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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생은 원치 않아-335화 (335/394)

335화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내가 이제부터 말하는 거나 알아봐 줘.”

[뭐? 또 뭔데?]

김우진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상대방에게 설명해 줬다. 잠자코 그걸 듣던 상대가 어이없다는 기색으로 물었다.

[넌 저번에도 그러더니, 대체 왜 대형 길드에 들어가서 네가 그런 걸 알아보고 있는 거냐?]

“그걸 네가 알아서 어디다 쓰게?”

[비꼬기는. 순수하게 궁금할 수도 있지.]

“알아볼 수 있어, 없어.”

[있기야 한데… 바로는 힘들어.]

“왜.”

[문제가 좀 생겼거든.]

김우진이 눈가를 불만스럽게 찌푸렸다.

[내가 일할 곳이 사라졌어.]

“뭐?”

[네가 찾아오던 그 장소 말이야. 거기가 폐쇄돼서 나도 쫓겨났어.]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너한테 이런 거짓말을 해서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당연히 진심이지. 일단 급한 대로 내 집에 컴퓨터랑 자료들 다 옮겨 두긴 했는데 연결할 자리도 없고 정리도 안 됐고… 개판이야, 지금.]

“…….”

[그래서 지금은 일 못 해. 간단한 건 찾아봐 줄 수 있어도 그런 문제는 어려워.]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가벼운 목소리와 달리 내용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김우진 또한 이런 상황은 예상 못했는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 또한 아쉬운 건 마찬가지였다. 듣기로 저 사람이 불법 상관없이 정보를 잘 뒤져 주는 것 같은데. 저번에 받았던 서류를 떠올려 보면 정리도 깔끔하게 잘해 줬고.

저 사람이 말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던 나는 일단 김우진에게 말했다.

“만약에 일할 수 있는 장소만 제공된다면 우리가 의뢰한 일도 해 줄 수 있는 건가?”

“아마도 그럴 거야. 근데 방법이 있어?”

[어? 뭐라고?]

“닥쳐. 너한테 한 말 아니야.”

잠시 고민하다가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해야겠지만… 네 친구분이 실력이 있으니까 결과가 나쁠 거 같진 않아.”

“알았어.”

[뭐야? 뭔데? 거기 누구 다른 사람 있어?]

어리둥절해하는 상대방에게 김우진은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네 문제 해결해 볼 테니까 허튼짓하지 말고 얌전히 기다려.”

[엉? 어?]

“끊는다.”

가차 없이 전화를 끊어 버린 김우진이 다시 순한 얼굴로 돌아와 나를 바라봤다.

“이러면 되지? 해결하게 되면 얘한테 바로 연락할게.”

“어, 응… 그래.”

통화할 때와는 차이가 너무 심한 김우진의 모습에 정말 친구가 맞는 건가 싶어졌다. 친구가 아니라 약간 싫어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아무튼 이제 남은 건 내 몫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전화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워낙에 바쁜 사람이라서 바로 받을 거라는 기대는 없었는데, 다행히 오래가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이결.]

“하태헌 씨, 바쁩니까?”

[괜찮으니 말해라.]

“부탁 겸 제안을 한 가지 드리고 싶어서요.”

***

일할 장소가 없어졌으니 새로운 일자리를 소개해 주면 된다. 내 얘기를 전해 들은 하태헌은 일단 길드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레퀴엠이 아닌 로헌에 소개해 준 이유는 로헌에서 일하고 있는 루젤과 루크 남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연구하고 제작하는 모습을 보면 김우진의 친구도 적응하기가 더 쉬울 것 같았다.

김우진과 함께 로헌 길드로 향했다. 홀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수행원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올라가자 그곳에는 하태헌과 이주하가 앉아 있었다.

“어서 와요, 한이결 능력자. 그리고 김우진 능력자.”

오랜만에 만난 이주하가 미소와 함께 인사를 보내왔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듣기로 실력 있는 정보원을 우리 길드에 소개해 준다는데 이 정도는 당연하죠.”

흑단과도 같은 검은 머리카락을 우아하게 쓸어 넘긴 이주하가 이어 말했다.

“참, 그리고 인사가 늦었는데… 태헌이한테 SS급 검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요.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아직 공개하지는 못했지만요.”

“아닙니다. 그 검이 나온 장소는 로헌 길드 소속 게이트였으니 당연히 하태헌 씨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태헌 씨에게 도움도 여러 번 받았고요.”

머쓱하게 웃으며 적당히 대답했다. 그보다 하태헌에게 SS급 검을 넘겨준 건 다른 팀원들이 모르는 일인데, 김우진이 들어 버렸으니 결국 들킨 거나 다름없었다.

음,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고 여기진 않았지만 이렇게 들킬 줄이야. 내 옆에 앉아 있는 김우진의 시선이 조금 차가워진 게 피부로 느껴져 난감해 죽겠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길드에 소개해 줄 정보원은 바로 온다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네. 그쪽도 출발했다고 하니까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이름이 하이드라고 했죠? 본명이 아니라 활동명인 듯한데… 얘기가 잘 끝나서 길드와 정식으로 계약하게 되면 개인 정보를 공개해야 할 거예요. 괜찮나요?”

이주하의 질문에 나 대신 김우진이 차분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본인이 결정할 문제입니다만, 몸 담근 소속을 쉽게 바꾸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번에 폐쇄한 곳에서도 6년 넘게 일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6년 넘게 일했다고? 새로 알게 된 정보는 나도 꽤 의외였다.

‘김우진과 동갑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김우진이 지금 24살이었으니 동갑인 하이드가 6년 넘게 일했다면 미성년자일 때부터 일했다는 소리와 같았다. 만약 그게 맞다면 이번에 폐쇄됐다는 곳 자체가 불법적인 곳일 수도 있다.

이주하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표정이 살짝 복잡해졌다. 하이드가 타이밍 좋게 로헌에 도착한 건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응접실로 안내해 준 수행원과 함께 들어온 하이드를 처음 본 내 감상은 놀라움이었다.

이마를 덮은 손질 안 된 더벅머리, 검은 뿔테 안경, 품이 넉넉한 검은 후드티와 등에 멘 노트북 가방까지. 그야말로 TV에서나 보던 프로그래밍 전문가와 흡사한 모습이라 굉장히 신기했다.

김우진과 통화하면서 보였던 유쾌하고 뻔뻔한 성격은 그대로인지 활짝 웃으며 꾸벅 허리 숙여 인사한 하이드에게선 어색함이나 부끄러움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불려 온 자리라 불편함을 느껴도 이상할 게 없을 텐데, 대단하다.

“어서 오세요, 하이드 씨. 로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런 유명 길드에 초대받아서 영광입니다.”

하이드가 맞은편 의자에 앉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자세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주하는 나를 대신해서 아까 김우진을 통해 의뢰했던 내용에 프라우스 신도단과 관련된 설명을 추가하고, 로헌으로 들어오게 되면 뭐가 좋은지도 알려 줬다.

“아아, 그러니까… 게이트 뒷거래를 하는 놈들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프라우스 신도단을 찾으려고 하는 거네요.”

“결과적으로 따지자면 그렇습니다.”

묘한 얼굴로 이마를 긁적이던 하이드가 내게 시선을 보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명하시지. 그럼 정보를 더 빠르게 찾아볼 수 있을 텐데요.”

“지금 알려 드린 내용도 중요한 건 모두 뺀 겁니다. 관계자가 아닌 사람에게 섣불리 알려 줄 수 없는 내용이 많아서요.”

하이드가 나쁜 상대가 아니라는 건 당연히 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조심해야 하는 건 맞았다.

그동안 여러 일을 겪으면서 우리의 경계심이 높아진 건 어쩔 수 없었다. 팀원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을 적지 않게 겪었으니 부득이한 변화였다. 프라우스 신도단의 정보를 얻는 과정은 될 수 있는 한 조용히 진행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내 대답을 들은 하이드는 두 눈을 반짝 빛냈다. 선을 긋는 말이 불쾌감을 일으키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가진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다.

“그럼 관계자가 되면 프라우스 신도단에 대해서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점들이 좀 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내용이 나오질 않아서.”

“알려 줄 수 있는 부분이면 얼마든지 해 드리겠습니다.”

나 또한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꺼냈다.

“혹시 프라우스 신도단에 대해서 알아본 정보가 있습니까? 말씀하시는 걸 들어 보면 관심이 어느 정도 있어 보이는데요.”

“물론이죠.”

하이드가 갑자기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마우스를 달칵이더니 노트북을 휙 돌려서 우리에게 화면을 보여 줬다.

“프라우스 신도단이 길드 관리 본부를 습격하면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저희는 조금씩 정보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아, 여기서 ‘저희’는 제가 따로 활동하고 있는 딥웹 사이트에요. 정보를 찾고 공유하는 숨겨진 곳이죠.”

“아, 그렇습니까?”

잔뜩 신나 보이는 하이드의 모습에 적당히 반응해 주자 김우진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 이주하는 노트북을 꺼내 들고 설명하는 하이드의 열정적인 모습에 오히려 꽂혔는지 흥미로운 기색으로 집중했다.

“프라우스 신도단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이 네 명 있는데, 네 명 다 실제 이름이 아니라 가명을 사용하고 있어요. 닥터, 아자젤, 아벨, 사마엘. 이렇게 네 명입니다. 종교가 섞여 있는 이름이에요.”

이어지는 설명에 나는 옆에 앉아 있는 하태헌과 눈을 마주했다. 단순히 딥웹에서 주고받은 정보라기엔 지나치게 정확하고 상세했다.

“그런… 프라우스 신도단에 관련된 내용이 자주 올라옵니까?”

“가끔요.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이 알 만한 내용은 절대 아니에요.”

“프라우스 신도단에는 높은 등급의 정신 지배 능력자가 있습니다. 정신 지배를 당한 사람이 일부러 잘못된 내용을 쓰거나, 관련 없는 제삼자가 허위 사실을 퍼뜨렸을 위험도 커 보이는군요.”

“그거야 당연하죠.”

하이드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고는 노트북에 손을 올렸다. 노트북이 우리 쪽으로 돌려진 상태인데도 키보드를 누르는 그의 손은 막힘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아무리 소수 정예의 회원들이 모인 딥웹이라 해도 헛소리는 올라올 수밖에 없는 거, 인정해요. 하지만 확실한 정보는 그런 헛소문을 거르고 걸러서 찾아내는 거예요.”

하이드가 손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노트북 화면에 뜬 프로그램 창들이 엄청난 속도로 확확 바뀌었다. 그 기상천외한 광경에 나는 물론이고 이주하와 하태헌도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제가 얼마 전에 발견한 정보입니다.”

화면에 최종적으로 뜬 것은 처음 보는 사람들의 사진과 개인 정보였다. 하이드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덧붙여 말했다.

“강제로 프라우스 신도단에서 일하다가 얼마 전에 겨우 풀려난 피해자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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