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24화 (24/123)

#24

“그 마법약은 얼마인데?”

“천만 원.”

“뭐?”

“그런데 지인 소개로 왔으니까 특별히 할인해서 오백만 원에 해 주겠대.”

“야. 그 사기꾼 번호 당장 차단해.”

더 들을 것도 없었다.

물론 빙의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오백만 원이 무언가, 백지 수표라도 써 줄 터였다. 그러나 상대는 너무나 전형적인 사기꾼이었다.

“네가 생각해도 좀 아닌 것 같지?”

“조금만 아니겠냐? 많이 아니다.”

“그래……. 나도 이상한 사람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살짝 혹하더라고.”

“……혹했다고? 대체 왜.”

“세상엔 가끔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잖아. 솔직히, 네가 제논한테 빙의된 건 어디 믿을 만한 일이야? 그에 비하면 마법약쯤은 있을 만도 하다 싶었지.”

“넌 진짜 점 보러 가지 마라.”

우영찬은 진심으로 충고했다. 이전부터 느꼈지만, 한호성은 작정하고 사기 치면 쉽게 속아 넘어갈 인간이었다. 좋게 말하면 순진한데 나쁘게 말하면 영 맹하다. 용케 연예계에서 버텼다 싶을 정도였다.

‘하긴, 연예계에서도 한번 크게 당했지.’

블루길 엔터테인먼트 사건을 떠올린 우영찬은 착잡해졌다. 사실 한호성에겐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세상이 너무 나빴다.

“차라리 주술 말고 다른 분야를 알아볼까? 의학이라거나.”

“그래, 그게 낫겠다.”

적어도 그쪽에선 사기꾼 점쟁이는 안 만날 게 아닌가. 하지만 이내, 우영찬은 사기꾼은 어느 분야에나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아니다. 다음엔 그냥 나한테 얘기하고 움직여. 아무한테나 함부로 입금하지 말고.”

“응, 알았어.”

한호성이 순순히 대답했다. 그에 우영찬은 마음을 조금 놓았다.

“아, 영찬아. 나 또 할 얘기 있는데.”

“뭔데?”

“내가 아까 팬싸 후기 찾아보라고 했잖아.”

우영찬은 뜨끔했다. 뭘 알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방금까지 한호성의 팬 사인회 영상을 보았던 터라 괜히 찔렸다.

“그거 그냥 찾아보지 마.”

“왜?”

“생각해 보니까 그렇더라고. 넌 일반인이잖아, 악플에 면역력이 없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이유였다. 우영찬은 얼떨떨해하며 물었다.

“……지금 내가 악플 보고 상처받을까 봐 걱정하는 건가? 내 악플도 아닌 김제국 악플 때문에?”

“응.”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그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진 모르겠지만, 악플 보고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어. 꼭 자신한테 달린 악플이 아니더라도 부정적인 글을 보면 알게 모르게 악영향 받기 마련이니까.”

좋은 댓글 100개를 봐도 나쁜 댓글 하나를 보면 울적해지는 게 사람 심리였다. 악플 하나면 차라리 다행이지, 인터넷엔 별의별 반응이 있기 마련이었다.

아이돌로서 활동한 연차가 긴 데다 별의별 일을 겪은 탓에, 한호성은 악플 때문에 마음이 꺾이는 일이 지긋지긋하리만치 익숙했다. 자신이야 어느 정도 마인드 컨트롤 요령이 생겼지만 우영찬은 아닐 터였다.

“원래 인터넷은 안 할수록 정신 건강에 좋긴 하거든.”

“넌 하잖아, SNS. 거의 매일 사진 올리면서.”

“나는 나고, 넌 상황이 다르잖아.”

아이돌에겐 온라인 소통도 활동의 일환이다. 업무라서 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찾아보지 마. 그러다 이상한 반응까지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미 찾아봤는데.”

우영찬은 툭 내뱉었다.

일종의 청개구리 심보인 걸까.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숨기려고 작정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하지 말라니까 왠지 더 하고 싶었다.

“어? 찾아봤다고?”

“그래. 너 리본 머리띠 쓴 것까지 봤다.”

우영찬은 김제국의 핸드폰을 내밀어 보였다. 예의 팬 사인회 영상이 액정 가득히 떠올라 있었다.

“와, 이건……!”

한호성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민망해하는 건가, 싶었으나 그는 반갑다는 듯 외쳤다.

“2년 전인가? 머리가 까만 걸 보니까 ‘휘파람파람’ 때 같은데. 와, 맞네. 이때 기억난다.”

처음으로 사인회 추첨에 경쟁이 생겨서 기분 좋았다며, 한호성이 덧붙였다. 그 반응에 오히려 우영찬이 스스러워졌다.

“너…… 팬 서비스 잘하던데.”

왜인지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큼, 우영찬은 괜히 헛기침했다.

이런 감정이 워낙 생소해서, 그는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 부끄러움을 느끼는 중이다.

부끄럽다는 사실이 우영찬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우영찬은 어색할 게 분명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모로 돌렸다.

“고마워. 그래서 보고 있었던 거야? 팬 서비스 어떻게 하는지 배우려고?”

“……어.”

“너 진짜 보기보다 성실하다. 아주 착실해.”

도대체 자길 어떻게 생각했길래 ‘보기보다’라는 조건이 붙는지는 모르겠지만, 칭찬받은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우영찬은 다시 고개를 바로 했다.

“복습해 볼래?”

“복습?”

“응, 아까처럼.”

또 역할극 하자는 제안이었다.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어, 우영찬은 흔쾌히 승낙했다.

“알았다.”

“그럼 내가 팬 역할 할 테니까 넌 나처럼 하는 거야. 저렇게.”

한호성이 핸드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영상 속 그는 여전히 빨간 리본 머리띠를 쓴 채 손 하트를 그리고 있었다.

자신이 저렇게 해야 하는 건가. 영 내키진 않았지만, 우영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저걸 어디 뒀을 텐데…….”

한호성이 의자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갔다. 그는 서랍 맨 아래 칸을 뒤적거리더니, 빨간색 리본 머리띠를 꺼냈다.

“찾았다!”

“……그걸 아직도 가지고 있었냐?”

“응, 언제 어떻게 쓰일지 모르잖아.”

호성이 싱긋 웃으며 머리띠를 내밀었다.

“제논아, 머리띠 써 주라.”

“…….”

역할극이 시작되었나 보다.

우영찬은 떨떠름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머리띠를 받아 들었다. 이런 건 한호성처럼 귀여운 사람에게나 어울리지, 제논처럼 음침하거나 자신 같은 사람이 쓸 게 아니었다.

그러나 우영찬은 의식적으로 생각을 끊어 내며 머리띠를 썼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해치우는 게 낫겠다 싶어서였다.

“잘 어울린다! 귀여워, 진짜 귀여워!”

“아, 진짜? 고마워.”

어색하게나마 대꾸하자, 한호성이 또 한바탕 칭찬을 퍼부었다. 정말 우영찬의 팬이라도 된 듯 두 눈을 별처럼 반짝이며.

“오늘 무대도 너무, 진짜 너무 잘하더라!”

“응. ……잘하는 모습 보여 주고 싶어서 열심히 했어.”

“와, 어쩐지. 노래도 그렇고 춤도 엄청 늘었더라.”

이건 연기 반 진심 반인 듯싶었다. 내심 뿌듯해하는데, 한호성이 해맑은 얼굴로 찬물을 끼얹었다.

“노력하는 제논이 최고야!”

“……고마워.”

재주는 자신이 부렸는데 칭찬은 김제국이 받고 있다. 당연하다는 것쯤은 알지만, 순간 기분이 확 상했다.

그래도 우영찬은 한호성의 말에 성실히 답했다. 대답이 짧은 건 아까와 비슷했으나 분위기는 훨씬 나아졌다.

‘열심히 하네.’

한호성은 속으로 평했다. 조금 전에는 할 말이 전혀 없어서 대답을 쥐어짜 냈다면, 지금은 요령이 없을 뿐이지 나름대로 열심히 말하려는 게 느껴졌다. 한마디로 성의가 생긴 것이다.

이 정도만 되어 줘도 최악은 아니었다. 특히나 제논은 워낙 말수 적은 성격이었으니, 팬이 느끼기에 그리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요청도 잘 들어주려나?’

확인해 두면 좋을 듯싶었다. 한호성은 2년 전에 만났던 팬이 제게 그랬듯,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제논아, 하트 한 번만 해 주면 안 돼?”

“하트? ……이렇게?”

우영찬이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걸 증명하듯 엉성한 손 하트였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귀여웠다. 한호성은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활짝 웃었다.

“아, 정말 고마워! 제논, 진짜 좋아해!”

“……어. 나도 좋아해.”

우영찬이 갑자기 구식 로봇처럼 뻣뻣하게 굴었다. 그 점이 조금 아쉬웠지만, 어쨌든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처음과 비교하면 가히 비약적이라 할 만한 성장이었다.

“너 진짜 대단하다. 하면 잘하는구나.”

한호성이 한결 자연스러운 말투로 칭찬했다. 그에 우영찬은 역할극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말했잖아. 아까는 상대가 너희라 잘 못 한 거라고. 특히 문해일.”

“팬한텐 그래도 잘할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근데 진짜 귀여운데 사진 한 번만 찍으면 안 돼?”

“어. 안 돼.”

“아 왜, 한 번만 찍자.”

우영찬이 극구 반대하는데도 한호성은 기어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는 돌잡이 아기 어르는 사진사처럼 우영찬을 달랬다.

“한 번만. 응? 기껏 머리띠까지 썼는데 사진 한 장 안 찍는 건 심각한 직무 유기야.”

“그게 왜 내 직무인데? 제논한테나 따져.”

“그러지 말고 한 장만 찍어 주면 안 돼? 이왕 예쁜 머리띠 쓴 김에.”

한 장은 무슨, 일단 핸드폰을 들었다 하면 기본 열 장은 찍는 주제에 말은 잘한다. 우영찬은 떨떠름하게 내뱉었다.

“찍더라도 머리띠는 빼고 찍을 거다.”

“왜? 그럼 찍는 의미가 없잖아.”

“쪽팔려.”

“쪽팔리다니…….”

한호성은 우영찬의 말을 곰곰이 곱씹더니 설득에 들어갔다.

“‘쪽’이라는 게 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란 건 알지? ‘쪽팔리다’는 얼굴이 팔린단 뜻인데, 넌 지금 네 얼굴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넌 쪽팔리지 않아.”

“그게 무슨 궤변이냐.”

어이없는 주장이지만 설득력은 있었다. 하기야 CF를 찍을 때도 생각한 바지만, 제논 따위 어찌 사진 찍히든 자신과 상관없긴 하다.

“……알았어. 찍든가.”

“정말이지?”

“어. 대신 너도 찍어.”

“응?”

“너도 머리띠 쓰고 사진 찍으라고.”

요청을 순순히 들어주기엔 배알이 뒤틀렸다. 이것도 일종의 청개구리 심보인지, 혹은 놀부 심보인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우영찬은 자신만 머리띠를 쓸 생각 따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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