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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28화 (29/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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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길어지면서 유피트는 강제로 휴식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한솔과 태원은 화장실에 간다고 사라졌고, 유찬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수겸은 이겸과 둘이서 멀뚱히 서 있었다.

“진짜 괜찮아?”

“괜찮아. ……사실 솔직히 안 괜찮은데, 뭐 어쩌겠어. 다치지는 않았으니까 된 거지, 뭐.”

차이겸의 물음에 수겸은 씁쓸한 목소리로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놀라기도 정말 많이 놀랐고, 아직도 너무 무서워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카메라를 앞에 둔 입장이고, 제게는 이 방송이 정말로 중요했다. 그러니 안 괜찮아도 괜찮아야만 했다.

“멍청이.”

“뭐?”

훅 들어온 비난에 수겸이 세모눈을 뜨고 차이겸을 노려보았다. 그는 수겸의 매서운 눈빛에도 자신이 한 말을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멍청이라고.”

“갑자기 왜 시비야? 내가 왜 멍청이인데!”

“지금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잖아. 그러니까 멍청이 맞지.”

“아니, 네 인성에 문제가 있어서 냅다 시비를 터는 건데, 내가 그 이유를 어떻게 알아?! 정답! 차이겸 인성에 문제가 있다!”

수겸이 씩씩거리며 대꾸했지만, 차이겸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그 반응에 수겸은 한껏 열이 뻗쳤다.

수겸이 무어라 한마디라도 하려고 입을 열려던 순간, 차이겸이 말했다.

“괜찮지 않을 땐, 괜찮지 않다고 난리 좀 피워. 평소에는 별것도 아닌 거에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떨면서 왜 정작 중요할 때는 가만히 있어?”

“그야…….”

방송이 더 중요하니까.

수겸은 하려던 뒷말을 삼켰다. 지금 그 말을 해 봤자, 좋을 게 없어 보여서였다.

차이겸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는 알겠다. 썩 예쁘고 고운 방법은 아니지만, 차이겸은 지금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수겸을 걱정하는 중이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수겸 역시 더 이상 그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대신,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걱정 끼쳐서 미안.”

“그걸 왜 네가 사과해.”

“어른이란 말이다, 가끔은 자기가 하지 않은 잘못에도 사과를 하는 거란다. 알겠어?”

수겸은 한껏 거드름을 부렸다. 자신의 사과로 자칫 지금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너무 무거워질까 봐, 그러지 않기를 바라서 부러 장난스럽게 군 것이었다.

“그래, 네가 퍽이나 어른이다.”

“그럼, 어른이지. 네가 잘 모르나 본데, 내가 너보다 생일이 빨라도 무려 두 달 넘게 더 빨라. 뒤집기를 했어도 너보다 두 달은 먼저 뒤집기를 하고! 고개를 가누는 것도 너보다 두 달은 먼저 했다, 이 말이야!”

“그래, 부럽다.”

수겸은 단호하게 자신의 말을 먹금하는 차이겸을 원망스럽게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한 대 콱 쥐어박아 주고 싶은데, 카메라가 많아서 그럴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형, 이거 마셔요.”

애끓는 수겸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어디로 갔나 했던 유찬이 나타나서 물 한 잔을 가져다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주 뜨거워 보이는 녹차를 말이다.

“……오.”

“형이 뜨거운 거 싫어하는 건 아는데, 지금처럼 추울 때는 찬 거 마시면 안 돼요.”

“유찬아, 얼죽아 협회를 무시하지 마. 형은 이겨낼 수 있어.”

“진짜 얼어죽는 게 아니라, 감기 걸릴까 봐 그래요. 얼죽아 협회 회원도 감기는 걸릴걸요?”

수겸은 평소의 유찬과 달리 나름 장난기 어린 말과 함께 내미는 녹차를 떨떠름하게 받아 들었다.

이걸 주는 게 다른 멤버였으면 곧 죽어도 뜨거운 건 싫다고 패악을 부렸을 텐데, 상대가 막내인 유찬이다 보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유찬의 성의를 생각해서 뜨거운 녹차를 한 모금하려던 수겸은 입술만 가져다 대었다가 화들짝 놀라 입을 떼었다.

“헉, 너무 뜨거워. 못 마셔, 못 마셔.”

“금방 식어요. 손이라도 따뜻하게 들고 있어요. 난로 대용이라고 생각하고.”

저런 얘기까지 들으니 수겸은 더 이상 불평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 가만히 들고 있으니 손이 시리지도 않고 따뜻해서 좋기는 했다. 추위를 녹이며 퍼지는 온기에 담력 테스트로 놀랐던 마음마저 스르륵 풀리는 기분이었다.

수겸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을 보고는 반짝 눈을 빛냈다.

“우와아, 별 많다. 유찬아, 하늘 좀 봐봐. 별이 엄청 많아.”

“그러게요. 되게 많다.”

“예쁘네…….”

“맞아요, 예뻐요.”

“아니, 하늘을 보라니까. 왜 날 보면서 예쁘대?”

“봤어요, 하늘.”

“그래? 뭐, 그렇다면 할 말은 없네.”

수겸은 담담한 유찬의 말에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유찬의 시선은 수겸의 얼굴을 올곧게 향하고 있었다. 내내 진득하게 따라붙는 시선에 수겸은 괜스레 민망함에 낯이 붉어졌다.

어쩐지 그의 시선을 마주하기가 불편해서 부러 먼 곳을 바라보며 그와 눈 마주치는 걸 피하고 있던 찰나였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들 해요?”

“아, 안녕하세요, PD님! 별 건 아니고 그냥 별이 많다는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갑자기 PD가 한 사람 다가와 수겸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아무래도 PD라는 직업 특성을 고려하면 신인 연예인인 수겸은 그와 비교해 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수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PD는 갈 생각을 않고 이겸과 유찬, 수겸 세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내 이름 알아요?”

“어어, 아뇨……. 죄송합니다…….”

수겸은 민망함에 헤헤 웃었다. 그러자, PD는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오제현 PD예요.”

“아아, 넵. 외워둘게요!”

수겸이 주먹까지 번쩍 들어 보이며 말하자, 제현은 우스운지 시원스레 웃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는 꽤 시원한 인상의 호감형이었다. 수겸은 힐끔힐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유피트는 멤버들끼리 다 친한가 봐요. 촬영하다 보면 솔직히 아닌 그룹도 많이 보는데.”

“헉, 그래요?”

“네, 촬영 중간에도 서로 싫은 티 팍팍 내는 아이돌들 얼마나 많다고요.”

“헉…….”

제현은 능수능란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수겸은 어느새 처음 그에게 느꼈던 불편함도 잊고 대화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너무 대화에 몰입하느라 그를 상대로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주의시켰다.

“보기 좋네요, 사이가 좋아서.”

“헤헤, 감사합니다.”

수겸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자고로 방송가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PD를 상대로 눈치를 보면서 살살 비위를 맞춰줘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옆의 차이겸이나 도유찬 이 두 놈은 워낙 태생적으로 목석같은 놈들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지, 도통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도 대화에 조금도 참여하고 있지 않았다.

그 탓에 수겸은 할 수 없이 두 사람의 몫까지 해내야만 했다. 그만큼 더 방긋방긋 웃으며 제현의 눈치를 살폈다.

“나 아까 진짜 놀란 게, 수겸 씨는 그런 무서운 일을 겪었는데 생각보다 의연하더라고요. 생긴 건 되게 겁 많고 여릴 것 같은데. 아, 오해하지는 말아요. 나쁜 뜻은 아니니까.”

“오해는요, 전혀 안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아무튼 대단하던데요? 솔직히 촬영 못 한다고 했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사건이었는데.”

“에이, 그래도 촬영은 마쳐야죠.”

“오, 좋네요. 그런 마인드.”

제현은 정말로 수겸의 말이 만족스러운지 고개까지 주억거리며 미소 지었다. 수겸은 이참에 그에게 눈도장이라도 잘 찍어놔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서웠을 텐데, 지금은 괜찮아요?”

“아, 네. 괜찮아요. 멤버들도 있고…… 공포 체험 방송이니까 이런 경험도 해보는 거죠, 뭐. 제가 어디서 귀신 목소리를 그렇게 생생하게 듣겠어요.”

“왜요, 연예인들은 많이들 귀신도 보고 그런다던데.”

“아, 맞아요. 저도 그런 이야기 들어본 적은 있어요. 그래도 저는 이제까지 그런 적은 없었어요.”

“그럼 이번 일이 정말 큰일이기는 했겠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버텨줘서 고마워요.”

“당연하죠! 저는 이렇게 예능을 찍는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좋은데요. 그치, 이겸아. 그치, 유찬아?”

수겸은 과장되게 대꾸하는 것으로 모자라, 옆에 있는 두 사람의 동의까지 구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마치 수겸의 등쌀에 못 이겨 어쩔 수 없는 사람처럼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하, 얘들이 좀 행동이 느려요.”

그 모습을 본 수겸이 얼른 변명을 했다. 그러자 제현은 ‘그렇구나’라고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더니 불현듯 고개를 번쩍 들고는 수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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