 땀에 젖어있자 엘라가 약속해도 계속해서 손을 잡아주고 있었단 걸 깨닫고 얼굴을 붉히며 손을 뺐다.
“아, 아하하……. 저, 화장실 좀 가볼게요!”
“응? 아, 그래.”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 사이에 시트와 이불을 갈았고 엘라는 아샤가 가르쳐준 대로 움직였다.
화장실 앞 탁자에 생리대를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침대로 돌아와 앉는 엘라.
아샤가 엘라에게 알려준 건 괜히 호들갑 떨지 말고 밥 정도만 굶기지 말고 억지로라도 먹이고 약을 먹이라는 것, 그리고 뭔가 시간이 오래 걸려도 조급하게 굴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
엘라는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싶었지만, 자신보다 경험이 많은 아샤의 말대로 하기로 했고 레이시가 화장실에서 10분 넘게 씨름하고 있어도 책을 읽으며 얌전히 기다렸다.
그렇게 책을 1/4쯤 읽자 쭈뼛거리면서 화장실에서 나오는 레이시.
레이시는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어색한지 쭈뼛쭈뼛 걷다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엘라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준비하신 생리대…….”
“응? 안 맞아? 아샤의 말대로 산 건데……. 다른 사이즈도 사올까?”
역시 레이시는 대형이 아니라 소형을 사야 했던 걸까?
하혈 양에 따라서 사이즈를 정하는 걸 전혀 모르는 엘라는 레이시의 말에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반응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 속옷에 붙이는 게 힘들어서 몇 개 버려버렸어요……. 죄송해요.”
“응? 아, 그런 건 신경 쓰지마. 어차피 남는 게 돈이거든.”
사치를 안 즐긴다거나 저금을 꼬박꼬박 하는 건 아니지만, 생필품을 못 살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다.
왕족이니까.
엘라가 그런 식으로 말하자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라고 대꾸하며 엘라의 옆에 앉았다.
“손, 계속 잡아주신 거예요?”
“한 달이나 밀렸으니까 한동안은 계속 잡으려고.”
“아하하…….”
엘라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조심스럽게 손을 내미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손을 보다가 지금은 다른 게 더 좋다며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췄다.
“손은 나중에 잘 때.”
“으읏…….”
“저녁 먹으러 가자.”
“……손은 나중에 잘 때 잡는다면서요?”
“생각해보니 지금 잡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서.”
킥킥 웃으면서 레이시를 놀리듯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다 엘라의 손가락을 매만지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여전히 옷 안의 이물감에 적응이 안 되는지 쭈뼛쭈뼛 걷는 레이시.
신경 안 쓴다면 신경을 안 쓸 수 있겠지만, 은근히 거슬리는 게 오히려 더 신경 쓰이는 감각.
레이시는 그런 감각에 한숨을 내쉬다가 의자에 앉았고 미스트는 레이시가 앉자 엘라의 말대로 바꾼 메뉴를 식탁에 올려두었다.
“으응?”
“내일 점심에 먹게요.”
“……아, 으응, 죄송해요.”
“괜찮아요.”
그 메뉴를 보고 자기 때문에 이렇게 메뉴가 변했다는 걸 깨닫는 레이시.
레이시는 한참을 어색하게 웃다가 미스트에게 사과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사과에 마음 쓸 거 없다며 레이시를 보며 웃었다.
미스트는 레이시가 신경 쓰지 않게 자기가 엄청 놀랐다는 걸 말하며 일반식과 환자식의 중간쯤 되는 거로 메뉴를 바꿨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꽤 효과를 봤는지 레이시는 아까보다는 한결 편해진 사과를 건네며 자리에 앉아 카나페를 입에 넣었다.
꽤 달달한 맛이 나는 카나페.
어떤 것은 새콤했고 또 어떤 건 고소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갑자기 바꾼 메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밸런스도, 궁합도 잘 맞는 카나페.
레이시는 자신의 입에서 퍼지는 향기에 헤실헤실 웃으면서 미스트를 보며 대단하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칭찬에 미소를 짓다가 카나페를 먹기 시작했다.
“아, 맞아. 한 3달 정도는 휴가 하기로 했어. 공문 내려올 거니까 받아줘.”
“알겠습니다. 공주님.”
“에에,3달이나요? 무리하는 거 아니죠……? 엘라 엄청 바쁘다면서요.”
“무리는 무슨, 10년 넘게 왕가를 위해 일하면서 나만을 위한 휴가를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3개월 정도 내리 쉬는 것 정도는 괜찮아. 누가 뭐라고 해도 무시해버리면 그만이고.”
“……10년이나 안 쉬고 일했어요?”
“응, 휴가가 있긴 했는데 쉬려고 하는 휴가라기보다는 왕가의 사람을 대신해 귀족과 이야기하려고 보내는 휴가 같은 거였어. 다과회, 무도회, 수렵회……. 뭐 그런 것들 하려고. 그러니까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휴가를 보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아버지에게때 쓰듯이 말하긴 했지만, 귀족들이 뭐라고 말해도 들어줄 거야.”
“에…….”
“좋지? 3개월 간 붙어 있을 거야. 하고 싶은 거 목록으로 만들어뒀으니까 각오해.”
“아, 아하하하…….”
수첩을 흔들면서 각오하라고 말하는 엘라.
레이시는 수첩에 빼곡하게 적힌 버킷리스트를 보다가 어색하게 웃으며 엘라를 바라봤고 엘라는 몸 상태가 괜찮으면 내일부터 할 거라며 으름장을 놨다.
“내일은 정원에 가자.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꾸민 정원이 있는데 나는 별로 안 갔거든. 내일 가면 한 3년 만에 가는 거려나? 같이 가자. 피크닉이라는 거 의외로 동경하고 있었거든.”
“안 해봤어요?”
“하자는 사람들은 있었는데, 아까 말했듯이 거의 다 귀족들이고 비즈니스의 목적을 가지고 만난 사람들이라 이렇게 편하게 놀러 가는 건 없었어.”
“그렇구나…….”
“그러니까 잘 부탁해.”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의 입가를 닦아주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손짓에 자신의 입가를 가리다 많이 묻었었냐고 물어봤고 엘라는 레이시의 질문에 킥킥 웃으면서 손수건을 보여줬다.
다행히 빵가루가 조금 묻었을 뿐, 양념 같은 건 보이지 않는 손수건.
레이시는 손수건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앨라에게 손수건을 돌려줬고 엘라는 아직 대답을 듣지 못한 것 같다며 손수건을 받지 않았다.
엘라의 말에 고개를 가볍게 갸웃거리는 레이시.
뭘 대답을 안 했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레이시는 미스트가 옆에서 입을 뻥긋거리며 피크닉이라고 말하자 작게 소리를 내다가 쭈뼛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잘 부탁해요.”
“응, 잘 부탁해.”
레이시의 대답에 손수건을 받아 호주머니에 넣는 엘라.
원하는 대답을 들은 엘라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고 레이시는 엘라의 웃음에 똑같이 웃다가 뒤늦게 몰려오는 피로에 하품을 늘어지게 하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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