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61)

* * *

어제의 충격적인 ‘인사’에 종지부를 찍고, 다음날 학교에 도착하자 웬일로 나보다 늘 일찍 오던 주현이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고 책가방을 책상 옆에 걸었다.

주현이 오면, 어제 일로 조금 화난 척 해야지. 주현이가 먼저 말 걸을 때까지 말 안 해야지.

그렇게 나름의 불만을 표현할 생각을 하면서 뒤에 붙어 있는 시간표를 봤다. 오늘은 오전에만 수업이 있고 점심 이후에는 카르마 시스템 훈련이 있을 예정이었다. 나는 수업이 짧다는 사실에 기분이 조금 들떠서 책상 안에 있을 내 교과서를 꺼냈다. 아니, 꺼내려했다.

“……왜 없지?”

나는 책상 안에서 아무것도 집혀지지 않는 것에 의아해하며 몸을 숙여서 책상 안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학교 끝나고 청소해 주는 사람들이 자리를 바꿨나? 종종 그런 일이 있어서 나는 책상 코너에 붙여 둔 이름표를 보았다.

[유가하]

내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 책상이 맞다. 어제 내가 사물함에 넣고 갔나? 아닐 텐데…….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미닫이 문 옆에 늘어놓은 네모난 30개의 사물함들 앞으로 가서 손잡이를 당겼다. 준비물 따위가 있어서 묵직해야 할 사물함이 가볍게 스르륵 나왔다.

“…….”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계속 없었던 것처럼…….

“야, 봤다.”

“잘 됐어.”

“그러니까. 평소에 친한 척은 다해서…….”

“불쌍하니까 어울려 준 거겠지.”

“맞아. 주현이 착하니까.”

다분히 의도적인 상황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뒤에서 속닥대는 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해를 가하는 건 아니니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사실, 이 반에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고 친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내 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내게는, 그 애가 늘 있었으니까.

나는 사물함을 다시 밀어 넣고, 다시 내 자리로 갔다. 주현이 오면, 책 같이 보자고 해야지…….

‘오늘 화난 척 하려 했던 거 못하겠네.’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침 조회 시간이 끝나고, ‘국어’ 시간이 시작되고,‘수학’ 시간이 지나고, ‘영어’ 시간이 넘어도 오지 않았다. 비어 있는 내 옆 자리는 무척, 평온했다. 나는 쉬는 시간에 내 책상 위에 얼굴을 뉘여서 텅 비어 있는 그 애의 자리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왜 안 와…….”

화난척도 못하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빈자리는 좀, 쓸쓸했다.

‘혹시, 어디 아픈가? 어디 놀러 갔나? 그러면 미리 말해 줬을 거 같은데…….’

나는 별별 생각을 다하며 오전 시간의 마지막 수업 시작종을 들었다.

점심시간 전 수업은 ‘과학’ 시간이었는데 [3-2]반의 담임이었다. 그 선생은 나이가 조금 있는 남자였는데 트집을 잘 잡기로 유명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나쁘다는 얘기다. 오늘 같은 날에는 더 더욱이. 그는 들어와서 반장과 함께하는 인사를 받고 반을 휘 둘러보다가 내 빈자리를 향해 눈을 번뜩였다. 거기서 나는 아주, 아주 불길한 예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빈자리 옆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교탁에 있는 자리표를 확인하며 내 이름을 불렀다.

“거기 빈자리 누구야? 너, 짝꿍……. 유가하?”

“…….”

“대답해야지?”

“네.”

“친구 왜 안 왔어? 송……주현?”

다시 자리표의 이름을 읽던 그의 얼굴이 독기를 품었다 금세 풀어지고, 다시 엄하게 변했다.

“……모르겠는데요.”

“왜 몰라? 너 짝꿍이랑 안 친해?”

“…….”

우리, 친한데……. 집도 갔고……. 맨 뒤에 있는 나를 향해 반 애들이 모두들 고개를 돌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 30쌍의 시선에 등 뒤에서 땀이 흐르는 착각이 일었다. 그 시선에 용기를 잃고 책상 끄트머리만 쳐다보면서 교복 마이의 소매를 늘리면서 잡았다. 손끝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그는 먹잇감을 잡았다는 듯이 목소리를 질질 끌었다.

“어라, 이거 보니까 교과서도 없어? 지금 뭐하는 거야?”

“…….”

“나이가 몇이나 됐다고 벌써 반항이야? 여기 학교인거 몰라?”

“그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었다. 정말로. 나는 억울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서 설명하려 했다. 누가, 내 책들과 준비물을 다 숨겨 버렸다고.

하지만 선생은 내가 얘기를 하기도 전에 내 자리로 성큼성큼 와서 내 팔을 억지로 잡아서 일으키며 질질 끌고 갔다.

“아니긴 뭐가 아냐? 공부하기 싫지?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게. 나가. 나가서 서 있어.”

그는 나를 끌고 가다 못해 건물 밖 유리 문 앞에 덜렁 세워 두고 꼴좋다는 듯이 비웃고 유리문을 팍 닫았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반성할 때까지 거기 있어!”

내 앞에서 텅, 하고 유리문이 닫히자 따뜻하게 불어오던 내부의 히터 바람이 뚝, 끊겼다. 나는 졸지에 바깥으로 쫓겨나 버린 것이다.

아씨……. 나는 교실로 돌아가는 선생의 뒷모습을 보면서 주먹을 쥐었다. 억울했다. 원체 저런 성격인걸 아는지라, 평소 같았으면 어떤 소리를 들어도 별 생각도 없었을 거 같은데……. 오늘은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나쁜 일 뒤에 나쁜 일이 연달아 터지고 있었다. 나는 유리 문 앞에 주저앉아서 가만히 몸을 사렸다.

“아……. 짜증나.”

나는 건물 밖에 깔린 바닥의 블록 무늬를 보면서 사라진 교과서와 준비물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떡하지. 다시 새로 사야 하나? 아니면, 돌려줄까? 하지만 나는 애들한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정도로 적대심을 표현할 거면, 극단적인 상황도 했을 거라 대충 추측했다.

‘교과서 어쩌지…….’

그렇게 앉아 있는데, 우거진 정원 너머로 누군가가 걸어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누구지, 이 시간에. 나는 쪽팔림을 무릎 쓰고, 일어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사람이 지나갈 때쯤이라도 저 큰 나무 뒤에 서 있을 생각이었다. 다가오는 사람은 내 예상보다 빠르게 내가 있는 건물 문 앞으로 왔다.

“가하!”

그 사람은 주현이었다. 그 애는 나를 보자마자 무표정했던 얼굴을 확, 환해진 얼굴로 변모하며 두 걸음도 안 되는 거리를 훅 돌진해 왔다. 나는 예기치 못한 사람의 등장에 당황해서 그 애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애가 나를 보고 웃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가하, 왜 여기 있어? 안 했어? 수업 시작?”

“어……. 응. 했어. 들어가.”

“같이 가.”

그 애가 내 손을 잡고 나를 이끌었다. 내가 바닥에 발을 강하게 디디고 고개를 저었다.

“나 못 가. 여기 있어야 돼.”

“왜?”

“……선생님이 화났어.”

“선생님 화나? 왜?”

“…….”

그건……. 나는 답을 말하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주현이가 내 어깨를 잡고 말했다.

“왜? 말해, 가하. 나 들어. 나 믿어. 가하 말.”

“…….”

“말해, 가하.”

그 애가 나를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재촉했다. 나는 그 얼굴에 잠시 고민했다.

조금, 우스워 보이지 않을까? 애들이 나를 싫어해서 그랬다는 거…….

내가 자꾸 말을 못하고 있자 그 애의 손이 내 뺨을 쥐고서 눈을 맞추고 다시 말했다.

“가하, 속상해. 얼굴. 왜? 말해.”

“……교과서가 없어서, 네가 없어서……. 선생님이 화를 냈어.”

그걸 다시 말로 하려니, 목구멍 안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말, 정말 별것도 아닌 일인데. 괜히 목이 메이고, 서러웠다. 주현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 얼굴로 되물었다.

“교과서? 책? 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현이가 나를 옆에 있는 벤치에 데리고 가서 앉혔다. 그 애는 몸을 숙이고 내 무릎 앞에 앉아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나. 갔어. 아버지 회사. 학교 전화 했어. 선생님, 이상해.”

그랬구나. 나는 오늘 오전 내내 없던 그 애의 빈자리를 생각하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대답을 했다가는 메인 목에서 꺽꺽대는 소리가 들릴 거 같아서 그랬다. 주현이는 나를 곧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가하 책, 왜 없어? 어제 있어.”

“…….”

“말해. 나 들어. 말 안 하면 있어, 계속, 여기.”

나 들어. 나 듣고 있어. 나 네가 하는 말 듣고 있어.

그 말이 어쩐지 참 부드럽게 들렸다. 잔뜩 혼난 후에 가시가 돋은 나에게는 더 그랬다. 오전 내내 그림자도 없던 애가 갑자기 치고 들어와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나를 바라보는 눈이 밝게 빛나서 그런 걸까.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숨겼던 숨을 결국 급하게 뱉으며 뜨거워지는 눈을 소매로 막았다.

“흐흡, 흡……. 으…….”

그 애가 옆에 앉아서 나를 껴안고 등을 차분하게 토닥였다. 토닥, 토닥. 나는 그 손짓에 눈물이 수도꼭지처럼 흐르는 걸 느꼈다.

나 아무것도 안했는데, 왜 괴롭힐까. 왜 싫어할까. 내가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고, 엄마가 불륜이라는 것을 하는 것도 내가 원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아빠가 돈을 벌려고 나다니는 것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걸 온전히 감당하는 사람은 나였다. 나 혼자. 그 사실이 사슬처럼 이어지며 나를, 내 마음을 옥죄였고 결국 쪼그라들다 못해 터져서 눈으로, 목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나, 이 학교 싫어……. 다들 날 싫어해. 나 아무것도 안했는데……나 D등급 받고 싶지 않았어. 놀림 받고 싶지 않아. 다들 나보고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그래. 근데 나한테 왜 그래? 나도 엄마 싫어…….”

토닥, 토닥. 그 애의 차분한 위로가 어쩐지 내 감정을 더 북받치게 했다.

“그냥, 아빠가 돈 안 벌었으면 좋겠어, 새 집 없어도 돼, 운동화 새로 안 사 줘도 돼. 나 그냥 예전 집 가고 싶어, 옛날 학교 가고 싶어……. 옛날 친구들한테 가고 싶어……여기 싫어…….”

내 말을 듣던 주현이가 내 어깨를 감싸고 토닥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아빠, 엄마 싫어?”

“싫어…….”

“애들 괴롭혀, 가하?”

“……싫어…….”

“사람들 나빠. 가하 착해.”

“…….”

“학교 나가? 우리 집 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가고 싶은 건, 그 애의 집도, 우리 집도 아니었다.

예전의 삶이 있던 집이였다.

아침에는 나를 깨워 주는 엄마와 점심에는 까만 얼굴을 한 친구들과 놀고, 저녁에는 아빠와 모여서 밥을 먹는 그런, 일상. 나는 그 애를 보면서 말했다.

“옛날 집에 가고 싶어. 주호랑, 윤경이랑, 영우랑……. 지운이랑……. 보고 싶어…….”

“…….”

그 애가 나를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어쩐지, 편안했던 표정이 조금 굳어 보였다.

“나는?”

나는 그 애가 건네준 티슈를 잡아서 눈물을 닦다가 말고 그 애를 바라보았다.

“나는, 안 보고 싶어? 오늘?”

“…….”

보고 싶었다. 주현이가 교실에 없으니, 쓸쓸했다. 하지만…….

“너도 보고 싶었어…… 근데 난…… 그냥, 옛날 집에 가고 싶어. 옛날 학교에서, 옛날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

내 말에 주현이가 아, 그렇지 하는 얼굴을 하며 천천히 말했다.

“우리 집, 옛날 집…….”

“아니!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달아오른 마음이 이제는 답답해져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그러자 잘 말하던 그 애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었다.

“내가 원하는 거…… 너네 집에 가는 거 아니야…… 그런 거, 하나도 원하는 거 아냐. 그런 건, 우리 엄마나 원하는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푹 젖은 티슈에 자꾸 스며 나오는 눈물을 닦았다. 하도 닦고, 비비고 해서 눈꼬리가 따가웠다. 그 애가 가만히 있다가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때는 우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생각해 보면 조금, 발음이 제법 자연스러웠던 것도 같다.

내가 진정을 되찾고, 코를 한 다섯 번 풀고 나서야 우리는 교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과학 선생은 들어오는 나를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를 치려다가, 내 옆에 같이 들어오는 주현이의 얼굴을 보고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나는 그 모습에 웃음도 하나 나오지 않았다.

참 불공평한 세상이지만,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 애가 내 곁에 있다는 게…….

그렇게 위안하며 나는 선생을 보던 주현이를 바라봤다. 무표정한 푸른 눈은 내가 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버릇처럼 설핏 웃었다. 그러다가 깍지 낀 손을 살짝 흔들며 내게 말했다.

“앉아, 가하. 내가 빌려줘. 책.”

“……응.”

마치 들으라는 듯이, 크게. 교실에 있던 애들이 수군거리자 교탁 앞에 있는 과학 선생이 숨기지 못하는 성질을 내었다.

“조용! 반성 다 한 걸로 치고, 수업 계속 한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고, 주인을 떠나보냈던 의자는 차가워진지 오래였다. 나는 으슬으슬한 교복 마이의 팔을 손으로 비비면서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주현이가 교복 코트를 교실 뒤에 있는 옷장에 걸고 오면서, 내게 자기가 걸고 있던 스카프를 내 어깨에 둘러주었다. 보들보들한 스카프 특유의 감촉이 차가운 마이의 기운을 덮었다. 주현이는 그러고는 의자에 앉아서 우리 책상 사이에 과학 교과서를 꺼내고, 오늘 수업을 하고 있는 부분을 대충, 찾아서 펼쳤다. 그러고는 말했다.

“같이 봐, 가하.”

“……고마워.”

이 애라도 내 곁에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학교생활을 애써 마음 한 구석에 묻어 두며 생각했다. 엄마는, 내가 이 애에게서 무언가를 받아내기를 바라는 조로 친해지라고 했지만…….

굳이 그런 걸 바라지 않아도, 나는 이 애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받고 있다는. 그런 생각. 그게 너무 소중하고 귀해서 나는 아마 이 애가 나를 쳐낼 때까지, 항상 옆에 있고 싶다는 그런 생각……. 그런 생각들 사이로 과학 선생의 말이 파고들었다.

“오늘은 화강암에 대해서…….”

그렇게, 다사다난 했던 그날의 오전 수업이 끝났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운동장 옆에 있는 강당으로 향했다.

기묘하게 긴 굴뚝 기둥을 가진 텐트같이 생긴 하얀 강당은, 강당에 들어가자 중앙에 굴뚝 부위로 보이는 곳이 뚫려서 자연광을 내부로 미끄러뜨리고 있었다. 강당 안은 우리 말고도 전 학년이 모였는지 제법 바글바글 거리며 웅성대는 소리가 컸다. 다들 자기 에스퍼와 가이드를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반면 아는 사이인 듯, 몇몇 사람들은 이미 서로에게 말을 거는 모습도 보였다.

좀 특이한 게 있다면, 다들 자신의 성향을 나타내는 배지 같은 것을 달고 있었는데, 대체로 한명의 가이드 앞에 에스퍼 배지를 단 여러 명이 있었다. 저번에 비디오에서 보았던 대로, 가이드의 발생률은 드문 편이기 때문에 그런 듯 했다. 나는 넌지시 주현이를 보며 내 교복 마이 주머니에 넣어 둔 에스퍼 배지를 만지작거렸다. 주현이는, 등급이 많으니까……. 아마 나 말고 매칭이 된 애들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다들 나보다는 등급이 높겠지? 나는 그렇게 짐작하며 주현이에게 말을 걸었다.

“다들 벌써 찾고 있나 봐. 이제 너한테도 오겠다. 그렇지?”

주현이가 음, 하고 나를 보았다.

“음……. 나? 왜?”

“너 가이드니까…….”

“응. 나 가이드. 가하 가이드.”

“그렇긴 한데, 나 말고도 또 있잖아. 에스퍼.”

그러자 그 애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응?”

“나 가이딩, 가하 혼자. 다른 애 안 해.”

“왜? 너 등급 높잖아…….”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원한다고 해서 다 되면, 법은 왜 있고 경찰은 왜 있냐는 주말에 본 영화의 대사를 떠올리는데 주현이가 드물게 벌레 씹은 얼굴을 했다.

“싫어. 다른 사람. 더러워.”

“……난 안 더러워?”

주현이가 사람과 친해지는 기준은 더러움인가? 나는 아까 울면서 콧물이 나왔던 게 신경 쓰여서 손가락으로 코밑을 쓸었다. 다행히 내가 깜빡한 콧물은 없는 거 같은데…….

“아니, 안 더러워. 좋아, 가하.”

“……그래. 고마워.”

앞으로는 콧물을 잘 간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중앙 방송이 나왔다. 담임선생님이 있는 자리에 가서 앉으라는 거였다.

『아, 아, 들려요?』

……들려요? ……들려요?

『다들, 담임선생님 찾아서 우선 앉아요.』

……. 앉아요……. 앉아요…….

강당의 에코가 거의 예전 집 근처에 있던 뒷산의 메아리 수준이었다. 비싼 학교가 시설 투자에는 생각보다 박한 것인가, 나는 고민하며 우리 반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대체로 나이 있는 교사들 중에 젊은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주현이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저기 있다. 선생님.”

“응.”

커다란 덩치의 주현이는 말 잘 듣는 옆집 누렁이처럼 투벅투벅 걸었다. 우리가 가자 담임은 나와 주현이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왜 오라고 하는 거지?

내가 가만히 있는데 주현이가 나를 잡고 당겼다. 그에 나도 자연스레 따라가서 담임 앞에 가까이 섰다. 우리 담임은 과학 선생 같은 이상한 성격은 아니지만, 괜히 아까 일 때문에 긴장이 되었다.

“주현이랑 가하가 오늘 처음으로 능력 검사랑 훈련을 할 거야.”

“저요……?”

내가 왜? 어차피 별로 특별하지 않을, 능력인데……. 라고 생각하는데 담임이 주현이를 보고 설명했다.

“——,——?”

“——.”

“——. ——.”

“——?”

“——.”

그러고 보니 담임은 영어 선생님이었지……. 능숙하게 영어로 설명하는 담임을 두고 나는 주현이와 잡지 않은 손으로 마이 주머니가 여전히 담고 있는 배지를 만지작거렸다. 그 사이에 둘의 대화가 끝났는지, 담임은 나와 주현이를 강당 중앙 단상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우리 말고도 각 학년 애들이 나와 있었다. 우리는 3학년 자리에 서서 그 줄 중간에 끼었다. 은근 슬쩍 서 있는 애들의 배지를 보니, 대체로 A나 S급들이었다. 아니면 SS거나.

그 모습에 나는 조금 기가 죽어서, 괜히 긴장이 되었다.

백조들 사이에서 혼자 뻐꾸기인건 참 불편한 일이었다.

그 긴장은 어디 가지 않고 손바닥에 땀이 배어났다. 그게 신경 쓰여서 나는 주현이와 잡은 손을 비틀어서 꺼냈다. 가만히 서 있던 주현이의 고개가 돌아갔다.

“왜?”

“손바닥에 땀나서. 땀 더럽잖아.”

“괜찮아. 왜 땀 나와?”

“그냥……. 처음 하는 거라 긴장 되어서…….”

‘그리고 내가 제일 등급도 낮고, 별 볼 일 없는 거 같아서…….’

애써 우울한 생각을 삼켰다. 분명 주현이가 걱정하는 얼굴로 위로를 할 테지만, 그게 좋으면서도 좋지 않았다. 괜히, 신경쓰일 테니까. 내가 선택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거에 대해서. 주현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내 손을 잡고 조물거렸다.

“괜찮아. 가하. 나 있어. 나 믿어.”

“……그래.”

단순한 말인데,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다.

뭔가, 주현이만 가진 특별한 마법 같다고나 할까…….

엊그제 본 새로운 해리포터 책을 생각하며, 내가 모르는 다른 세상에 대해 잠시 상상하다가 앞에 선 애들이 움직이는 행동에 정신이 깼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단상위로 걸었다. 우리가 중앙 지점에 서자, 중앙 방송이 나왔다. 이번에는 방송을 어떻게 고쳤는지 에코가 없었다.

『에스퍼들은 가이드의 손이나 팔을 잡고 둥글게 서 있으세요.』

우리를 포함해서 단상 위에 있는 사람들은 짝지어서 단둘이었기 때문에 마주보고 섰다. 강당 홀 쪽을 등진 주현이의 뒤로 똑같은 교복을 입은 많은 애들이 보였다. 주현이는 앞에 선 내게 손을 건넸다.

“가하, 줘. 손.”

“응.”

나는 그 손 위에 내 손을 올렸고, 방송에서는 차분하게 과정을 설명했다.

『가이드들은, 정신을 집중해요. 자신과 닿아 있는 에스퍼에게 가이딩을 하겠다는 의지를 떠올리면서 힘을 방출해 보세요. 어렵지 않습니다. 잘 안 되는 사람은 손 들어요. 선생님이 갈 거예요.』

주현이가 파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말했다.

“가하, 준비 됐어?”

그 말에 잠시 억눌렀던 긴장이 훅 튀어나와서 나는 올렸던 손을 뗐다.

“후, 후,”

숨을 두어 번 쉬면서 심장을 손바닥으로 누르다가 조금 소리가 작아졌을 때, 다시 손을 마주 잡았다.

“응, 됐어.”

“좋아. 나 궁금해. 가하 능력.”

“이상한거만 아니면 좋겠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주현이는 눈을 감았고,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눈을 감았다.

사람들이 높은 곳을 열망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 그곳이 누구나 쉽게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란 언제든지 이 땅 위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하기에, 바라보게 되는 거라고.

그렇지만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내가 눈을 떴을 때, 꿈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조금 기대했던 나 자신이 우스웠다. D 등급 주제에 너무 많은걸 바란 건가.

그런 나와 달리, 단상에 같이 왔던, 내 옆에 있는 애들은 갑자기 쓰러지기도 했고, 머리를 감싸고 고통을 호소하는 애도 있었다. 그걸 본 선생님들이 바로 달려와서 가이드와 주변 에스퍼 애들을 진정시키며 쓰러진 애들을 들것에 싣고 갔다. 강당에 있는 나머지 애들도 쓰러진 애들 사이로 모여들어서 웅성거리는 게 보였다. 강당을 따갑게 울리는 웅성거림에 선생들이 다니면서 소리쳤다.

“괜찮아, 괜찮아. 정신계 능력자는 처음에 다 이래. 다들 계속해.”

웅성거림이 조금 작아질 무렵, 내 왼쪽에 있던 애의 손에서 파란 불이 화르륵 타올랐다. 그그 애의 불타는 손과 가까운 교복 마이 소매가 타기 시작하면서 회색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걸 본 애들이 놀라서 소리를 꽥 질렀다.

“으악!”

“아유, 괜찮아. 능력자 자신은 무해하니까……. 출력 좀 더 내 봐. 그래.”

선생은 불타는 손을 가진 애에게 와서 기록 같은 걸 적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능력치를 발휘하고 있는 애들을 보다가 머쓱하게 주현이를 바라봤다. 나에게는 아무런 일도 없는 걸로 보아 정신계라든지, 저런 물리적인 초능력을 가진 게 아닌 듯 했다. 그럼 난 뭐지……. 작아지는 스스로에게 실망을 하고 있는데, 순간, 몸이 둥실, 하고 기울어졌다. 난 그게 내가 정신계 능력자라서, 혹시 몸이 쓰러지는 건가 했다. 내 팔을 잡으러 온 주현이만 아니면.

“가하!”

“응?”

그리고 잠시 기울어졌던 내 몸은 또, 다른 쪽으로 둥실, 하고 기울어졌다. 나는 이 해괴한 흔들림에 내 발치를 바라보았고, 그때야 알았다. 내 발은, 강당의 바닥에 닿아 있지 않다는 걸. 5cm정도 떨어졌을까? 나는 이 알 수 없는 능력의 효과에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내 팔을 잡은 주현이를 보았다.

“신기하다, 나 날 수 있나 봐.”

“…….”

아까 전만해도 내 능력이 궁금하다고 말했던, 그 애의 얼굴이 어쩐지 지금은……. 조금, 불안해 보였다. 그런 불안감을 더 발판 삼아서, 내 발은 공중으로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둥실, 둥실하면서. 조금 더 올라가자, 나와 주현이의 시선이 올곧게 맞부딪히는 높이가 되었다. 늘 커 보이던 주현이와 시선을 마주하니 기분이 참 신기했다.

“우리 키 같아졌다. 그치.”

“으응…….”

나는 처음 느껴 보는 기분에 좋아서 웃었다. 그렇지만 주현이는 평소와는 달리 웃는 둥, 마는 둥 하는 얼굴을 했다. 내가, 왜 그래, 뭐가 이상하냐고 물어보려던 차에 선생 하나가 와서 말했다.

“얘, 너. 가이드지? 손 좀 떼 봐. 에스퍼 어디까지 가나 보자. 네가……. SSS급?”

선생이 나를 잡고 있던 주현이의 손을 떼려고 주현이의 손등에 손을 가져가자 주현이가 탁 소리가 나도록 선생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 모습에 선생의 얼굴이 잠시 벙 쪘다가 험악하게 변했다.

“너, 이 녀석, 지금 뭐하는 거야? 손 떼!”

“……짜증나.”

그 애는 마치 더러운 것을 만진 사람 마냥 얼굴을 찌푸리며 선생의 손이 닿았던 손을 등 뒤로 해서 뒷짐을 지었다. 그러다가 내 교복 마이의 밑단을 꼭 잡고 점점 떠오르다 못해 모든 사람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가하…….”

“이것 봐라. 짜증나? 어디 선생한테……. 너, 몇 학년 몇 반이야? 지금 내 말 듣고 있어?”

“……시끄러.”

호랑이 같은 선생의 호통에 주현이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파란 눈이 무정하게 그 선생을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주현이의 반응에 선생은 열이 받는지 주현이에게 다시 손을 뻗었다.

“뭐? 이거 완전…….”

물론, 그 손이 다시 닿기 전에 담임이 급하게 달려와서 막았다. 부장님, 하고 달려오는 그의 얼굴이 못 다한 숨을 내쉬며 부장이라고 불린 선생의 손을 몸으로 가로막았다.

“부장 선생님, 헉, 그 친구 귀국 자녀입니다. 헉, 헉……. 그 친구 한국어를 잘 못해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사람 손을…….”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이 친구, 결벽증이 있어서 접촉하는 거에 굉장히 예민해요. 보호자가 따로 연락하신 사항이라……. 제가 나중에 설명 드리겠습니다.”

“……별 애가 다 있어……. 보호자가 누군데 하 선생이 그래?”

“그게…….”

담임은 부장에게 속닥거리며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여전히 그런 사람들 위로 둥실 둥실 올라가고 있었다. 주현이가 그런 내게 손을 뻗었다. 내 이름을 애처롭게 부르면서.

“가하……. 이리 와.”

“어, 응.”

나도 내려가 보려고, 손을 뻗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올라가기만 했다. 우리들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가운데 담임이 부장 선생을 돌려보내고 주현이에게 다가왔다.

“근데, 잘 모르겠어. 내려가는 거, 안 되는데…….”

“——.”

“——? ——.”

“——.”

“——!”

점점 올라가는 나도 주현이가 소리를 높이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담임은 어쩔 줄을 모르고 주현이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나는 이제 올라가다 못해 강당 천장에 닿을 만큼 가까워져서, 팔을 위로 뻗어서 천장에 디디며 이제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했다. 이러다가 계속계속 올라가고, 내려오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여기서 갑자기 떨어지면…….

엄습한 불안감에 나는 입안에 고인 침을 꿀꺽 삼키고 손으로 천장을 대며 앞으로 나아갔다. 발이 닿지 않는, 공중의 아찔함과 함께 심장이 튀어 나올 거 같은 흥분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마치 끈 떨어진 풍선 마냥, 나는 강당의 천장 가까이 올라가서 공중을 한 발, 한 발 휘젓고 다녔다.

날개만 없지, 날아다니는 새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 기묘한 초능력에 훅 빠져서 신이 난 채로 강당 천장에 달린 조명 세트와 안전 바들을 넘어 다니고, 그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보기도 했다. 그 가느다란 바들을 흔들 때면, 숨이 가빠지면서도, 부드럽게 내 몸을 받아 주는 공중의 부유하는 느낌이 좋았다.

아무도 없는 공중은, 나를 괴롭히는 반 애들도, 부모도, 학교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긴 중력이 없는 우주도 아니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올라오지 못할 테니까. 나는 공중을 떠다니면서, 강당 아래를 바라보며 자그마해진 애들을 구경했다.

현실의 무거움을 잊을 수 있는 공간으로 올라가는 것, 그게 내가 가진 초능력이었다. 그러다가 웅성거리는 강당 한 쪽에서 큰 소리가 나서 나는 보란 듯이 공중에서 앞구르기를 하며 일어섰다. 뭐지.

“——!”

“——…….”

“——.”

소리의 근원지는, 주현이었다. 주현이의 색이 빠진 독특한 머리색은 까만 머리통들 사이에서, 심지어 이 공중에서도 단연코 눈에 띄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 애가 있는 쪽으로 다시 걸어가려는데, 가벼운 풍선 마냥 올라갔던 몸이 이제는 바람 빠진 풍선 마냥, 스르르 내려가기 시작했다. 벌써 힘이 떨어졌나, 싶어서 나는 균형을 잡으려고 손을 퍼덕거리는데 갑자기 주현이와 대화하던 담임이 나를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안 돼, 가하야!”

“네?”

“꺄아악!”

지상에서 따갑게 울려 퍼지는 그 외침을 끝으로, 내 몸은 현실의 무게를 달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상에 있을 때처럼 얌전하게 있던 교복 마이의 소매와 바지 밑단이, 추락하는 공기를 먹으며 퍼덕퍼덕 내 피부를 때렸다. 떨어질 때는, 스치는 바람 때문에 눈을 잘 뜰 수 없어서 흐리게 번지는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올라가던 속도와는 달리, 떨어지는 속도는 너무나도 빨랐다.

꿈같은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 주기라도 하듯이. 나는 추락하며 급박하게 가까워지는 주현이의 무표정한 얼굴과 경악하는 담임의 얼굴을 보다가 눈을 질끈 감고 팔로 몸을 감싸 안았다. 강당의 애들이 소리를 지르는지 고성이 강당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바닥에 부딪혀서 죽으면, 어떡하지…….’

다가올 아픔에 대비하며 얼굴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는데.

아픈 게 느껴지지 않았다.

곧 덮쳐 올 충격에 두려워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내 피부를 때리던 바람이 멈추고, 주변이 조용해져 눈을 떴다. 그 순간 내 등과 허리에 차례로 커다란 손이 턱, 턱, 하고 얹혔다.

파아란 눈에 비치는 나는 그 애의 손에 들려 있었다. 나는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서 주변을 살폈다. 단상에 서 있던 아까 전처럼, 우리 둘의 시야의 높이가 엇비슷했다. 단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벙 찐 얼굴로 나와 주현이를 바라보는 것뿐.

“헐…….”

“저거, 맞지? 그거지?”

“……처음 봤어.”

“나도…… -가이딩.”

나도 이 짧은 인생에 죽을 뻔한 건 처음이었다. 아무튼, 위험한 상황은 넘긴 거 같아서 나는 잔뜩 움츠리고 있던 몸을 피고 한숨을 쉬었다.

‘살았다.’

나는 살짝 떨리는 손을 주현이의 팔에 대고 바닥에 발을 디디려 했다. 그런데 주현이가 나를 내려주지 않았다. 주현이도 놀란 모양이었다. 평소와 달리 생글 생글 웃지 않고 얼굴이 잔뜩 굳어서, 입이 일자가 된 걸 보니.

나는 서기 위해 뻗은 다리에 힘도 주지 못하면서 애써 태연한 척 말을 걸었다.

“죽을 뻔 했다……. 고마워. 주현아, 받아 줘서.”

근데 어떻게 날 받은 거지? 궁금해 하며 내 허리와 등을 잡은 주현이의 손에 내 손을 올리는데 주현이가 나를 불렀다. 그 목소리가 마치 감기 걸린 사람마냥 낮았다.

“가하.”

“응? 참, 나 좀 내려 줘.”

내가 그 애의 팔 안에서 내려가려는데 그 애가 나를 가만히 보다가 눈을 깜빡였다. 그 맑은 눈이 다시 떠지는 순간 엷은 물줄기가 그 애의 선명한 눈꼬리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광경에 어, 하고 사고가 멈췄다.

“주현아……?”

주현이가, 울고 있었다. 나는 처음 보는 주현이의 모습에 그 애의 팔에 올렸던 손을 그 애에게 가까이하려 했다. 그 애가 나를 자기 품에 안아 버리는 바람에 갈 곳을 잃은 내 손은 그 애의 등을 감싸 안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이제는 내 앞에 있는 주현이가 우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 애의 등을 도닥이다가, 그 애의 얼굴이 괜찮나, 보기 위해 고개를 빼서 그 애를 쳐다보는 것을 반복했다.

“나, 나 괜찮아. 진짜야. 놀랬어?”

“…….”

“주현아, 나 괜찮아. 진정해. 네가 받아 줘서 그런 거 같아.”

죽을 뻔했던 건 난데, 위로를 받는 사람은 주현이라니. 이 묘한 대치에 나는 그저 그 애의 품에 안겨서 등을 도닥이며 말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게 주현이가 속삭였다.

“안 괜찮아.”

“아니야, 나…….”

“안 괜찮아, 나.”

“…….”

많이 놀란 듯 했다. 그 애가 나를 강하게 껴안고 울먹이며 말했다.

“가하, 떠나 가 늘. 나 버리고 가…….”

“아니야, 나 안 그래. 지금 여기 있잖아. 응?”

그 애가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작게 훌쩍거렸다. 그 애의 머리카락이 내 목덜미에 비벼지며 사륵사륵 간지럽혔다.

“아니야, 가하 날아가. 내 가이딩, 가하 가 버려.”

“그거는…….”

그건 내 초능력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가이드가 힘을 주면, 에스퍼인 난 그 힘을 발휘하게 되니까.

내가 주현이를 어떻게 달래지 고민하는 와중에 주현이는 섧게 울었다. 나는 그 울음소리에 초능력을 처음 발견해서 잔뜩 고양됐던 기쁨을 뒤편으로 감추고 그 애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아까는 내가 울고, 지금은 너구나.

‘서로 병주고 약주는 것도 아니고…….’

“그, 오늘 너네 집 갈까? 응? 어디 안 가고, 같이 있을게. 엄마한테 말해서, 자고 갈게.”

그리고 어차피 엄마라면, 내가 어디서 자고 온들 신경 쓰지 않을 거 같다. 오히려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현이니까. 엄마가 관심을 가지는 그룹 애.

다행히 그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주현이의 울음소리가 살짝 줄어들었다. 나는 그 단순함에 픽 웃으며 그 애를 꼭 껴안았다. 내가 뭐라고 자고 간다는 말에 우는 것도 멈추나.

“그리고 어차피 난 네가 아니면 못 날아. 알잖아, 다른 애들 나 싫어하는 거…….”

나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우리 반 애들 가이드 중에서 누가 나를 가이딩을 해 주겠는가.

내가 아파 죽는다고 해도 안 해 줄 애들이었다. 고작 D 따위에 힘을 낭비할 수는 없다고 그러겠지. 나는 주현이나, 다른 가이드가 가이딩을 해 주지 않는 이상 이런 능력을 쓸 일도 거의 없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

D는 가이드가 없으면,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내 말에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던 주현이의 고개가 살짝 들렸다. 그 애는 벌건 눈물 자국으로 살짝 부어오른 파란 눈을 내게 빠끔히 내밀고 훌쩍였다.

“자고 가? 오늘?”

단순하기는. 나는 선심 쓰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싫으면…… 말고.”

그러자 반응이 즉각 왔다. 파란 눈이 매섭게 반짝거렸다.

“응! 좋아! 자고 가, 오늘!”

“알겠어. 이따 엄마한테 전화 할게.”

“응.”

나는 그 애의 금빛 감도는 갈색의 짧은 앞머리를 넘겨주며 웃었다.

“좀 진정 됐어?”

“응……. 조금.”

그 애가 부끄러운지 시선을 잠시 피했다. 나는 그게 조금 귀여워서, 낄낄 웃었다. 그러자 주현이가 발끈하는 얼굴을 했다.

“가하, 웃어 왜!”

“그냥, 귀여워서. 너.”

“……나 귀여우면, 가하 안 날아가?”

이건 또 무슨 결론인지.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을 했다.

“글세…… 나는 어른 같고 멋있는 가이드가 더 좋아. 울보 가이드는…… 모르겠어.”

그러자 주현이가 내 품에서 벌떡 일어나서 교복 마이 소매로 눈을 벅벅 문질렀다. 눈이 더 벌게져서, 동물도감에서 본 레서판다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물론 좀, 덩치가 많이 큰 레서팬더……?

“나, 안 울어. 멋진 가이드 해.”

“그래, 그래. 알겠어. 그러다가 눈 찢어지겠다.”

나는 전투적으로 눈을 비비는 그 애의 소매와 손을 잡고 말렸다. 이미 울 거 다 울고 안 운다고 하면 뭘까. 나는 웃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배에 주고 참는데 주현이가 내게 말했다.

“진짜야! 조금만 기다려. 나 어른 가이드 돼. 그때 해, 각인.”

“각인? 아……. 음, 생각 좀 해 보고.”

그러고 보니 가이드와 에스퍼도 잘 맞는 사람끼리는 소위 결혼처럼, 각인이라는 과정을 밟는다고 했다. 대체로 여자 남자 사이에 하기는 하지만 간간이 동성끼리도 한다고 들었다. 정말 친한 친구라든지, 가족이라든지 하는 사이……. 나야, 등급이 원체 낮은지라 가이드가 없어도 상관없는 삶이니 깊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게 주현이 같은 경우라면 좀 다를 것이다. 이 애는 등급이 무척 높으니까.

내 애매한 대답에 주현이는 파란 눈에 오기를 담았다.

“두고 봐.”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두고 볼 일 없다던데. 아야, 아파…….”

내 얄미운 말에 주현이가 내 어깨와 목이 이어지는 셔츠 깃 사이 부분을 콱, 깨물었다. 축축한 혀가 베어 물은 그 살을 살짝 핥았다. 무슨 옆집 시츄도 아니고……. 으이구. 나는 그 애의 머리를 살살 밀었다. 주현이는 물어 버린 내 목 부분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못 날아가, 가하. 내 꺼야…….”

나는 내 꺼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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