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0부 2일차 (2) 고문체험록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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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번 화는 야해서가 아니라 일부 독자분들께 ‘잔인하거나 불쾌하게’ 느껴지실 수 있는 장면이 있어 19금을 따로 달았습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연출임을 알지만서도 작 중 진행상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포함시켰으니 이런 요소를 싫어하시는 독자분들께는 미리 사과드립니다.
주인공이 몇가지 고문을 겪습니다.
(신체절단, 식인, 인육, 성고문, 배설 관련한 묘사는 없습니다.)
“후…”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았지만 조금 진정하고 다시 주변을 살핀다. 아름이와 나 사이에 있는 식탁에 요리가 몇가지 올려져 있다.
양식 풍의 생선, 파스타, 고기랑 문어...? 문어로 보인다.
평소같았으면 ‘와 안먹어봐도 존맛탱’ 같은 소리를 하며 집어먹었겠지만, 살면서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맞고 나니 뭔갈 먹고 싶은 욕구가 뚝 떨어진다. 오히려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 때문에 또 속이 좋지않다.
사랑을 위해서 악역이 되는 것도 기꺼이 감수하시겠다는 내 맞은 편의 한아름씨께서는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음식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배고프시죠...? 뭐부터 드실래요? 선배를 풀어드리기에는 아직 좀 그러니까 제가 먹여드릴게요.
말씀만 하셔요. 파스타부터 드실래요...? 헤헤...♥”
싱긋 웃으며 포크로 돌돌 말은 파스타를 내 입 앞에 갖다대는 아름이.
지금 뭔갈 먹기 싫은 것도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반항으로 생각하여 입을 다른 쪽으로 빼서 피한다.
‘좆같은년... 어차피 안죽일거고 내가 말을 잘듣든 안듣든 또 쳐맞을텐데 니년 혼자 즐거운 꼴은 못보지.
또 때린다고 협박해봐라, 내가 눈 하나 깜빡하나.
아니면 아예 죽는다고 협박을 해야하나?
저년 이상할정도로 나한테 집착하는 거 보면 나중에 나로 뭘 하고싶은 거 같은데..
이렇게 공을 들여놓고 말 좀 안듣는다고 죽여서 새로 잡아오진 않을 거 아니야...’
중간에 정신을 잃긴 했지만 2시간을 맞고 와서 그런지 괜한 오기가 생긴다.
내가 그녀 말을 잘 들어도 스트레스를 주겠다는 말은 반대로 생각해보면 반항을 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거란 얘기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연인놀이에 맞춰줄 필요가 없다.
“왜 그러셔요...? 배가 많이 고프실텐데... 흐음...”
예상치 못한 반응인지 조금 당황한듯한 아름이.
약간은 이긴 것 같아 조금 보상받는 기분이다.
“아! 혹시 여기에 약같은거 탔을까봐 그래요?
에이, 선배. 제가 선배 몸에 주사를 꽂았으면 꽂았지, 뭐하러 그렇게 번거롭게 하겠어요.”
“아무것도 안넣었어요 이거.”
하며 내게 권하던 파스타를 먹어보인다. 그러고도 내가 계속 노려보고 있으니 아름이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포크를 내려놓고 일어나 내 옆쪽으로 다가온다.
내 옆에 선 아름이는 내 앞 커트러리 중 피쉬 나이프를 들어 내 목에 갖다댄다.
날이 서있지 않아 아프지는 않았지만 차가운 금속에 닿아 움찔한다.
“선배.”
내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자 다시 부르는 그녀
“선배. 제 눈 봐요.”
조금 전과는 다른 사람이라 생각될 정도로 차가운 아름이의 목소리에 바로 그녀를 올려다본다.
“선배가 뭘 착각하시나 본데, 저는 선배가 어떤 모습이던 상관 없어요. 나중에 같이 하고 싶은 일이 많긴 하지만, 특히 지금의 선배는 더더욱. 그저 선배이기만 하면 좋아하고 사랑할 자신이 있다고요.”
“그냥 팔다리 잘라놓고 눕혀놓으면 될 것을 이렇게 대화할 때마다 손 따로, 발 따로 구속하고.
또 아까같은 경우에는 팔 위로 묶어서 고정하고...
그런 번거로운 수고를 굳이 들이는 이유는,
선배가 조금은 덜 무서워하고 저한테 다가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는데…
선배는 그걸 왜 모르시는지 하... 하하......”
겁주려는 말투가 아니라 그저 사실을 읊어주듯 덤덤한 아름이.
손에 든 나이프로 내 오른쪽 어깨를 슥슥 긋는다.
마찬가지로 옷이 긁히거나 하지는 않지만 섬뜩하다.
“선배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릴 때마다 오늘의 실수를 반성하실 수 있도록 이쯤을 잘라드리면 순해지시려나...?”
안죽인다고, 사랑한다고 그러길래 때리긴 때릴지언정 사지 멀쩡한 상태의 나를 원하는 줄 알았다. 그게 일반적인 상식 아닌가?
정말 말그대로 ‘살아만 있는 이정훈씨’라도 괜찮다며, 가볍게 오른팔부터 잘라줄까 물어보는 아름이는 전혀 농담조가 아니었다.
“내가 잘못..”
실수했다는 것을 느낀 내가 바로 사과하려 했는데 아름이가 말을 끊는다.
“아뇨, 선배. 겁에 질려서 하는 입에 발린 사과는 굳이 안해주셔도 돼요.”
싸늘하다. 여전히 누가 목에 칼을 갖다대고 있는 것만 같다.
“오후 일정은 다른걸로 진행하고, 제가 지금 많이 서운해서 점심은 음식 한 점만 딱 권할건데,
또 피하시고 무시하실거면 그러셔도 돼요. 근데 그러면 진짜~ 많이 서운할 것 같네요..”
아름이는 손가락 한마디 정도 크기의 문어 조각을 이로 살짝 물고는 내 입을 향해 천천히 얼굴을 포갠다..
‘피하면 뒤진다. 피하면 뒤진다. 피하면 뒤진다...!’
눈을 감은 채 고개를 피하지 않고 입을 살짝 열고 있으니 내 입 속으로 조각과 아름이의 혀가 들어왔다.
놀라서 살짝 혀를 뒤로 빼자 놓치지 않겠다는 듯 아름이의 혀가 내 혀를 훑으며 더 들어온다.
뻣뻣하게 얼어있는 내 입술을 아름이의 부드러운 입술이 완전히 덮고 아름이의 혀는 내 입 안 구석구석을 휘젓다 내 혀를 한번 톡 치고는 나간다.
“후우.. 하..”
꿀꺽
예상치 못한 진한 키스가 끝나고 나는 맛을 느낄 새도 없이 한두번 씹고 넘겨버렸다.
아름이가 입술을 떼자 엷은 실이 늘어졌다가 끊어진다.
그녀는 만족스러웠다는 표정으로 나를 품에 안아 자기 가슴에 파묻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고 착하다. 우리 선배. 선배 첫키스였죠? 저도 처음이었는데. 히히..
선배를 처음 본 이후로 꼭 서로의 첫키스는 서로가 되었으면 했다구요...♥”
그녀가 다시 자리에 앉아 손짓을 하니 검은 정장의 남성들이 식탁을 치운다. 양손으로 턱을 괸채 나를 계속 바라보는 그녀.
“첫 키스는 레몬 맛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저희 첫키스는 버터리한 문어맛이었네요.
헤에.. 완전 유니크해서 선배랑 저, 딱 둘만 아는 경험이라 생각하니 특별게 느껴져요…”
톡.
아름이가 웃으며 내 이마에 딱콩을 가볍게 한대 놓는다.
“그래도 오늘 많이 서운하게 한 건 안잊을거에요. 좋은 건 좋은 거고 벌은 벌이니까.
오후에는 고생 좀 하셔야 돼요. 선배는 나쁜 남자니까...”
자리가 어느정도 정리되자 아름이도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다.
“으아암~ 선배, 저도 일 좀 하다가 저녁 전에 돌아올게요. 그럼, 화이팅!”
아무 생각 없이 문밖을 나가는 아름이를 보고있던 내 머리에 갑자기 검은 비닐이 씌워진다.
쉭! 부스럭 부스럭!
“흑, 흐읍! 헙.”
숨을 들이쉬려 할때마다 입과 코를 비닐이 막아 답답하다. 숨을 천천히 아껴서 쉬려해도 처음 씌워질 때 안에 있던 공기 자체가 적어 점점 답답해질 뿐이었다.
금방 머리가 지끈거리다 눈 앞이 뿌옇게 변한다.
“끄윽...”
블랙아웃이 온 정훈의 머리에 씌워졌던 비닐을 벗기는 김실장. 주머니의 콘솔을 조작하자 정훈의 뒤편에 있는 벽이 내려가고 벽 뒤의 공간이 드러난다.
온통 흰색이었던 원래의 큰 방과는 달리 회색빛 벽과 검은색 바닥 모두 화장실 타일같은 내장재로 이루어져있다.
왼쪽 끝에는 샤워기, 수도꼭지 여러개와 물이 채워진 낮은 높이의 욕조등이 있고, 오른쪽에는 창살과 기계장치, 여러 도구들이 올라가있는 선반이 보인다.
마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세트장 같은 벽 뒤의 공간.
김실장은 의식을 잃은 정훈에게 안대를 씌우고 욕조 앞의 높은 금속제 의자에 묶은 뒤 물을 끼얹는다.
철썩!
“으으! 헤엑! 윽!”
‘오늘 술 한방울 안마시고 필름 여러번 끊겨보네 씨부럴... 뭐야 이거, 왜 발이 안닿아. 어디에 묶인거지 또.
괜히 개겨가지고 좆되기나 하고 넌 정말 빡대가리다 진짜. 아이고 정훈아…’
사태파악이 채 되지 않은 정훈을 본 김실장이 의자 옆 버튼을 누르니 의자 기둥이 접히며 정훈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90도보다 조금 더 꺾인 의자는 팔걸이 아래부분이 욕조에 막혀 정훈의 명치까지만 물속에 들어간 상태로 고정된다.
철퍽! 보글. 보글. 철퍽! 철퍽!
온몸의 관절을 꺾으며 빠져나가보려 하지만 이미 의자 자체가 정훈의 머리가 물 속에 들어가도록 설계되어 있어 코와 입은 수면에 스치지조차 못한다.
김실장은 손목시계를 보며 적절한 시간이 되자 다시 버튼을 눌러 의자를 원래대로 돌려준다.
“푸하... 거기 김실장님이신가요? 아름이야? 누가 계신거죠? 저 이거는 진짜 뒤질거 같은데..? 허억…
우리 다른 걸로 하는 건 어때요? 제가 열심히 스트레스 받을게요. 진짜 이거 몇번 더하면 죽을 거 같아서 그래요. 저기요?”
간절하게 호소하는 정훈을 무시하고 몇초 뒤 다시 버튼을 눌러 정훈을 물에 처박는다.
김실장은 정훈이 물 속에 있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고 줄이며 딱 죽지 않을 한계까지 정훈을 괴롭힌다.
한시간 후.
‘으욱.. 차라리 정신을 잃었으면 좋겠다. 죽어버리고 싶다. 다시 아름이랑 밥먹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안개겼을텐데...
때리기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열심히 소리질러드렸을텐데…’
물고문 싸이클을 1시간째 돌아 녹초가 되어있는 정훈의 구속을 풀어주는 김실장.
정훈의 손발이 오랜만에 자유를 찾았지만 저항할 힘도, 의지도 남지 않아보인다.
짐을 들듯 한쪽 어깨에 정훈을 들어 걸친 김실장은 방 반대편 끝 창살 안 의자에 정훈을 묶는다.
그리고 큰 양동이에 물을 받고 흰색 가루를 넣는다.
철썩!
“으에에…”
입을 벌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정훈의 머리부터 양동이 속 액체가 부어진다.
“으. 으으... 으으..!”
몸을 부르르 떤다.
‘물..? 왜 또...?’
뺨과 입술에 묻은 액체가 입에 조금 닿으니 그냥 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혀에 스치는 짠맛. 소금물인듯하다. 왜 소금물을 뿌리는걸까 고민하다가 머릿속에 불안한 예감이 스친다.
‘영화에서 물고문 다음에 전기고문하면 소금 뿌리는 장면이 나오던데…’
철컥
발목과 손목에 차가운 금속이 닿는다. 평소의 구속구와는 다른, 넓은 면이 피부에 닿는 느낌이다. 눈이 가려져 있어 주변을 알 수 없으니 움직일 수 있는 손발만 꼼지락꼼지락 움직여 본다.
발에 닿은 바닥이 매끈하다. 물이 묻어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원래의 흰 방이 콘크리트나 석회 미장을 한 것 같은 표면이었다면 지금은 화장실 타일 같은 느낌.
아름이가 말한 대로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계획에 없던 고문을 하고있나보다.
예감이 확신이 되어가려는 그때.
틱!
방금 뭔가 버튼 올라가는...
“윽?! ?!”
틱.
“헉.. 헉.... 헉...!”
처음 겪는 고통이었다. 아니, 고통은 신경이 느끼는 건데 그 신경 자체가 불타는 느낌의, 처음 느껴보는 공포, 그래 공포 그 자체였다.
스위치 올라가는 소린가 생각했던 순간부터 다시 뭔가 내려가는 틱 소리가 나기 까지의 몇 초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몸이 붕 뜨면서 뜨겁게 달군 철사가 손목을 뚫고 들어가 장기랑 허벅지 안의 조직을 쑤시고 발목을 관통해서 나오는 느낌이었다.
온몸의 핏줄과 신경에 끓는 쇳물을 부은 것 같은 고통을 겪자 머리가 부서질 듯 아프다.
깨진 물병처럼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른다.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공포에 오열하거나 소리치지도 못하고 숨을 헐떡이며 눈물만 흘린다.
틱!
윽...
틱.
헉...
틱!
...
틱.
...
틱!
...
틱.
스위치 소리가 몇번 더 들린 이후로는 정훈이 움찔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스위치를 올릴 때 마다 방안을 채운 증기와 살이 타는 냄새만 늘어날 뿐이었다.
김실장은 더러워진 정훈을 의자에서 분리하고 물을 몇번 뿌린 후 흰색 방 왼쪽의 샤워실에서 씻긴다.
마침 정훈이 갈아입을 옷을 가져온 김팀장에게 정훈을 넘겨주고, 고문실 바닥에 남아있는 정훈의 흔적을 치운다.
...
“선배..”
“선배...!”
정신을 잃은 나를 부르는 아름이의 목소리. 뭔가 익숙한 느낌이다. 아름이의 목소리에 깨어나 다시 주변을 보니 평소처럼 흰 방 한가운데에 묶여있다.
평소와 달리 팔걸이에 손바닥이 아래로 가게 손가락 하나하나를 펼친 상태로 구속되어있는 것이 신경쓰이긴 하지만, 더는 그 고문실로 추정되는 공간에서 떠올리기도 끔찍한 일들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걱정보다는 안심이 먼저 된다.
‘아... 죽진 않았구나 나...’
‘감사합니다. 아름이가 지금 눈 앞에 있어서 감사합니다.
그 어딘지조차 모를 타일 바닥 같은 곳에서 눈가린채로 깨어난 게 아니라 감사합니다.
몸에 긴 철사를 박아놓고 중간중간을 니퍼로 자르는 것 같은 그 고통을 더 겪지 않아도 되어 감사합니다...
하느님, 부처님 정말 감사합니다. 흑 흑...’
조명이 내 머리 위 하나만 켜져있어서 방 외곽 부분은 상당히 어둡긴 하지만 원래의 그 방이 확실하다. 눈 앞에 아름이도 있고.
어제 오늘 중 아름이가 이렇게 반가운 적이 없다.
“아름아..”
“네~ 선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리가 어제 처음 만났을 때, 오늘 점심에 만났을때와 같이 나를 보고 미소짓는 아름이.
“으흑... 사랑해. 아름아사랑해, 아름아고마워.
아름아사랑해아름아사랑해아름아사랑해...”
고장난 장난감처럼 울먹이며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정훈의 입을 검지로 닫는 그녀.
계속 미소지은 채로 정훈의 말에 답해준다.
“저도요~♥ 선배가 저를 사랑하는 것보다 제가 선배를 사랑하는게 훨씬~ 훠얼~씬 클걸요?
이 마음을 보여드릴 수도 없고 참...♥ 울지마요. 선배. 마음 아파지게...”
아름이가 웃고 있으니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욕구 단계론의 가장 하위 욕구가 괜히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가 아닐 것이다.
존중이고 자아실현이고 그런 지랄을 하기 전에 우선 살아있어야 가능하단 것을 몸으로 배워야 아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선배가 먼저 사랑한다고 해주신게 처음이라 기분좋긴 한데, 이걸 어쩌죠?
아직 할 일이 하나 남아있어서, 선배 이거 끝나도 아름이 미워하시면 안돼요...?”
약간 걱정스러운 눈빛의 아름이.
“아냐아냐아냐... 내가 왜 너를 미워해... 아름이가 하고싶은 대로 다 해줘.
나한테 필요하니깐 하는거잖아 그치? 흑.. 우린 서로 사랑하니까.. 맞아, 사랑하니까.. 그치...?”
오늘 새로운 경험을 몇개씩이나 몸에 때려박고 겸손해진 것이 반쯤 있고 사실 내게 선택권이 없는 것을 알기에 울먹이며 그녀에게 말을 맞춰준다.
아름이는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리 사이 책상 위 상자에서 작은 원통모양 장치를 꺼낸다.
윈기둥 끝에 얇은 막대랑 톱니바퀴가 붙어있다.
“뭐지...?”
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원통을 내 오른손 검지에 끼우며 아름이가 입을 연다.
“선배 도박묵시록 봤어요? 거기 나오는 거 따라서 만들어달라고 한건데 헤헤...♥”
‘옛날에 본 만환데 거기 뭐가 나오더라? 카드게임... 친치로... 파칭코... 아... 아!’
주인공이 악역에게 걸려 당하는 고문도구 중에 저렇게 생긴게 있었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오히려 더 답답하다.
“되게 단순한 원리에요 이거. 거기서는 ‘피의 매니큐어’라고 하던데...
지금처럼 원통부분을 선배 손가락에 끼우고, 여기 나와있는 나사를 조금씩 돌리면...”
끼릭 끼릭
나사가 돌아가며 톱니바퀴 부분이 원통 끝에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그 사이에 연결된 얇은 막대가 원통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아..!”
손 끝을 뭔가가 찌른다. 깜짝 놀라 움찔했지만 손을 움직일 수 없으니 계속 따끔한 채로 남아있다.
“이제 닿았나 보네요.
눈치채셨겠지만 톱니바퀴를 돌리면 통 안쪽으로 바늘이 들어가는 도구에요.
바늘이 조준하고 있는 목표는 손톱 바로 아래에 있는 살 부분이고요.
살면서 공기 한번 닿을 일 없는 민감한 부분에 조금씩, 조금씩, 바늘이 파고들어서 선배를 짜릿하게 해주는 도구랍니다?”
아름이는 설명을 마치고 톱니바퀴를 마저 돌린다.
“따끔해요~”
끼릭 끼릭
꾸욱
“으아아!!!!!! 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비틀어 보려 하지만 그런 내 노력에 상관없이 톱니바퀴는 계속 돌아가 바늘이 손톱 아래에 터널을 뚫듯 깊숙이 들어온다.
손톱을 깎다가 안쪽 살을 실수로 찝은 고통을 수백 수천 수만배 농축한듯한 통증.
그리고 한번도 다른 것의 침입을 허용해본 적이 없는 부위에 얇은 금속이 박혀있는 이물감이 온몸의 털을 쭈뼛 세운다.
“거의 다 됐어요..”
끼릭 끼릭
정훈의 비명이 시끄러울 법도 한데 아름은 전혀 표정의 일그러짐 없이 바늘을 손톱이 끝나는 부분까지 박아넣고는 톱니바퀴를 톡톡 친다.
“이거 그렇게 아파요…? 만화적 연출인 줄 알았는데 효과가 상당하나보네요…”
“으흑흑.. 흑...”
말도 제대로 못하고 고개만 끄덕인다.
아름이는 몇초 더 기다리다 통 옆의 버튼을 눌렀다.
틱, 슉!
검지 손톱 끝까지 들어왔던 바늘이 스프링 튕기듯 한번에 빠져나간다.
“흐억...”
씻겨놓은 상태로 깨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정훈은 이미 땀과 눈물로 얼굴이 폐인처럼 되었다.
아름이가 원통에서 손가락을 빼낸다. 손톱을 보니 겉은 멀쩡한데 안쪽은 피가 고이면서 퍼진다.
마치 한지에 붉은 물감을 적신 붓으로 선을 그은 것처럼 되었다.
“미안해. 아름아 미안해. 아름아미안해. 아름아미안해...”
아름이는 여전히 헤실헤실 웃으며 다음 손가락에 장치를 끼운다.
“왜 사과해요, 선배는 아무 잘못한 거 없어요. 누구나처럼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 조금 힘든 과정에 있을 뿐이에요.
우리 벌써 한개 했으니깐 금방 끝내죠!
화이팅!”
끼릭 끼릭
정훈의 비명을 무시한 채 톱니바퀴는 또다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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