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하이드가 한 말은 정말로 예상외였다. 침착하게 화면을 살펴본 나는 물었다.
“강제로 프라우스 신도단에서 일하다가 풀렸다는 건… 설마 정신 지배를 당했다는 뜻입니까?”
“맞아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신 지배에서 풀려나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 사람들이죠.”
“그게 가능할 줄은 몰랐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쉽사리 믿기 어려웠다. 안경을 치켜올린 하이드는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저도 실제로 만나 보진 못했으니 100% 확실하다고는 말 못하긴 해요. 하지만 가능성은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들어 보자면.”
타닥, 키보드를 두드린 하이드가 한 남성의 데이터 창을 크게 띄웠다. 인천에 거주 중인 36세 남성. 등급은 C급이었다.
“프라우스 신도단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정신 지배에 걸려서 강제로 끌려간 능력자의 숫자도 적지 않을 텐데, 그 사람들이 다 통제가 가능할 것 같진 않거든요.”
“그렇다는 건 일부러 정신 지배를 풀어 주고 내보낸 게 아니라…….”
“네. 풀려난 걸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심지어 별 도움도 안 되는 C급이면 뭐… 말 다했죠. 정신 지배에서 풀려난 당사자는 바로 도망쳤을 거고요.”
“지금 이 내용 넘겨주실 수 있습니까?”
“직접 확인하러 가시게요?”
“예.”
잠시 눈동자를 굴리던 하이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확인한 다음에 제 추측이 맞는지 알려 주세요. 저도 궁금하니까.”
“물론입니다.”
***
이주하의 마음에 쏙 든 하이드는 본격적으로 계약하기 위해 로헌 관계자들과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고 나와 김우진, 하태헌은 하이드가 말한 사람들을 만나러 차를 타고 이동했다.
제일 처음 찾아가 볼 사람은 하이드가 언급했던 인천에 거주 중이라는 36세 C급 남성이었다.
이름은 박병석.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에 갑자기 사라졌고, 그 후로 2개월간 연락 두절이 됐다고 한다. 가족 관계는 지방에서 사는 친모 한 명뿐이니 혼자나 다름없었다.
연락 두절됐다는 2개월 동안 정신 지배를 받고 프라우스 신도단에서 활동한 건가? 자세한 건 만나서 물어봐야 알겠지만,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아직 알아내지 못한 프라우스 신도단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태헌의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려서 도착한 남성의 집은 낡은 주택이었다. 하이드가 전해 준 서류에 적힌 주소였다.
“문을 열어 줄지 모르겠네요.”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누군가에게 정신을 조종당하며 2개월간 살았다면 트라우마가 제법 심할 게 틀림없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전 연락 없이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의 입장이니 상대가 반겨 주리란 기대는 하기 어려웠다.
낡은 현관문 옆에 달린 초인종을 두어 번 눌러도 돌아오는 답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하지만 여전히 조용했다.
‘안에서 능력자의 기운은 느껴지는데…….’
누군가 찾아온 것을 아는 데도 집 안에 숨어서 침묵하고 있는 건가?
“계십니까?”
같은 능력자라 집주인도 우리의 기운이 느껴질 테니 계속 기다리면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한참 뒤에 거친 목소리가 안쪽에서 작게 흘러나왔다.
“……누구쇼?”
“박병석 씨 맞으십니까?”
“…….”
이름을 거론하자 다시 조용해졌다. 이렇게 되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시간을 너무 쏟을 수는 없으니 집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결단을 내려야 했다.
“구청에서 나왔습니다. 우편 전달을 위해 잠시만 본인 확인 부탁드립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내뱉자 내 양옆에 서 있던 김우진과 하태헌이 동시에 내게로 고개를 휙 돌렸다.
설마 이런 방법을 쓸 줄은 생각 못 했는지, 김우진은 살짝 당황했고 하태헌은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왜. 뭐. 그럼 어떡하라고. 집주인을 만나서 빠르게 정보를 얻어 내려면 거짓말이라도 써먹어야지. 이런 걸 바로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는 거다. 우리에겐 몇 시간이고 여기 서서 기다릴 여유 따위 없었으니까.
“…그냥 앞에 던져두고 가십쇼.”
“본인 확인이 필요한 우편물이라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인만 해 주시면 됩니다.”
뻔뻔하게 재차 요구하자 인기척이 가까워졌다. 차라리 우편물을 받고 빨리 보내자고 생각한 모양인데, 그게 내가 바라던 바였다.
철컥, 끼익.
굳게 잠겨 있던 현관문이 느릿하게 열렸다. 한 뼘 넓이만큼 열린 문틈 사이로 수염이 지저분하게 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잠시간 당황하더니 이내 안색이 희게 질렸다. 놀란 남자가 문을 닫기 전에 틈 사이로 팔을 끼워 넣어서 강하게 잡아당겼다. 철그렁! 현관 걸쇠가 힘을 버티지 못하고 아예 뜯겨 나가며 문이 벌컥 열렸다.
“으, 으아아…!”
A급 악력으로 문을 강제로 열어서 집 안으로 들어가자 남자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이렇게 무서워하니까 좀 미안하긴 하네.
“안녕하세요, 박병석 씨.”
“뭐, 뭐야? 네놈들은 뭐냐고!”
“당신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 잠깐 찾아왔습니다.”
간략한 설명에 박병석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나, 난 아무것도 몰라! 당장 꺼져, 이 미친놈들아!”
박병석의 외침과 동시에 현관 바로 앞에 있는 주방 수도꼭지에서 물이 팍 터져 나왔다. 물줄기가 마치 뱀처럼 내게 날아오는 것을 발견하고 바람을 이용해 막아 냈다.
“진정하시죠.”
자신의 능력이 통하지 않다고 느낀 박병석의 표정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이미 느껴지는 기운으로 우리가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얼마나 무서우면 공격까지 하나. 평범하지 않은 그 행동이 프라우스 신도단과 엮여 있다는 걸 의미했다.
이쯤에서 박병석의 공포를 조금은 낮춰 줘야 정상적인 대화가 될 듯싶었다. 나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서 말했다.
“뭔가 오해하시는데, 저희는 프라우스 신도단이 아닙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믿…….”
“당연히 믿으셔야죠. 자, 여기 이분을 자세히 봐 보세요.”
나는 뒤에서 팔짱을 낀 채로 구경하고 있는 하태헌의 어깨를 잡아 앞으로 끌고 왔다. 심드렁한 기색으로 서 있던 하태헌이 내 행동에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주저앉아 있는 박병석을 내려봤다.
무심한 시선에 박병석이 침을 꿀꺽 삼키며 엉덩이 걸음으로 우리에게서 한층 더 물러섰다.
“무서워하지 마시고 자알 보세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죠? 엄청나게 잘생겼고. 그렇죠? 뉴스에서 본 적 없습니까?”
홈쇼핑 직원으로 빙의해서 하태헌의 매력을 열심히 어필하자 잠자코 듣던 하태헌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뭐 하는 거지?”
“그거야 당연히… 저희 신원을 보증하고 있는 건데요.”
나와 김우진은 몰라보니까 비교적 더 유명하고 TV에 자주 등장하는 하태헌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내 짐작대로 박병석이 하태헌을 알아봤다.
“서, 설마… 로헌 길드 부마스터?”
“맞습니다!”
역시 하태헌은 아는구나. 기쁜 마음에 활짝 웃어 보이자 하태헌이 어딘가 복잡미묘한 얼굴을 했다.
“저희는 로헌 길드에서 왔습니다. 프라우스 신도단의 흔적을 뒤쫓다가 박병식 씨, 당신이 그들과 연관이 있다는 정보를 전달받아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 직접 온 겁니다.”
“로헌 길드에서… 프라우스 신도단을 왜 쫓고 있는 거요?”
“D45 구역 게이트 폭탄 테러 사건 아시죠? 그때부터 프라우스 신도단에게 유감이 아주 많은 상황이라서요.”
얼마 전에 있었던 미술관 사건은 로헌 길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알고 있을 테니 가장 유명하면서 이해할 수 있을 만한 폭탄 테러 사건을 꺼냈다.
막힘없이 나온 대답에 박병석도 테러 사건을 떠올렸는지 어느 정도 이해한 기색을 보였다.
“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게 된 거요?”
“3개월 전에 갑자기 사라져서 한동안 연락이 끊겼었다고 하더군요. 능력과 직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 그러기란 쉽지 않죠. 의심 가는 분들을 직접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당신 말고도 여러 명 만났고요.”
사실 하이드를 통해서 불법으로 알아낸 개인 정보였지만, 이미 로헌 길드 소속이라고 밝힌 데다 당사자에게 불법을 운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적당히 둘러댔다.
“프라우스 신도단에 대해서 알고 있는 내용만 간단하게 알려 주시면 더 불편하게 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나겠습니다. 저희도 프라우스 신도단을 정말 잡고 싶거든요.”
이어지는 설명을 들은 박병석이 식은땀을 흘리며 갈등하다가 한참 뒤에 겨우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나도 기억하고 있는 건 얼마 없어서 뭐라 말을 해 줄 만한 게…….”
박병석의 얘기를 정리하자면 이랬다.
3개월 전에 가면을 쓴 누군가를 마주치고 나서 자신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타인에게 조종당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개월간 이상한 건물에 갇혀서 온갖 잡일을 했고, 얼마 전에 갑자기 정신 지배가 풀려서 겨우 도망쳤다고 한다. 그 일을 겪은 후로 트라우마에 시달려서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못한다고.
“일도 잘리고… 술을 마시거나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자.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지.”
내 모든 의지를 타인이 강제로 조종하고 억제하는 경험은 평범한 삶을 살던 박병석에게 큰 공포를 안겨 줬다. 앞으로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SS급 정신 지배 능력을 갖고 있는 사마엘이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 새삼 느껴졌다.
“그저 잡일만 하신 건가요? 그 외에 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아주 사소한 거라도 괜찮습니다.”
박병석이 잡일했다던 건물도 지금은 사라졌다고 하니, 붙잡을 만한 건 그의 불안정한 기억밖에 없었다.
“다른 일…….”
질문을 들은 박병식은 창백한 낯으로 머리를 쥐어 싸맸다. 두통이 심해 보였다.
‘이럴 것 같긴 했지.’
이미 미국에서 겪어 본 상황이었다.
닥터에게 납치되어서 강제로 공간을 만들었던 제작자들도 박병석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었다. 리웨이 또한 정신 지배를 당하는 동안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은 데다 드문드문 끊겨 있다고 말했었으니까.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포기하려던 그때였다. 오랜 고민 끝에 박병석이 더듬더듬 말문을 열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있긴 한데.”
“그게 뭡니까?”
“건물 복도를 청소하다가… 건물 관리자들이 떠드는 얘기를 조금 들은 적 있어.”
잠시 머뭇거리던 박병석이 이어 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들어가야 한다…고 하더군.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무슨 수를 쓸지는 나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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