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61)

* * *

“내일은 카르마 시스템 훈련을 할 거예요. 게시판에 매칭 가이드를 정리해 두었으니까 연락처 확인해서 서로 연락하길 바랄게요.”

젊은 남자인 담임선생님은 조회를 마치며 반을 나섰다. 애들은 담임이 나가자마자 반 뒤편에 있는 학급 게시판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다들 누가 자신의 가이드일지, 궁금해 하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게, 에스퍼들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주기적으로 가이드에게서 가이딩을 받지 않으면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으니까 더 그럴 것이다. 다들 내일 수업에서 만날 가이드와, 처음으로 보게 될 자신의 에스퍼 능력치를 기대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나도 내심 궁금해서, 애들이 언제쯤이면 애들이 게시판에서 비킬까, 기대하며 앉은 자리에서 목을 길게 빼었다. 그러자 옆에 앉은 주현이가 책상에 팔꿈치를 기대고 턱을 받친 채로 물어봤다.

“왜? 가하?”

“어? 가이드……. 궁금해서. 내일 훈련한다고 그러고…….”

내게 어떤 능력이 있을까?

별 볼일 없는 D등급이지만,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그러자 주현이가 흐음, 하고 소리를 내었다.

“가하.”

“응?”

“왜 궁금해? 가하, 가이드. 나야.”

아주 당연한 것을 궁금해 한다는 표정에 나는 도리어 머쓱해졌다.

‘주말에 말한 건, 그냥 장난…… 아니었나?’

나는 뚫어지게 보는 파란 눈을 살짝 피하며 대답했다.

“근데……. 선생님이 그랬잖아. 높은 등급의 가이드는 높은 등급의 에스퍼를 배정 받을 거라고. 나 등급 별로 안 높아…….”

주현이는 가이드 중에서도 최상위 등급인 SSS급이고, 난 D였다. 그러니까 정석적인 시스템이면 나와 주현이가 매칭 될 리 없었다.

‘아마도, B나 C? 혹은 아예 안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 기대는커녕, 내 처지를 대충 짐작하고 있는데 주현이가 씩 웃었다.

“아니야. 가하 가이드, 나야. 나 안 해. 다른 에스퍼, 가이딩.”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꼭 쥐었다.

그렇지만 나는 안다.

이런 건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다. 어른들이 정해 놓고 따르라고 하는 건 대체로 그렇다. 그래서 나는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주현이는, 이런 것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무런 걱정이나 그늘 한 점 없는 그 애의 밝은 얼굴을 보면서 나는 쓰게 미소 지었다.

“……그래.”

주현이는 그런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어눌한 말문을 열었다.

“궁금해.”

“뭐가?”

“가하, 능력. 궁금해.”

주현이도 내 초능력이 무슨 능력인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도 맞장구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근데 별로 특별한 건 아닐 거 같아.”

등급이, 무척 낮으니까, 라는 말은 애써 갈무리하며 주현이를 봤다. 그러자 주현이가 나를 자기 품에 폭 안았다. 새카만 감색의 마이의 접혀진 옷깃에서 그 애 욕실에서 맡았던 레몬 향이 솔솔 풍겼다.

“가하, 특별해. 내게 아주, 많이.”

“……고마워.”

주현이는 참 시도 때도 없이 포옹을 한다, 이제는 조금 적응해서 그러려니 하지만……. 그래도, 다른 애들이 보면 이상해 보일 것 같아서 나는 주현이 품 안에서 살짝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나를 안고 있던 팔의 힘이 조금 풀렸다. 자유도 잠시, 등 뒤에 있던 손이 내 뒷목으로 스륵 올라와서 목덜미를 살짝 움켜쥐었다.

“가하, 인사, 해줘.”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또? 나는 황급히 손을 올려서 뽀뽀하기 일보 직전인 그 애의 입을 막았다. 그 애의 보드라운 입술이 내 손바닥에 닿으며 움찔거렸다.

“그! 안 돼, 그거 인사 아니야…….”

주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마치 난생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내게 되물었다.

“이해 안 돼. 가하.”

“그, 그러니까…….”

그 얼굴을 나는 애써 피해 보며 더듬더듬, 말을 고르며 설명했다.

‘이거 나만, 나만 이상하게 느끼는 건가?’

하지만 다른 애들도 있는, 반에서 그런…… ’인사’를 하면 분명 난리가 날 것이다. 여기는 스웨덴이 아니라 한국이니까. 그리고 내 학교생활은 더 지옥으로 떨어지겠지.

“우, 우리나라에서는 인사 그렇게 안 해. 그거는……. 가족이나 여자 친구한테만 하는 거야.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해야 돼.”

“나 좋아해. 가하.”

주현이가 눈을 감고서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내 손바닥에 그 입술을 대었다가, 살짝 빨아들이듯이 떨어져 나갔다. 그 애는, 어눌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가하, 나 안 좋아해? 그래서 안 해? 인사?”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거, 사람들 앞에서 하는 거 아니야. 우리나라는 그거 인사 아니란 말이야…….”

내 다급한 설명에 주현이는 눈을 한 번 깜빡이다가 흐음. 하고 천장을 보고, 다시 내게 눈을 맞췄다.

“알겠어.”

나는 안도하며 막고 있던 손에서 힘을 조금 뺐다. 휴. 근데 주현이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났다. 의자에 앉아 있던 내 손을 잡아서 덩달아 일으켰다. 나는 그 힘에 엉거주춤 일어나며 그 애가 당기는 대로 갔다.

“어, 어디가? 주현아. 이제 쉬는 시간 끝날 거야…….”

교실 뒤를 가로지르며 가는 그 애는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은 상큼한 얼굴로 말했다.

“사람 없는 곳.”

뭐? 내가 그 짧은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하는 중에 교실 뒤 게시판에 몰려 있던 반 애들이 교실을 나가는 우리 등 뒤에 대고 수군거렸다.

“말도 안 돼.”

“왜 쟤가 주현이 에스퍼야?”

“아무리 SSS급 에스퍼가 없다지만…….”

“됐어. 내가 못 가질 거면 저런 애가 차라리 나아. 분명 별 것도 아닐 능력이겠지……. 주현이도 지금만 그러고 곧 시시해서 금방 바꿔 버릴걸?”

그 말이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우리를 보던 애들이 다시 게시판으로 돌아서서 딴청을 부렸다. 사람이 드물어진 복도를 걷는 그 애의 등을 바라보았다.

‘정말, 내가 이 애의 에스퍼로 배정 받은 건가? 정말……로?’

우리는 건물을 나서서, 도서관 건물 사이에 있는 정원으로 갔다. 수업이 막 시작하려는 시간인 탓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방금 내 귀에 스피커에서 나왔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들렸으니까. 그 애는 커다란 보리수나무 아래 자리한 벤치에 나를 앉혔다.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아서 내 어깨를 끌어당겼다. 그러면서 해맑게 웃었다.

“이제, 없어. 사람.”

“…….”

사람이 없다고 그 ‘인사’가 문제가 안 되는 게 아니었다. 그 애는 그걸 모르는 것인지 부끄러운 표정으로 내 손을 잡고서는 연신 꼼지락거렸다.

그게…… 내 눈에는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 둔 주말 드라마의 여주인공 같았다.

분명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아는 데도 말이다. 나도 아줌마가 쓰는 돋보기안경을 맞출 때가 된 걸까? 그 애가 내게 탐스럽게 익은 사과 같은 얼굴을 하고 속삭였다.

“해 줘, 인사. 응?”

해 주면 안 되는데. 우린 남자고, 이런 건 한국에서 인사가 아니까, 해 주면 안 될 걸 아는데……. 내 손을 잡은 그 큰 손과 나를 바라보는 커다란 파란 눈, 강아지 마냥 끙끙대는 그 어눌한 말투에 나는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잘 모르니까, 사람, 없으니까……. 얼른 했다가 떼야지. 눈이 감기기전에 마지막으로 보이던 건, 얼굴만큼이나 붉은 입술이 호선을 그리면서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오산이었다. 금방 닿고 떨어질 줄 알았던 입술 위로 그 애의 숨이 봄바람처럼 사근하게 불어들며 간지럽혔다. 그 품안에서 나는 레몬 향이 내 코끝에 진하게 풍겼다. 생각 외로 길어지는 ‘인사’에 나는 몸을 비틀었지만 그 애의 안긴 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으읍…….”

그저, 부쳐 오는 숨을 고르고 주현이의 고집이 그치기를 바랄 뿐이었다. 봄날치고는 더운 숨이 내 눈 앞에 피어올랐다. 처음 겪어 보는 감각에 나는 떨리는 눈을 간신히 뜨고서 부탁했다.

“그만, 그만해.”

그래도 주현이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나는 주먹으로 그 애의 가슴팍을 치면서 밀쳐냈다. 그제야 입술 사이에 틈이 생겼고, 나는 간신히 고개를 비틀어 그 애의 입술에서 도망칠 수 있었다. 급한 숨이 몰아치는 입에서 버벅대는 말이 나왔다.

“가하. 울어?”

“너…… 이거.”

그 죄 없는 얼굴에 나는 서러워졌다. 촉촉했던 눈에 물이 차오르는 건 순간이었다. 나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엉엉 울었다. 자꾸 뽀뽀하려는 주현이가 혼란스럽고, 이상했다. 나는 그 애에게 원망스러움을 숨기지 않고 북받치는 눈물을 마이 팔 자락에 부비며 말했다.

“이거, 흑……. 인사, 아니라고……. 흐, 흑, 아니라고 했잖아……. 하지 말라고 했잖아…….”

“……가하.”

그 애가 나를 안고 계속 터지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 주었다. 그게 쓸데없이 자상하고 섬세해서 나는 괜히 감정이 더 차올랐다. 눈물이 다시 맺히는 순간, 주현이의 붉은 입 꼬리가 길게 휘어졌다. 마치 즐거운 것을 본 사람처럼.

“가하, 울어. 좋아.”

그러면서 제 손마디로 훔친 내 눈물을 살짝 핥았다. 무슨…….

“가하, 나, 좋아해. 그래서 울어.”

그는 핥은 손마디를 가만히 보다가 내 눈꼬리에 입을 살짝 맞췄다.

“울어. 더. 응?”

연한 살결이 부드러운 입술에 따라 붙었다. 동시에 맺혀 있던 눈물이 사르륵 터졌다. 이상하고, 어딘가 오싹한 말이었다. 더 울어 보라니. 우는 게 좋다니. 그리고 나온 말에 기가 막혔다.

‘좋아서 우는 사람이 어디 있어.’

“……싫어.”

“응?”

“너 싫어. 흐흑, 이런 거 싫어…… 너 진짜 나빠…….”

“나 나빠? 가하 나 싫어? 안 돼. 난 좋아. 가하.”

그 애가 살짝 기가 죽은 얼굴로 뺨에 말라붙기 시작하는 내 눈물 자국을 어디서 났는지 모를 보드라운 천으로 닦아 주었다. 가만 보니 파란색 손수건이었다. 그 애는 그러면서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러니까, 나 싫어하지 마. 응?”

이제 와서 아니라고 말하기도 뭣해서 나는 콧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주현이의 얼굴이 좀 더 편안하게 풀어지며 내 코에 손수건을 대고 웃었다.

“응. 흥, 해. 흥.”

패앵. 세차게 푼 콧물은 진득하게 손수건에 묻었다. 나는 예상 외로 많은 콧물에 조금 당황했다. 근데 주현이는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그걸 교복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그냥 웃었다.

“오늘 와? 우리 집?”

나는 속이 아직 풀리지 않아서 부루퉁하게 대꾸했다. 갈 거 같냐. 또 이런 거 할지 어떻게 알고.

“……아니. 안 가.”

그러자 주현이가 큰 덩치가 아깝게 호들갑을 떨었다.

“왜? 왜?”

“싫어.”

“인사, 싫어? 그래서 안 와? 안 해, 안 할게. 정말이야.”

이번에는 그 애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푸른 눈을 잔뜩 찌푸렸다. 여기서 실제로 운 사람은 난데, 어떻게 그 애는 그 모습만으로도 너무 처량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면서 그 얼굴을 회피했다.

“……주현이 너 싫어.”

“안 돼. 가하. 안 돼. 나 좋아해. 응? 우리 집 가.”

“싫어. 나도 집 있어. 나, 우리 집 갈 거야.”

“…….”

주현이가 말문이 막힌 듯 나를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마음이 조금 약해졌지만, 그래도 굳은 마음으로 다시 외면했다. 이러면, 정말정말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좀 알지 않을까 싶었다. 아무리 외국에서 자라서 잘 모른다고 해도, 이러다가는 시도 때도 없이…….

나는 다시 떠오르는 감각에 입술이 절로 움찔 움찔거려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나를 주현이가 품 안에 다시 껴안았다. 나붓 피어오르는 레몬 향을 가진 엷은 갈색 머리와 푸른 눈이 슬프게 나를 보았다.

“알았어. 가하.”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나는 눈을 꾹 감았다.

“오늘만. 다음에…… 같이 가.”

감긴 눈 틈 사이로 보리수 나뭇가지에 달린 잎사귀가 그 애의 머리 뒤에서 투명하게 빛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