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15화 (15/123)

#15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희도 반가워요. 우리 애가 세균분 덕분에 얼마나…….”

양치질을 잘하는가에 대한 말이 이어졌다. 우영찬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논’이라고 예명을 말했음에도 세균으로 불리는 걸 보면, 이 몸은 어지간히도 인기가 없나 보다. 하긴 거울만 봐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실물이 훨씬 잘생기셨네요. 블로그에선 좀 더 다크한 이미지였는데…….”

“자기야.”

여자가 경고 조로 읊조리며 남자의 허리를 쿡 찔렀다. 우영찬은 눈매를 살짝 좁혔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쉬시는 데 시간 빼앗아서 죄송해요.”

“무슨 말씀을요, 만나 봬서 반가웠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우영찬은 한호성을 따라 인사했다.

남녀가 카페를 떠난 후, 두 사람은 도로 자리에 앉았다. 한호성이 주섬주섬 마스크를 끼며 말했다.

“너 능숙하더라.”

“내가? 뭘?”

“사람 대하는 게 익숙해 보이던데.”

“그냥 사진 찍어 주고, 대화 몇 마디 하는 것뿐인데 익숙하고 말고 할 게 있나.”

“그걸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거든. 낯선 사람을 만나면 긴장해서.”

“그거 김제국 얘기지?”

한호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영찬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인기 없는 거냐?”

“……꼭 낯가림 때문만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응.”

호성은 위로하듯 덧붙였다.

“그래도 우리 중에선 코어 팬이 많은 편이야.”

“전교 꼴등인 반에서 일등 하면 뭐 하냐. 그건 됐고, 블로그 얘긴 뭐지?”

김제국이 무언가 잘못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빙의한 후, 김제국에 대해 들은 이야기라곤 온통 부정적인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호성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그게, 제논이 데뷔 전부터 운영하던 블로그가 있었는데…….”

“설마 블로그에 누구 욕이라도 쓴 거냐? 아니면 연애하는 사진을 올렸다던가.”

“아, 그런 건 아냐. 그냥 일상 블로그였어. 남이 봐도 켕길 건 없는…….”

한호성이 말끝을 흐렸다.

“……근데 남이 보면 곤란한 그런 블로그였지.”

“뭔데 그래.”

“비밀 일기장이나 마찬가지였거든. 일기도 쓰고, 자작시도 쓰는…….”

제논과 4년이 넘게 알고 지냈으나, 한호성은 그가 꼬박꼬박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줄은 몰랐다. 제논이 그토록 심각한 고민을 품고 있는지도 새까맣게 몰랐던 터다.

‘원치 않게 주어진 선물에도 감사해야 하나. 그렇다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삶에도 감사해야 하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까. 지친다. 태어난 게 싫은 게 아니라, 내가 나인 게 싫다.’

‘그만두고 싶어. 뭐가 됐든 전부.’

“……그런 일기도 있었어.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처음에 네가 자살 시도 한 줄 알았던 것도 그거 때문이야. 기어이 나쁜 생각을 실행에 옮긴 줄 알았지.”

한호성은 황급히 덧붙였다.

“저, 내가 남의 일기를 함부로 훔쳐보려던 건 아냐. 무슨 사건이 터졌는지 확인하려고 모니터링 차원에서.”

“상관없다. 내 블로그도 아니고. 애초에 개인적인 일기를 공개적으로 쓴 쪽이 안일한 거 아닌가?”

“비공개 블로그였는데 해킹당해서 공개로 전환된 거야. 올린 사진이나 일상 글이 누가 봐도 제논이라서 들킨 거고.”

하필이면 하이파이브가 갓 떠서 주목받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운 좋게 뜬 벼락 스타를 추락시킬 만한 건수가 있는지, 재미난 가십은 없는지 눈에 불을 켜고 블로그를 뒤져 댔다.

“그랬는데도 꼬투리 하나 안 잡힌 걸 보면 제논도 참 대단하지. 사실 당연한 일이긴 해. 내가 장담하는데, 제논은 다른 건 몰라도 인간관계 면으론 문제 터뜨릴 애가 아니거든.”

“인간관계 자체가 없어서?”

“…….”

한호성은 침묵으로써 긍정했다.

“큼, 아무튼 일이 심각하게 번지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어. 문제는 그 이후로 제논에게 우스운 이미지가 생겼다는 건데…….”

“뭐 어떻게 우스워졌길래.”

“‘허세 가득한 중2병’이라고.”

철학도, 낭만도 오글거린다고 치부되는 세상이다. 하물며 아마추어 시인의 감성 가득한 시는 비웃음거리밖에 되지 못했다.

“비웃는 댓글이 엄청 달렸어. 순수하게 재밌어서 웃은 사람이 더 많았지만, 어쨌든 제논은 비웃음이라고 느꼈으니까. 게다가 블로그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커뮤니티로 퍼져 나갔거든.”

제목: (오글주의) 하이파이브 제논 자작시 모음.txt

본문: ‘새벽 4시에 불어오는 바람엔 어둠이 묻어 있다 / 상처투성이 마음을 덮어 주는 평온한 어둠이 / 그래 밤은 / 세상을 덮어 주는 이불인가 보다 / 그리고 나를 숨겨 주는 / 보호막인가 보다 / 이 밤 나는 알 속 아가새처럼 몸을 웅크리고 / 부화할 아침을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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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이 아니라 신춘문예를 통과했어야 한다는 게 학계의 정설

˪왐마야ㅋㅋㅋㅋㅋ 요즘 애들 감성 장난 아니네

˪으 보다가 걍 스크롤 내림

˪ㅇㅏ 귀엽다 아가새래ㅋㅋㅋㅋㅋㅋ 근데 당사자는 진짜 쪽팔리겠다 지금쯤 이불 차고 있을듯ㅋㅋㅋㅋ

˪털었는데 나온 게 자작시밖에 없는 거야? 클린한 모습 보기 좋네.. 시는 보기 좋지 않지만.......

[인기 급상승 동영상] 제논 챌린지 #웃음참기 #버티면상금100만원 #최후의승자는누구?!

제목: 지금 블로그 유출된 돌 나만 팬 기만 같아?

본문: 원치 않게 주어진 선물...ㅋㅋ 저거 팬들이 준 선물 까는 거 아냐?

˪ㄴㄴ 아님ㅋㅋㅋ 포스팅 날짜를 봐 4년 전이잖아ㅋㅋㅋㅋ 저때는 인지도 좆망해서 선물 같은 거 못 받던 시기였음 확대해석으로 패지 말기!

˪팬 기만이라니...ㅋㅋㅋ 기만할 팬도 없는 애한테 무슨소리야

˪어휴 진짜 못됐다... 블로그 보니까 전형적인 우울증 증상이던데 그걸 욕하고 싶니? 나도 우울증일 때 이런 애들 때문에 어디 가서 힘들다고 말도 못했어.

˪그럼 님도 블로그에 쓰세여

제목: 아니 나는 김엠파이어 음침한 거 컨셉인 줄 알았는데

본문: 찐이었네... 블로그에 오컬트 자료 있는 거 봤음?? 해외 레딧 직접 번역했나 본데 정성 오진다

˪오컬트에 관심 있는 게 잘못도 아닌데 왜그랭

˪(작성자) 뭐 어떻다는 게 아니라 신기하다고...ㅋㅋㅋㅋ 무슨 옆나라 서브컬쳐 같은 컨셉을 케이돌이 밀고 있는데 그게 심지어 진짜라잖아

모래요정 @sand_yojung

와 논제 무슨 일 터졌다길래 헐레벌떡 달려왔더니 와.... 차라리 연애하는 사진 올린 게 나았겠다 싶은 건 이번이 처음인데ㅋㅋㅋㅋㅋ

머니마니 @moneymany_plz

제논의 감성은 존중하지만 별개로 내가 받아들이기엔 백만 년은 이른 것 같은

히나 @HeeNaa_1004

소신발언 나 솔직히 제논 블로그 보면서 살짝 눈가 촉촉해짐ㅋㅋㅋㅠ

˪도어 @d00r_5pen

앜ㅋㅋㅋㅋ 히나님도 감수성 풍부하신가보네요ㅋㅋㅋㅋㅋ

하보 @HABO__k

오컬트에 심취한 아이돌? 신선한데ㅎㅎㅎ

고구맛나 @gogu_matna

...? 그러니까 저게 지금 컨셉이 아니라는 거지...?

“성격이 무딘 사람이라면 좀 민망해하고 털어 버렸을지도 몰라. 근데 제논은 마음이 여린 편이거든. 그런 반응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지.”

“그러냐.”

“낯가림이 심해진 것도 그때부터고. 원래도 소극적인 성격이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거든. 뭐랄까, 대인 기피증마저 생긴 것 같았어.”

우영찬은 혀를 찼다. 알면 알수록, 자신이 빙의하지 않았더라도 제논은 아이돌로서 제대로 활동하긴 어려웠을 성싶었다.

“애초에 이 인간이 어떻게 데뷔했는지 궁금한데. 그 재수 없는 놈도 그랬잖아, 제논은 의욕도 없고 실력도 없고 하물며 팀워크마저 없다고.”

“재수 없는 놈…… 아, 해일이 말하는 거지? 앞으론 그런 말 못 하게 주의시킬게. 그리고 제논은 사실, 하이파이브가 데뷔하기 직전에 급하게 합류한 멤버야.”

한호성은 다른 테이블에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췄다.

“원래 데뷔할 뻔한 애가 여러모로 문제 많았거든. 분명 1년 내로 거하게 사고 치겠다 싶어서 계약 해지하고, 그 자리에 제논이 들어온 거야.”

“한마디로 땜빵이네.”

“땜빵이라니.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든 오디션을 봤든 함께 데뷔한 이상 다 똑같은 멤버지 뭐. 게다가 제논 영입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알아?”

당시 소소리 엔터테인먼트엔 연습생이 없었다. 때문에 장 대표가 불볕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 날 며칠 동안 무작정 번화가를 돌아다니다 겨우 만난 게 바로 제논이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제논은 아이돌엔 전혀 관심 없었대. 당연히 될 생각도 없었고. 그런 애를 열심히 설득해서 겨우 데려온 거야, 삼고초려하듯이.”

“그놈이 그렇게까지 해서 잡아야 할 인재인가?”

우영찬이 심드렁하게 내뱉자, 한호성이 정색하고 답했다.

“거울을 봐.”

“봤는데. 그래서 뭐?”

“잘생겼잖아!”

“……이게?”

우영찬은 김제국의 얼굴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는 빙의 이래 단 한 번도 김제국이 잘생겼다고 느끼지 못했다. 참 우울하고 비실비실해 보인다는 감상뿐이었다.

“응. 거기다 매력 있잖아. 뭔가 퇴폐적이고 예민해 보이고…… 사연 있는 것 같고.”

“퇴폐는 모르겠고, 예민하고 사연 있는 건 사실이긴 하네.”

“아무튼 제논 같은 마스크는 희귀하니까. 보컬도 좋고.”

호성은 말하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밥은 잘 먹고 있을지, 아니 의식이나 있을지 모르겠네. 차라리 너처럼 다른 몸에 빙의했으면 좋을 텐데.”

“그 다른 몸 주인은 무슨 죄냐. 애초에 의식 없는 상태일 것 같은데.”

순간 한호성의 눈빛이 흔들렸다. 왜 그런 말을 하냐는 듯, 시선에 옅은 원망이 서려 있었다. 우영찬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시선을 받아쳤다.

“생각해 봐. 의식이 있었다면 너나 회사에 연락했겠지.”

“…….”

안 그래도, 한호성도 같은 생각을 떠올린 차였다. 대기업인 강문 그룹과 달리 소소리 엔터테인먼트는 연락을 걸러 받지 않았다. 제논이 어떤 식으로든 연락했다면, 놓쳤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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