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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전-60화 (60/102)
  • 60화

    주막에서 국밥을 먹는데 입을 벌릴 때마다 터진 상처가 아리다. 인상을 쓰니 그럴 때마다 왕구가 안절부절못하고 이락은 계속하여 매섭게 노려보았다. 율은 이래저래 눈치가 보여 최대한 밥은 적게 뜨고 국물만 넘겼다.

    “아이고, 선비님 오랜만입니다. 다시 뵈니 반갑네. 하하.”

    주막의 주인이 두부전을 내온다. 이건 제가 공짜로 드리는 겁니다. 근데, 얼굴이 왜 그 모양입니까. 혹시…. 하고 주인이 이락을 쳐다보다가 흠칫하여 얼른 시선을 피한다. 율은 아니라고 황급히 변명하였으나, 주인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슬그머니 주막 안으로 꽁무니를 빼길래 율은 전을 찢어 이락의 앞으로 놓아 줬다.

    “드십시오…. 맛이 꽤 좋아 보입니다. 형님도 드시고요.”

    “통 먹질 못해서 어쩌냐. 돌아가면 내가 죽을 쒀 줄까?”

    “아닙니다. 잘 먹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그놈들은 어찌 잡으신 겁니까?”

    “다 큰형님 덕분 아니겠어. 놈들을 보자마자 형님이 팔을 그냥 뚝!”

    왕구가 이야기를 하다가 이락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바꾸었다.

    “팔을 살짝 아프게 하니, 제비들 있는 곳을 술술 불더라. 하여튼 나쁜 놈들이 의리도 없다니까. 우리 방울이 봐라. 얼마나 의리가 넘치고 정이 많냐. 나를 위해서 그 고초를 겪었는데도, 원망은커녕 내 걱정부터 해 주고…. 내가 정말… 목이 메어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

    그 말에 이락이 텅 비어 버린 왕구의 국그릇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서 밥을 두 그릇이나 처먹어?”

    핀잔을 들은 왕구는 민망하여 물을 들이켰고, 율은 두 사람의 대화가 웃겨서 슬그머니 미소 짓다가 찢어진 입술이 아파 얼굴을 찡그렸다. 그렇게 전을 조그마한 크기로 잘라 입에 넣고 씹는데 맛이 꽤 고소하다. 율은 두부를 조금 더 잘라 냈다.

    그 사이 왕구가 갑자기 생각난 듯 이락을 부른다.

    “그런데 형님은 어제 거기 왜 가신 겁니까? 최근에 발길을 끊은 줄 알았는데요.”

    “그럴 이유가 있다.”

    “혹시 마음에 드는 기녀라도 생긴 겁니까? 누군지 저한테 살짝만 말해 보십시오.”

    이락이 입 다물고 밥이나 먹으라고 눈빛을 보냈으나 눈치 없는 왕구는 혹시 삼월이냐, 아니면 매향이냐. 아니면 새로운 기생이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을 퍼부었다. 율은 밥을 깨작깨작 먹으면서도 귀로는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 아, 역시…. 기녀를 만나러 가신 게 맞구나. 음식을 먹는데 왜 이리 입 안이 까끌까끌한지 모르겠다.

    그러다 이락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저를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넌 나한테 할 말 없어?”

    “무… 무슨 말이요?”

    “아무 말이나.”

    율은 최대한 머리를 짜내었다. 저리 묻는 건 듣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겠지. 역시….

    “음… 어제 이락 님의 좋은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이락이 서늘하게 쳐다보길래 율은 찔끔하여 헤헤, 하고 웃었다. 그러자 이락이 한숨을 내쉬더니 밥이나 먹으라며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가 주막 안으로 들어가서는 주인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단둘이 남은 율과 왕구는 조용히 목소리를 낮췄다.

    “아무튼, 정말 미안하다. 나 때문에….”

    “그만 사과하십시오…. 제가 선택한 일입니다. 물론 중간에 일이 틀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형님 돈은 찾았으니 다행입니다.”

    “앞으로 내가 너한테는 정말 잘해 주마. 진심이야. 너 괴롭히는 놈들은 다 패 줄게.”

    이락 님도 패 주실 수 있습니까? 율은 순간 저도 모르게 그리 물을 뻔했다. 하긴, 왕구를 위험에 빠트릴 순 없지. 고맙다고 말하며 웃고 있는데 마침 손님 둘이 주막 안으로 들어온다. 둘 다 선비처럼 보였는데 대낮부터 술을 시키더니 한 잔씩 주고받기 시작했다.

    곧 율에게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 소문 들었나?”

    “무얼?”

    “요즘 벽서가 돌고 있다는데… 내용이 글쎄….”

    속닥속닥 귓속말을 주고받자 다른 한 사람이 에엑! 하고 놀란다.

    “에이, 그럴 리가 있나. 자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겠지.”

    “나도 처음엔 그리 믿었지.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나.”

    “뭐가?”

    “갑자기 궁궐 연못에 커다란 연꽃이 피고, 그 안에서 사람이 나온 게 말이 되냐 이 말이야.”

    “필 수도 있지.”

    “그래, 필 수 있어. 근데 그 시기가 하필이면 중전마마가 돌아가시고, 국모의 자리가 비었을 때란 말이지.”

    “그러니 하늘에서 내린 중전이라 하겠지.”

    “그게 아니라 항간엔… 사술이란 소문이 있어.”

    “사술?”

    “자네 바다 가 봤나? 그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모르지? 뱃사람 중에도 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이가 부지기수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젊은 처자가 거기서 살아왔다? 이건 진짜 말이 안 되거든. 거기다 바다 한가운데 연꽃이라니. 더더욱 의심스럽지 않은가?”

    처음엔 아니라 반박하던 이도 듣다 보니 이상했는지, 차츰 동요하기 시작한다. 율은 음식을 먹지도 못한 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말하는 걸 듣고 떠오른 이가 딱 하나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심 낭자였다.

    왜 저들이 심 낭자 이야기를 하는 걸까. 벽서는 또 뭐고. 없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어낸 이야기가 사실인 것처럼 왜곡돼 들불처럼 번지고 때로는 화마가 되어 죄 없는 누군가를 집어삼키기도 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이건 나도 들은 얘긴데, 중전이 최근에 회임하였지 않나. 근데 그 아이가 실은 임금의 아이가 아닐 수도 있대.”

    “예끼, 이 사람아. 큰일 날 소리를.”

    “들어 봐. 중전이 사가에 갈 때마다 모시는 무사가 하나 있는데, 근데 중전을 보는 그놈 눈빛이 수상하더라는 거야. 그리고 왕이 사냥하러 궁을 비울 때마다 그자가 중궁전에 몰래 드나드는 걸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래.”

    이쯤 되니 정말 그럴듯하게 들려온다. 게다가 이야기를 듣는 건 저만이 아니었다. 맞은편에 있던 장사치들도 언젠가부터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주막 부엌으로 들어갔던 이락이 나온다. 이락이 나타나자 대화가 멈추고 그들은 음식을 먹는 척을 하였다.

    율은 조금 전 들은 이야기가 영 신경이 쓰여 음식을 먹는 것에 더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수저와 젓가락을 내려놓으니 왕구가 입맛이 없느냐고 묻는다. 배가 부르다는 핑계를 대고 그렇게 셋은 주막을 나왔다. 그런데 이락의 손에 못 보던 것이 들려 있었다.

    “이락 님…. 그것은 무엇입니까?”

    “두부.”

    “두부는 왜….”

    율은 자신이 아까 두부를 맛있게 먹은 걸 떠올리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하지만 곧 부정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너 먹으라고 샀다.”

    놀라서 이락을 쳐다보는데 눈길조차 주질 않는다. 그런데도 율은 감동하여 코끝이 찡해졌다. 비록 말은 인정머리 없게 하지만 이락의 행동은 다정한 구석이 제법 있었다. 좋아서 삐쭉삐쭉 웃음이 새는데 이락이 부른다.

    “표정이 왜 그래? 웃는 거냐, 인상을 쓰는 거냐?”

    “웃고 싶은데 입술이 아파 그럽니다.”

    그러자 갑자기 율의 턱을 쥐고 찬찬히 살핀다.

    “쯧. 연고를 발라도 왜 그대로야.”

    율은 민망하여 그 손을 거두어 냈다.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요. 그런데 옆에서 걷던 왕구가 아까 주막에서 들은 이야기를 꺼낸다. 중전의 이야기를 하며 사실 자기도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요즘 도성에 꽤 퍼져 있다는 말에 율은 조금 충격을 받았다.

    “하긴,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여인이 그 깊은 바다에 빠졌다가 살아난 게 말이 됩니까. 형님 같은 분도 방울이의 도움 없이는 힘든데요. 아니 그렇습니까? 아니 그러냐, 방울아?”

    이락은 대답이 없었고 율은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왕구를 쳐다봤다.

    “그… 그렇진 않을 겁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뭍으로 왔을 수도 있지요….”

    “도움? 그 깊은 바다에서 누가? 방울이 네가 도왔다면 말이 되겠구나. 하하.”

    그 말에 율은 이락의 눈치를 살폈다.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조금이나마 심 낭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 싶어 사실대로 털어놨다.

    “실은, 제가 그랬습니다….”

    왕구가 걸음을 멈췄고, 여태 반응이 없던 이락도 율을 돌아봤다.

    “제가 그분을… 살렸습니다.”

    왕구가 입을 벌리고 쳐다본다. 이락의 표정은 어딘가 묘하게 바뀌었다. 율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는 궁에 잡혀갔을 때 만난 이야기까지 털어놨다. 듣고 있던 왕구는 이락을 쳐다보며 울컥했다.

    “큰형님. 방울이를 팔아넘기셨습니까?”

    하지만 이락은, 대꾸하지 않고 율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래서. 그 여인이 심 낭자다?”

    “예. 그러니 그분에 대한 소문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비를 위해서 그런 것도 맞고, 바다에 빠져 뭍으로 옮겨 가는 도중 커다란 연꽃이 있길래 거기에 그분을 실은 것도 접니다…. 그것이 어찌하여 궁궐까지 옮겨 갔는지는 모르지만, 대부분 사실이니 지금 돌고 있는 소문은 누군가 심 낭자를 모함하려 꾸며 낸 것이겠지요….”

    그러자 왕구가 호기심에 눈빛을 반짝인다.

    “꾸며 내? 누가?”

    율은 잠시 고민하다 결론을 냈다.

    “누군진 모르지만… 아주 나쁜 자들인 건 분명합니다.”

    “나쁜 자들?”

    “그렇게 심성 고운 아가씨에 대해 없는 소문을 만들어 내니 나쁘지요. 아마 옥황상제께서도 크게 벌을 내리실 겁니다.”

    율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속내를 털어놨다. 그러다 이락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그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율은 괜한 이야기를 한 건 아닐까, 고민하였으나 그래도 둘에게만큼은 자신이 아는 진실을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락은 말없이 돌아서 집으로 향하였고, 왕구는 율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네가 맞다고 하니, 나도 믿을게! 내 중전마마를 욕하는 놈들이 있으면, 혼을 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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