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61)

* * *

“우리 바이킹 타자!”

“난 독수리 요새~.”

“난 범퍼카 탈래.”

애들이 삼삼오오 흩어져서 각자 저들이 좋아하는 놀이기구로 향했다. 주현이와 나는 제일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방금 나눈 혼돈스러운 대화 가운데 애써 평정을 지켜보려 노력했다. 그 노력이 늘 지켜진다면 참 좋을 텐데. 차마 숨겨지지 않는 이 복잡한 마음을 다스리는 와중에, 주현이가 내 손을 잡고 앞으로 이끌었다.

“가자. 가하.”

“응…….”

뭐가 그리 좋은지, 뭐가 그리 급한지. 나는 주현이를 이해할 수 없었고, 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 애와 나는 다르니까. 우리는 태생도 등급도 집안도 다 달랐다. 어느 것 하나 겹치는 것이 없었다. 나는 잡힌 손을 따라 사람 없는 놀이동산을 힘껏 뛰어다니면서도,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이 떠다녔다.

망하면, 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망한다, 라는 의미를 알아차리기엔 나는 너무 어렸고, 아는 게 없었다. 막연한 불안감을 물리치기에는 그 단어가 주는 강렬함에 나는 사로잡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건 주현이와 함께 롤러코스터 맨 앞에 타고, 정신없이 흔들리는 가운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와아아~.”

“무서워!”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가운데, 지석이네 아버지의 배려로 오늘 하루 입장할 수 있었던 건 우리 반 애들로 한정되었던 터라, 놀이동산은 우리 반 애들을 제외하면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가 않았다.

마치, 어디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망해 버린’ 놀이동산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물론 놀이동산 특유의 찬란하고 알록달록하게 빛나는 조명과 경쾌한 효과음들이,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렸지만 오히려 더욱 대비되어 보였다. 아마 내 기분이 그래서 그런 거겠지. 행복한 사람들 가운데 나 혼자 불행한 엔딩을 맞는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마치 속이 텅 비어 버린 듯한 이 공허한 불안감에 나는 롤러코스터가 멈추고 발을 딛자마자 헛구역질을 했다.

“우웩…….”

“가하, 괜찮아?”

“어…… 웩.”

주현이는 버스에서 보이던 날카로운 표정은 어디에다 뒀는지 내 어깨를 붙잡고 걱정스레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다가 생각이 난 듯, 교복 바지 주머니에서 딱 봐도 보드러운 재질의 손수건을 꺼내서 내게 건넸다. 내가 봐도 구역질을 닦기에는 너무 아까운 천이었다.

“이거 써, 가하.”

“아니, 아니야. 나…… 우욱,”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 구토감으로 부끄러움이 치밀었다. 건넨 손을 가볍게 뿌리치며 가까운 화장실로 달려갔다.

“나, 나, 잠시만.”

“……알았어. 여기, 기다릴게.”

나는 텅 비어 있는 놀이동산과 마찬가지로 텅 빈 화장실의 맨 끝 칸으로 들어갔다. 불편하게 게워내는 것은 음식물도, 토사물도 아니었다.

텅 비어 버린, 그저 공기와 같은 무언가.

“……욱.”

내가 버스 안에서, 음악실 안에서 무심코 두고 온 불안감처럼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자꾸 나를 괴롭혔다. 나는 입 안이 마를 정도로 신명나게 게워내고, 화장실 개수대에서 손과 입을 비누로 박박 씻으며 쓰라린 위액 냄새를 지워 보려 했다.

손등이 건조함으로 따갑고 코끝이 비누 냄새로 마비되었을 무렵에야 화장실을 나섰다. 힘이 조금 빠진 발걸음으로 먼저 주현이를 찾았다.

‘아까, 저쪽에…….’

급하게 뛰어왔던 주변을 대충 되짚어 가며 살폈다. 그 시선 끝에 옅은 머리카락 색을 가진 주현이가 벤치에 앉아 있는 게 걸렸다. 주현이를 발견하자마자 입이 반갑게 열렸다.

“주현, 아.”

그때, 중앙대로에서 제법 요란한 음악과 함께 커다란 행렬이 시작됐다. 광고에서만 보던, 이 네버랜드의 하이라이트 퍼레이드였다. 대인원의 사람들이 화려하게 꾸며진 의상을 입고 화장을 한 채로 춤을 추기도하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다. 혹은 커다란 성이나 마차에 타서 묘기를 부리기도 했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반 애들 모두가 넋을 잃고 구경하기 바빴다.

“와아…….”

그 무리에는 아까 버스 안에서 디즈니랜드가 최고라고 으스대던 여자애도 있었다. 다들 눈앞에 펼쳐지는 즐거움에 정신이 팔리고, 요란한 퍼레이드의 소음으로 내가 부르는 소리는 자연스레 묻혔다. 내가 주현이가 있는 곳을 한 발을 떼자, 뒤에서 누군가가 내 어깨를 턱, 하고 강하게 잡았다. 누구지, 우리 반 애들 중에서 나에게 말을 걸 사람은 없는데. 선생님인가.

“……가하야. 엄마야.”

뒤돌아 본 그 자리에, 낯선 표정을 한 엄마가 있었다.

“……엄……마?”

“가하야, 세상에.”

엄마는 얼굴을 울 것처럼 일그러뜨리며 나를 거세게 안았다. 언제 또 바꿨는지 모를 진한 향수가 예민한 코끝을 찔러대었다. 다분히 초췌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한 엄마는 나를 놓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놓았다가는, 누가 뺏어 갈 것처럼 꽉 쥐었다. 주현이처럼 거세게 안았다. 두 명이 닮았다고 하면 조금 이상한 말이겠지만, 그랬다.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데…….”

“엄마.”

평소와 다른 표정과 행동, 그리고 말. 나는 거기서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예를 들면 늘 고고한 표정에 웃음이 떠나지 않던 엄마가 흐느끼다시피 말하는 목소리도 그렇고. 나는 간신히 눌러 둔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쳐드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상한 말을 들었어. 친구가 그러는데, 주현이가 그랬는데…….”

나는 이리저리 튀어나오는 말들을 계속해서 고르고 골랐다.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방금 들은 그녀의 절박하고 정감 어린 젖은 목소리가, 과거에 내가 알던 그 엄마로 돌아간 거 같았다. 내 말을 들어 주던 예전의 엄마로.

“세상에, 같은 자식 키우는 사람이. 제 자식 좋다는 친구 하나 도와줄 생각을 안 하니?”

내 기대와 달리, 다시 본 엄마의 얼굴은 별다르지 않았다. 초췌한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진 거무스름한 응달은 욕심으로 그려진 게 여전했다. 나는 구역질처럼 다시 치미는 거북함에 차마 엄마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신발 코 위로 떨어뜨렸다. 엄마는 내 신발을 보고 얼굴에 은근한 화색을 띄웠다.

“……좋은 신발 신었네. 그래도 잘 지냈나 보구나. 그러면 그렇지. 자기 자식이 좋다, 좋다 하는데 섭섭하게 하진 않았겠지.”

오늘 신은 신발은 새것이었고, 박 비서 아저씨가 저 멀리 프랑스로 출장을 간 김에 사온 것이라고 했다. 그런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엄마는 다 아는 표정이었다. 엄마는 미용실에 널린 잡지를 열심히 읽곤 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엄마.”

그런 말 하지 마. 엄마의 말이 더해 갈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증폭 되어 갔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 등 뒤로 흥겹게 소리 나는 퍼레이드를 보고 있는 애들이, 주현이가 이러한 모습을 보지 않기를 원했다. 밝은 세상과 신나는 음악들 사이에서 가려지지 않는 어두운 욕심을 몰랐으면 했다. 엄마의 눈빛이 또 희번덕 빛났다.

“그래, 가하야. 엄마야. 거기서 네게 전화를 못하게 해서, 내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엄마 너 보내고 나서 후회했어.”

“…….”

무엇을?

나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정말로 후회한 건 나를 보낸 게 아니라…….

“자기네들이 잘 돌보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라더니, 아빠 사업을 어떻게 저리 박살을 내니? 그것도 자기네들 살겠다고?”

예전에 세 가족이 비좁게 살던 집에, 비가 와서 애들이랑 놀지 못하는 날이 있었다. 추적추적 오는 빗방울을 따라 낡은 베란다 새시 사이로 사람 구경을 하다 보면 가끔, 아주 가끔, 이런 얼굴을 한 사람이 골목길을 다니곤 했다.

“가하야, 네가 좀 말 좀 해 봐. 응? 이렇게는 안 돼. 너 동생도 있는데 어떻게 말 하나 없이 부도를 낸다 하니? 우리 뭐 먹고살라구…….”

엄마는 미친 사람이니 가까이 가지도 보지도 말라 하곤 했다. 그때에는 그게 무슨 말이냐 싶었다.

보기만 해도 옮는 병은 없다.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제껏 잘 도와주고, 이러는 게 어디 있어…… 너한테 말이라도 전해 달라니까 그 비서라는 작자가 대꾸도 안하더라. 너 이러는 거 알고 있었니?”

“…….”

그건 아마 그게 보이지 않는 병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젖어들고 물들어 가는 그런 병.

병들어 가는 것도 모르고 그저 빠져 들어가는, 그런 병.

동화에 나오는 동아줄 마냥 나를 붙들고 있는 이 억센 손으로부터 그러한 병이 스멀스멀 물들어 오는 것을 느꼈다. 엄마, 이러지마…….

“아니…….”

“너는, 집에서 TV만 보더니 그런 것도 몰랐어? 아빠 회사 이름이 밤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못 봤냐구…… 그 애가 말 한마디 안 해 주던?”

“걔, 그런 거 잘 몰라, 엄마…….”

“모르긴!”

내 말에 엄마가 마치 비 오는 날 돌아다니는 그 사람처럼 발작하듯이 소리를 내었다. 나는 그 큰소리에 깜짝 놀라면서도,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누군가 이걸 보고 이리로 올까 봐.

그 애가, 올까 봐…….

“걔가 애라고 그 집사람 아닌 줄 아니? 얘는 거기 살면서도 몰라? 이러니까 만만하게 보고 그 따위로 말을 하지. 내가 속이 터져서 정말…… 얘는 누구를 닮은 거야?”

“…….”

“좋다고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태도 싹 바뀌는 게…… 정말 너한테 그런 말 한 마디도 안 했어?”

흥분해서 씩씩대는 엄마에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의 표정이 요상하게 변하더니 갑자기 화색을 띄었다. 급격한 태도 변화에 내 두 팔을 타고 닭살이 돋았다.

“……그래? 그럼 집에 가자 가하야. 아빠랑 엄마랑 있자 응? 그러고, 주현이 걔. 걔한테 좀 말 좀 해 봐. 너 집에 오니까 힘들다구.”

“…….”

“어서.”

엄마는 내 팔을 힘을 주고서 당겼고,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대답했다.

“……정말이야?”

“어서 가자니까. 뭐가 정말이니?”

버스가 지나친 산자락에서 핀 이름 모를 분홍 꽃과 닮은 엄마의 입술 색을 보면서 대꾸했다.

“정말…… 우리 집 망해?”

“안 망해!”

엄마가 구두 굽으로 바닥을 내리치듯이 발을 굴렀다. 다행히 아직도 우리 뒤로 퍼레이드가 한창이라 그 소음을 들은 사람이 없는 모양이었다. 들었다면 내 등 뒤에 있는 애들이 저렇게 깔깔대고 있을 리가 없다. 엄마는 눈 주변이 벌겋게 변하도록 토로했다.

“내가 여기까지 올라가자고 어떻게 했는데, 이러고 그냥 갈 거 같니? 나보다 등급 낮은 사모들이 무슨 말을 해도 꿈쩍도 안 했는데, 이까짓 일 가지고…….”

내가 가지 않으면, 엄마는 분명 그 애가 싫어하는, 결벽증에 다다르게 한 말과 행동을 하겠지. 어린 우리의 논리에 맞지도 않고 이해되지 않는 것들. 일부러 보지 않아도 알게 되는 사실이었다.

나는 엄마의 자식이었고 뻐꾸기의 새끼였기 때문에. 나는 더 잘 알았다.

그게 가족이라는 굴레였다.

“……갈게.”

“자식 팔아먹는다는 소리나 하고, 그러는 자기들은 그 꼬맹이 관심하나 못 받아서 울상인 주제에…… 뭐?”

“가자고, 엄마. 집에 가자.”

아마 평생토록 내가 메고 갈 굴레.

그런 말 하지 말고, 이제 가자…… 나는 엄마의 여윈 손을 잡고 앞으로 당겼다. 가자.

“가야, 집이 힘든지 아닌지 주현이한테 말하지…….”

내 변명 같지 않은 변명에 엄마는 흉하게 일그러뜨린 얼굴을 애써 펴 보였다.

“아유, 그래. 그래. 엄마가 힘들어서……. 큰 소리 좀 냈어. 이해하지?”

“……응.”

가족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나는 엄마의 손을 이끌고, 내 집 같지 않던 집으로 향했다. 엄마가 작은 화색을 띄며 들떠서 이런 소리 저런 소리를 늘어놓느라 정신이 잠시 팔린 것을 틈타서, 나는 몰래 뒤를 돌아보았다.

그 애가 서 있던 그 자리로.

“…….”

만남과 이별은 늘 붙어 다닌다지만, 그게 오늘이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집에 간다고 해서, 내가 그 애에게 엄마가 원하는 소리는 하지 않을 거였다. 엄마의 말을 따르는 것은, 그 학교에 가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그리고 그게 나를 아껴 주던 그 애에게,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주현아.’

어린 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끼는 전부.

누구에게도,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보여 주지 않고, 내 마음에만 꼭꼭 숨겨 둘 것이다.

누구도 그 애를 해하지 못하도록. 그 애가 싫어하는 일은 겪지 않도록.

“……안녕.”

인사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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