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이세계라는 실감3
* * *
“으으응…….”
“왜 그래?”
“조금 실망이라서요. 평범하잖아요.”
“아하하! 하긴, 전의 도시가 조금 개성이 넘치긴 했지.”
새 도시에 도착한 레이시 일행.
레이시는 미네르바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이는 도시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척 평범해 보이는 도시.
이번에도 판타지스러움을 바랐던 레이시는 조금은 아쉽다는 듯 도시에 들어갔고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킥킥 웃으면서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마중 나오는 병사들.
레이시는 들어가자마자 병사들이 마중 나오자 흠칫 떨면서 자신이 뭔가 잘못했냐며 엘라를 바라봤다.
하지만 엘라는 익숙하다는 듯 말에서 내려 병사들에게 다가갔고 병사들은 고개를 꾸벅 숙인다음 엘라 일행을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머테리아 후작님께서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 공주님을 모시라 명을 내리셨습니다!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메이드들의 방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 후작에게 나와 점심을 같이 할 기회를 하사하지. 내가 실망하지 않도록 준비해.”
“넷!”
병사들의 정체를 알고 안심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자신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어색하게 웃었고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웃음에 똑같이 미소를 지어주었다.
“레이시는 산적 토벌에 따라오실 건가요?”
“네? 아, 그…… 그게…….”
“무리라면 안 따라 오셔도 되요. 이번 일은 힘드실 거니까요. 기습 당할 수도 있고…… 어쩌면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거든요.”
“…….”
아무렇지 않게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미스트.
시비가 붙어서 죽이네 마네 하는 건 몇 번인가 들어봤지만, 그런 악에 받친 말보다 더욱 무섭게 말하는 미스트의 목소리에 레이시는 마른 침을 삼켰다.
미스트의 말은 과언이나 그런 게 아니겠지.
어쩌면 자신을 배려해서 모두 죽일 건데 죽일지도 모른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영지에 남겠다고 말했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그러세요. 미네르바와 규칙을 정해도 좋고요.”
“규칙이요?”
“으음~ 예로 들어서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무조건 도망친다!’ 같은 규칙이요. 레이시가 실력을 쌓고 여러 동물을 테이밍한다면 전략 같은 것도 짤 수 있겠네요.”
“아아…….”
“그럼 도시에서 그 부분을 공부해주세요.”
“알겠습니다아~.”
미스트의 말에 확실히 그런 부분도 필요하겠다고 생각하는 레이시.
레이시는 미스트에게 그렇게 하겠다며 고개를 꾸벅 숙였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대답에 쿡쿡 웃다가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엘라가 자기 혼자만 내버려둔다며 투덜거렸고 레이시는 그런 엘라의 말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에서 내려왔다.
“으으, 정말이지. 알았어요.”
이제는 자동으로 엘라의 옆에 붙어서 걷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교육이 잘 된 거 같다며 만족스럽게 웃다가 병사들이 자신을 쳐다보자 어깨를 으쓱이며 레이시의 볼에 입을 맞췄다.
마음 같아서는 키스하고 싶지만, 사람들 앞에서라면 부끄러워할 거고…… 자랑하려면 딱 이 정도가 적당하겠지.
그렇게 엘라는 레이시가 어떤 존재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줬고 경비병들은 엘라의 행동에 조심스럽게 엘라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뭐 한 거예요?”
“뽀뽀?”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요. 왜 사람들이 저렇게 긴장해요?”
“일국의 공주님이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과시하듯 애정행각을 벌이는 사람이 평범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네가 야차라서 쳐다보는 것도 있고.”
“…….”
엘라의 말에 방금 그 뽀뽀가 필요한 일이었다는 걸 깨닫는 레이시.
하지만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것이었기에 레이시는 엘라에게 그런 걸 할 거면 신호를 주고 해달라고 부탁했다.
“생각해볼게.”
“‘생각해볼게.’라니…….”
“그렇지만 레이시는 갑자기 뽀뽀해주면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운데.”
“귀여운데~가 아니라고요.”
“흐응? 왜? 키스가 좋아?”
“그런 게 아니잖아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그런 꽁냥거리는 거 같은 건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해달라고요.”
차라리 대놓고 유혹하는 거라면 드라마를 보는 감각으로 무시하면 된다지만…….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다 엘라가 히죽 웃자 아무것도 아니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엘라는 킥킥 웃으면서 레이시와 함께 귀족의 저택에 들어갔다.
다른 여관에 갔을 때와 다르지 않게, 아니, 어쩌면 더한 모습으로 엘라를 맞이하는 사람들.
병사들이 중무장 한 채 저택의 입구까지 일렬로 쭉 늘어져있고 저택 안으로는 사용인들이 늘어져있는 모습.
레이시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미스트의 손을 잡아당겼다.
“으, 으음……. 저기 미스트.”
“네?”
“원래 이런 건가요? 조금 이상한 거 같아요.”
“뭐가요?”
“…….”
레이시의 말에 미스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사람들이 바짝 긴장한 채 예의를 갖추고 맞이하는 게 이상하다고 말하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그동안 여관에서 봤었던 반응과는 약간은 다르다.
눈을 가늘게 뜨고 손가락으로 잘 쓰지도 못하는 채찍을 만지작거리는 모습.
그 모습에 미스트는 잠시 엘라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한 다음 레이시와 함께 자리를 빠져나왔고 이내 정원을 둘러보며 뭐가 이상한 건지 물어봤다.
“아, 그……, 말로는 잘 못 말하겠는데. 그냥 좀……, 이상해요.”
자기가 말하고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지 뺨을 긁적이는 레이시.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봤다.
딱히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지만, 자신이 느낀 것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은 눈동자.
레이시의 눈동자에서 레이시의 감정을 읽은 미스트는 잠시 고민하다가 스킬을 확인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
“스킬을요? 왜요?”
“스킬의 레벨이 올라가면 기능이 향상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까 해서요.”
“아. 그, 그러려나……. 그런데 무슨 스킬이 올랐을까요?”
“테이밍이나 연정의 야차, 밤의 끝까지가 가능성 높겠죠?”
“……그러네요. 그거밖에 안 썼네요.”
채찍질 같은 걸 어디에다 할까?
연습은 하고 있지만, 그건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 삭제되는 걸 막기 위해서 할 뿐이었고.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미스트의 지시에 따라 스킬을 확인했고 이내 연정의 야차 옆에 숫자가 붙은 걸 확인했다.
“아, 연정의 야차가 레벨이 올랐네요.”
“흐음, 새로 추가된 기능은 뭔가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닥쳐오는 위험을 빨리 깨닫게 된다.’라네요.”
이젠 스킬다운 스킬이 됐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였지만, 뭔가 스킬의 발동 조건을 읽은 레이시는 얼굴을 가리고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대체 왜 저딴 조건이 붙는 거야…….
레이시는 대체 제대로 된 스킬이 없는 것 같은 자신의 스킬에 한숨을 내쉬며 미스트를 바라봤다.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는 미스트.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미안해진 레이시는 그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냐며 미스트를 바라봤다.
“저, 그, 그래도 착각일 수도 있으니까요? 스킬의 레벨이 오른 건 전혀 몰랐고, 그리고 무기를 봐서 무서워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네요. 일단 돌아갈까요?”
“네.”
레이시의 말에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 미스트.
레이시는 그런 미스트의 웃음에 움찔 떨다가 미스트와 함께 돌아갔다.
그러자 사용인들은 사용인들끼리는 밥을 따로 먹어야 한다며 레이시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레이시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에? 미, 미스트는요?”
“미스트님은 공적으로도 전속 메이드라 괜찮지만, 레이시님은……. 죄송합니다.”
“아, 으응……, 그런 거면 어쩔 수 없죠. 미네르바도 같이 먹어도 괜찮을까요?”
“네.”
혼자 따로 떨어져야 한다는 말에 당황하다가 이유를 듣고 나서는 레이시는 뺨을 긁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역시 이런 부분은 영 어색하네…….
공적으로도 전속 메이드라니 무슨 뜻일까?
레이시는 자리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요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요리를 먹었다.
요리솜씨 자체는 미스트보다 떨어지지만, 따뜻하고 푹신푹신한 요리들이라 그런지 맛있다.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이상하게 눈꺼풀이 무겁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대로 테이블 위로 고꾸라졌다.
그러자 당황하는 미네르바.
“주인?”
“피로가 쌓인 모양이군요. 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
피로로 자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갑자기……?
미네르바가 곤히 자고 있는 레이시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며 당황하는 것과 다르게 사용인들은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마치 레이시가 잘 거라고 예상한 듯 움직이는 사용인들.
미네르바는 그런 사용인들의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뜨다가 레이시의 몸에 손을 데려는 사용인들을 날갯짓으로 떨어트린 다음 레이시를 자신의 날개로 감싸 안았다.
“내 주인이다.”
“……알겠습니다.”
사용인들은 미네르바의 행동에 혀를 차다가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차피 방해되는 건 엘라와 미스트지, 처음 보는 야차와 하피는 아무런 장애물도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한 사용인들은 레이시와 미네르바를 한 방에 가둔 다음 후작에게 보고했고, 후작은 기사들과 함께 떠나는 엘라와 미스트를 바라봤다.
“왕가에서 지원해주는 게 맞겠지?”
“네. 여기…….”
두 사람이 저택에서 나가자 이야기를 이어가는 후작.
사용인 중 한 명은 후작의 말에 앞으로 나오면서 자신이 모시는 주인의 편지를 건네주었고 후작은 그 편지를 읽고 음험한 웃음을 지었다.
후작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은 이번에 국왕의 계승권에서 멀어진 폐위된 왕자의 편지.
그가 폐위된 이유는 엘라 때문이었기에 그는 엘라에게 복수하려고 했었고, 왕자는 만약에 후작이 그걸 도와준다면 엘라와의 결혼을 약속했었다.
왕가와의 결혼, 그것도 흑마법사로서의 재능과 그 미모로 이름 높은 엘라를 자신의 아래에 깔아둘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머테리아 후작은 나이에 맞지 않게 아랫도리를 크게 세우기 시작했다.
“후후, 처음에 이상한 야차와 하피를 데리고 왔을 땐 놀랐지만, 일이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다르지…….”
약으로 재워뒀으니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는 못할 거고, 집 안에서 싸운다면 하피 한 마리 정도야 기사들이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병사들의 보고에 따르면 엘라가 레이시를 아끼는 것 같으니, 만약의 사태 땐 레이시를 방패로 삼아 엘라를 협박하자.
그렇게 생각한 후작은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
“왕자님께 전해라! 내 이번 일은 꼭 성공시킬 테니 보수는 잊지 말라고!”
“알겠습니다.”
이번 일로 단번에 엘라가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새로 약점도 생겼고 엘라 따위야 어떻게 되든 알 바가 아니었기에 사용인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물러났다.
그러자 후작은 꺼릴 게 사라졌다는 듯 더더욱 음흉한 미소를 흘리기 시작했다.
이제 앞으로 엘라는 내 것이다.
그 아름다운 몸을, 이제 조금만 있으면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후작은 나이에 맞지 않게 자신의 아랫도리를 빳빳하게 세웠고 색욕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후작의 머리에 스친 것은 레이시의 외모.
야차임에도 불구하고 적의나 살의보다는 신비함이 가득했었던 외모.
맑고 깊은 눈동자도, 짙은 녹음과도 같은 머리카락도, 보면 볼수록 매력을 느끼게 하는 외모도…….
“…….”
어차피 엘라를 협박할 도구로 쓸 녀석이다.
약도 잔뜩 먹였고 하피는 제압할 수 있을 테니 미리 조금 즐긴다고 해서 문제가 되진 않겠지.
“크흐흐…….”
그렇게 생각한 후작은 병사들을 데리고 레이시와 미네르바가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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