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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데레 그녀의 공대여신-10화 (10/96)

〈 10화 〉 0부 2일차 (5) ­ 교수님 설득 시뮬레이션

* * *

툴툴툴툴...

철문을 열고 의료용 카트와 함께 남성이 흰색 방을 가로질러오고있다.

침실 앞에서 아름이가 그에게 뭔가를 이야기하는데 뚜렷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내 쪽을 한번 돌아보더니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나가는 아름이

카트를 침대 옆까지 밀고 들어온 그와 나만이 남았다.

어제 아름이에게 총 형태의 주사기를 건넨 사람과 같은 사람인 것 같은데 왠지 매우 낯익은 얼굴이다.

'어...? 뉴스나 이슈 뉴튜브에서 자주 봤던 사람 같은데...'

"저... 혹시 이종국 교수님이신가요...?"

어제는 경황이 없어 못알아봤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맞는 것 같아 여쭤본다.

"예, 지금은 교수는 아닙니다만..."

의외다.

중증외상? 응급의학?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셨을텐데.

몇개월 전에 H그룹 계열 병원으로 소속을 옮기신다는 기사를 봤던 것 같다.

그때도 커뮤니티들에서 '정부가 지원을 안해줘서 그런거다.' , ' 참의사인 척 하다가 결국은 유명해지니 돈 보고 옮긴거다' 하고 말이 많았었는데, 직접 뵐 줄은 그것도 어딘지 모를 건물 침실에서 뵙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아니 왜 이런 분이 여기서 이러고 계신거지? 아름이 파워가 그정도 된다는 뜻인가?'

의문인 부분이 많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예전부터 H그룹 관계자는 아니셨을 것이기 때문에 살짝 떠보면 조금은 도와주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혹시 교수님도 H그룹에 약점을 잡히신건가요...? 아니면 정말 돈 때문에 이쪽에서 일하시게 된건가요?"

조금 도발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내 말에 기분이 나빠서 해코지를 당할 상황이나 인물이 아니라 생각되니 대놓고 물어봤다.

"이정훈씨께 제가 꼭 말씀드려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협박당하지는 않았습니다. 돈 때문은 더더욱 아닙니다."

명확한 답은 아니지만 적어도 H그룹에 엄청 충성도가 높지는 않은 듯한 답이다.

'어떻게 해야 이 분이 나를 도와주시게 할 수 있을까...'

"제게 뭔가를 기대하고 계신거라면 제가 그 기대에 부응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저도 나름의 사정이 있기에 여기서 정훈씨를 데리고 나가거나 하는 요구를 하셔도 해드릴 수 있는게 없을겁니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안다는 듯 말씀하시는 교수님.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손을 소독해주신다.

"아앗... 아야..."

"많이 따끔하실 겁니다. 평소에 이물질이 안들어가는 부분까지 얇은 금속이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에 소독액도 넣기 어려워서.

그래도 장치도 확실히 소독된 상태로 사용하셨을 테니 감염 걱정은 안하셔도 될겁니다."

'무슨 짓을 당했는지 다 아시는 건가? 그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한데 그걸 보고만 계셨다고?'

소독 후에는 붕대를 감은 후 팔에도 석고 틀을 대어 붕대로 고정시켜주신다.

석고 틀이 내 팔에 딱 들어맞는 것을 보면 고문당하기 전 정신을 잃었을 때 어디가 부러진 건지 X레이도 찍고 틀도 만들어둔 것 같다.

이 상황만 보면 완전히 저 쪽에 협조하고 있는 것 같은데... 조금 파고들 여지가 있어보이기도 한다.

"교수님, 얼마나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갑자기 여기에 잡혀와서 어제 종일 묶여있다가 오늘 교수님도 알고 계신 그런 짓들을 당했습니다.

제가 교수님을 직접 뵙는 건 처음이지만 그런 불의나 폭력을 보고만 계실 분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재벌 밑에서 고문 뒷처리나 하시려고 의사가 되신건 아니실 것 아닙니까."

감정에 호소하며 조금 찔러도 본다.

"정훈씨 말씀이 맞습니다.

다만 제가 이곳에서 하고 있는 일 중 정훈씨의 간단한 치료는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고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다른 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의사, 연구진들 중 한명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저도 제 사정이 있기에 지금 일도 정훈씨가 보시기에는 불의겠지만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힘드시겠지만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내게 동조하시지도 않지만 칼같이 선을 긋지도 않는 듯한, 자꾸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게 하는 답이다.

'프로젝트...? H그룹에서 뭔가를 준비하는 건가? 아니면 아름이가 개인적으로?

근데 다 대답을 어느정도는 해주시는데 조금만 더 비벼볼까?'

깊게 숨을 마셨다가 내쉬고 신중히 단어들을 골라 나를 살릴 수 있는 밧줄이 되도록 엮는다.

"교수님, 제가 알기로 교수님은 맡았던 환자가 죽더라도 '저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같은 말을 입에 담지 않는 분으로 압니다.

환자가 죽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 자명해도 끝까지 헛수고일지 모르는 방법을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시도하시는 분으로 압니다.

제가 비록 의대생은 아니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하여 고려할 것이며 인류 봉사에 일생을 바칠 것을 맹세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

교수님 표정이 조금 굳으셨다. 너무 갑작스러웠나 싶지만 여기서 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기에 남은 말을 마저 이어간다.

"최근에 어떤 일을 겪으신건지 제가 알 수는 없기에 인간 한사람으로의 교수님께서 저를 방관하실 수는 있지만 의사이신 교수님께서는 그러시지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저를 당장 빼내주지는 못하시더라도 제가 발버둥을 칠 수 있도록 작은 도움 정도는 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여기서 겪을 미래가 뻔히 보이는데 진실에서 눈돌리지 않는 참어른, 참의사이실 것으로 믿습니다."

후...

'아... 해버렸다. 이게 역린을 건드린 것이 아니길, 오히려 나에 대한 동정으로 연결되어 조금이나마 도와주시길... 제발...'

"후... 뼈를 때리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 군요 정훈씨.

치료는 어느정도 끝났으니 말씀을 좀 나누다 가도 되겠습니까?"

'오 씨바 좀 된거 같다...'

"네 교수님."

"언론들을 통해 저에 대해 많이 아시는 것 같지만 사실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눈 앞의 하루하루에 집중하다보니 어느새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지원도 늘고 제 발언의 영향력도 커져서 뭐라도 된 것처럼 대단해보이는 말을 한 적도 몇번 있지만 제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 아님을 압니다.

특히 아버지로서의 저란 사람은 참 못난 아버지였습니다.

정훈씨가 20대 초반이신걸로 아는데 딱 비슷한 나이대의 딸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제가 그 존경받는 의사 노릇을 한다고 병원 응급실에서 말그대로 살다시피 있으면서 입학식, 졸업식, 참관수업 무엇 하나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0분 이상 길게 대화를 나눠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네요.

그 딸아이가 몇달 전에 남미쪽에 여행을 갔다가 지금 행방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현지 범죄 조직이랑 관련되었을 확률이 높아 우리나라 외교부나 현지 경찰들이 적극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H그룹쪽에서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기업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주실 수 있냐고 말입니다.

계약사항 때문에 더 자세히는 말씀 못드리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못난 사람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직접 못도와드려 죄송하지만 아주 조금 정도는 정훈씨에게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교수님께서는 낮고 무거운 톤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해외에서 납치된 딸을 H그룹에서 되찾아와주는 조건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신 것 같다.

많이 힘든 상황이실텐데도 무례하고 공격적인 내 말에 맞춰주신 것은

어쩌면 내가 그 딸이랑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좆같이 말해버려서 죄송하네... 근데 도와주신다는 것은...?'

멍하니 보고있자 마저 말씀해주신다.

"어제까지는 묶여계시거나 강한 약물로 의식이 없는 상태로 지내셨을텐데

아까 아름님께서 말씀하시기로는 오늘, 내일은 구속이나 근이완제등은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오늘은 통증이 심해서 주무시기 불편하실테니 약을 다 드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제가 알기론 내일 점심 이후부터 경호팀이 서울에 일이 있어서 이 곳에 없는 것으로 압니다.

혹시, 정말 혹시라도 나가실 수 있다면 내일 저녁에 주사 대신 알약 형태로 약을 받으시고 아름님이 안보실때 게워내시는 쪽으로 하시는 게 가장 확률이 높을 겁니다."

엄청난 정보를 들었다.

일단 어제처럼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밤을 보내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 같다.

'?? 근데 여기서 나가려면 내일 오후가 적기라는데, 여기가 어디지?'

"그, 교수님, 근데 여기가 어디죠? 학교가 대전인데 대전 어느 건물인가요? 지하? 지상?"

"아... 이곳에 오신 이후로 저 옆의 방에만 계셨으니 모르시겠군요,

잠깐만 계시면 차트 뒤에 구조를 그려드리겠습니다..."

...

교수님 설명으로는 원래 학교 캠퍼스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

근처에 H그룹 병원이 있었고 이 건물 자체는 약간 안쪽 골목의 아무 업체도 들어오지 않은 공실이었다고 한다.

창문을 한번도 본 적이 없어 지하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실제로 맞았다.

큰 흰 방 좌 우로 탕이 있는 샤워실과 이 침실이 있고 구조상 긴 벽 뒤에도 어떤 공간이 있어야 하지만 직접 보지는 못하셨다는데...

'물고문이랑 전기고문을 당한 타일 방이 저 벽 뒤에 있었던건가...'

철문을 통해 나가면 복도 끝에 길이 나눠지는데 오른쪽은 벽이, 왼쪽에는 위층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가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엘리베이터로 나가면 1층 입구 바로 옆이라 1층까지만 가면 거의 탈출이라고 봐도 된다고 하셨다.

내가 알고 있는 동네가 맞으면 두 세 블록 거리에 지구대가 있겠지.

엘리베이터랑 철문이 아름이가 없을 때는 잠겨있다고 하는데 교수님께서 간호사랑 같이 입실했을 때를 위해 받으셨다는 여분키를 주셨다.

어떻게 나가야 할 지 조금은 감이 잡힌다.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 조금 불안하기도 하지만 사실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신 교수님께서 여분 키를 주신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건물 구조야 몇번 오가셨으니 알고 계셨던 것일테고,

오늘부터 정신을 잃는 약물이 빠진 것은 아까 아름이가 울면서 감동했기 때문에 교수님께 변경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기회를 위해 며칠씩 더 참을 수도 있었지만 마침 그 김실장이랑 다른 떡대가 내일 없다고 하니 내일이 적기임이 분명하다.

오히려 고문당한 다음 날이라는 것은 내게 최악의 조건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니 위화감이 없어진다.

"감사합니다. 진짜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께 연신 감사의 말을 전한다.

"아닙니다. 정훈씨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아뇨. 진짜 큰 일 해주셨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툴툴툴툴...

"... 죄송합니다. 정훈씨..."

약까지 챙겨주신 교수님께서 카트랑 같이 돌아가시고

나는 받은 여분의 카드키를 옷 속에 숨기며 잠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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