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북부대공의 햄스터-111화 (111/129)

111화. 다 된 마법에 햄스터 뿌리기 (2)

나는 손짓 발짓 몸짓을 동원해서야 카일에게 ‘사랑의 전서구’를 대략적으로

나마 설명할 수 있었다.

일종의 통신 마법이라고 했더니 카일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반은 못 알아들은 표정이었다.

‘설명서도 없냐! 설명서 좀 줘라!’

전자 제품도 사면 설명서 같은 거 주잖냐. 그런 식으로 하나 쥐여 줘야지. 물

론 나는 늘 제대로 안 읽고 버렸지만, 누군가에게는 요긴하지 않겠어?

[초심자용 설명서가 지급됩니다!]

그래도 비싼 값을 하는 모양인지 시스템이 직접 나섰다.

“전하, 설명서가 뜰 텐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카일이 검을 뽑았다. 그게 벤다고 베어지진 않을 텐

데……. 그래도 이해는 한다. 돌연 정체불명의 창이 눈앞에서 떠오른 거니까.

표정이 쓸데없이 진지했다.

[இ௰இ]

“진정하세요. 그냥 설명서라고요.”

“…….”

“읽어 보세요. 저와 떨어져 있을 때 요긴하게 쓰일 겁니다.”

“…….”

카일은 여전히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지만, 적어도 검은 제자리에 꽂았다. 그

러고는 뻣뻣하게 굳은 채 허공을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내가 평소에 시스템이랑 대화할 때 이런 느낌인가? 기분 이상하네.’

그렇게 십여 분이 흘렀다. 기다리다 지루해진 나는 예시라도 보여 주자, 하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전하. 사용 방법은 얼추 읽으셨죠? 거기 앞에 있는 것들을 누르시면 전송이

돼요.]

이거, 잘만 활용하면 햄스터일 때도 대화할 수 있겠는데? 드디어 나도 인권

이라는 걸 챙길 수 있게 되는구나!

그때, 답장이 왔다.

[ㅁㅁ23ㅅ]

“…….”

……뭐지?

나는 미간을 좁힌 채 카일이 보낸 정체불명의 문자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창 너머로 흘끗 바라보았는데, 그는 처음 보는 마수와 독대하는 것

처럼 심각한 얼굴로 팔을 움직이고 있었다.

저게, 그러니까…….

‘말로만 듣던 독수리 타법이네.’

절대 안 그럴 것 같은 얼굴로 뚝딱거리니까 솔직히 귀엽다.

[전하.]

[0333]

대체 뭐냐고.

시스템한테 이모티콘 같은 거라도 만들어 달라고 건의해야 하나? 아니다. 지

금 있는 기능도 못 쓰는데 이모티콘을 무슨 수로 이해한담.

각고의 노력 끝에 카일이 드디어 오타 없는 메시지를 보냈다.

[슈.]

고작 한 글자인데 감동이 밀려온다. 장하다, 장해.

나는 메신저를 휙 치우고는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연습은 틈틈이 해 보시고요, 이제 갑시다. 해가 떴으니까 오늘의 일정을 소

화해야죠.”

“넌 익숙해 보이는군.”

“그야, 제 세상에서 쓰던 거랑 비슷하니까요. 현대식 문물이라는 겁니다.”

카일이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어.”

“그래도 배우는 게 빠르시니까, 금방 익숙해질 겁니다.”

“응.”

“아침 식사 후에는 연구실에 가 봐야 해요. 전하는요?”

“탑을 조사하는 게 좋기는 하겠지만…….”

어제 도청한 결과, 어렴풋하게나마 마탑주들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됐다.

‘공허한 넋’, ‘익사체’, ‘장의사’, 그리고 ‘하얀 망령’까지. 그들과 황제, 그리

고 ‘겨울의 심장’이 모두 관련된 모양이니 탑에서 그 증거를 찾아내야 했다.

정보를 하나라도 더 긁어모으려면 어디를 뒤져야 할까, 턱을 매만지며 진지

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카일이 고개를 저으며 내 상념을 잘랐다.

“나가는 길을 찾아볼 거다.”

“……네?”

“계획이 어그러졌을 때를 대비하는 게 좋아. 연구실과 숙소에서 바깥으로 향

하는 최단 경로를 찾아보고 몸에 익힐 거다. 그리고 혹여나 놈이 우리를 이곳에

가두었는지, 만일 가두었다면 어떤 방식으로 열리는지도.”

하긴, 아무리 많은 정보를 손에 넣은들 무사히 돌아갈 수 없다면 아무 의미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역시, 생존 방법에 대해서는 그를 이겨 낼 재간이 없다.

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시간이 남으면 연구실 근처를 뒤져 볼 거다. 네게 무슨 일이 있어도 금방 갈

수 있겠지.”

그의 말에 나는 재빨리 카일의 예상 사망 시간을 확인했다.

[카일 제인 마인하르트. 예상 사망 시간으로부터 2일 남았습니다.]

어째 더 줄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닌 걸 보니, 지금의 계획은 실행해도 괜찮

은 모양이다.

나는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만일 계획이 바뀌면 꼭 얘기해 주셔야 합니다. 제가 옆에 없으면 전서구를

통해서 신호라도 주세요. 알겠죠? 전하가 위험해지는지 아닌지 알아야 하니까

요.”

나를 식당으로 이끌던 카일이 신기하다는 듯 되물어 왔다.

“그런 걸 그때그때 확인해서 알 수 있나?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게 아니라

정보를 확인하는 것 같군.”

“아, 그게…….”

아차 싶어 입을 다물고 있자, 식당에서 기다리던 녹스가 다가와 내가 앉을 자

리의 의자를 빼 주며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나누실까.”

왜 친절하게 굴고 난리야. 나는 그 의자에 카일을 앉히고는 옆에 앉았다.

“원래 연애하는 사이에서는 뭘 해도 그냥 즐거운 법이거든요. 만년 싱글이

알까 몰라.”

“난 마법과 결혼한 몸이라.”

“임자 있어서 좋으시겠습니다.”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한담. 분명히 어제 도와준 것 때문에라도 내

게 정보를 많이 캐내려고 하겠지. 이유 없이 잘해 줄 사이가 아니다 보니, 새삼

스럽게도 부담감이 느껴졌다.

정확한 정보, 특히나 북부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나

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아야 한다.

다만 나는 그리 대단한 꿍꿍이를 가지고 움직이는 게 아니어서 줄 만한 정보

가 한정적인데…….

‘이변 간섭률만 들키지 않으면 되려나.’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래라도 씹은 것처럼 입안이 온통 깔깔했다. 몸의 피로는 풀렸으나 정신적

으로는 내내 지친 탓이었을까, 입맛이 영 없었다.

“슈. 입맛이 없나?”

“네, 좀…… 뭐. 그냥…….”

나는 어물어물 대답하며 눈앞의 음식들로 시선을 돌렸다.

매번 생각하지만 말이 좋아 아침이지, 거의 만찬 수준이었다. 산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 텐데 어디서 이런 음식을 만들어 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침으로

먹기엔 자기주장 강한 음식들 덕분에 속이 부담스럽기는 했다.

예전에는 그냥 시리얼이나 아몬드 브리즈, 에너지 바 정도로 때웠었는데. 북

부에서도 따뜻한 스튜나 조금 입에 대고 마는 정도였다.

“입이 짧으니 자꾸 살이 빠지지.”

카일이 몸을 일으키더니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뒤에 서서 몸을 살짝 굽

히고, 팔꿈치를 가볍게 쥐어 탁자 위로 팔을 올리게 했다.

그는 그대로 내 손에 포크를 쥐여 준 채로 음식을 콕 찍었다. 그나마 접시 위

에서 가장 담백한 재료였다.

……성의를 봐서 먹어는 줘야지.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못 이긴 척 받아먹었다. 그러자, 카일이 기

쁜 듯 낮게 웃었다.

그런 우리 둘을 내내 웃는 낯으로 구경하던 녹스가 파란 액체가 가득 담긴 잔

을 흔들며 유쾌하게 말했다.

“다정하네, 대공 전하께서는.”

카일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무렴, 단 한 사람에게만은.”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겠어.”

“그러니 지켜 내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재밌단 말이야.”

녹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어 보였다.

“자꾸 그렇게 필사적으로 구니 뺏고 싶어지는걸.”

보다 못한 내가 나섰다.

“그거 악취미예요, 악취미. 왜 잘사는 사람을 괴롭히고 그럽니까? 됐고, 먹을

만큼 먹었으니까 얼른 연구실로 올라가죠. 후딱 끝내고 쉬게.”

“확실히 마르기는 했어. 처음 만났을 때보다 얼굴이 더 핼쑥해진 것 같단 말

이야, 꼬마야.”

“누구 때문이겠어요. 댁 때문이겠지. 그쪽이 피곤하게만 안 굴면 제 명에 행

복하게 살다 갈 겁니다.”

나는 툴툴거리며 대꾸하고는 카일의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

“……무슨 일 있으면, 아시죠. 무조건입니다.”

카일이 부드럽게 웃으며 내 이마에 입술을 꾹 눌렀다.

“그래.”

* “

사실 저는 햄스터입니다.”

“…….”

일단 냅다 질렀다.

내가 가진 가장 대단한 비밀이라고 해 봐야 이런 것뿐이었다. 파격적인 사실

을 먼저 털어놓을수록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녹스 역시 제 비밀을 꺼내놓아

야 할 테니까.

“왜 그런 눈으로 봅니까. 햄스터, 처음 봐요?’

“지금 꼬마, 너는 햄스터가 아닌데.”

“정확히는 북부 들쥐입니다. 어렸을 때는 햄스터랑 큰 차이가 없지만요. 이

건 인간 모습으로 변신한 겁니다. 일종의 마법 같은 거죠.”

“마법이라…….”

녹스는 내가 걸터앉아 있는 실험대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 이따금 흥미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세계에 왔을 때 햄스터였다는 거지.”

“굳이 따지자면 그래요. 어차피 인간으로 변할 수 있으니까 크게 불편하지는

않지만요.”

시간제한이라던가 이 탑에 와서 그 제한이 느슨해졌다는 이야기는 굳이 덧붙

이지 않았다. 굳이 약점을 말해 줄 필요는 없으니까. 어쨌든, 내가 햄스터라는

사실만 알면 됐지.

“보고 싶은데.”

“사양합니다. 제 인권을 지켜 주세요.”

“햄스터에게 인권이 왜 있지?”

“팔자가 꼬여서 그렇지, 원래는 인간이었거든요?”

“아하하.”

녹스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즐거워 보였다. 좋냐. 빌어먹을 마법사 놈 같

으니.

“작아지는 마법이나 변신 마법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하고 많은 생물 중에

햄스터일 줄은 몰랐는데. 그것도 북부 들쥐, 푸훗, 하하. 북부에서도 약해서 툭

하면 멸종 위기에 놓이는 그 쥐 말이지.”

“자꾸 쥐, 쥐 하지 말아 주실래요? 듣는 쥐한테 무척 실례되는 발언이거든요,

그거.”

“사람이라면서.”

“쥐일 때도 있으니까요.”

녹스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 왜. 뭐.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

걸이지. 내 마음이다. 불만 있냐.

녹스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나는 심장을 가진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어.”

“겨울의 심장…… 말입니까?”

“도대체 그 말을 어디에서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 완벽하게 만든 심장

일수록 내 명령에 거역할 수 없지. 그리고, 나는 그걸.”

그가 선심을 쓴다는 듯 덧붙였다.

“로렌츠 세레나 마인하르트에게 선물할 거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