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거짓된 운명이라 할지라도 Ⅱ(4)
알렉은 침대에 축 늘어져 있었다.
―정말로 레너드는 질투심이 강하구나….
차 안에서 있었던 행위를 떠올리며 알렉은 한숨을 쉬었다.
물론 그런 일로 레너드를 싫어하게 되지는 않는다.
별것 아닌 사소한 비밀로 그렇게 화를 내는 레너드를 알렉은 조금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레너드에게 비밀을 만들지 않아야겠어. 기분이 상할 만한 일이라도 솔직하게 말해서 레너드가 조금이라도 불안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나른한 몸으로 침대에 누워 알렉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레너드와 알렉은 나이 차이가 열 살이나 난다.
게다가 알렉은 아직 전 기숙사제 사립학교에 다녀야 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했다.
밖으로 나갈 자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괜히 더 레너드가 불안을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내가 마음이 변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불안한 것은 오히려 알렉이었다.
알렉은 못생기고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는 어린애지만, 레너드는 얼굴도 잘생기고 일도 잘하는 부유한 귀족이었다.
바깥에서는 레너드에게 수많은 여자가 몰려들 것이다.
어쩌면 남자 중에도 레너드의 매력에 이끌려 접근하는 인간이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된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이 없어졌다.
그렇지만 자신이 없어도 그 어두운 불안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한 레너드의 애정 때문이었다.
레너드는 태도로도, 말로도 알렉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지나칠 정도로.
그러니 알렉은 안심하고 레너드의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알렉은 퍼뜩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난 어땠지? 레너드를 확실하게 안심시켜 주고 있었을까?
“그게 문제였는지도 몰라….”
알렉은 중얼거렸다.
레너드에게서 받기만 할 뿐,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충분한 애정을 보여주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레너드가 그렇게까지 질투심이 강해진 건….
알렉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 나도 더 노력해야만 해.
확실히 난 아직 어리고 머리도 별로 좋지 않아서 레너드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라기 보다 전혀 없어.
하지만 나도 레너드를 사랑하고 있단 말이야.
그리고 레너드는 그런 날 사랑해주고 있어.
레너드가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나도 분명하게 레너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자.
알렉은 그렇게 결심했다.
일단은 이렇게 가만히 누워서 레너드가 보러 와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레너드를 찾아가자.
받기만 해선 안 된다.
무거운 몸을 다독이며 알렉은 상체를 일으켰다. 어쩐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신중하게 바닥에 다리를 내렸다.
“영차….”
조금 후들거리기는 했지만 두 발로 설 수 있었다.
천천히 걸어가면 레너드를 찾으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렉은 한숨 돌리고 걸으려 했다.
그때, 위화감을 느꼈다.
“아…안경…. 어디에 뒀지?”
시야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안경이 없는 탓이었다.
알렉은 사이드 테이블을 손으로 더듬었다.
바로 뭔가가 손에 닿아서 안경이란 것을 알았다.
레너드가 알렉 가까이에 놓아준 모양이다.
“헤헤… 그렇게 날 괴롭혔는데.”
생각해보면 달콤하기 그지없는 괴롭힘이었다.
달콤하고, 안타깝고, 괴롭고, 하지만 상대가 레너드라면 조금도 싫지 않았다.
안경을 집어 든 레너드는 그것을 살짝 품에 안았다.
“좋아해, 레너드.”
이제 절대로 불안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다시금 결심을 굳히며 안경을 쓰고, 알렉은 제일 좋아하는 연인을 찾으러 나갔다.
복도에서 마주친 집사에게 레너드가 있는 곳을 물었다.
집사는 그가 서재에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알렉은 감사 인사를 하고 서재로 향했다.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처럼 다리가 떨려서 침대로 돌아가 눕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찼지만, 그런 어리광은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레너드를 안심시키는 일이다.
2층 침실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와 서재 문을 살짝 노크했다.
“―뭐야? 들어와.”
안에서 들려온 대답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딱딱한 목소리였다.
대체 무슨 일이지?
알렉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문을 열었다.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린 레너드가 눈에 들어와서 놀랐다.
“레너드….”
“…어떻게 된 거야, 알렉? 벌써 일어나도 괜찮아?”
알렉을 보자 아까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평소의 다정하고 온화한 레너드가 있었다.
퉁명스러운 레너드도 똑같은 레너드라는 것을 알렉은 알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알렉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늘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은 레너드에게 있어 지켜줘야 할 어린아이 같은 존재니까.
알렉은 애써 미소 지었다.
“그게… 레너드를 만나고 싶어서.”
“나를?”
레너드는 잠깐 놀라더니 활짝 웃었다.
“아아, 계속 옆에 있어 주지 않아서 미안해. 일어났을 때 아무도 없어서 불안했지? ―이쪽으로 와, 알렉.”
다가와서 알렉의 허리를 안더니 부드럽게 소파에 앉혔다.
그럴 뿐만 아니라 똑바로 앉아있는 것은 아직 힘들 거라며 무릎베개를 해주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달콤한 레너드였다.
그러나 알렉은 달랐다.
안 좋은 머리로 나름 고심한 끝에 굳은 결심을 하고 온 것이었다. 레너드의 무릎을 따뜻했다.
알렉은 입을 열었다.
“저기 말이야, 레너드… 계속 옆에 있어 주지 않아도 괜찮아. 레너드가 없으면 내가 레너드의 곁으로 갈 테니까. 그러면 쓸쓸하지 않잖아?”
“웬일이야, 알렉? 왜 갑자기 이렇게 귀여운 소리를 하는 거지?”
레너드가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
레너드의 손이 알렉의 머리칼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게 기분 좋아서 알렉은 눈을 감았다.
레너드가 조용히 안경을 벗겨냈다.
눈을 감은 채 알렉은 이야기했다.
“레너드가 잔뜩 사랑해준 덕분에 나도, 아주 조금 머리가 좋아진 건지 몰라. 그래서 내가 뭐가 문제였는지 알게 됐어. ―저기 말이지, 레너드. 난 레너드가 정말 좋아. 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레너드밖에 없어. 친구도 생기고, 그렌필드에서의 생활도 즐거워졌지만,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건 레너드야. 레너드는 특별한 사람이고, 아무도 대신하지 못해.”
“알렉….”
알렉의 고백에 레너드가 말을 잃은 듯이 입을 다물었다.
알렉은 열심히 말을 이었다.
이번에는 눈을 뜨고.
안경이 없는 탓에 레너드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렇지만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렉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너무나 좋아하는 레너드였다.
안경이 없어도 뚜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제비꽃 색 눈동자를 향해 알렉은 미소를 지었다.
레너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
“레너드가 싫다면 난 미즈키를 무시할 거야. 공부를 배우는 게 싫으면 분명하게 거절할게. 앞으로 2년 동안 쭉, 내가 혼자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면 그렇게 하겠어. 미즈키를 통해서 친해진 다른 애들하고도 이제 말 안 할 거야. ―레너드를 위해서라면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저기… 구제불능이라서 애초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그래도 말이지, 레너드.”
“쉿, 알렉.”
계속해서 말하려고 하는 입술을 레너드의 손가락이 덮었다.
검지가 부드럽게 입술을 누르자 알렉은 레너드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레너드는 쓴웃음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안경이 없어서 분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너를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어. 넌 내 전부야. 갓난아기였던 네가 내 심장을 움켜잡았지. 이렇게 귀여운 네가 구제불능일 리 없잖아.”
“하지만 레너드….”
자신은 그저,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알렉은 입을 열려고 했다.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것은 레너드보다 훨씬 늦었지만 레너드를 사랑하는 감정은 분명했다.
그것을 알아주길 바랐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레너드의 불안을 없애고 싶었다. 레너드의 손가락이 다시 입술을 막았다.
“넌 구제불능이 아니야. 그 증거로 미즈키 같은 친구도 생겼잖아? 미즈키는 너의 장점을 알아봐 준 거야. 그리고 나와는 달리, 줄곧 알렉의 곁에 있지….”
“…미즈키는 친구야, 레너드. 친구는 연인이 아니야.”
“그래, 맞아. 하지만…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좁은 걸까. 이 가슴은 친구에게조차 질투하고 있어. 차라리, 알렉을 퇴학시킬 수만 있다면 하고….”
“레너드…!”
신음 같은 레너드의 중얼거림에 알렉은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나 강렬한 감정이라니. 그렇게까지 알렉을 독점하고 싶어 하고 있었다니.
알렉의 눈이 젖어들었다.
“그렇게… 날 원해?”
“원해…. 누구에게도… 친구라 해도 그 눈에 너의 모습이 비치는 게 싫어. ―이상하지?”
레너드의 입술에 자조 섞인 미소가 떠올랐다.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알렉은 열심히 고개를 흔들었다.
“이상하지 않아! 왜냐면… 그만큼 레너드가 날 좋아한다는 얘기잖아? 나같이 한심한 녀석을 그렇게까지 사랑해주고 있다는 거잖아? 왜 이상하다고 생각해?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그보다 난….”
알렉은 레너드를 꼭 끌어안았다.
품 안의 커다란 사람이 지금은 어쩐지 작게 느껴졌다.
자신이―자신만이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너드는 늘 나를 안심시켜줬는데, 난 레너드를 조금도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게 슬퍼. 레너드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는데 불안을 지워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 ―레너드, 사랑해. 이 세상 누구보다 레너드를 사랑해. 다른 누구도 이렇게 사랑할 수 없어. 미즈키도, 절대 레너드를 대신할 수 없다구. 절대로!”
“모처럼 생긴 친구인데?”
레너드가 불안한 듯이 알렉을 올려보았다.
제비꽃 색 눈동자가 속마음을 드러내듯 탁해져 있었다.
알렉은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는 레너드를 대신하지 못해. 레너드를 위해서라면, 평생 미즈키와 말을 안 해도 좋아. 아무하고도 말 안 할 거야. 레너드만 생각할 거야. 약속할게.”
“알렉…!”
레너드가 자신에게 꽉 매달리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는 차분하고 완벽한 어른처럼 여겨졌던 레너드가 이렇게 뜻밖의 나약한 모습을 보이자 알렉의 몸이 뜨거워졌다.
좋아한다는 감정 앞에서는 나이 따위 관계없었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잘난 인간이라도 사랑 앞에서는 누구나가 약자였다. 상대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는지를 알 수 없어서 불안해지고 나약해진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괜찮아, 레너드. 앞으로 2년 동안 난 아무도 안 볼 거야. 친구도 필요 없어. 레너드를 절대로 불안하게 하지 않을 거야. 왜냐면… 나도 레너드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레너드는 늘 나를 안심시켜 줬잖아? 레너드가 있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고, 레너드와 저기… 이런 사이가 된 뒤에도 사랑받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있었어. 항상… 이렇게 레너드가 지켜줬어.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레너드를 지킬 거야! 괜찮다고, 안심시켜 줄 거야.”
단호하게 선언하고 알렉은 레너드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은 자신의 부스스한 빨간 머리와 달리 손가락 사이에서 매끄럽게 흘러내렸다.
이렇게 근사한 사람이 어째서 나를 좋아하는 건지 그 기적에 더욱더 감사하고 싶어졌다.
레너드는 입장이 뒤바뀐 것처럼 알렉에게 힘껏 매달려 있었다.
그것이 곧 레너드의 불안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알렉은 더 강하게 레너드를 끌어안았다.
“사랑해, 레너드. 레너드뿐이야…. 영원히, 사랑할 거야.”
“…미안해, 알렉. 조금만 더, 이대로….”
“응. 언제까지든….”
알렉은 그대로 한참 동안 레너드를 감싸 안고 있었다.
그날 밤.
낮에 있었던 난폭한 행위를 염려해서 레너드는 알렉을 안으려 하지 않았다. 그냥 한 침대에 누워 밤을 보냈다.
그러나 알렉의 마음은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아마, 레너드도 그랬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레너드는 이미 평소의 레너드로 돌아와 있었다. 알렉보다 훨씬 크고 포근하게 감싸주는 어른스러운 연인이었다.
“잘 잤어, 알렉?”
자신을 바라보는 달콤한 눈빛이 부끄러워서 알렉은 얼굴을 붉혔다.
레너드는 알렉을 안아 들고 식당까지 옮겨주었다.
“괘, 괜찮아, 레너드. 나, 걸어갈 수 있는데….”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 같이 있을 수 있는 건 오늘 점심까지잖아?”
오후가 되면 차에 올라타 그렌필드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레너드가 조금이라도 더 연인다운 일들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조금 부끄러웠다.
아무리 랭스턴 백작가의 사람들이 레너드와 알렉의 관계를 알고 있다 해도 공주님처럼 안아 들고 옮겨주는 것은 창피했다.
그래도 부끄러우니까 하지 말라고 말했다가는 분명 레너드의 불안의 씨앗이 될 것이다.
대신 알렉은 레너드에게 꼭 매달려 이마를 어깨에 묻었다.
“정말, 레너드도 참….”
라고만 말하고 그 뒤로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런 알렉을 보며 레너드는 더없이 즐거운 듯했다.
알렉은 한시름 놓은 것과 동시에 기뻤다.
자신의 행동이 레너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던 것과 레너드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뿌듯했다.
아침 식사도 레너드의 무릎 위에서 먹었다.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결국 알렉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왜 하지 말라고 안 해, 알렉?”
얼굴 전체가 빨갛게 물든 알렉을 보고 레너드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알렉은 슬쩍 레너드를 흘겨보았다.
“그렇지만… 레너드가 이렇게 하고 싶은 거잖아?”
“내가 하고 싶은 걸 우선해주는 거야?”
어딘가 시험하는 것 같은 말투로 물었다.
알렉은 물론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연인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것이다.
“레너드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으니까.”
그렇게 말하자, 레너드의 눈이 살짝 커진다.
이어서 환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너무 행복해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아, 알렉. 넌 내 욕심을 어디까지 받아줄 생각인 거야?”
“무엇이든…. 왜냐면, 레너드를 사랑하니까. …레너드가 나와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어.”
작게 속삭이자, 레너드가 행복한 듯이 미소 지었다.
입술에 쪽 입을 맞춘다.
“바보구나. 나 혼자 행복해지는 건 의미 없어. 둘이서 같이 행복해지는 거야, 알렉. ―나와 연인이 되어서 행복해?”
“응. 레너드와 이런 관계가 될 수 있었던 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야. 언제까지고 레너드와 이렇게 살아가고 싶어.”
“최고야, 알렉.”
다시 한 번 레너드의 입술이 다가왔다.
욕정을 자극하지 않는 귀여운 키스도 레너드와 하는 것은 특별했다.
그렇게 학교에 돌아갈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알렉은 레너드와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물론 돌아가는 길도 레너드가 함께였다.
운전기사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칸막이는 올리고 있었지만 레너드는 어제처럼 알렉을 만지지 않았다.
어째서냐고 알렉이 묻자,
“섹시한 얼굴을 나 이외의 사람에게 보이고 싶진 않겠지?”
하고 레너드가 대답했다.
알렉의 뺨이 달아올랐다.
레너드 탓에 녹아내린 얼굴을 섹시한 얼굴이라고 하는 건가?
그런 걸 보고 욕정을 느끼는 건 레너드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기쁨에 녹아내린 얼굴을 해도 다른 사람들은 기분 나빠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생각해주는 것은 조금 기뻤다.
“레너드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안 보여줄 거야, 그런 얼굴.”
헤헤헤, 하고 웃으면서 알렉은 장담했다.
어제와는 180도 달라진 달콤한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렌필드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이 무척이나 빠르게 느껴졌다.
경치가 바뀌는 것을 보면서 레너드가 작은 소리로 행복한 시간이 끝났음을 알렸다.
“그렌필드에 거의 다 왔어. 이걸로 또 당분간 작별이구나, 알렉.”
알렉을 꼭 끌어안았다.
알렉도 레너드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힘껏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끌어안았다.
“일… 바쁘지, 레너드?”
솔직하게 쓸쓸하다고 말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조금은 사려 깊은 태도를 보이며 괜찮다고 말해야 할까?
자신의 마음은 문제 되지 않았다.
레너드가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중요한 기준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말하는 것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어서 알렉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 코끝을 레너드가 가볍게 꼬집었다.
“쓸쓸하다고 말해봐, 알렉. 나를 빨리 만나고 싶다고. 나와 똑같이.”
다정하게 투정부려보라고 재촉한다.
알렉은 아주 살짝 어제처럼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내비친 레너드를 보면서 슬프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기쁘고 안타까웠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레너드의 곁에 쭉 있고 싶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쓸쓸해…. 레너드하고 똑같이…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레너드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빨리 만나러 와줘. 기다리고 있을게. 아무하고도 얘기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게.”
레너드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니까, 그렌필드에서는 계속 혼자 지낼 것이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알렉은 레너드에게 맹세했다.
알렉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레너드의 눈이 일그러졌다.
안타까운 듯이 괴로운 듯이.
그리고 마지막에는 쓴웃음으로 바뀌었다.
“―괜찮아, 알렉. 친구를 소중히 여기도록 해. 미즈키와 함께 얼마 남지 않은 그렌필드에서의 생활을 즐겁게 보내. 너에게 있어서 퍼블릭 스쿨에서의 생활은 괴로운 일뿐이었어. 미즈키 덕분에 그것이 변한다면 날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안 돼! 그러면 안 돼, 레너드!”
알렉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레너드가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이 알렉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인 것이다.
“괜찮아. 지금까지도 혼자였는걸. 다시 혼자 지낸다 해도 아무렇지도 않아. 레너드가 있으니까.”
“무리하지 마. 난 알렉을 꽁꽁 붙잡아두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 대신 그렌필드를 나온 뒤에는 알렉은 전부 다 내 거야. 알았지, 알렉?”
“하지만 레너드….”
미즈키와의 우정을 허락해주는 것은 기쁘지만 그 일로 인해 레너드를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괜찮은 걸까?
알렉은 레너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레너드가 훗, 하고 미소 지었다.
“―넌 내 거야. 말해봐, 알렉.”
레너드의 속삭임을 듣고 알렉은 마음을 담아서 따라 했다.
“난 레너드 거야. 전부, 평생….”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알렉의 진심에서 나온 바람이었다.
“응….”
레너드가 사랑스러운 듯이 미소 지었다.
“나도 평생, 전부, 알렉 거야. 그걸 이따금 느끼게 해준다면 참을 수 있어. ―자.”
그렇게 말하고 레너드가 좌석의 작은 수납함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알렉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거… 휴대전화?”
“그래. 그렌필드에서는 금지되어 있겠지만 몰래 가지고 있어. 그리고 밤에는 나한테 문자를 보내는 거야. 물론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전화를 걸어도 좋고. 다른 사람한테 들키지 않도록.”
“레너드… 응, 알았어. 약속할게.”
알렉은 환하게 웃었다.
기숙사의 규칙 따위 상관없었다.
휴대전화가 있으면 언제든 레너드와 이어질 수 있다.
기뻐하는 알렉을 보고 레너드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알렉의 손에서 전화기를 받아들고 가방 안에 숨겼다.
“충전기도 넣어둘게. 들키지 않도록 밤에 취침 시간에만 충전하도록 해. 그리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전원을 꺼놓고. 매너 모드로 해놔도 진동 소리 때문에 들킬 테니까.”
“응, 주의할게.”
그렇다면 이 휴대전화로 레너드와 연결된다 해도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알렉에게 달린 셈이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전화는 상황에 따라 못 걸 수도 있지만 문자는 꼭 보내야지. 레너드는 바쁜 사람이니까 답장이 없을 때도 있겠지만 난 매일 매일 보낼 거야.
알렉은 그렇게 결심했다.
조금이라도 레너드의 걱정이 줄어들도록.
알렉의 마음이 전해지도록.
그리고 그것을 레너드에게 직접 전했다.
“매일 문자 보낼게. 들키지 않을 거 같으면 전화도.”
“나도 꼭 답장 보낼게.”
레너드는 다시 한 번 힘껏 알렉을 끌어안았다.
이대로 쭉, 이 품 안에 있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알렉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마음대로 학교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이 기숙사제 학교를 졸업해야만 한다.
알렉의 부모님도 설마 머리 나쁜 아들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그렌필드만 졸업하면 상당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자유는 레너드를 위한 자유였다.
사실은 취업하거나 독립을 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레너드가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었다.
레너드는 알렉의 전부니까, 무엇이든지 레너드를 위해서 사용하고 싶었다.
이윽고 차는 그렌필드 교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레너드가 조용히 팔을 풀었다. 머리 위에서 한숨이 들려왔다.
“작별이구나. ―미즈키를 피할 필요는 없어, 알렉. 정말이야. 친구를 소중히 여기도록 해.”
“레너드… 하지만….”
“걱정하지 마, 알렉. 한심한 꼴을 보였으니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친구가 있어도 괜찮아. 나를 사랑해주기만 한다면….”
안타까운 듯이 레너드가 말했다.
알렉은 소중한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진심인 걸까? 정말로 그가 말하는 대로 해도 되는 걸까?
살피는 듯한 알렉의 눈빛에 레너드가 훗, 하고 웃었다.
“문자. 그리고 가끔씩은 사진도 보내줘.”
“응…. 꼭 보낼게.”
“즐거운 학창 생활을 보냈으면 해. 알렉이 괴롭힘당하는 건… 나에게도 괴로운 일이니까.”
“응…응….”
이미 정차한 차 안에서 알렉과 레너드는 꼭 얼싸안았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득 떠오른 듯이 레너드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 미즈키가 휴대전화에 대해 비밀로 해줄 것 같으면 미즈키와 알렉의 사진도 한 번 보내줘. 알렉에게 처음으로 생긴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나도 궁금하거든. …이것도 지나친 질투인 걸까?”
조심스럽게 물음을 덧붙였다.
설마, 하고 알렉은 고개를 저었다. 레너드가 그렇게 말해주어서 기뻤다.
“그렇지 않아. 미즈키는 입이 무거우니까 틀림없이 비밀을 지켜줄 거야. 미즈키와 찍은 사진도 꼭 보낼게. 좋은 아이니까… 그치만 저기… 나보다 훨씬 귀여우니까… 저기….”
한눈팔면 안 돼, 그렇게 말하려던 알렉의 입술에 레너드가 검지를 갖다 댔다.
그 눈은 사랑스러운 듯이 알렉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애를 봐도 나한테는 알렉이 제일 귀여워. 어쨌든 나는 갓난아기인 알렉한테 첫눈에 반했잖아. 이 마음은 꽤 역사가 깊단 말이지.”
“내가 갓난아기일 때라니….”
알렉이 조금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 레너드는 넋을 잃을 만큼 근사한 미소를 지으며 알렉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내가 알렉을 사랑하는 건 운명이야. 우리 두 사람은 반드시 맺어지도록 운명 지어져 있는 거야.”
“운명…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려.”
나 같은 못난이한테 ‘운명’이라니, 너무 로맨틱하잖아.
그렇지만 그 운명이 자신과 레너드를 이어주고 있다면 이렇게 멋진 운명도 없을 것이다.
“―자, 그만 가봐. 머지않아 또 시간을 낼 테니까.”
“응. 기다릴게. 매일 문자 보내면서 기다릴 거야. 저기, 레너드… 사랑해, 이 세상 누구보다.”
“나도 가슴이 아플 정도로 사랑해, 알렉.”
그렇게 속삭이고 나서 레너드는 다정하게 알렉의 등을 밀었다.
이제 가야만 한다. 차가 멈춘 지 긴 시간이 지났다.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미심쩍게 여길지 모른다.
알렉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었다.
가방을 손에 들고 차에서 내렸다.
“또 봐, 레너드.”
미소 짓는 레너드에게 손을 흔들고 알렉은 워튼관으로 들어갔다.
“어서 와, 알렉!”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기쁜 얼굴로 달려오는 미즈키였다.
에릭과 윌도 함께였다.
“봐, 그 차, 역시 알렉의 차였지?”
윌이 의기양양한 듯이 말했다.
그 모습에 에릭이 지겹다는 듯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깟 일로 잘난 척하지 마. ―푹 쉬고 왔나 보네, 알렉.”
“아… 응. 늦어도 오늘 안에만 돌아오면 되는 거잖아.”
알렉은 휙 고개를 돌렸다.
레너드 앞에서는 있는 그대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있을 수 있지만, 친구들에게는 자꾸만 퉁명스럽게 대하게 된다. 그러나 그래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 친숙하게 굴면 레너드가 질투하니까.
그렇게 생각한 알렉은 모처럼 마중을 나와 준 미즈키와 친구들을 놔두고 재빨리 계단을 올라갔다.
“아! 알렉, 도망가지 마∼. 선물 받아온 것 있지? 우리한테 좀 나눠 줘.”
“선물?! 무슨 소리야, 바보.”
“뭐야, 과자나 과일 같은 거 없어? 틀림없이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투덜거리는 윌을 보며 알렉은 기가 막혔다.
“…그럼, 그거 때문에 기다린 거야? 누가 보면 여기서 굶기는 줄 알겠네.”
“대놓고 말하진 못하지만 여기 밥은 맛이 없잖아. 가끔 외박 한 녀석들의 선물이 유일한 구원이라구∼. 정말 없어, 알렉?”
“윌…, 네 머릿속엔 먹을 거밖에 안 들어있냐?”
에릭이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질렸다는 그 태도를 봤을 때, 윌이 평소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릭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윌은 미즈키에게 동의를 구했다.
“미즈키도 뭔가 맛있는 거 먹고 싶지? 우린 한창 먹을 나이잖아.”
그러나 미즈키도 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난 별로…. 미안해, 윌.”
미즈키는 쓴웃음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미즈키는 원래 입이 짧았다.
알렉은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봐, 먹을 걸 노리고 나온 녀석은 윌뿐이잖아.”
그러고 나서 미즈키와 에릭만 초대했다.
“레너드 형이 여러 가지 많이 사줬어. 차랑 같이 먹자, 미즈키, 에릭.”
“어어∼, 난 안 불러주는 거야, 알렉?”
윌이 징징거리며 알렉의 등에 매달렸다. 커다란 덩치가 뒤에서 덮쳐 누르자 알렉은 눈썹을 찌푸렸다.
“무거워. 저리 안 가면 진짜 초대 안 해준다.”
“만세♪ 알렉은 역시 좋은 녀석이라니까.”
윌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알렉의 팔을 붙잡았다.
단순한 녀석, 하고 알렉은 생각했다. 역시나 미국인이다.
미즈키는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에릭은 기가 막힌 듯이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 녀석들이랑 어울려도 된다고 레너드가 허락해줘서 다행이야, 하고 알렉은 생각했다.
워튼관에 들어온 뒤로 누군가가 이렇게 알렉의 귀가를 기다리거나 장난을 치는 일은 처음이었다.
이것이 친구라는 걸까? 조금 쑥스러웠다.
―물론 단순한 친구라구, 레너드.
마음속으로 알렉은 레너드에게 전했다. 아무리 레너드가 걱정해도 알렉의 마음은 레너드의 것이었다. 친구는 연인이 아니다.
“나, 차를 준비해올게.”
미즈키가 그렇게 말하자 에릭도 도와주겠다며 따라나섰다.
과자에 대한 답례로 짐을 들어주겠다는 윌에게 가방을 맡기고, 알렉은 따뜻한 기분으로 방으로 향했다.
―이런, 이런, 귀여운 새끼 사슴이 세 마리나 알렉을 기다리고 있었나?
차 안에서 알렉을 지켜보고 있던 레너드는 차가운 눈빛으로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친절하기도 하지, 하고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그만큼 성격이 좋지 않으면 완전히 비뚤어진 소년으로 자란 알렉과 친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여름 방학 동안 그렇게 훼방을 놓았는데도 떨어져 나가지 않았던 녀석들이니.
“―출발해.”
운전기사에게 지시를 내리며 레너드는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알렉을 대할 때의 달콤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알렉이 퇴학당하도록 손쓰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실제로 정말로 그렇게 해볼까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처음으로 생긴 친구들과 무리하게 떼어놓으면 언젠가는 레너드를 향한 알렉의 신뢰에 금이 가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차선책으로 레너드는 알렉의 마음에 못을 박아 넣었다.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 알렉이 더욱 레너드를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지금 알렉은 자신이 레너드를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레너드의 마음에서 불안을 없애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알렉을 떠올리며 레너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귀엽고, 단순하고, 사랑스럽다.
앞으로 2년만 지나면 완전히 레너드만의 것이 될 것이다.
레너드의 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구해주겠다고 말하면 세인트 올즈리의 부모는 기꺼이 알렉을 맡길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어도 자신은 알렉과 그 사슴 세 마리의 우정을 허락할 것이다. 그들 쪽에서 떠나지 않는 한―.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알렉의 몸과 마음을 손에 넣기 위해, 자신은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미안해, 알렉.
레너드는 마음속으로 알렉에게 사과했다.
자신은 굉장히 마음이 좁아서 그 누구와도 알렉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알렉이 자신을 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었다.
주근깨가 흩어져 있는 것은 그만큼 피부가 하얀 탓이고, 푸석한 머리칼도 솜씨 좋은 미용사의 손을 거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빈약한 몸은 확실히 남자로서는 볼품없을지 모르지만 레너드의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두꺼운 안경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안경을 벗으면 보석처럼 아름다운 에메랄드 눈동자가 나타난다.
무엇보다 늘 자신 없이 움츠러드는 버릇을 버리고, 활기차게 얼굴을 들고 웃게 된다면 인상도 변할 것이다.
언젠가는 알렉을 그렇게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었다.
레너드의 손이 닿지 않는 기숙사에 있는 동안에는 알렉은 미운 오리 새끼 그대로 있는 것이 낫다.
아무도 그 아름다움에 눈길을 주지 않고, 비뚤어진 마음의 안쪽에 있는 순진함을 깨닫지 못해야만 했다.
―2년 뒤, 넌 내 손에 의해 백조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알렉.
단, 나 레너드 앞에서만.
귀여운 알렉, 소중한 알렉.
자신의 애정이 일그러져 있다는 것은 레너드도 자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려서 가족을 잃은 기억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두 번 다시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손안에만 가둬두고 보호하고 있다―.
자신 같은 남자의 눈에 들고 말았으니 알렉은 운이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갓난아기인 알렉도 또한 선택했던 것이다.
레너드에게만 미소를 보여줌으로써.
“…놓치지 않을 거야, 알렉.”
나직한 그 중얼거림을 듣는 사람은 없었다.
운명은 만드는 것이다.
귀여운 알렉을 로맨틱한 숙명에 취하게 만든 채, 레너드는 자신을 위한 운명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것이 레너드라는 남자의 사랑이었다.
영원히 알렉만을 향하는―.
앞으로의 운명을 떠올리며, 레너드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