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얀데레 그녀의 공대여신-6화 (6/96)

〈 6화 〉 0부 2일차 (1) ­ 제목은 운동으로 하겠습니다. 근데 이제 [요구 없는 고통]을 곁들인.

* * *

“선배 잘 주무셨나요?”

흰 방에 들어온 아름이가 반갑게 인사한다.

오늘도 위아래로 검은색. 블랙화이트가 아름이의 퍼스널 컬러인가보다. 피부가 워낙 하얘서 깔끔한 느낌이 어울린다. 오늘은 수트가 아니라 후드집업과 트레이닝복 바지의 캐주얼한 코디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도 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처음 보는 트레이닝복으로 위아래가 갈아입혀져 있던데 오늘은 운동이라도 시키려나 짐작해본다.

“어, 응. 개운하네... 그, 나 혹시, 묶여서 잔 건 아니지? 허리 아프거나 그런 것도 없고 괜찮아서... 하하...”

어제보다 훨씬 긴장이 풀린 상태로 아름이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아름이가 한 담궈서 태평양 밑바닥에 가라앉혀 놓았느니, 어디 힘줄 썰어서 새우잡이나 하고 있으려니 하는 얘기에 잔뜩 쫄아서 울고불고 말더듬기도 했다.

게다가 멘토때 흑역사까지 읊어주시니 부끄럽고 ‘나 좆됐구나’ 하는 것까지 겹쳐서 영 못보여줄 꼴을 잔뜩 보여줬지만, 아름이 입으로 이게 복수는 아니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제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임이 틀림없다.

‘사실 돈많고 아름이처럼 귀엽게 생긴 애가 나한테 사랑한다는데...

나도 고백받고 사귀면 베스트긴 하지만, 부자가 워낙 부자여야 말이지...

그래도 안죽인다 그랬으니깐 적당히 ‘나도 너가 되게 좋아. 그런데 우리 서로 알아갈 시간을 좀 갖자’ 하면 풀어주지 않을까?

아름이 썰을 들어보면 나간 다음에 내가 비굴해지면 질릴테니 한두달 있으면 나한테 신경 끄겠지... 좋아 완벽한 플랜이다. 아름이 비위만 잘 맞춰주면 금방 멀쩡하게 나가서 내 일상을 되찾을 수 있겠어.’

‘화이팅 이정훈. 할 수 있다 정훈아!’

스스로를 응원하는 사이 아름이가 해맑게 웃으며 입을 연다.

“네 선배 나름 편하게 주무셨어요. 잠든 동안이라 기억은 잘 안나시겠지만요.

그나저나 배는 안고프세요? 필요한 영양은 주사로 채워드리긴 했는데, 그래도 사람이 항상 챙겨먹다가 안먹으면 배고픈건 어쩔 수 없으니까...”

밥을 먹지 않은지 꽤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자 상당한 공복감이 느껴진다.

‘사람이 긴장하면 호르몬 때문에 식욕이랑 허기를 못느낀다던데, 이걸 직접 체험을 다 해보네 쓰벌...’

“어우.. 그러고보니 되게 배고프긴 하네. 아름아 넌 괜찮니?”

자각을 하니깐 배고파서 뒤질 것 같았지만, 스스로가 생각한 최대한의 젠틀한 표정과 말투를 연출하며 아름이에게도 슬쩍 물어보았다.

‘크으~ 방금 괜찮았어. 나 사실 좀 매력적이었던걸지도…? 아름이가 반할정도면 하핫..’

“저도 안먹었어요. 오전 할 일만 마치고 선배랑 같이 먹으려고요.♥”

아름이가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오전 할 일...? 뭐지...?’

내가 묶여있는데 뭔가를 해야 하는 건가 싶어 되묻는다.

“어... 아름아, 내가 뭘 해야 하는 거야...?”

“아뇨, 선배는 그냥 편하게 계시면 돼요. 아, 편하진 않을 수도 있겠네요..”

그녀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며 철문을 똑똑 두드린다

철컥 끼익

툴툴툴툴...

철문이 열리며 어제의 그 검은 정장의 사내 한명이 커다란 금속제 카트를 밀며 들어온다. 서랍형으로 되어있어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디자인은 의료용 카트 2개를 수직으로 붙여놓은 것 같이 생겼다.

제일 위의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낸 남성이 내게 다가온다.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자 그 물건이 내 입에 물려진다.

“아니, 재갈을 왜..! 읍.! 읍읍..!”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명히 복수가 아니라고 했는데. 어제 아름이가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퍽...!

둔탁한 충격이 복부를 때린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놀라 내려다보니 아름이가 야구배트를 내 배를 향해 휘두른 모양이다.

“히히... 홈런왕 아름이! (찡긋)”

자랑하듯 윙크하며 손을 V자로 만드는 아름이.

‘씨발… 미친년인가…’

그녀는 나를 신경도 쓰지 않고 한번 더 배트를 크게 휘두른다.

휙, 퍽!

‘아니 한아름 이 씨발년아…!!! 뭔데? 왜이러는데? 씨발…!’

옆으로 피하거나 왜 이러는 거냐고 이유라도 알자고 말하고 싶지만 팔다리는 묶여있고 입에 물린 재갈 때문에 앓는 소리, 아파서 자연스럽게 토해지는 신음소리를 뱉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퍽! 퍽! 퍽!

복부를 세네대 더 맞자 진짜로 죽을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말한다.

“읍읍..! 윽 읍읍!! 익읍! 으으읍.!!

(아름아 왜이래.! 진짜 뒤질거 같아!, 씨발!! 아름아!!!)”

그러자 배트를 휘두르던 아름이가 멈춰서 나를 바라보더니 뒤의 검은 정장 남성에게 손짓을 한다.

잠시 후 남성들은 의자 두개를 가져와 아름이와 내 뒤에 하나씩 두고 내 수갑과 줄이 연결된 부분을 분리한다. 그리고 두개로 분리된 수갑을 양쪽 팔걸이에 옆으로 밀어서 끼우자 양손이 각각 고정된다.

아름이가 다시 손짓하자 내 입의 재갈을 벗기는 남성.

“아, 아름아. 으윽... 우웨엑..! 윽 욱..”

속이 비어 아무것도 나오지 않지만, 복부를 너무 맞아 속이 매스꺼운 탓에 헛구역질을 하게된다.

재밌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름이.

“선배, 말씀하세요.”

“윽.. 아름아, 왜 이러는 거야... 안때려도 너가 기어라면 기고... 흡..! 닥치라면 닥치고, 너가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다 잘할 수 있는데.. 으윽.! 너가, 원하는게 뭐야… 후.. 하...”

가슴근육이 땡겨 말을 할 때마다 평소보다 몇배나 가쁘게 숨이 차오르는 나는 힘겹게 말을 마친다.

“음~ 제가 원하는 거요..? 그야 물론 선배죠.♥

아 구체적으로는 두가지긴 한데, 지금 선배가 들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헤헤…♥

그리고 선배 오늘도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음...

아름이의 간단한 퀴즈! 계획 살인이랑 강도가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것. 이 두가지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아시나요?”

나를 원하는데 그게 내가 지금 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아름이의 대답. 그 뒤의 질문도 지금 이 상황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후... 어, 시체 지갑이나 귀중품이 없어지나…?”

아름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배를 검지손가락으로 콕 찌르며 말한다. 벌써 멍이 든건지 찌릿하게 아려온다.

“아뇨, 그런거 말고. 피해자 몸에 남는거요. 전부가 그런 건 아니지만, 계획살인 피해자는 사인에 해당하는 상처가 더 깔끔하고 치명적이래요.

강도는 살아있는 채로 돈이나 가게 물건을 뺏고 도망가야되니까 원래는 겁만 주려는 목적으로 칼이나 총을 쓰는건데, 그러다가 실수로 죽인 상처는 애초에 죽이려고 무기를 쓰는 사람들이랑 다를 수 밖에 없다나?”

여전히 이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나를 본 아름이는 손가락으로 내 볼을 쿡 찌르며 초등학교 선생님 같은 톤으로 설명한다.

“자~ 원래는 그냥 마저 하는건데, 선배는 똑똑하시니까 한번에 알아들으실꺼라 생각해서 한번만 설명하는 거에요~

인간이 무언가를 기억하고 빠르게 사고할 수 있는 뇌를 갖게 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정답은 부족한 보유 자원으로 외부 자극에 대처하기 위함이에요. 환경의 수요에 대해 자신을 쥐어짜서 공급을 맞추는 건데 이 과정의 시작은 본인의 상태가 충분하지 못하고 편안하지 않다는 인식이죠.”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본 스트레스, 대충 뭐 그런거였나?

“이걸 다른말로 하면 스트레스고 알고계시다시피 일정 이상의 스트레스가 있어야 뇌의 영역별 연계가 유기적이고 상호보완적인 상태로 있을 수 있다는데...

선배가 최근 일상에 자극이 적었던 건지, 처해진 상황에 너무 잘 적응하신건진 모르겠지만, 제가 원하는 상태로 되기 위해서 필요한 수치보다 전체적으로 너무 안정화된 부분이 많아요...

반복되는 일상에 무뎌져서 반쯤 죽어있는 부분들 말이에요... 이러면 저희 계획보다 많이 부족한데...

그래서 그런 모자란 부분을 오늘 제가 채워드리려고요!

빠르게 요약했는데 대충 이해하셨나요...?”

...앞부분은 분명히 아는 내용이었는데 결론이 내 이해를 너무 멀리 벗어났다.

‘?? 내가 최근에 너무 무난무난하게 살아와서 뇌가 위기상황을 겪은 적이 없으니 그 스트레스를 자기가 채워주겠다는건가? 왜? 이 미친년이 이걸 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다고 이 지랄을 하는거지?

그놈의 얼어죽을 ‘제가 원하는 상태’가 뭐길래 지금보다 더 뇌가 놀라서 빡빡해진 상태를 요구하는데 씨발년아... 죽여버리고 싶네. 돌겠다 하...’

라는 말을 실제로 해버리면 배트가 아니라 회칼이 내 배로 들어올까봐 속으로만 욕과 복수를 생각하고 겉으로는 어색한 웃음을 유지한다.

“그럼 아까 선배 질문에도 답이 되었죠? 제가 시키는 대로 선배가 잘 따르고, 제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선배한테 이러는게 아니에요.

그걸 원했으면 선배를 더 겁주고, 선배 대답 하나하나마다 꼬투리 잡으면서 여기저기 건드렸겠죠...

선배가 이렇게 고통스러워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 가슴아프지만 저도 꾹 참고 열심히 하고 있는거라고요.”

강도니 계획살인이니 하는 이야기가 이걸 위한 설명이었나 보다. 나한테 뒤지기 싫으면 돈내놔 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죽이려고 칼을 쑤시듯, 지금 내가 쳐맞는 거 자체가 플랜이니 내가 따로 뭘 할 필요도, 아름이가 내게 원하는 게 뭔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아마 우리 다른 방법이, 읍! 으읍!!”

아름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다시 검은 정장의 남성들이 내 입에 재갈을 채우고 일으켜 세운다. 온몸을 비틀어 저항하고 벗어나려 하지만 평소에 해본 운동이라곤 키보드 두들기는 손가락 운동과 열심히 음성채팅으로 뱉어낸 입근육 운동밖에 없는 내가 이 덩치들을 뿌리칠 수 있을리 없다.

“저희 밥먹어야 되니까 한 2시간만 열심히 땀흘리고 맛있는 거 먹어요.♥”

‘아 좆됐네...’

­­ 30분 후 ­­

퍽! 흐읍! 퍽! 으읍...... 퍽! 퍽! 퍽! 퍽! 퍽!...

큰 방 안에 아름이의 배트가 내 배를 가격하는 소리와 재갈에 막힌 내 비명. 두가지 소리만 들린다. 초반에는 맞을 때 마다 아프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지만 조금 전 맞은 타수를 세는 것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자 기력이 바싹 말라 작은 소리를 뱉어낼 힘조차 없다.

영화처럼 악질 형사가 자백을 시키는 거면 거짓으로 내가 한 일이라 말해주면 될 일이고, 조폭영화처럼 굴복 안 한 세력의 기강 다지기를 하는거면 바짝 엎드려서 빌면 될 일이다.

하지만 아름이가 내게 원하는 건 없고 내가 아름이에게 받을 것은 고통밖에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게 전혀 없다.

맞을 때 마다 아주 조금씩만 몸을 움찔하며 죽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훈을 본 아름은 슬슬 힘들고 질렸다는 듯 배트를 옆의 남성에게 넘기고 계속하도록 시킨 뒤, 앉아서 물을 마신다.

“후... 평소에 운동을 거의 안해서 그런지 엄청 힘드네요. 나름 대충대충 한건데도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어요 으으...”

그리고는 일어나서 벗어뒀던 집업을 챙긴다.

“선배, 저는 씻고 올테니까 김실장님이랑 마저 하고 계세요...?”

웃으며 손을 흔들고 나가는 아름.

‘저 씨발년... 내가 진짜 기회만 생기면 저년 모가지 비틀어 꺾고 나도 뒤진다. 미친년. 좆같은 년. 싸패년. 한아름... 썅년아 너 진짜 두고봐라…’

아름이 나간 후 타오를 것 같은 눈빛으로 아름이 나간 문을 노려보는 정훈이었다.

퍽! 퍽! 퍽! 퍽! 퍽!...

“...... 선배.”

“......선배!”

“흐익?!”

깜짝 놀라며 깨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다시 의자에 묶여있고 앞에는 식탁 건너편에 어제와 비슷하게 수트를 입고 있는 아름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 김실장이라는 남자가 ‘이제 마지막이다.’ 라 말하고 수갑이랑 줄을 분리했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잠깐 정신을 잃었나보다.

“으윽..!!!”

정신이 드니 배가 너무 아프다, 정확히는 배 뿐만이 아니라 온몸의 관절과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중간부터 등이랑 어깨를 맞았었는데 이 역시 기억이 온전치 못하다.

‘이 좆같은 년, 곱게 뒤지진 못할 거다 악마같은 썅년아...’

자신을 노려보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 아름이.

“선배 제가 많이 미우시죠.? 많이 원망스럽기도 하고요..?

선배가 저를 미워한다니... 제 마음이 다 찢어질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의 사랑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저 한아름, 얼마든지 악역도 맡을 수 있어요...♥”

‘미친년아 악역을 맡는 게 아니라 이미 메인 빌런이야 씨발년아..’

어제 사랑한다고 말해줘서 잠깐 방심하고 헤이해졌었는데, 다시 마음이 잡힌다. 아름이랑 애초에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 공감도 이해도 바라면 안된다고.

최대한 버틴 후 기회가 보이면 도망치는 것이, 혹시 약간의 운이 더 따라준다면 저 년을 죽이고 나가는 것이 내게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다시 가슴에 새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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