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화
“야야, 민희야. 저 알바생 좀 봐.”
“왜? 아는 사람이야?”
게임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PC방에서 여자 두 명이 수겸을 향해 소곤거렸다.
들어설 때부터 여자 한 명은 수겸을 힐끔거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불길한 느낌에 서둘러 모자를 찾아 썼는데, 별 소용이 없는 모양이었다.
“송수겸 닮았지 않아?”
“그게 누군데?”
그녀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러다가 뛸 듯이 기뻐했다. 아주 잠시에 불과했지만.
“어어? 대박대박! 한 자리 비었다…… 가 아니네? 내 자리가 아니었네? 이런, 젠장. 아아아아, 내가 왜 등록금까지 내면서 수강 신청 때문에 울어야 하는 건데! 망했어, 나 지금 또 개강 첫 주에 교수님들한테 다 돌면서 제발 좀 받아달라고 눈물의 똥꼬쇼하게 생겼어. 나 거짓말 아니고 찐으로 이 상태면 졸업 못 해…….”
“아! 망할 거 알고 있었잖아, 네가 1학년 때부터 한 번이라도 수강 신청에 성공한 적 있었냐? 새삼스럽게 징징거리고 난리야?”
“뭐가 어째?”
“너 논비는 성공했냐?”
“했겠어요?”
“그거 내가 이경수 교수님 거 보험으로 잡아 놨어. 너 줄게.”
웬일로 이른 아침부터 PC방에 손님이 많다 싶더라니, 수강 신청 시즌인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한참 수강 신청으로 말씨름을 했다. 덕분에 여자의 관심이 떨어지는가 싶었는데, 여자는 민희라는 여자를 달래준 뒤 다시금 뚫어져라 수겸을 쳐다보았다.
“대박……. 금손님 감사합니다……. 역시 아이돌 덕질하던 짬바 어디 안 간다……. 티켓팅의 신, 포도알 콜렉터, 유하나 최고다.”
“아, 그럼. 나를 찬양하도록 해. 아무튼, 나 고딩 때 덕질하던 연예인 있잖아.”
“네가 고딩 때 덕질을 한두 명 했냐?”
“아, 그래도 제일 앓았던 애 있잖아. 유피트에 걔, 졸라 이쁜 애.”
유피트, 듣기만 해도 코끝이 시큰했다. 위장이 뒤틀리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수겸은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때마침 들어온 손님 때문에 카운터를 벗어날 수 없었다.
수겸은 유피트에 관해서는 듣는 것만으로도 괴로웠지만, 또 저도 모르게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한때 가장 찬란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슬픈 와중에도 위로가 되었으니까.
“아아, 알겠다. 걔 말하는 거지? 분홍색깔 머리 하고 예쁘장한 애.”
“어, 맞아! 저기 알바생이랑 닮았지 않아?”
“그런가? 음…… 어어, 야, 닮았다, 닮았어. 본인 아닐까?”
“에이, 설마. 아무리 유피트가 망했어도 걔가 PC방 알바를 하고 있겠냐? 그래도 바짝 벌었을 텐데.”
“뭐, 하긴……. 연예인은 망해도 사업 같은 거 하면서 잘 먹고 잘살더라.”
수겸은 헛웃음이 터지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연예인이 망해도 잘 먹고 잘산다는 건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그런 연예인은 사실 망했다고 말하기도 우스웠다.
진짜 망한 연예인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아이돌 연습생이 되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아이돌의 경우는 더 심했다.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고, 겨우겨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흔했다.
안타깝게도 수겸은 후자였다.
“하, 우리 수겸이는 뭐 하고 살라나. ……어휴. 새끼, 그러게 그 예쁜 얼굴 좀 잘 써먹지. 갑자기 뭔 남자병에 걸려서는……. 쯧, 지 복 지가 걷어찼지.”
하나라는 손님의 혼잣말이 귀를 찔러댔다.
수겸은 통통한 입술을 깨물었다.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자신의 과거는 지독히도 잔인하고 사실적이었다.
한때 자신의 팬이었다던 여자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아이돌 그룹 U-PITE(유피트)로 데뷔한 수겸은 데뷔 초부터 예쁘장한 얼굴로 주목을 받았다.
소속사에서 미는 공식 커플에 수겸이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 수겸은 거의 모든 멤버들과 다 엮였다. 그것도 ‘수’의 역할로 말이다.
“야, 이제 가자. 나 이따 알바 있어서 좀 자고 가야 돼.”
“알았어. 논비 주는 거 잊지 마.”
“당연하지. 대신 PC방 비용은 네가 내라.”
“콜! 당연하지.”
두 사람이 일어섰다. 계산하기 위해 카운터로 다가오는 두 사람의 눈초리를 피하기 위해 수겸은 다시금 모자를 눌러쓰고 고개를 푹 숙였다.
“계산할게요.”
그들이 컴퓨터 사용 번호가 적힌 카드와 체크카드를 나란히 내밀었다.
수겸은 고개도 들지 않고 카드만 받아서 빠르게 결제를 마쳤다. 두 사람이 문밖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에도 여전히 푹 고개를 처박은 채였다.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하.”
한참 후에야 수겸은 회한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그 예쁜 얼굴 좀 잘 써먹지. 갑자기 뭔 남자병에 걸려서는……. 쯧, 지 복 지가 걷어찼지’라는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도는 탓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자신은 제 복을 걷어찼다.
처음에는 예쁜 얼굴로 주목을 받아 떴는데, 막상 계속해서 예쁘다는 말만 듣고 다른 멤버들과 로맨스적으로 엮이다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것도 ‘공’도 아닌 ‘수’ 역할이라서 더욱 그랬다.
나름대로 가수로서 실력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제 실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루머까지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송수겸은 진짜 게이라더라, 얼굴 예쁜 것도 사실은 호르몬을 맞아서 그렇다더라, 데뷔한 것도 대주고 한 거라더라, 등등.
결국 수겸은 데뷔 2년 차이던 시절, 정규 앨범 1집이 나오기 전에 소속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운동을 해서 몸을 키웠다. 체구 자체가 마른 편이라 잘 붙지도 않는 근육을 억지로 붙이려 꾸역꾸역 살까지 찌웠다.
거기다가 어느새 콤플렉스가 되고 만 하얀 피부는 태닝으로 까맣게 태웠고, 잘 자라지도 않는 수염을 부득불 기르고 길렀다.
소속사 대표 이사님까지 나서서 직접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유피트를 그만두고 나가라는 말까지 했지만, 가장 큰 팬덤을 보유한 수겸을 실제로 내쫓을 수는 없었다.
“등신 새끼 같으니라고. 팬들이 좋다고 하는데 그냥 즐기고 살지, 뭐 하러 고집을 부려서는.”
수없이 반복한 후회였지만, 매번 처음처럼 아팠다.
수겸은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눈가에 고인 눈물을 재빨리 손등으로 훔쳤다.
유피트의 정규 앨범 1집의 뮤비 티저가 뜨던 날, 공식 팬카페와 비공식 팬 페이지는 말 그대로 뒤집어졌다.
아직 전체 뮤비도 나오기 전인데, 사전 주문이 들어갔던 앨범이 절반 가까이 취소되었다. 팬카페는 안티카페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비난이 난무했다.
아직 전체 뮤비 영상도 나오기 전이고, 무대를 하기도 전이니 조금 더 기다려 보자는 입장도 일부 있었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성적은 처참했다.
케이블 음악 방송 1위 후보까지 올랐던 미니 앨범 2집과 달리, 정규 앨범 1집은 순위 차트에서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결국 수겸은 부랴부랴 수염도 밀고, 태닝했던 피부도 다시 미백으로 하얗게 만들고 체중 감량까지 하면서 스타일링을 되돌렸다. 하지만 하필 그때 다른 멤버의 비밀 연애가 터지고 말았다.
거기서 끝이면 다행이었다.
또 다른 멤버가 실제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이후 마약까지 손댔다는 정황이 나왔다.
이어서 멤버 불화설, 섹스 스캔들, 인성 논란에 폭행 시비까지.
수겸을 제외한 4명의 멤버로 터질 수 있는 병크란 병크는 다 터졌다.
결국 유피트는 데뷔 1년 만에 나락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게 벌써 5년 전의 이야기였다. 당연히 멤버들과 연락은 끊겼고,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수겸은 데뷔 전 6년간의 긴 연습생 생활로, 중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고등학교는 중퇴했다. 그 과정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연예인 친구를 사귀기에는 데뷔한 이후로 활동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러다 보니 수겸에겐 마음 터놓고 연락할 친구도 한 명 없었고, 가족은 원래 없었다.
1년간 활동하며 번 돈이라고 해봤자, 연습생 시절부터 들어갔던 돈이 워낙 많으니 천만 원도 되지 않았다.
수겸 본인 자체는 죄라고 할 만한 게 없었지만, ‘병크 망돌’의 이미지 탓에 연예인으로서는 재기 불능인 데다가 취업 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그야말로 숨이 턱 막혔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생활을 겨우겨우 이어왔다. 무려 5년간 말이다.
생각할수록 기막힌 인생이었다. 한순간의 실수로 이렇게 인생이 꼬여 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떠오르는 과거에 수겸은 힘없이 오도카니 카운터에 서 있었다.
그 순간, 모니터에 ‘라면’, ‘라면요’, ‘빨ㄹ리’라는 채팅 주문이 떴다.
그래, 지금 제게는 이게 현실이었다.
* * *
비틀비틀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수겸의 걸음걸이가 위태로웠다. 퇴근길에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수겸은 경사 꼭대기에 있는 빌라의 반지층 원룸에서 지내고 있었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생긴다면 이번에는 진짜 잘할 수 있는데.”
고요한 골목에서 수겸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나 진짜…… 진짜 잘할 수 있는데.”
듣는 이 없는 혼잣말이 찬바람에 금세 흩어져 사라졌다.
“공식 수든, 예쁜 멤버든 뭐든…… 다 잘할 수 있는데.”
알고 있다.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술기운을 빌려 조용히 소망을 속삭였다.
“그러니까 한 번만…… 딱 한 번만 기회 좀 주지.”
투정처럼 중얼거리는 말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안 될 걸 알기에, 감히 큰 소리로 바라지도 못했다.
“어어, 어……!”
그 순간, 기어코 비탈진 계단 끝에서 수겸은 중심을 잃고 말았다. 뭐라도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알딸딸하게 오른 취기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수겸은 까마득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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