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얀데레 그녀의 공대여신-78화 (78/96)

〈 78화 〉 설레는 일들이 내게 일어나고 있어 (1)

* * *

"아름 아가씨, 죄송합니다. 제가 안내해드렸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오랜만이네요."

"네, 저도 최근에 제주 쪽에 파견 가있었다보니..."

금방 옷매무새를 정리하신 중년 남성분께서는 아름이와 대화를 나누며 우리를 자리로 안내해 주셨다.

"아, 이쪽은 저희 언니에요. 앞으로도 한번씩 데리고 올게요. 언니, 이쪽은 저희 H 호텔 F&B 지배인이셔요."

"안녕하십니까."

"아,안녕하세요..."

이런곳은 처음인데다가 너무 깍듯하게 각잡힌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미리 말씀해주신 대로 프라이빗 룸, 시그니쳐 코스로 두 분 맞으실까요?"

"네. 아, 코스로 해주시되 일단은 단품이랑 주류 리스트도 주시겠어요? 언니는 처음이라서."

"네 곧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의자를 빼주시면서 아름이 요청까지 확인하신 지배인님은 금방 메뉴판을 갖다주신 뒤 룸 문을 살짝 닫고 나가셨다.

"와..."

"오늘따라 많이 놀라시네요."

"아니, 그치만, 이런 곳 처음인걸... 저번에 새 백화점 명품관 갔을때도 솔직히 좀 놀랐다고... 그럴 수도 있지..."

"푸흐. 미안해요 선배. 놀리려고 그런건 아니고 그냥 귀여워서..."

아름이는 몸을 살짝 일으켜 내 오른쪽 볼을 살며시 쥐었다.

"어떻게 이렇게 행동 하나하나가 귀여우실까요 우리 선배는..."

손을 놓은 뒤에도 턱을 괸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아름이 때문에 또 얼굴이 화끈거린다.

"밖에서 그, 귀,귀엽다는 말 좀 하지마..."

"그치만 사실인걸요? 또 룸이라서 우리 둘밖에 없잖아요."

"아니... 그래도... 부끄럽단 말이야..."

요즘 확실히 마음도 여성스럽게 변한건지...

예전에는 여친이 생기면 애정표현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아름이가 저러면 너무 부끄럽다.

사실 밖에서라는 단서를 붙인 것도 핑계에 가깝고 자꾸 좋다고 해주는 아름이가 좋으면서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가만히 못있겠다.

"언니가 와인 되게 좋아하셔서 이번에 주류 리스트 한번 싹 바꾸셨대요. 또 젊은 애들이 다이닝이나 고급 음식점도 요즘 많이 찾으니까 설명 쓰여진 버전도 같이 두셨다고."

내가 빨갛게 익어가니까 아름이 나름의 배려인지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려주었다.

슬쩍 건넨 주류 리스트를 확인해보는데...

...

음... 숫자는 년도일테고...

화이트는 하얀거 레드는 빨간거...?

피노 누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밑에 산미며 탄닌감, 바디감 같은걸 설명해놓았는데도 그런 표현 자체를 제대로 이해 못하니 무슨 맛일지 모르겠다.

와인을 먹어본 경험이 다합쳐서 한자리 수이기도 하고...

리스트가 꽤 두꺼웠지만 슥슥 넘기다보니 벌써 몇장 안남았다.

가격대가 점점 올라가다가 다시 다른 종류의 술인 것 같다.

Champagne 이랑 Sparkling...

저게 샴페인인가 본데 샴페인이랑 스파클링이 같은거 아닌가...?

그래도 제일 뒷장에서 들어본 이름의 와인이 나왔다.

"아름아 나 이거 알아!"

으쓱하며 자랑하듯 리스트를 아름이에게 보여준다.

보여주고 보니 이 두꺼운 리스트에서 아는 이름이 하나 나온건 좀 무식해보이려나 싶기도 하지만...

"오, 어떤거요?"

"이거 돔 페리뇽! 힙합 가사에서 많이 봤어..."

"아하... 이거 드셔보실래요?"

"아... 그럴려는 건 아니었는데..."

아름이가 기특하다는 듯 웃고 있는 사이에 리스트를 다시 슬쩍 본다.

Dom Perignon Brut 2008

450,000

45만원...

9000원짜리 교내 근로를 하루 10시간 해야 9만원인데,

그걸 월화수목금 내내 해야지 식사가 아니라 술 한병을 살 수 있다니...

아름이한테는 내가 삼다수 사먹는 정도의 금액이겠지만, 내가 먹고 싶다고 하기에는 금액이 너무 크다...

그래도 엄청 궁금하기는 한데...

얼마나 맛있으면 FLEX 하는 내용에서 나오는 술은 다 보틀 째로 돔페리뇽일까...

고민하는 내 얼굴에서 먹어보고 싶긴 하다는게 티가 났는지 마침 식전 빵을 갖다주신 분께 아름이가 와인을 주문했다.

"쏨님, 선배가 돔 페리뇽 먹어보고 싶다고 하셔서요."

"네, 글라스로 준비해드리면 될까요."

"네, 아 아니다 그냥 보틀로 주세요."

"네 곧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아름이가 주문하는 동안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에 애꿎은 나이프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미안..."

"네? 갑자기요? 선배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아니... 내가 괜히 먹고 싶은 티를 내서... 내 돈도 아닌데..."

"네...?"

아름이는 정말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진짜로 당황한 것 같은데...

"음... 으... 어..."

아름이 답지 않게 말을 하려다 말면서 자꾸 고민하는 모습이다.

"선배, 제가 잘 이해를 한 건지 모르겠는데, 언니 때문에 40만원, 아 아니지 45만원이었어요 그거? 아무튼, 그 돈 쓴 것 때문에 미안해하시는 거에요?"

"응..."

"아 그렇구나... 근데 제가 왜 놀랐는지는 아셔요?"

"너무 푼돈에 미안해해서...?"

"그것도 그건데... 선배 여기 식대가 얼마인지는 아셔요?"

"어... 호텔이니까 한사람에 15만원...?"

"제가 선배한테 먹이는건데 그럴 리가 있나요. 1인 식대가 그 술 한병만큼은 나올텐데 거기에 캐비아며 페어링이며 꾹꾹 눌러담아서 예약해뒀어요."

"아..."

"선배 평소에 입는 옷은 또 어떻고요. 평범한 직장인 10년 벌어도 선배 지금 갖고 있는 옷만큼 못 벌걸요? 제가 좀 채워둔 것도 있지만..."

"......"

"또 또 미안한 표정! 핵심이 그게 아니잖아요. 평소에 받는 만큼 하나하나에 너무 의미 두지 마시라고 이야기하는 건데. 제가 선배한테 해주고 싶어서 하는거니까 미안해 말고 앞으로는 고맙다고만 하셔요. 저번에도 비슷한 얘기 한 것 같은데..."

"으응..."

이런거에 좀 무뎌질 필요도 있는걸까.

내가 놀랄 때마다 아름이도 피곤할거란건 저번부터 인식하지만, 본능적으로 아직 괴리가 있는걸 어떡하겠는가.

아름이 말을 들어보니 당황스러울 만도 하다.

생각해보면 저번에 받은 시계만 해도 세단 가격이라던데 갑자기 이런 거에 놀라면 좀 이상하긴 하네.

후...

진정하고 고개를 끄덕이니 아름이도 만족한 것 같다.

"이제 그런 걱정 마시고 맛있게 드셔요."

"응. 자꾸 오버해서 미안..."

"스읍...!"

"아, 항상 고마워...?"

"그렇죠."

...

...

"너무 배불러..."

"저도요..."

분명 새내기때 프락터가 파인 다이닝 다녀온 썰 풀기로는 양이 안차서 별로라고 그랬었는데...

양이 줄긴 했는데 그 영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너무 배부르다.

'아름이가 단골이니까 서비스...?'

아 또 없어보이게 너무 동네 분식점 마인드로 생각해버린건가.

아무튼 움직이기 힘들어서 뒤에 디저트는 스킵해야겠다.

이 뒤에 생일파티도 있는데 이대로는 기어서, 아니 굴러서 가야할 지경이니.

"아름아 디저트는 패스하자..."

"네?! 안돼요! 디저트를 패스하면... 아.. 아무튼 안돼요!"

아름이가 달달한걸 저렇게 좋아했던가.

둘다 취기가 좀 올라서 그런지 당황하며 안된다고 우기는 아름이는 무척 귀여워보였다.

"그치만 너무 배부른데... 남기면 아까우니까 아름이 너꺼만 할까 그럼?"

"아니, 으... 아! 테이블 매너에서 디저트만 패스하면 비매너래요. 코스를 짜뒀으니 전부 맛을 보는게 예의. 아시겠죠?"

"응...? 그런게 있어...?"

잘모르는 내가 봐도 좀 억지스러운 것 같은데...

진짜 저런 매너가 있다고...?

좀 더 따지고 싶어도 내가 잘 모르니 더 따질 수가 없었다.

듣고 보면 조금 그럴싸 한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치면 남길걸 알면서도 시키는게 더 비매너 아닌가...?

"있어요! 선배는 그냥 조용히 앉아서 디저트나 기다리셔요!"

"어 응..."

룸이라서 소리가 안새어나가서 다행이다.

아름이가 밖에서 저정도로 뭐라고 하는걸 처음봤다.

괜히 더 혼나기 싫어서 다시 창밖을 보니 장관이다.

'확실히 뷰가 좋긴 하네...'

밥먹으면서 슬쩍슬쩍 봤을때도 느꼈지만 서울의 밤이 만들어내는 야경은 꽤나 그럴싸했다.

가까이서 보면 퇴근시간에 바쁘게 운전하는 사람들, 야근하는 직장인들의 고생이겠지만 여기서는 아름다운 불빛 하나인걸.

누가 그랬더라,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어찌보면 딱 맞는 말 같다.

"실례하겠습니다. 디저트 올려드리겠습니다."

"네."

창밖을 보며 멍때리고 있으니 금방 디저트가 들어왔다.

쵸콜릿이 돔 모양으로 둥글게 올라와있고 주변에는 여러 장식과 크림이 있었다.

반짝이는건... 금가루인가...?

"오... 고급스러워보인다..."

"이번에 새로 추가된 메뉴에요. 옆에 따뜻한 쵸콜릿을 부어먹으면 돼요."

"아하..."

달걀, 아니지 사이즈로는 타조알 같은 모양의 디저트.

통으로 이 사이즈가 다 초콜릿이면 너무 부담스럽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속이 비어있는 것 같다.

취기가 올라 조금 흐릿흐릿하지만 그래도 주변에 안흘리고 뜨거운 초콜릿을 제대로 부었다.

"우와..."

미리 금이 가있었던건지 6등분이 되며 쪼개지는 껍질.

안에는 작은 브라우니? 초코파이 같은게 있었다.

이것도 반짝이는 걸 보니 금가루를 뿌렸나본데, 금을 뿌리면 맛이 달라지나?

아름이가 추천할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어 손으로 브라우니를 들어 한입에 넣는다.

"이게 그렇게 반응들이 좋대요. 밖에 놓은 초콜릿이랑 안에 브라우니를 썰어서 헉...!"

"?"

디저트를 설명하던 아름이는 나를 보더니 얼굴빛이 변하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으악! 뭐하는 거에요, 빨리 뱉어요..!"

"음...? 끅..!"

놀라면서 자리에 일어난 아름이 때문에 한입에 꿀떡 넘기려던 브라우니가 목에 걸렸다.

"윽... 끄윽...!"

"선배! 선배...!"

...

...

다행히 아름이가 뒤에서 하임리히법을 해줘서 겨우 다시 뱉어냈다.

"후우..."

"선배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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