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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전-3화 (3/102)
  • 3화

    사방이 고요하다. 동그랗게 뜬 보름달이 강을 비추고 그 은은한 빛을 따라 작은 자라 한 마리가 물길을 헤치고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물 밖으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자라는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완전한 사람의 형상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윽!”

    갑자기 바뀐 모습에 율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랜만에 자라로 변하였더니 적응이 힘들다. 손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더듬어 제대로 돌아왔나 확인한 다음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율은 바다에 살았으나 태어날 때부터 등껍질이 없었다. 완전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태어나는 수인이 간혹 있었는데 율 또한 그러했다. 그들은 대부분 인간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였는데, 인간이 많은 육지와는 달리 바다에선 그 모습이 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부친은 율이 태어났을 때 크게 실망하여 사흘 밤낮을 술만 마셨다고 한다. 갖다 버리겠다는 걸 모친이 겨우 막아 아들을 살렸다고 하는데, 그때 버려졌다면 지금쯤 망망대해를 떠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율은 이른 나이에 궁에 들어갈 결심을 하게 됐다. 반쪽짜리 수인들이 시험을 쳐 궁에 들어가면 용왕은 그들을 위해 꼬리를 만들어 주거나, 긴 수염을 달아 주거나, 딱딱한 등껍질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시험에 합격한 뒤 율은 등껍질을 껴안고 밤새 기쁨의 눈물을 흘렸었다.

    “꼬리도 만들고, 껍질도 만들어 내시는 분이, 왜 본인의 병은 고치지 못하는 걸까.”

    잠시 옛 추억을 회상하며 투덜대던 율은 강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한숨을 터트렸다. 그리고 뭍으로 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몇 번 강가로 나와 본 적은 있으나 딱 여기까지였다. 하늘에 매달린 커다란 달과 촘촘하게 박힌 별들을 구경하고 매번 그대로 돌아갔으니까.

    그런데 방금까지 환하던 달이 시커먼 먹구름 사이로 얼굴을 감춘다. 느낌이 좋지 않다. 수풀을 헤치며 언덕을 올라가자 주변이 더더욱 컴컴해졌다. 어디가 길인지도 모르겠다. 조심조심 발을 내딛는데 마침 바람이 불어왔고 바닷속 수초와는 달리 육지의 풀들은 몸을 부대끼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율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주변을 경계했다. 낯선 곳에 혼자 떨어져 있으니 너무 무섭다. 강가로 되돌아가 잠을 청한 뒤 날이 밝으면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마음을 고쳐먹고 돌아서던 그때 어둠 속에서 파란 불빛 두 개가 무섭도록 번쩍이며 빛을 뿜어냈다.

    “뭐야, 저건…?”

    순간 크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달빛에 검은 형체가 드러난다.

    겁에 질린 율은 뒤로 주춤 물러섰다.

    “뉘, 뉘시오?”

    대답 대신 다시 크르릉, 하는 섬뜩한 소리가 천지에 울린다.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고 발끝에서부터 두려움이 타고 올라왔다. 소리의 정체는 모르겠으나 공격을 하기 직전이라는 것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 저리 가시오. 나는 댁한테 볼일이 없소!”

    휙-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 형체가 율을 향해 날아올랐다. 율은 몸을 돌려 빠르게 달리기 시작하였다. 으악, 살려 주시오. 제발 살려 주시오! 나는 맛이 없소! 거기다 병이 있소! 먹으면 댁도 병에 걸릴 게 분명하오!

    없는 말을 막 지어내며 죽기 살기로 뛰었으나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아, 어머니.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토끼를 데려가기도 전에 제가 먼저 죽게 생겼습니다.

    온 힘을 다해 도망치던 율의 머릿속에 순간 번뜩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펑, 하고 자라로 재빨리 변하여 껍질 안으로 머리와 팔다리를 후다닥 숨겼다. 그러자 소리가 멈추고 무언가 킁킁, 율의 등껍질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작은 몸뚱이가 들리고 까드득, 까드득 껍질을 긁는 소리가 났다. 껍질 안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던 율은 제발 살려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렇게 숨도 쉬지 않고 있으니 잠시 후 몸이 툭 아래로 떨어진다.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갔나? 간 건가? 고개를 내밀고 싶었으나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래, 차라리 여기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자. 껍질 안은 좁고 답답하여 팔다리가 저렸지만 죽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그렇게 몸을 떨던 율은 어느덧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

    “뭐야, 이건? 죽은 건가?”

    “등에 요상한 게 달렸네. 형님. 막대기로 한 대 때려 봐요.”

    딱, 하는 소리에 율은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 떴다. 헉.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니 눈앞에 수인 둘이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쳐다보고 있다. 머리 위로 동그란 귀가 쫑긋 솟았는데 도감에서 본 그림으로 추측하자면, 저건… 곰이다.

    곰이 뭘 먹는다고 적혀 있었지?

    곰곰이 생각하던 율은 기겁하여 조심스럽게 양 주먹을 쥐고 방어 태세를 갖췄다.

    “이봐. 넌 뭔데 여기서 자고 있어?”

    “꼴이 왜 이래. 거렁뱅이야?”

    율은 입을 달싹였다. 그들의 말을 듣고 보니 자신의 옷에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바닥을 짚고 일어나는데 좁은 껍질 안에서 웅크리고 잤던 탓인지 다리가 저리고 힘이 풀린다. 끙, 하고 다시 일어서려고 하니 앞에 있던 덩치 큰 수인이 율의 팔을 잡아 주고 얼굴에 묻은 흙을 닦아 준다.

    “너 암컷이지?”

    그 말에 율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수컷입니다….”

    수컷이란 말에 닦던 손을 거두고는 다시 홱 내던진다. 율은 졸지에 내동댕이쳐져 바닥에 뒹굴었다.

    “그렇군. 근데 왜 여기서 처자고 있어? 여기가 네 집 안방이야? 등에 그 봇짐은 뭐고? 처음 보는 건데? 이렇게 딱딱한데 뭐가 들어 있지?”

    막대로 껍질을 건드리기에 율은 옷을 추스르고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저는… 용궁에서 온 별주부 방율이라고 합니다.”

    “용궁? 별주부?”

    “예, 서해 바다요. 그러니까…음, 물속이요.”

    곰들이 흥미로운 표정을 한다. 물속에 산다는 말이구나? 이야, 물속에 사는 수인은 처음인걸. 그들은 율의 앞뒤를 살피면서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였다. 태도를 보니 적어도 저를 잡아먹지는 않겠구나, 안도감이 살짝 들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육지에 사는… 토끼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토끼란 말에 그들의 얼굴이 묘하게 굳어진다. 그러더니 둘이 시선을 주고받는다.

    “토끼는 왜?”

    “혹시 어디 사는지 아십니까…?”

    그들 중 귀가 검은 자가 턱을 쓸었다. 흐음, 알긴 아는데. 그게 가르쳐 주기가 좀…. 뜸을 들이기에 율은 품에서 작은 주머니를 찾았다.

    “만약 알려 주시면, 제가 보답을 하겠습니다.”

    “보답?”

    율은 주머니에서 진주를 꺼내었다.

    “이걸… 드리겠습니다.”

    갈색 곰이 재빨리 진주를 가져가 살피더니 입에 날름 넣는다. 먹는 건가? 단숨에 씹더니 으득 소리와 함께 아이고, 하고 턱을 잡고 몸서리를 친다. 놀란 율이 그를 말렸다.

    “아니, 그걸 왜 드십니까?”

    “먹는 게 아니었어?”

    “설마요…. 그건 진줍니다. 보물이요.”

    보물? 옆에 있던 검은 곰이 갈색 곰의 입을 벌려 진주를 꺼낸다. 새꺄, 뱉어. 얼른 뱉어. 침이 잔뜩 묻은 그것을 옷에 슥슥 닦더니 하늘에 비추고는 눈을 찡그렸다. 갈색 곰 또한 턱을 붙잡고 그것을 같이 확인했다.

    “이게 참말로 보물이란 말이지?”

    “예, 토끼님을 찾는 걸 도와주시면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흐음, 검은 곰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띤다. 토끼라면 알긴 알지. 근데, 여기서 좀 걸어야 하는데 괜찮겠어? 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우릴 따라와.”

    그들이 흔쾌히 앞장섰고 율은 뒤를 따라 걸었다. 해가 떠 있을 때 보는 육지의 풍경은 밤보다 더 흥미로웠다. 책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구나. 어젯밤 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곳은 키가 큰 꽃들이 만발하였다. 육지의 꽃은 이렇게 생겼구나. 손을 뻗어 만지니 잎이 부드럽다. 신기하여 슬쩍 웃었더니 갈색 곰이 돌아보며 율을 보고 덩달아 웃는다.

    “신기한가 보네?”

    “예, 여기까지 온 건 처음이라서요.”

    “근데 토끼는 왜 찾는 거야?”

    “그분께 부탁이 있어서 왔는데…. 혹시 그분을 잘 아십니까?”

    “암. 알고말고. 호형호제하는 사이랄까?”

    율은 반가움에 뛸 듯이 기뻤다. 이렇게 쉽게 토끼를 찾다니. 어쩌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이후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애써 부정적인 생각들을 몰아내며 율은 걸음을 서둘렀다.

    육지에서 걷는 것과 물속에서 걷는 건 사뭇 차이가 있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다리가 아프고 몸은 점점 무거워졌다. 하지만 곰들은 커다란 덩치에도 불구하고 걸음걸이가 사뿐사뿐 해파리처럼 가벼웠다.

    율은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머리 위까지 옮겨 갔다. 신기하여 쳐다보던 율은 강한 빛에 눈이 머는 것 같아 얼른 고개를 떨구었다.

    “자 다 왔다!”

    곰의 말대로 눈앞에 집이 한 채 나타났다.

    그때 저 멀리 풀숲에서 누군가 불쑥 튀어나와 곰들을 부른다.

    덩치는 작았으나 몸에 근육이 잔뜩 붙어 있었다.

    “형님들! 어서 와 보셔야겠소! 그놈들이 나타났소!”

    검은 곰이 곧바로 달려갔고 갈색 곰은 그 뒤를 쫓으며 율에게 소리쳤다.

    “들어가서 기다려라! 금방 나오실 거다.”

    졸지에 혼자 남겨진 율은 집 주변을 서성이다 사립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하겠습니다…. 아무런 응답도 없다. 집의 모양은 용궁과 비슷하였는데 쓰이는 자재들은 많이 다른 듯하였다. 한쪽에 우물이 있길래 그리로 가서 양동이에 길어 둔 물로 얼굴을 비추어 봤다. 흙이 잔뜩 묻어 곰의 말대고 거지가 따로 없었다.

    율은 갓을 벗고 물로 대충 세수를 했다. 옷에 묻은 흙을 털려고 봇짐과 등껍질을 내려놓고 보니 등껍질에 사납게 긁힌 자국이 여러 개다. 불현듯 어젯밤 일이 떠오른다. 꽤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구나. 속상하지만 목숨은 건졌으니 다행이었다. 혹시나 지워질까, 헝겊에 물을 묻혀 껍질을 닦았으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흐흐흥!]

    갑작스러운 소리에 율은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그때 또 안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나 죽을 거 같아요! 이락 님! 나 죽어! 아으으응!]

    생전 처음 들어보는 비명에 놀라 얼른 껍질과 봇짐을 주워 챙겼다. 비명은 계속하여 이어졌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좋아요. 너무 좋아요! 더! 더! 죽겠다더니 이제 좋단다. 대체 무슨 상황이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신음이 뚝 멈춘다. 뭐야. 진짜 죽은 건가.

    어떡하지. 나라도 나서서 도와야 하나. 율은 마당에 뒹구는 막대기 하나를 주워 집 쪽으로 걸어갔다. 심장이 두근두근. 손끝이 떨리고 몽둥이를 쥔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간다. 조심스럽게 툇마루로 올라서던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린다.

    깜짝 놀란 율은 뒤로 나자빠졌고 머리 위에선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쥐새끼가 있었네?”

    고개를 들자 눈앞에 8척은 되어 보이는 사내가 윗옷은 벗은 채 바지를 추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등 뒤로 방 안에서는 인간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속곳 차림으로 저고리를 막 걸치는 중이다.

    율은 고개를 돌려 다시 눈앞에 있는 사내를 올려다봤다.

    “어어…? 귀?”

    사내가 율을 보고 한쪽 눈썹을 치켜든다. 귀, 뭐? 그러나 율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머리 위로 쫑긋 솟은 흰색 털은 토끼의 것이 분명한데…. 그런데… 토끼라고 하기엔 너무…. 너무….

    마침 사라졌던 갈색 곰이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형님. 잡았어요. 그놈들 잡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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