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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29화 (30/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29화

“수겸 씨랑은 다음에도 꼭 같이 일해보고 싶네요. 기회 되면 같이할래요?”

“헉, 저야 정말 영광이죠!”

제현의 말에 수겸은 감격에 젖었다. 비록 그가 이번 메인 PD는 아니지만, 언제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할지 모르는 법이었다. 그러니 PD의 눈에 든 것은 언제가 되었든 좋은 현상이었다.

“제현 PD님, 잠깐만 와보시래요!”

그 순간 막내 PD가 제현을 불렀다. 그는 가볍게 고개로 인사를 하고는 제작진이 모여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그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수겸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헉, 대박대박. 좋게 봐주셨나 봐.”

“…….”

당연히 축하한다든가, 잘했다는 반응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이겸과 유찬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야, 칭찬 좀 해줘. 이 사람들아! 내가 PD님 눈에 들었다니까?”

“마음에 안 들어.”

“그러게요.”

“에엥? 왜 마음에 안 들어? 들어야지!”

“아무튼 안 들어.”

“저도요.”

이겸의 말에 유찬이 맞장구를 쳤다. 둘이 마치 짠 듯했다.

수겸으로서는 두 사람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인 아이돌이 예능국 PD의 눈에 들었으면 얼마나 좋은 일인데, 왜 두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수겸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는데, 두 사람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수겸은 두 사람 사이에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결국 담력 테스트는 A팀을 끝으로 무산되었다. 대신 모여 앉아 야식을 먹으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방송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치킨, 피자, 닭발, 야채곱창, 떡볶이 같은 야식의 대표 메뉴부터 입가심으로 먹기 좋은 조각 케이크와 쿠키까지 다양하게 야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상을 본 수겸의 표정이 단번에 밝아졌다.

“와, 이거 다 먹어도 되는 거예요?”

“그럼요, 드세요. 다 드셔도 돼요.”

한솔의 물음에 메인 PD는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반색하는 수겸을 비롯하여 모여 있던 유피트 멤버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아 앉았다. 수겸은 와중에도 센터를 놓치지 않고 상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했다.

자리에 앉은 수겸은 메뉴들의 로고를 살펴보았다. 이 많은 음식이 있는데 딱히 로고가 눈에 띄는 건 없는 것으로 보아, PPL은 아닌 듯했다.

PPL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수겸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졌다.

“자, 드시면서 알고 계신 무서운 이야기들 들려주시면 돼요. 서로한테 들려준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말씀하세요.”

하지만 이어지는 메인 PD의 말에 수겸의 낯이 금세 어두워졌다.

무서운 이야기라…… 어느 정도 무서워야 편집의 기로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

수겸이 깊은 고민에 잠겨 있을 때였다.

“나 그거 있어. 연습실에서 귀신 본 적.”

한솔이 먼저 운을 떼었다.

놀란 수겸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한솔을 바라보았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잘못 봤겠거니 싶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다가 처음 말하는 건데…….”

“헉, 진짜?”

“우리 연습실에서? 춤? 아니면 노래? 어느 쪽?”

멤버들이 하나둘 한솔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수겸 역시 준비된 딸기 스무디를 마시며 한솔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때 데뷔 전이었는데, 새벽까지 연습하고 있었거든. 춤 연습.”

“어어. 그런데?”

“아, 근데 왠지 막 그날따라 춤이 안 춰지는 거야. 컨디션도 너무 안 좋고. 아무리 춰도 평소 추던 거에 반도 못 추는 것 같고.”

한솔은 그때 생각에 빠져드는지 찜찜한 표정이었다.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무서운지 그는 한동안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겨우 다시 운을 떼었다.

“도대체 왜 이러지, 하면서도 계속 춤을 췄는데, 그러다 한 바퀴 도는 안무가 있었어. 그래서 빙글 돌면서 얼핏 거울을 보게 되었거든. 그런데……. 웬 손 두 개가 내 발목을 잡고 있더라.”

“헐…….”

“와…… 미쳤다.”

“정말요?”

“으아아아아아, 소름 끼쳐! 그 전까지는 안 보이다가 그때 본 거야?”

태원과 차이겸, 유찬, 수겸까지 모두 입을 모아 한솔의 이야기를 듣고 느낀 소감을 우르르 쏟아냈다. 짧고 굵은 이야기였다.

수겸은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을 애써 지우며 도리질을 쳤다.

“어, 그 전까지는 안 보였어. 돌 때 잠깐만 딱 보이고 사라졌어. 그래서 잘못 봤나 싶으면서도 그날따라 춤도 안 춰지고 유난히 다리도 무겁고 그랬던 게 생각나서 바로 짐 싸고 도망쳐 나왔잖아.”

한솔은 다시 생각해도 진저리가 나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겸은 그런 한솔을 보다가 힐끔 제작진의 눈치를 살폈다. 얼핏 본 제작진의 표정은 반은 유피트와 마찬가지로 충격에 빠진 듯했고, 반 정도는 흡족해하고 있었다.

다행히 통편집은 피하겠구나 싶어 수겸이 안도하고 있던 찰나, 이번에는 태원이 입을 열었다.

“내 이야기는 아니고, 누나가 겪은 일을 나한테 말해준 적 있어.”

“태리 누나가?”

태리 누나는 태원의 친누나였다. 수겸 역시 오며 가며 몇 번 본 적 있었다.

수겸은 카메라를 의식하며 태원의 이야기에 한층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누나가 자려고 누워 있는데 그날따라 막 시계 초침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대. 째깍째깍째깍. 이 소리 있잖아.”

“어어, 알지.”

수겸은 태원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누나 집에는 시계가 없었대.”

태원의 말이 끝나자 멤버들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다가 이내 너 나 할 것 없이 생각나는 말을 쏟아내었다.

“시계가 없다고?”

“뭐야, 그럼?”

“귀신이에요?”

“귀신이 장난친 거야?”

멤버들의 물음에 태원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랬겠지. 아마 귀신의 장난이었나 봐.”

“와……. 소름 끼쳐. 귀신들 되게 열심히 사는구나. 시계 성대모사까지 하고.”

수겸의 말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방금까지 묘한 긴장이 흘렀는데 멤버들은 물론 제작진들마저 웃고 있었다.

딴에는 진지하게 한 말인지라, 그들이 왜 그렇게 웃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수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말하니까 되게 웃겨. 관점의 전환.”

태원이 큭큭 웃으며 말했다. 그제야 수겸은 사람들이 왜 웃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수겸은 문득 자신이 무서운 이야기에 초를 친 게 아닌가 싶은 마음에 걱정이 되어 제작진의 눈치를 살폈는데, 그들은 오히려 밝은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안심이 된 수겸이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이후로도 각자가 알고 있는 무서운 이야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수겸은 최대한 맞장구를 치면서 다양한 리액션을 선보이려 애썼다.

물론 그러는 와중에도 야식을 야무지게 챙겨 먹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 * *

“고생하셨습니다. 조금 쉬다가 폐가 촬영 들어갈게요!”

마침내 일차로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제작진의 말에 수겸은 마른침을 삼켰다.

가장 걱정하던, 그러면서도 또 제일 중요한 촬영을 코앞에 두자 긴장감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휴식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솔직히 춥기도 굉장히 추웠는데, 수겸은 그 추위마저도 제대로 느끼지 못할 만큼 온 신경이 폐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럼 들어갑니다!”

마침내 본 촬영이 시작된다는 제작진의 말에 수겸은 결의의 찬 얼굴로 슬레이트를 쳤다.

멤버들은 물론, 이번에는 촬영 VJ도 함께 폐가로 향했다.

산속에 있는 폐가는 겉에서 보기에도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수겸은 저도 모르게 앞서 걷던 차이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같이 가. 나 두고 가면 안 돼. 알았지?”

“알았어.”

비록 다정한 구석이라고는 단 1밀리그램도 없는 말투였지만, 수겸은 차이겸의 알았다는 대답을 들으니 그것만으로도 아주 조금 안심이 되었다.

폐가는 문마저 모두 뜯겨 딱히 문을 열고 들어갈 것도 없었다. 뻥 뚫린 곳으로 태원을 선두로 멤버들이 따라 들어갔다.

누가 폐가 아니랄까 봐 들어서는 순간부터 유독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수겸은 밖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추위에 흠칫 몸을 떨었다. 비록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고는 하나, 나름대로 실내인데 어떻게 밖보다 더 춥게 느껴질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곳곳에 부서진 가구의 잔해는 물론, 열린 문 사이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낙엽이 바닥에 널려 밟혔다.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여기는 거실이고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현관에 문이 없어서 그런지 낙엽도 많고, 흙도 많이 보여요.”

태원은 마치 미리 준비하기라도 한 것럼 능숙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태원은 전생에서도 예능 방송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기는 했다. 깔끔하게 현재의 상황을 잘 말해주고, 적극적이고, 과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그야말로 천상 방송인이었다.

전생의 상황이 이래저래 안 맞아서 기회가 적었을 뿐, 상황만 잘 맞았다면 그는 예능 쪽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 터였다.

수겸은 새삼 그가 폐가를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이대로라면 고정도 무리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멤버들도 마지막까지 잘해주어야 가능한 일일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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