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72화 (72/123)

#72

“넌 언제까지 활동 쉴 거야? 재촉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나도 잘 모르겠어. 언제까지 쉬어야 하는 건지.”

“쉬면 좋긴 하지. 그런데 내가 볼 땐 너, 편히 쉬는 것 같지 않아서. 억지로 일을 그만둔다고 휴식이 되는 건 아니잖아.”

한호성은 와인 잔을 만지작거렸다. 우영찬의 말마따나, 쉬고 싶어서 쉬는 게 아니라 쉬어야 해서 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복귀를 결정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닌걸.”

“그럼 누가 결정하는데. 장 대표?”

“아니, 대중.”

“왜 칼자루를 남에게 넘겨줘? 네가 꽉 쥐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우영찬이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오해라면 잘 풀렸잖아. 너 설마 자숙 따위를 하려는 건 아니지? 그럴 시간에 캠프장이나 알아보든가.”

“……정말 갈 거야, 캠프?”

“농담인 줄 알았어? 난 이런 문제론 농담 안 해. 캠프장까지 갈 시간이 없다면 약소하게나마 바비큐라도 하자. 그건 괜찮지?”

“으응.”

한호성은 배시시 웃었다.

캠프나 바비큐 따위는 구실이고, 우영찬이 자신의 기운을 북돋워 주려는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이건 결코 자의식 과잉에서 비롯된 착각이 아니었다. 우영찬은 언제나 자신을 위해 주었으니까. 그 마음 씀씀이를 부정하는 거야말로 실례였다.

‘내가 더 힘내야지.’

우영찬뿐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팬이 자신을 응원하고 있을 터였다. 한창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조차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저, 좋은 말 백 마디를 들어도 나쁜 말 한마디에 상처 입고 마는 게 사람인지라 울적했던 거였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써 끝내고 싶었다.

“영찬아, 고마워.”

“또 왜.”

“나 많이 챙겨 줘서. ……그리고 내 팬 해 줘서.”

술이 들어가서인지 말이 더 쉽게 나왔다. 한호성은 사르르 눈을 접어 웃으며 말했다.

“너무 뻔한 말이긴 한데 난 내 팬이 너무 고맙거든. 세상에 잘난 연예인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날 좋아해 주는 거잖아.”

“‘하필’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이냐?”

“어? ‘하필’에 내가 모르는 나쁜 뜻도 있나? 뭔데?”

“‘다른 선택지도 있는데 어째서’란 뜻이다.”

우영찬은 ‘생생 퀴즈쇼’에서 그러했듯,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런데 팬한테 ‘다른 선택지’가 어딨냐. 네가 좋아서 네 팬이 된 사람들인데. 세상에 잘난 연예인이 얼마나 많은지는 의미가 없어. 지구상에 연예인이 너밖에 없더라도 널 좋아했을 테고, 반대로 연예인 수억 명이 있더라도 널 좋아했을걸.”

“…….”

“너밖에 안 되니까 널 좋아한 거지.”

그것은 마치, 우영찬 자신이 그렇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기분이 너무나 좋았지만 부끄럽기도 했다. 아무래도 더 취하는 편이 좋을 듯해, 한호성은 와인을 들이켰다.

“……넌 진짜, 은근히 낯부끄러운 소리 잘하더라.”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보네. 하고픈 말 다 하고 살아서 속 편하겠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응, 그것도 맞는 것 같아.”

한호성이 키득키득 웃었다.

문득, 제논이 왜 우영찬을 동경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고픈 말 다 하고 사는 우영찬이 제 눈에도 멋있어 보이는 까닭이다. 그러니 극단적으로 소심한 성격의 제논은 오죽했을까.

하지만 제논의 화제를 꺼냈다간 좋은 분위기가 깨질 듯싶어, 한호성은 와인만 홀짝홀짝 마셨다.

“너무 빨리 마시는 거 아니야? 이러다 취하면 어쩌려고.”

“도수가 약해서 괜찮을 것 같아. 취하더라도 뭐, 어차피 내일도 스케줄 없는걸.”

“할 얘기 있는데 취해서 못 들을까 봐 그러지.”

“어떤 얘긴데?”

우영찬이 한호성을 응시했다. 목탄처럼 짙은 눈동자가 깊었다. 야경처럼 검고, 반짝이는 시선이었다.

“한호성. 나 너 좋아해.”

“……어?”

“팬으로서가 아니라. 물론 팬인 것도 맞긴 하는데. 다른 의미로도 네가 좋다.”

“…….”

“이 얘기 하려고 몸 바꾼 거야. 아무리 그래도 고백할 때만큼은 나대로이고 싶어서.”

한호성은 그만 돌처럼 굳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대답이 떠오르긴커녕 눈을 깜빡일 수조차 없었다. 정말이지 손톱만큼도 예상치 못한 고백이었다.

“영, 찬아…… 나는.”

겨우 말문을 열자, 우영찬이 고개를 깊숙이 끄덕했다.

“……나 좋아해 주는 분들 실망하게 해 드리고 싶지 않아.”

사고가 정지한 것과 별개로 말이 흘러나왔다. 일종의 자동 출력이었다. 그동안 자신에게 고백하는 이들에게 이런 답변을 돌려주다 보니, 아예 입에 붙은 까닭이다.

“그래서 네 마음을 받을 수 없어. ……미안해.”

“그래.”

우영찬은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실망을 감추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겉으로 보기엔 괜찮은 듯했다.

“네 직업이 직업인 만큼 한 번에 수락하리라곤 생각지도 않았어.”

“…….”

“거절당할 줄 알면서도 왜 고백한 줄 아냐?”

“그냥……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한호성이 생각하기엔 가장 무난한 답이었다. 그러나 우영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럼 왜?”

“나 이제부터 너한테 구애할 거니까 미리 알고 있으라고.”

“…….”

“영문도 모르고 구애받으면 난처하잖냐.”

지금도 난처하긴 매한가지였다. 술기운도 완전히 달아났겠다, 한호성은 와락 외쳤다.

“이건 고백이 아니라 통보잖아!”

“어, 바로 그거야.”

“그, 그런 게 어딨어.”

고백을 받았는데도 어째 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어쩌다 손에 쥐게 된 우영찬의 연심은 풋풋함이나 지고지순 따위와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데일 듯 뜨거웠고, 한호성이 도망치더라도 지구 끝까지 따라붙을 듯이 끈질겼다.

“참. 내가 고백했다고 괜히 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피한다고 피할 수도 없겠지만.”

“……와…….”

“난 너랑 어색해지기 싫거든.”

그것은 한호성도 바라는 바였다. 좀 뻔뻔하긴 해도 우영찬은 좋은 친구였다. 행여나 그와의 관계가 어그러진다면 몹시 속상할 터였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이왕이면 하루라도 빨리 나 받아 주면 좋겠고.”

“…….”

끝까지 기막힌 소리만 하는 우영찬이었다. 이에 한호성은 직감했다.

아무래도, 우영찬과 지금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자신의 바람은 이미 글렀을지도 모르겠노라고.

8. 최애를 위하여

이튿날, 한호성은 장 대표에게 뜻을 전달했다. 이전과 다름없이 스케줄을 소화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장 대표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원래도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젠 정말 한호성을 방해하는 문제가 없었다. 한호성 자신만 괜찮다면야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 하이파이브 전원이 모였다. 활동 계획을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다들 오랜만이다.”

장 대표는 회의실을 휘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한호성의 오른쪽에 앉은 두 남자에게 유난히 길게 머물렀다. 그들은 다름 아닌 진짜 제논과 가짜 제논이었다.

“어……. 오늘은 누가 누구냐?”

“내가 우영찬입니다.”

가만히 있는데도 왠지 위협적으로 보이는 커다란 남자가 손을 들었다. 그렇다면 그 옆에서 시든 꽃처럼 고개를 떨군 남자가 제논일 것이다. 사실 자세만으로도 짐작한 바다.

“오늘은 원래대로구나. 그래, 알았다. 근데 한 가지만 더 묻자.”

“그러시죠.”

“제논은 왜 수갑 차고 있는 거냐?”

“허튼짓 못 하게 하려고요.”

우영찬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옆에 앉은 한호성이 이마를 짚었다.

“아무리 그래도 수갑은 좀……. 누가 보면 우릴 뭐라고 생각하겠냐.”

“영찬아, 내가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우영찬은 두 사람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호성, 내가 더는 김제국 생각해 줄 필요 없댔지. 그리고 대표님. 누가 볼 리 없는데 왜 걱정합니까. 수갑 풀었다가 김제국이 또 난동 부리면 수습할 자신 있습니까?”

“……그건 아니긴 한데.”

“난동이면 차라리 다행이지, 이상한 주술 부리면요.”

그것도 일리가 있었다. 본디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지 않는 성미의 장 대표였지만, 근래 들어 세계관이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이젠 제논이 마법을 부려 자신을 개구리로 만들어도 놀랍지 않을 성싶었다.

“모르겠다, 나도 이제. 어쨌든 말 나온 김에 제논 향방부터 논의하자. 제논.”

“…….”

“너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모두의 시선이 제논에게 향했다. 한껏 움츠러든 제논이 입술을 달싹였다.

“……죄, 죄송해요……. 저, 다 그만두고 싶어요.”

탈퇴하겠다는 뜻이었다. 예상한 바인지라, 장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쯤에서 각자의 길을 가는 게 좋겠다. 최대한 잡음 없이 정리해 보자.”

계약서대로라면, 제논은 3년은 더 소소리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야만 한다. 한데 장 대표는 위약금 한 푼 안 받고 제논과의 계약을 정리하려는 거였다. 제논의 투자금을 전부 회수했다고 한들, 이는 가히 파격적인 양보였다.

“저, 정말 죄송해요……. 대표님.”

“……됐다.”

장 대표는 ‘죄송한 걸 알긴 하냐?’라는 말을 삼켰다. 제논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였다.

제논이 저지른 짓 때문에 장 대표도 하이파이브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다. 그렇다고 제논을 고소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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