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스타 스위치 스캔들-7화 (7/123)

#7

“왜. 뭐 할 말 있어?”

“시비가 아니라 궁금해서 묻는 건데.”

“응.”

“이런 건 외워서 어디다 써먹냐?”

한호성은 ‘흐음.’ 하고 목을 울렸다. 퉁명스러운 말투지만, 말마따나 궁금해서 묻는 투라 화가 나진 않았다.

“우린 이걸로 성공했으니까. 과장 보탤 것도 없이, 역대 뮤비 조회 수 합친 것보다 치카치카송 조회 수가 더 높을 정도거든. 하이파이브 대표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축하한다, 국민 치아 돼서.”

“고마워, 국민 세균. 아무튼 이 노래 불러 달라고 요청받을 일이 엄청 많단 말이지. 크게는 예능에서부터 작게는 길 가던 초등학생에게까지. 그때마다 못 한다고 뺄 순 없잖아?”

“하…….”

우영찬은 고개를 젖히며 한숨을 토했다. 그래 봤자 보이는 게 하와이의 푸른 하늘이 아닌 칙칙한 연습실 천장이라서 더 답답해질 뿐이었다.

“그리고 3일 후에 CF도 찍어야 하거든.”

“뭐? 무슨 CF?”

“과채주스. 저 동요 히트 치고 나서 비슷한 컨셉의 광고 제안이 우르르 들어왔거든. 치약, 칫솔, 샐러드 같은 거.”

한호성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우영찬 자신 이상으로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는데도 전혀 지쳐 보이지 않는다. 김제국처럼 마냥 비쩍 마른 줄로만 알았는데, 그와 달리 체력이 꽤 좋은 모양이다.

“그래서 너 3일 안에 안무 완벽히 외워야 해. CF 찍을 때 춤춰야 하거든. 할 수 있지?”

“단순 암기라면 이미 끝냈어. 근데 CF라면, 설마 TV에 송출되는 건가?”

“응. 정확히 몇 시, 어느 방송 앞뒤에 붙을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말인즉, 자신이 과일 혹은 채소로 분장하고 깜찍하게 율동하는 모습이 전파를 탄다는 뜻이었다. 우영찬은 선언했다.

“안 해.”

“네가 하기 싫다면 내가 억지로 시킬 순 없지. 그럴 방법도 없고. 그런데 제논, 협박하려는 건 아닌데 너 계약금 돌려드려도 돼?”

“……계약금?”

“응, 우리 계약금 선지급 받았거든. 촬영 펑크 내면 그거 돌려드려야 하니까. 어쩌면 위약금까지 물지도 모르겠다.”

‘정확한 사항은 실무 팀에 여쭤봐야겠지만…….’ 하며 한호성이 말끝을 흐렸다. 그에 우영찬은 무겁게 침묵했다.

계약금에 위약금이라니. 그게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과거의 자신에겐 푼돈이고 현재의 자신에겐 거금이리란 확신이 들었다.

“차라리 협박이 낫지, 현실이 더 끔찍하네. 씨…….”

“어, 너 또 욕하려 하지.”

“왜. 동요 부르려면 욕도 하지 말아야 해? 누가 듣는다고.”

“우리끼리 있을 때도 하지 마, 제논. 습관 되면 큰일이라니까.”

우영찬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나긋나긋한 목소리 하며 모범생 같은 내용도 문제거니와, ‘제논.’이라고 불릴 때마다 소름이 좍 돋았다. 자신의 생리에 맞지 않아 알레르기가 돋아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제논이라고 부르지 마.”

“그럼 뭐라고 불러?”

“우영찬. 아니면 차라리 김제국이라고 부르든가.”

“……웬일이야?”

한호성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너 본명으로 불리는 거 싫어하잖아.”

김제국에게 ‘제논’은 예명 이상이었다. 연예계 데뷔 전부터 모두에게 제논이라고 불리었으니, 사실상 실명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내 이름은 김제국이 아닌 우영찬이다.”

“…….”

“제논은 더더욱 아니고. 내가 무슨 원자 번호 54번도 아닌데 왜 제논이라고 불려야 하냐고.”

“그야 네가 제논이라고 불러 주지 않으면 토라졌으니까…….”

“난 우영찬이다.”

그가 다시금 주장했다.

한호성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우영찬을 살폈다. 심한 충격을 받았기로서니 사람이 저 정도로 바뀔 수 있는 걸까. 마치 제논이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다.

어제오늘 몇 번이고 떠올린 생각이지만, 처음으로 진지하게 의심스러웠다.

“에이 씨, 벌써 15분 지났네.”

투덜거릴지언정 자리에서 일어나는 점마저 제논과 다르다. 제논이었더라면 어물어물 연습을 그만뒀을 테니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한호성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 부닥친 탓에 이성이 잠시 흐려졌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정말 김제국에게 우영찬이 빙의했나?’ 하고 의심했을까.

“뭐 해? 안 일어나?”

“어? 어, 잠시만.”

우영찬의 부름에 한호성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핸드폰을 가져오며 말했다.

“시작하기 전에 셀카 찍자.”

“왜?”

“너 지금 느낌 딱 좋아. 땀이 적당히 나서. 머리칼도 세팅한 것처럼 예쁘게 흐트러졌고.”

“……뭐라는 거야.”

우영찬은 대형 거울에 비친 얼굴을 흘긋 쳐다봤다. 이 몸뚱이에 대한 유감 때문이 아니라 정말, 자신으로선 어떤 느낌이 좋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남자가 예뻐 봤자 남자 아닌가.

“빨리. 자세 잡아 봐.”

“자세?”

트레이너처럼 근육을 강조하는 자세를 취하자, 한호성이 질색하며 바로잡아 주었다. 평범하게 선 자세이다. 하긴 우영찬이 생각하기에도 이 몸뚱이는 자랑할 만한 근육이 없어서 얌전히 있는 편이 나을 성싶었다.

“다리 한쪽 내밀고, 아니, 너무 뻗진 말고. 살짝 비딱하게…… 응, 그대로.”

이런저런 지시 끝에 한호성이 우영찬에게 바짝 붙어 섰다. 이렇게나 스스럼없이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하다니. 우영찬은 어이없는 나머지 불쾌하지조차 않았다.

찰칵.

거울에 비친 상을 찍은 한호성이 이번엔 카메라를 전면으로 전환했다. 그는 긴 팔을 쭉 뻗더니, 다른 팔론 우영찬의 목을 끌어안았다.

“야!”

“깜짝이야. 왜 그래?”

“내가 더 놀랐거든? 왜 말도 없이 남의 몸에 손을 대?”

“불쾌했다면 미안. 어깨동무한 거였는데…….”

“하지 마, 그런 거.”

“알았어.”

한호성은 머쓱하면서도 핸드폰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각도를 바꿔 가며 사진을 마구 찍어 댔다. 그러고는 개중 몇 장을 골라 우영찬에게 보여 주었다.

“이따 업로드할 건데, 이거랑 이거 중 뭐가 잘 나온 것 같아?”

“비슷해 보이는데.”

“그래도 골라 봐, 네 맘에 드는 사진으로.”

“상관없어. 어차피 내 얼굴도 아니고.”

굴욕적으로 이상하게 찍힌 김제국의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녀도 우영찬이 알 바 아니었다. 그러나 한호성은 꿋꿋이 핸드폰을 내밀어 보였다.

“거울 샷이랑 셀카 두 장씩 올릴게.”

“그러든가.”

우영찬은 핸드폰을 흘끔 쳐다봤다.

실제야 어떻든, 사진 속 두 남자는 퍽 친해 보였다.

***

그로부터 사흘간, 우영찬은 지독하게 연습했다. 자의가 반이었으나 타의도 반이었다.

문해일이 지적해 대고, 설이태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지켜보고, 이주진이 막연하게 희망찬 응원을 건네는 환경에선 게으름 피우려야 피울 수 없었다. 게다가 한호성은 우영찬의 개인 코치라도 되는 것처럼 곁을 지켰다.

덕분에 우영찬은 동요 3종을 완벽하게 익혔다. 양치하다가 저도 모르게 ‘치카치카치 카치카치포…….’ 하고 중얼거릴 정도였다. 나름대로 대단한 성과였으나, 자부심은커녕 자괴감만 들었다.

“그래도 계약금은 지켰으니 다행인가.”

“당연하지!”

우영찬의 혼잣말을 주워들은 이주진이 힘차게 외쳤다.

“돈 먹었으면 그걸로 끝이지, 어떻게 토해 내? 우리 사전에 반환은 없어.”

갈색 렌즈를 낀 눈동자가 야욕으로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오동통한 레몬 인형 옷을 입은 모양새와 썩 어울리지 않는 눈빛이다.

“……넌 경영 쪽으로 나가는 편이 나았겠다.”

“갑자기 웬 경영?”

“내가 경영 전공이라…… 하, 됐다.”

우영찬은 이주진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다음 학기에 복학할 예정인데, 만일 그때까지 몸을 되찾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설마 이대로 가다 제적당하는 건 아니겠지.’

비현실적인 듯 현실적인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옷이나 입어.”

우영찬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토마토 인형 옷을 입은 문해일이 보였다. 이주진 이상으로 우스운 차림새다.

“혼자 입기 어려우면 도와줘?”

문해일 옆에 선 설이태의 말이었다. 그는 이파리 묘사가 섬세한 양배추 인형 옷을 입은 채였다. 세 사람 모두 우스꽝스러운 꼬락서니였으나, 안타깝게도 우영찬은 그들을 비웃을 수 없었다.

자신이 맡은 건 딸기였으므로.

“하필 딸기…….”

치 떨리게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섯 명 중 키가 제일 작다는 이유로 딸기로 정해졌다는데 무얼 어찌하겠는가. 그렇다고 레몬, 토마토, 양배추 역할이 탐나는 것도 아니었다.

“너 원래 딸기 좋아하잖아. 입맛 바뀌었어?”

“입맛이 문제가 아니라 의상이 문제다. 꼭 이렇게 솜 빵빵하게 처넣은 딸기를 뒤집어써야 하나?”

“왜, 나름 귀엽고 좋은데.”

이주진이 태연하게 답했다.

우영찬은 그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슬슬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호기롭게 딸기 인형 탈을 뒤집어쓴 것이다. 쓸데없이 큼직한 주제에 팔을 넣는 구멍은 어찌나 좁은지 쉬이 찾을 수가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몸을 뒤틀며 팔 구멍을 찾자, 보다 못한 이주진과 설이태가 달라붙어 도왔다.

“후.”

겨우 딸기 인형 옷을 착용한 우영찬이 한숨 돌렸다. 그러기가 무섭게 이주진이 머리띠를 내밀었다.

“꼭다리도 달려 있어야 싱싱해 보이지.”

“…….”

우영찬은 머리띠를 노려보다 훽 낚아챘다. 그에 머리띠 중간에 달린 딸기 꼭지가 파르르 흔들렸다.

“뭐 하고 있어?”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한호성이 들어왔다. 그는 사과 인형 옷을 입고 있었다. 우영찬의 기준에선, 다섯 명 중에 그나마 덜 부끄러운 차림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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