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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전-101화 (101/102)

101화

“두 분 다 몰골이 왜 그렇습니까? 어디 끌려갔다 온 것처럼?”

주막 주인의 물음에 율은 멋쩍게 웃었다. 며칠째 굶어도 배고픔을 모르겠더니 이락을 만나 도성 안으로 들어오자 급격하게 허기가 몰려왔다.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기 직전이라 국밥을 달라고 하니 주인이 냉큼 가져다준다. 그리고 이어서 김치전과 탁주도 내온다. 육지에서 정말 맛있던 것을 꼽으라면 만두를 제외하고는 주막 주인의 김치전을 꼽을 것이다.

음식을 앞에 두고 침을 꼴깍 삼키자 이락이 손수 전을 찢어 율의 앞에 놓아 준다.

“많이 먹거라.”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밥 대신 탁주만 마신다.

국밥을 오물오물 먹던 율은 그런 이락의 모습을 보고 걱정하였다.

“밥은 안 드십니까?”

이락은 사발을 들어 보였다. 난 이거면 된다.

“제대로 드십시오…. 얼굴이 상하셨습니다.”

“내가 그리 걱정되면 빨리 왔어야지.”

“말했잖습니까….”

집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율이 잠시 시무룩해지자 이락이 그의 잔에 술을 부어 준다. 율은 한잔 마시고는 크,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귀여워 이락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래서. 네 어미는 이제 걸을 수 있고?”

“예….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의원이 당분간 걷는 것은 힘들 거라고 하였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를 아끼는 마음에 그리하였겠지. 다행이다. 가족 중에 네 편이 더 있어서.”

가족끼리 편을 나누는 건 우스운 일이지만, 여태까지 어머니와 선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다.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자 마음이 아팠다. 그러므로 더더욱 이곳에 잘 적응하여 좀 더 어른스러워진 모습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아버지도 누그러지시겠지….

“참, 휘 님은 어찌 됐습니까?”

“휘?”

“그… 기진 마마의 호위 무사 말입니다.”

아. 이락은 뒤늦게 그를 강가로 끌고 오라고 지시한 것을 떠올렸다. 방율이 왔으니 이제 그럴 필요가 없는데…. 금산으로 돌아가기엔 늦은 시간이다. 오늘은 둘이 오붓하게 보내고 내일 아침에 가는 게 낫겠군.

생각을 정리하느라 입을 다물고 있자 율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죽인 것은 아니지요…?”

“팔다리 붙여서 잘 살려 뒀다. 치료도 해 주고 있고. 다만 걷는 데는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다는구나.”

“다리가 나으면 바다로 꼭 돌려보내 주셔야 합니다….”

“그러기엔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너희가 먹는 그 약 말이다. 그놈한테 이제 한 알밖에 남지 않았더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율이 메고 온 봇짐을 열었다. 작은 주머니를 꺼내자 거기에 구명환이 가득하다. 율은 주위를 살피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이것 보십시오. 전하께서 제게 하사하셨습니다.”

“고작 그걸?”

“고작이라뇨. 이건 무척이나 귀한 약입니다. 이번 일로 꽤 많은 재료를 사용하여 내의원이 시끌벅적하였답니다. 거기다 제 가족이 평생 먹고살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고 약조하셨습니다.”

“암, 그래야지. 지가 누구 때문에 살았는데.”

율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이락 님 덕분이지요. 아무튼, 이 구명환이 있으니 휘 님한테 먹이고, 남은 건 제가 나중에 바다에 갈 때 쓰면 됩니다.”

이락의 눈초리가 가늘어진다. 나중에? 바다에? 흠,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만약 살다가 방율이 나한테 질려서 바다로 도망가면 어쩌지? 이락의 시선은 구명환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왜 그리 빤히 보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때마침 곁에서 술을 마시던 이들이 심 낭자 이야기를 한다. 아직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구나…. 율은 처음 이곳에 온 날을 떠올렸다. 도감 속 토끼와 너무 다른 이락을 만나 충격을 받은 것과 그를 속이려다 되려 속아서 궁에 끌려간 것까지…. 전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라서요…. 그때는 이락 님과 제가 이렇게 될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락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그래, 넌 그때 내 고환을 털러 온 도둑이었지.”

율이 푸흡 하고 웃었다.

“이락 님도 저를 속이셨지 않습니까. 현상금이 걸린 초상화를 두고 귀신 쫓는 부적이라고 하질 않나.”

“그랬지.”

“또 관아에다 팔아넘기셨고요.”

“응.”

“저를 구해 주셨다는 핑계로 궁에서 받은 보물도 탈취해 가셨지요.”

“원하면 수십 배로 돌려주마.”

“됐습니다. 제가 그걸 가져다 무엇 합니까.”

곰곰이 생각하던 율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지금이라도 말씀해 보십시오. 더 속인 게 있으신지.”

“있다.”

“뭡니까…?”

“실은,”

이락이 말을 멈추자 율은 궁금하여 얼굴을 가까이 디밀었다. 실은?

“강가에서 밤낮으로 너를 기다렸다.”

예상치도 못한 말에 율은 당황하였다.

“오지 않으면 어쩌나, 애간장이 녹아내린다는 뜻을 처음으로 깨달았지.”

“그… 그러셨습니까…?”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 가서 네 아비와 담판을 짓든 널 강제로 끌고 오든 할 작정이었다.”

저만 사무치도록 보고 싶어 한 거면 어쩌나 내내 걱정했는데….

율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일부러 넉살을 떨었다.

“제가 빨리 와서 다행입니다. 아니었으면, 이락 님이 또 저희 아버지의 멱살을 잡을 뻔했습니다.”

“그래, 네가 네 아비를 살렸다. 너 같은 효자를 뒀으니 네 아비는 평생 감사해야 한다. 그 인간이 죽기 전에 그걸 깨달을지는 모르겠지만.”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빈 술병이 늘어 가고 율은 취하여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락이 괜찮으냐고 묻자 헤헤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그대로 상에 툭, 머리를 떨어트리고 잠들어 버린다.

그걸 본 이락은 기가 차서 웃었다.

“누가 주정뱅이 아니랄까 봐.”

이락은 턱을 괴고 잠든 율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 봇짐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구명환 주머니를 발견하고는 미간을 좁혔다.

[남은 건 제가 나중에 바다에 갈 때 쓰면 됩니다.]

버릴까. 없어졌다고 하면 그만 아닌가. 이락은 고민 끝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관두자. 네가 여기서 평생 살 마음이 생기게 내가 더 잘하면 되는 것이지. 약주머니를 봇짐에 넣어 챙기고 율을 등에 업었다.

음식값을 치르고 주막을 나오는데 계절이 바뀌는지 살짝 후덥지근하다. 졸졸 흐르는 개천을 따라 집으로 가는 내내 율은 몇 번 깨어나 이락을 부르다 뒤에서 목을 꼭 끌어안으며 얼굴을 문질렀다. 그 바람에 이락은 며칠간의 피곤함도 잊어버리고 자꾸만 피어오르는 음심에 심란해졌다.

“그러지 마라. 간신히 참고 있으니.”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이락은 어느덧 도성에 마련한 새집 앞에 당도하였다. 대문 앞에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여러 감정이 든다. 수백 년 전 이락은 가족과 함께 이곳에 살았다. 세월이 흘러 많은 것들이 변하고 당시의 모습은 자취를 감춰 버렸으나, 이락은 내내 생각했다.

내게도 만약 반려가 생긴다면… 그땐 이곳으로 돌아오겠노라고.

끼이이- 커다란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깔끔하게 정돈된 화단이 눈에 띈다. 방율이 바다에 있는 동안 이락은 제일 먼저 집을 정리하고 화단에 새 꽃을 심었다. 방율이 돌아왔을 때 그날의 상처를 기억하지 않도록.

그렇게 마당을 가로질러 마루로 올라섰고, 안방으로 가 이부자리를 펴고 방율을 눕혔다. 세상 모르게 잠든 그의 얼굴을 보기 위에 옆에 바싹 붙어 누웠다. 손가락으로 뺨을 꾹 누르니 미간이 꿈틀 움직이며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그 아래 반듯한 콧대와 도톰하고 붉은 입술을 차례대로 훑어 내려갔다. 그러다 시선이 저고리에 고정됐다. 혀를 입 안에서 굴리던 이락은 시치미를 떼고 옷고름을 슥 잡아당겼다.

“쥐방울. 피곤해도 옷은 벗고 자야지.”

저고리가 벌어지고 흰 속살이 드러났는데도 율은 꿈쩍도 하질 않는다. 이락은 잠든 얼굴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쥐방울? 율아? 여전히 미동조차 없는 모습에 이락은 끙, 신음을 냈다.

“그래, 오늘만 날이 아니니, 실컷 자 둬라.”

저고리를 도로 여며 주고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리는데, 갑자기 율이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이락을 쳐다본다. 비몽사몽 눈을 끔뻑끔뻑하더니 손을 뻗어 이락의 옷깃을 잡아당긴다. 응? 못 이기는 척 끌려가자 율이 어설프게 입을 맞춘다.

“이락 님….”

애끓는 목소리에 이락은 인내심이 뚝 끊어졌다.

곧바로 위에 올라타 내려다보니 율이 손을 뻗어 이락의 뺨을 어루만진다.

“하고 싶습니다….”

아, 젠장. 이락은 율의 입술을 집어삼키고 가랑이 사이를 벌리고 들어가 하체를 문질렀다. 얇은 천 사이로 두 개의 양물이 거침없이 비벼지자 율이 허리를 들어 올렸다. 으음…. 삼키지 못한 신음이 밖으로 흘렀고, 율의 귀와 목덜미는 점점 붉게 변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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