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외전)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를 올려다보며 소희는 뒤꿈치를 들고 꽃을 따려 애를 썼다. 겨우 손이 닿아 가지 하나를 꺾어 정자가 있는 곳으로 가려는데 오늘따라 아버지가 손님과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요즘 부쩍 찾아오는 손님이 늘었는데, 대부분은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초조한 얼굴이었다.
그때 첫째 영신이 불쑥 나타났다.
“소희야!”
“아, 깜짝이야. 오라버니 언제 오셨습니까?”
“여기서 뭘 하는 게냐. 수를 놓고 있던 게 아니었어?”
“수를 놓는 것이 지겨워 바람을 쐬러 나왔습니다.”
“태신이는?”
“작은 오라버니요? 글쎄요. 저녁을 먹은 뒤로 통 보이질 않습니다.”
소희의 오라버니는 둘이었는데 첫째 영신은 올해 열여섯이 되었고 어릴 적부터 영민하여 도성 안팎으로 모르는 이가 없었다. 둘째 태신도 영민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문제는 그 똑똑한 머리를 사고 치는 데 쓴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그가 말없이 사라진 날이면 가족의 근심 걱정도 커졌다.
영신은 소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일렀다.
“태신이 오면 나한테 들르라 해. 알았지?”
“혹시 작은 오라버니가 또 아버지의 서책을 훔쳤습니까?”
“아니다…. 도성 안에 흉흉한 소문이 돌아 걱정이 되어 그런다.”
흉흉한 소문…? 소희가 물을 새도 없이 영신은 아버지가 계신 정자로 갔고, 이어서 한참 떨어진 뒷문에선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희는 치마를 들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예상대로 태신이 몸종을 달고 나타났는데 보아하니 어디선가 한바탕한 모양이다.
“오라버니. 오늘도 싸우신 겁니까?”
보자마자 톡 쏘아붙이는데도 태신은 짓궂게 웃는다.
“싸웠지. 그런데 이겼다. 두 놈을 실컷 때려 줬거든.”
소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어쩌려고 그럽니까. 아버지께 야단맞은 게 이틀 전입니다. 이번에 걸리면 창고에 가둔다고 하신 걸 잊은 겁니까. 열두 살이 됐으면 정신 차릴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설마, 또 아버지 서책을 훔친 것은 아니지요? 대체 그것을 가져다 무엇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좋아하는 처자라도 생긴 겁니까?”
“넌 어떻게 말을 할 때 숨을 쉬지도 않아. 신기하구나. 그리고 어차피 내게 물려주실 책이 아니냐. 미리 갖는다고 뭐가 달라져?”
작은 아이가 참새처럼 졸졸 쫓아다니면 잔소리를 하는데도 태신은 그런 여동생이 귀여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더니 품에 손을 넣는다.
“자, 선물이다. 그만 떠들고 받아.”
소희는 덜컥 손을 내밀었다. 내심 기대를 했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손바닥 위에 앉았다가 폴짝 얼굴로 뛰어오른다. 꺄악! 소희가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고 태신은 하하, 웃더니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어린 동생을 골려 준 뒤 태신이 도착한 곳은 어머니가 묵고 있는 별채였다. 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니 얼굴이 초췌한 여인 하나가 이부자리를 깔고 누워 있다. 태신은 그 앞으로 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지금은 거의 별채에 누워만 있었다. 잠시 후 여인이 인기척에 눈을 뜨고는 돌아본다. 퀭한 눈, 홀쭉해진 뺨. 바싹 마른 입술…. 하지만 눈빛엔 애정이 가득했다.
“태신이 왔니…. 얼굴이 왜 그래…. 싸운 거냐.”
“놀다가 넘어졌어요.”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매일 놀러만 다니는구나.”
“따분하게 학당에서 배우는 것보다 들에서 산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아이고, 이 녀석아. 모친은 나무라는 대신 웃으며 아들의 손을 어루만졌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꽤 엄했던 것 같은데, 이젠 그럴 기운도 없어 보였다. 태신은 그것이 좋은 게 아니라, 영영 어머니의 꾸중을 듣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워졌다.
마침 밖에서 서럽게 엉엉, 우는 소리가 났다.
“또 소희를 놀렸어?”
“어린 것이 잔소리가 어찌 심한지 모릅니다. 소희는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를 쏙 빼닮았습니다.”
“그래도 아껴 줘야 한다. 하나뿐인 네 동생이잖니. 일이 생기면 네가 지켜 줘야지.”
“싫습니다. 소희하고 어머닌 아버지하고 형님보고 지키라 하십시오. 저는 나중에 제 색시를 지킬 겁니다.”
귀여운 반항에도 어머니는 나무람 한번 없이 미소만 지었다. 태신은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머니의 곁에 바싹 붙어 누웠다.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니 어머니가 뺨을 애틋하게 쓰다듬어 준다.
“우리 아들, 언제 이리 컸을까. 장가보내도 되겠구나.”
“그러니 얼른 일어나십시오. 제가 중전마마보다 더 예쁜 옷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어머니는 말이 없었고, 태신은 그 이유를 알았다. 의원은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져 올해를 넘기지 못한다 했으니까. 그래서 태신은 아버지가 아끼던 책을 몰래 팔아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갔다. 대쪽 같은 아버지가 알면 집에서 쫓겨날 일이지만, 무속의 힘을 빌려서라도 어머니를 살리고 싶었다.
“노래를 불러 주십시오….”
“도로 아기가 됐구나.”
“불러 주십시오…. 듣고 싶습니다.”
어울리지 않게 떼를 쓰는데도 선뜻 응해 준다. 어머니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졸음이 몰려왔다. 태신은 두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예전처럼 다섯 식구가 오붓하게 나들이를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태신아. 태신아. 태신아 일어나라! 단잠을 깨운 건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눈을 떠 보니 어머니의 표정이 평소와 달리 심상치 않았다.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일어나라. 빨리 이리 와. 그녀는 다짜고짜 아들의 팔을 잡아끌고 뒷방으로 건너갔다. 그제야 이상함을 감지했다. 밖이 유달리 시끄러웠고, 불빛들이 창에 비치어 빠르게 움직이는 게 아닌가. 저도 모르게 그리로 가려고 하니 어머니가 태신을 잡아채 병풍 뒤 다락으로 밀어 넣는다.
“들어가 있거라. 절대 나오면 안 돼. 소리가 들려도 절대 나오면 안 된다! 알았니?”
“무슨 일입니까? 집에 도적이라도 든 것입니까?”
어머니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둑이 들었어. 위험하니 여기 있어야 한다. 아니면 이 어미가 화낼 거야. 알아들었지? 평소와 달리 힘 있고 단호한 목소리에 태신은 기가 죽어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들리더니 잠잠해진다. 어떤 도둑이 들었길래 이리 소란이 난 것일까. 나도 가 봐야 하지 않나. 아니다, 집에는 사병도 있고, 아버지와 형은 검술에 능하니 도둑 하나 잡는 건 일도 아니겠지. 역시 난 이래저래 도움이 되질 못하는구나.
자책하며 좁은 공간에 쪼그리고 있는데 밖에서 문이 부서져라 여닫는 소리가 들린다. 찾아라! 고함과 함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태신은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도둑이 이렇게까지 들어와 활개를 친다고?
그는 어머니와의 약속도 잊고 다락문을 열고 나왔다. 병풍을 젖히고 방 밖으로 나오는 순간 겁에 질려 온몸이 얼어붙었다. 마당에는 하인과 사병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개중엔 신체 일부가 잘려 나간 자도 있었다.
여기저기 신음이 들려왔고 숨이 막힐 듯한 공포가 밀려왔다. 순간 부모님과 형제들이 떠올라 마당을 가로질러 안채를 향해 뛰기 시작하였다. 저 멀리 수십 개의 횃불이 흔들리고 무장을 한 병사들이 보인다.
아버지의 사람들인가. 발이 제멋대로 그쪽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드러난 참혹한 광경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열 명 정도 되는 이들이 죄인처럼 밧줄에 묶여 앉아 있었고 그중에는 어머니와 어린 누이도 함께였다. 눈앞이 새하얘지고 몸이 떨려 왔다. 그러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동그란 것을 발견하고 힘이 풀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아아!”
입 밖으로 비명과 신음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아버지와 형의 머리와 몸뚱이가 따로 분리되어 흙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마침 태신을 발견한 병사가 소리를 질렀다. 저기다! 저기 하나가 더 있다! 잡아라!
눈앞의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넋을 놓고 있는데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도망쳐라! 태신아! 어서 도망쳐!”
절규에 가까운 그 소리는 병사의 발길질로 끝이 났다. 남은 병사들이 몰려왔고, 참담함에 눈이 뒤집힌 태신은 근처에 있던 칼 하나를 쥐고 일어나 서슴없이 달려들었다. 으아악! 그러나 순식간에 칼을 빼앗겼고, 흠씬 두들겨 맞은 다음엔 개처럼 질질 끌려 그들 앞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어린 여동생의 울음소리와 아들을 애타게 부르는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귓가를 괴롭혔다. 뜨거운 것이 머리에서 흘러내렸고 시야가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자 놀랍게도 눈앞에 자신이 숙부라 부르던 남자가 서 있었다.
“쥐새끼처럼 꼭꼭 숨은 줄 알았더니, 용케 나타났구나.”
태신은 입술을 달싹였다. 어떻게, 어떻게…. 며칠 전까지 내 아버지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이가…. 어째서….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눈물이 쏟아지고 억장이 무너졌다. 설마… 그 소문 때문에….
이를 까득 문 태신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정하였다.
“숙부님! 숙부님! 제발 살려 주십시오!”
남자는 침묵했고 태신은 이제 남자의 발밑까지 기어가 매달렸다. 제발요. 숙부님. 살려 주십시오. 어머니와 누이만 살려 주시면 뭐든 하겠습니다! 뭐든 할 테니, 제발 저들은 살려 주십시오!
태신의 애원에 남자의 표정이 변하였다.
“뭐든?”
주위가 조용해진다. 태신은 눈물 범벅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남자가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앞으로 던졌고 뒤에선 어머니가 안 된다며 소리를 질렀다.
“증명해 봐라.”
“…….”
“뭐든 한다고 하지 않았어?”
“숙부님….”
“왜. 네놈 목숨은 아까운가 보지?”
태신아! 어머니의 간절한 외침이 사방에 울렸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아이들은 죄가 없지 않습니까.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발…! 제발…! 이년의 목숨을 거두시고, 아이들만은 살려 주십시오!
“못 하겠어? 그럼 네 어미를,”
태신은 칼을 덥석 쥐었다. 아닙니다. 칼자루를 쥔 손이 덜덜 떨려 왔다. 그걸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등 뒤에서 모친과 누이의 흐느낌이 들리고 이어서 저주 섞인 말들이 쏟아졌다. 안 된다. 태신아. 안 돼! 이놈! 네가 진정 사람이냐. 하늘이 널 용서치 않을 것이다. 내 귀신이 돼서라도 널 저주할 것이야!
순간 윽, 하는 소리에 태신이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어머니가 혀를 깨물었는지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그녀의 입을 벌리고 천을 물린다. 어머니의 눈빛에는 이제 독기만 남았다. 그러면서도 아들을 향해 애원하고 있었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칼을 거두어 달라고.
태신은 그녀를 외면하고 검을 목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숙부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패기는 있구나.”
칼날이 닿은 부위가 서늘하였고, 두려움에 귀에서는 심장 박동 소리가 쿵쿵 울려 댔다. 마음을 다잡으려 태신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숙부는 포식자의 표정을 하고 서늘하게 웃었다.
“안 되겠으면 지금이라도 포기해. 용기를 가상하게 여겨 너만은 살려 주마.”
“숙부님.”
“그래.”
“약속, 꼭 지키십시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신이 칼날을 깊숙이 박아 옆으로 슥 밀었다. 살이 위아래로 벌어지며 그 틈으로 시뻘건 피가 뿜어졌다. 숨을 쉬어야 하는데 쉬어지질 않고 대신 목에서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태신은 숨을 헐떡이며 벌어진 살갗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약속… 지키십시오.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숙부의 얼굴이 광기로 물들었다.
“하하. 네놈이 형보단 낫다!”
태신은 목을 붙들고는 휘청였다. 시야가 흐려졌고 귀에 물이 찬 것처럼 먹먹하다. 몸을 가누려 안간힘을 썼으나 그러질 못하였고 기어코 바닥으로 쓰러졌다. 사색이 된 어머니와 여동생의 얼굴이 나란히 보인다.
어머니. 소자를 용서하시옵소서. 먼저 가지만… 그래도… 어머니 아들도 태어나 행복했습니다. 소희야…. 오라버니가… 네 생일에 주려고 예쁜 댕기를 몰래 사 뒀는데…. 의식이 멀어져 가던 그때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리석은 놈. 나라면 도망을 쳤을 텐데. 그리고 숙부의 걸음이 어미와 누이에게로 옮겨 갔다.
태신은 눈물을 흘리며 입을 벙긋거렸다. 안 돼. 안 돼. 죽이지 않는다고 했잖아. 살려 준다고 했잖아. 나하고 약속했잖아! 숙부가 몽둥이를 높이 치켰고, 어머니와 어린 누이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눈앞에서 혈육의 머리가 으깨어져 죽어 가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아, 어머니. 소희야….
돌아보는 숙부의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번진다. 태신은 피눈물을 흘리며 그 얼굴을 깊숙이 새겨 넣었다. 목숨이 꺼져 가는 와중에도 슬픔은 분노로 바뀌었다.
반드시 갚아 줄 것이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너부터 찾을 것이다.
네 눈앞에서 너의 피붙이를 도륙 낼 것이며 네놈을 평생 지옥에서 살게 할 것이다.
두고 봐라…. 내 기필코 너를… 너를….
시야는 까맣게 변하였고 소리도 덩달아 멈췄다. 얼마나 흘렀을까. 신기하게도 의식이 되살아나며 손발의 감각이 돌아왔다. 오히려 고통은 사라지고 몸도 가벼워졌다. 이곳이 저승인가…. 그러나 몸은 여전히 움직이질 않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저벅저벅 발소리만 들려왔다.
[이 아인가?]
[예, 차사님. 온갖 방법을 다 써도 혼이 몸 밖으로 나오질 않습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됐구나.]
[혹, 염라께서 말씀하신 그 아이일까요?]
[가서 확인하면 알겠지.]
[어? 눈을 뜨려 합니다.]
[기억을 모두 지워라. 이제부터 저승의 아이다.]
[한데, 앞으로 이 아이를 무엇이라 불러야 합니까?]
[글쎄다. 뭐가 좋을까.]
[음…. 이승에서 저승으로 떨어졌으니, 이락이라고 부르면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