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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스위치 스캔들-47화 (47/123)

#47

“그렇다니까! 와, 이제야 한 번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네.”

우영찬의 만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기쁨이 지나친 나머지 형을 끌어안을 기세였으나, 정작 우성한은 무뚝뚝했다.

“어쩐지. 우세희가 무언가 이상하다고 하더군.”

“세희 누나가? 내가 이상한 건 어떻게 알았대? 별장에라도 찾아온 거야?”

“아니. 네게 연락했는데, 네 상태가 불안정한 것 같다고 했다.”

우영찬은 한호성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상태가 어떻든 간에 일단 연락이 됐다면, 우영찬의 신체에 의식이 있다는 뜻이다.

“나랑 연락이 된 게 확실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불안정했는데?”

“말을 더듬고 목소리가 떨렸다던데. 그래서 약이라도 한 줄 알았다고 하더군.”

“내가 약 따위를 할 리 없잖아! 다 떠나서, 그게 정말 내 목소리이긴 했대?”

“우세희 말로는 그랬다더군. 그 후 연락되지 않아 확신할 순 없지만.”

“그럼 내 몸과 연락이 끊긴 거야? 언제부터?”

“3일 전부터.”

우영찬이 미간을 찌푸렸다. 제 몸에 이상이 생기진 않은 듯해 일단은 다행이지만,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형, 그거 나 아니야. 나 큰누나랑 연락한 적 없어. 연락할 수도 없었고.”

“그래 보이는군.”

“상황 좀 알아봐 줘. 최대한 빨리.”

“알았다.”

우성한이 덧붙여 물었다.

“그럼 너는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나는…….”

우영찬은 잠시 한호성을 돌아보았다.

한호성의 얼굴은 말갰다. 미련 따윈 손톱만큼도 엿보이지 않는 얼굴. 부담 지우기 싫다는 게 빈말이 아닌지 정말 자신을 붙잡지 않을 모양이었다. 작별을 고하면 분명 잘 가라며 손을 흔들어 줄 터였다.

‘속으론 아쉬워하는 주제에.’

멤버 모두가 잘 활동할 수 있길 소원하던 그였다. 자신도 ‘멤버’의 울타리 안에 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라면 그냥 울타리를 부수고 들어가면 그만이다.

‘내가 아니면 누가 네 손을 잡아 주겠냐고.’

한호성이 또 손을 떨면 자신이 잡아 주어야 했다. 싫은 사람이 접근하는 걸 불편해하면, 자신이 막아 주고 싶었다.

단순한 팬심이라기엔 조금 지나친 마음. 저답지 않은 이타심이었으나, 우영찬은 개의치 않았다. 이유가 뭐가 됐든 그저 한호성을 내버려 둘 수 없을 뿐이다. 한호성의 주변에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개중 변변찮은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자신이 챙겨 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당분간 여기 있을게.”

“……뭐?”

우영찬은 선언했다. 그에 놀란 건 우성한이 아닌 한호성이었다.

“여기 있겠다는 게 무슨 소리야?”

“당분간 제논으로 지내겠다고.”

“왜?”

“어차피 지금으로선 내 몸으로 돌아갈 방법도 없잖아. 집으로 돌아가 봤자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건 불가능해.”

“그, 그렇다고 아이돌 일을 계속하다니…….”

한호성이 납죽 환영해 주는 것까진 바라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놀랄 줄도 몰랐던 바다. 우영찬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싫어? 그럼 그냥 집에 가고.”

“아, 아냐. 네가 당분간 활동해 준다면 나야 고맙지. 근데 네가 힘드니까……. 너희 집에서도 네가 걱정스러우실 테고.”

우영찬은 우성한을 돌아보았다.

“내가 걱정스러워, 형?”

“아니.”

즉답이었다. 우영찬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하며 말했다.

“엄마, 아빠한텐 당분간 비밀로 해 줘. 누나들한테도. 어차피 말해 봤자 믿지도 않겠지만.”

“알았다.”

“아. 그리고 내 몸 찾으면 그 속에 있는 놈한테 물어봐 주라. 어떻게 해야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느냐고 말이야. 그놈이라고 알 거란 보장은 없지만.”

하지만 왠지, 그가 방법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무언가 켕기는 게 있으니 연락이 끊긴 것이 아니겠는가.

“혹시 모르니까 서양 주술에 대해서도 조사해 주면 좋겠어.”

“그 외 필요한 건?”

“연습실 하나 알아봐 줘. 지금 연습실이 너무 열악해서.”

“그 정도로 열악하진 않은데…….”

한호성이 작은 목소리로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우영찬의 기준에서, 환기도 잘 안 되는 데다 곰팡내 나는 지하는 창고로나 써야 할 장소였다.

“숙소랑 가까워야 하니까 문석동 근처였으면 좋겠어.”

“알았다.”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내 번호 저장해 둬. 전처럼 씹지 말고!”

가족 모두에게 전화를 무시당한 기억이 떠오르자 새삼 이가 갈렸다. 제때 전화만 잘 받았더라도 오늘날에 이르진 않았잖은가.

“보안이 되는 핸드폰을 보내도록 하지.”

“그것도 좋겠네. 숙소 주소 알려 줄 테니 그리로 보내.”

아직도 어리둥절해하는 한호성을 뒤로하고, 우영찬은 숙소 주소와 자신의-정확히는 제논의- 연락처를 우성한에게 알려 주었다.

“그럼 간다. 나중에 연락해.”

“그래.”

용무를 마친 우영찬이 작별을 건넸다. 우성한은 역시나 무표정한 얼굴로 그의 인사를 받았다. 최소 두 달 만에 재회한 형제의 인사치고 참 심심했다.

“전 비서가 데려다줄 거다.”

“그럼 좋고. 안 그래도 한호성한테 운전대를 맡기긴 불안했거든. 이 몸은 운전면허가 없고.”

“나 4년 무사고 경력자라니까…….”

한호성이 다시금 구시렁거렸으나 우영찬은 무시했다. 자신은 물론 그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전 비서가 운전하는 차를 타는 게 나았다.

“저, 우성한 씨.”

사무실을 나서기 직전, 한호성이 결연히 말했다.

“동생분을 제게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가 책임지고 영찬이 잘 돌보겠습니다. 믿고 맡겨 주세요.”

“예. 혹시 혹시 우영찬이 사고를 저지른다면 제게 연락해 주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두 사람을 보며 우영찬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한호성과 우성한이 의외로 죽이 잘 맞아 다행이긴 한데 어쩐지 상당히 아니꼬웠다.

“얘기 다 끝났으면 이만 가자.”

“응. 저, 그럼 안녕히 계세요.”

“예. 안녕히 가십시오.”

한호성은 반듯하게 인사하고서 사무실을 나섰다. 끝까지 쿵짝이 잘 맞는 두 사람이다. 탁, 문이 닫히자마자 우영찬은 빈정거리듯 물었다.

“상견례 하냐?”

“상견례라니?”

“‘댁의 아드님을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책임지고 잘 돌보겠습니다.’ 딱 전형적인 상견례 멘트 아닌가?”

“무, 무슨 소릴……. 상견례 자리에서만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잖아? 학부모 상담이라든가.”

“네가 내 담임이냐?”

“담임은 아니지만 리더지.”

“그럼 난 네 그룹 안의 멤버고?”

“응. 당분간 그러기로 한 거 아니야?”

“맞지.”

우영찬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굳이 울타리를 박살 낼 필요도 없이 한호성의 그룹에 무사히 끼어들었다. 우성한을 만난 것만큼이나 만족스러운 소득이었다.

“넌 리더고, 난 멤버.”

우영찬은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듯 중얼거렸다.

***

후에 알고 보니, 자신을 안내해 준 남자는 우 전무의 비서 중 한 명인 모양이었다. 한호성은 전 비서가 운전하는 밴을 타고 귀가했다. 인정하자니 어째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의 운전은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치 부드러워 편안했다.

“우리 왔어.”

한호성은 우영찬과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자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세 사람이 맞아 주었다.

“볼일은 잘 봤어?”

“응. 너흰 뭐 하고 있었어?”

“아이디어 회의 중.”

문해일이 대답했다. 그에 한호성은 반색하며 물었다.

“오. 무슨 아이디어?”

“자체 콘텐츠 말이야. 뭐 좋은 소스가 없을까 싶어서.”

바야흐로 개인 방송 전성시대이다. 요즈음은 케이블 방송 이상으로 개인 방송의 인기가 높았다. 시대의 흐름에 탑승하기 위해, 하이파이브도 자체 콘텐츠를 촬영해 위튜브에 올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업로드 주기가 느린 데다, 콘텐츠가 식상한 탓이었다. 무대 뒤의 모습이나 뮤비 촬영 비하인드만으로는 클랩 외의 시청자를 모을 수 없었다.

“우리한테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콘텐츠였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근데 나도 그렇고, 우리가 솔직히 웃기는 성격은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한호성은 문해일의 말에 동의했다. 사실 뻔하디뻔한 대기실 촬영이더라도 멤버 간 티키타카만으로도 재밌게 끌고 가는 그룹이 있는 반면, 하이파이브는 그렇지 못했다. 이쯤 되면 콘텐츠가 아니라 사람 자체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 중에 웃기는 사람이 한 명 있으니까…….”

이주진이 의뭉스럽게 중얼거리며 우영찬을 바라보았다. 문해일과 설이태도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뭘 봐?”

영문도 모르고 시선의 중심이 된 우영찬이 따져 물었다. 그에 이주진이 슬그머니 밑밥을 깔았다.

“우리가 생각해 봤는데, 당장은 규모가 크거나 버라이어티한 콘텐츠를 준비할 수 없잖아. 그치?”

“…….”

“신곡 준비만으로도 바쁜데 자콘에 무한정 시간을 쏟을 수도 없고.”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면서 화제성을 잡을 만한 콘텐츠가 생각났다 이거지.”

“그게 뭔데?”

한호성이 끼어들어 물었다. 말마따나 장점만 갖춘 콘텐츠라면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제논이 직접 하는 제논 챌린지!’ 어때?”

“…….”

그러나 이주진이 발랄하게 외친 대답에, 한호성의 기대는 푸시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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