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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험프리 섬(2) (13/18)

메인수라더니! 4

03. 험프리 섬(2)

눈을 감고 있다 보니, 어느새 깊은 잠에 빠졌던 메이브가 깨어났을 때는 시간이 지나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즈음이었다.

메이브는 놀라 커다랗게 떠진 눈으로 급하게 나무에 기대었던 몸을 일으켰다. 조금만 있다가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늦어졌으니 콘라드가 걱정할 것이 분명했다.

메이브는 나무를 짚으며 점점 어두워지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어느 정도 내려가니 저 밑에서 ‘제프리 님!’ 자신의 가명을 외치고 있는 콘라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이브는 멋쩍게 뒷덜미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저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던 콘라드와 두 눈이 마주쳤을 때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제프리 님!”

콘라드가 메이브를 부르며 급하게 뛰어왔다. 그리고 메이브의 앞에 서서 두 손을 뻗어 어깨를 붙잡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고개는 메이브가 어디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듯 보였다. 메이브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콘라드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메이브도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기에 가만히 서 있으니, 그사이에 메이브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다가 제가 심장이 떨어지겠습니다.”

“미안해요. 잠깐 올라갔다가 내려온다는 게 공기가 좋아서 깜박 잠이 들었어요.”

“이곳에 혹시 산짐승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다니다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부터는 콘라드와 함께 갈게요.”

메이브가 어색하게 웃으며 콘라드의 눈치를 보고 있자, 콘라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가지 않는다 해도, 가시려는 곳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너무 늦게 오실 때 제가 찾으러 갈 수만 있으면 되니까요.”

메이브는 왜인지 콘라드가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듯 여겨졌다. 꼭 말하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망아지처럼 보는 것 같았다. 눈을 떼면 어디서 사고를 칠 것처럼 말이다.

“집은 그나마 이곳에 있는 곳 중 가장 괜찮은 곳을 구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지금 보러 가요.”

메이브는 혼날 듯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급히 콘라드가 하는 말에 대답했다. 콘라드는 그런 메이브를 꼭, 말썽꾸러기 동생을 보는 것처럼 잠시 쳐다보다 몸을 돌려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그사이에 시간이 늦어졌는지, 열려 있던 상가들도 문이 닫혀 있는 것이 보였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마을 중간을 넘어 끝쯤에 자리 잡고 있는 저택이 보였다. 그가 하는 말처럼 이곳에서 가장 괜찮은 집인 건지, 만든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았다.

주머니를 뒤지던 콘라드가 현관문을 열자 메이브가 안으로 들어갔다. 메이브가 없는 사이에 콘라드가 식재료까지 사서 안에 들여놓은 건지, 입구 앞에는 종이봉투에 담겨 있는 과일과 재료가 놓여 있었다.

“음식은 콘라드가 해 주는 거예요?”

“……음, 제가 요리는 잘 못 하지만 최대한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동안은 배가 주렸을 때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그 뒤에 배에 탑승했기에 배에서 주는 음식을 먹었다. 이제는 밥을 해서 먹어야 하는데, 콘라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요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주변에서 식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 것을 알기에 일단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전부 다 사 왔으나, 그걸로 요리를 해 먹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메이브 역시 원래의 세계에서는 가끔 요리를 해 먹었으나, 평소엔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은 적이 많았다. 그게 아니라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적이 많았다.

하지만 콘라드의 말과 행동을 보았을 때, 메이브는 자신이 그보다 더 음식을 잘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괜찮아요. 그러면 제가 해 드리면 되니까요.”

메이브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몸을 굽혀 종이봉투를 들어 올렸다. 그에 당황한 것은 콘라드였다. 콘라드는 손을 뻗어 메이브가 들어 올린 종이봉투를 가지고 근처에 있는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제가 어떻게 도련님이 해 주시는 음식을 먹겠습니까.”

콘라드는 손까지 들어 좌우로 흔들면서 당황해했다. 메이브는 그 모습에 한동안 같이 방을 쓰고, 오랜 시간 있으면서 자신에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콘라드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또, 그 입에서 어떻게 도련님이 만든 음식인데 제 입으로 들어가겠냐고 말할지도 몰랐다. 메이브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예상되는 것 같아 작게 한숨을 쉬고는 콘라드에게 다가가 종이봉투 안에 있는 감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러면 콘라드는 굶을 거예요?”

“제가, 제가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요리해 본 적 있어요?”

“해 본 적은 없지만…….”

“만약에 음식이 전부 다 타게 되면 쓰고 떫을 텐데, 그걸 제게 먹일 건가요?”

메이브는 손에 들려 있는 감자를 위로 던졌다가 다시 손바닥으로 붙잡기를 반복했다. 탁, 탁 규칙적인 소리가 어두운 집 안에 울려 퍼졌다. 메이브는 당황한 얼굴로 고민하는 듯한 콘라드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음식을 하는 건 상관없어요. 그리고 콘라드, 당신이 못 먹는다면 저는 조금 아쉽겠죠.”

“하지만…….”

“콘라드가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어요. 제가 귀족이고, 당신이 평민이라 그런 것 아닌가요?”

무언가 대답하려고 했던 콘라드의 입이 다물어지는 것을 보며 메이브는 속으로 한숨을 꾹꾹 눌러 담았다. 원래 메이브가 살고 있던 곳은 귀족이 없었다. 아니, 영국과 가까운 나라에는 있었으나, 메이브가 사는 한국에서는 그런 직위가 없었다. 비슷한 것이 있다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었을 뿐, 그들은 모두 먹는 것도 사는 것도 비슷비슷했다. 돈이 많으면 삶이 더 풍요롭고, 돈이 없을수록 궁핍은 했으나 사실상 사는 것은 똑같았다.

그렇기에 메이브는 콘라드가 자신이 평민이라 자신과 같은 방을 지내는 것도 불편해하고 미안해하며, 자신이 만든 음식조차 먹는 것을 죄송해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저를 평민으로 생각해 달라 해도 콘라드가 불편해할 것을 알아요.”

메이브는 자신이 모시는 도련님이 갑자기 자신과 같이 평민으로 대하라고 말한다면 분명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불편하다고 말하며 그러지 말아 달라고 말할 터였다.

그렇기에 메이브는 머리를 굴리며 최대한 콘라드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전에 편안하게 지내고 싶다는 말에 제프리로 불리는 것은 되었으나, 이것은 그것과 다른 문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와 짧으면 반년, 길게는 일이 년을 함께 있게 될 거예요.”

위로 던졌던 감자를 손을 뻗어 붙잡은 메이브는 감자를 움켜쥐었다.

“그동안 콘라드가 요리를 하다 보면 잘 만들 수도 있는 긴 시간이죠.”

잘 만들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타 버린 음식을 먹게 될 거였고, 그럼 미안해할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음식을 태우고 못 먹게 된다면 콘라드는 제게 죄송해하겠죠. 잘 만들 때까지요. 그러니 그럴 필요 없이 제가 음식을 만들고, 콘라드 씨가 배우세요. 그리고 당신이 어느 정도 음식을 만들 수 있다면 제게 요리를 해 주시는 건 어떤가요?”

메이브는 최대한 덤덤한 목소리로 콘라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곤 자신의 앞에 서서 고민하는 콘라드를 지켜보았다. 메이브가 내놓은 답은 자신도, 콘라드도 썩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계속 요리를 하는 것보다 콘라드가 언젠가 요리를 잘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맛있지 않아도 어느 정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나올 거였으니까 말이다.

콘라드 역시 메이브가 요리를 계속한다면 부담이고 죄송하겠으나, 그가 요리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면 직접 나서서 할 테니 서로에게 좋은 거였다.

“……그러면 제가 빨리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머리를 굴리며 생각하던 콘라드도 그게 가장 편하고, 쉬운 길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메이브에게 몸을 숙였다.

“그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메이브는 대답 없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콘라드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콘라드에게 자신이 철부지 도련님으로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성년식을 끝내고 돌아온 도련님이 갑자기 여행을 가겠다고 하며 섬으로 왔으니까 말이다. 그게 끝이 아니라 평민처럼 음식을 차려 먹고 가명을 쓰면서까지 편하게 대하라고 말하니 답답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메이브는 그 누구에게도 왜 여행을 왔는지에 대해 말할 생각이 없었기에 콘라드가 불편해하는 것을 마음속으로 사과하고는, 행동으로는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

험프리에서 살아가는 게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건 한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익숙하게 다음 날 먹을 식재료를 사러 가는 것도, 그곳의 주인과 친해져 웃으며 서비스를 받는 것도 말이다.

그동안 다비드가 자신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기에 메이브는 맘 편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마을 옆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산조차 가 보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말이다.

그리고 그동안 메이브가 해 준 음식을 맛있게 먹던 콘라드도 어느 순간 어느 정도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서로서로 요리하는 날짜를 잡을 정도로 편해졌다.

그런 나날을 보내다 메이브가 필요한 물건이 있어 에보니 영지로 향했을 때, 그곳에서 자신의 인상착의와 비슷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을 알았다.

급하게 로브를 쓰고 잡화 상점에서 염색약을 사 염색을 하고 다시 험프리로 돌아온 것도 어느새 두 달이 지날 무렵이었다.

메이브는 자신을 잊은 줄 알았던 다비드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에 험프리로 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도련님.”

“응?”

한참을 고민하며 책상을 두드리고 있던 메이브에게 콘라드가 다가왔다. 그가 고개를 들어 콘라드를 쳐다보니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이 무엇을 하는지 공작님에게 연락을 안 보내신 지 벌써 삼 개월이 지난 거 아십니까?”

메이브는 그 말에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여행을 가겠다고 말하고 나서 어디로 갔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단 한 번도 집에 편지를 부친 적이 없었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 막상 콘라드가 말을 해 주니 메이브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지켜보던 콘라드는 결국 그의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제가 에보니 영지로 가서 편지를 부치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험프리가 좋은 것은 평화롭다는 거였으나, 불편한 것은 정말 필요한 물건이나 지금처럼 편지를 부치는 곳이 없다는 거였다. 그렇기에 무언가 필요하고 편지를 보내야 할 일이 있다면 에보니까지 배를 타고 나가야 했다.

하지만 콘라드가 배를 타고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던 메이브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그를 쳐다보니, 콘라드는 얼굴이 그새 하얗게 변해 있었다.

“괜찮겠어요?”

콘라드가 이 주일 정도 없어도 메이브에겐 상관이 없었으나, 뱃멀미를 심하게 하는 그가 정말 잘 다녀올 수 있을지는 조금 걱정되었다.

“예…….”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는 것 같았으나, 숨겨지지 않는 표정에 메이브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도련님도 공작님과 공작 부인께 보낼 편지 한 장 정도는 써 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리려 보내는 것이 아닌가요?”

“하지만 분명 걱정하실 겁니다.”

“콘라드가 함께 있어서 그래도 괜찮으셨을 거예요.”

메이브는 의자에 앉아 있던 엉덩이를 떨어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편지를 쓰는 것이 힘든 것은 아니었으나, 원래의 메이브가 어떻게 편지를 썼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제는 자신의 부모님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은 달랐다.

거짓으로 편지를 써도, 그 안에 감정이 담기진 않을 테니 메이브는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다녀오세요.”

메이브는 그에 그저 콘라드에게 다녀오라고 하는 것밖에 할 말이 없었다. 콘라드는 메이브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싶어 하는 듯했으나, 메이브가 워낙 쓰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기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입술을 달싹이는 콘라드의 모습을 지켜보던 메이브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저를 걱정하시는데, 제가 편지까지 보내면 더 걱정하실 거예요.”

“보내지 않으신다면 더 걱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콘라드가 제가 안전하게 있고, 어디에 있는지 말한다면 잘 지낸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그러니 굳이 다른 거로 걱정거리를 안겨 주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메이브에게 다시 한번 편지를 쓰지 않겠냐고 콘라드가 물었으나, 메이브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안색이 조금 창백한 콘라드는, 그렇다면 이 주일 정도 자신이 자리를 비울 테니 그동안 조심히 있으라는 말과 함께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메이브는 일어났던 의자에 다시 앉았다. 책상에 팔뚝을 기대고 손에 턱을 괴며 메이브는 한동안 감시자 없이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

편안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메이브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콘라드가 집으로 편지를 부치러 간다는 말과 함께 배를 타고 떠난 날까지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콘라드가 말했던 이 주일이 지나자 그를 기다리러 부두에서 기다렸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콘라드는 그날 오지 않았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수많은 시간이 지날 때까지 콘라드가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고민하던 메이브는 결국 부두에 배가 도착했을 때 험프리에서 에보니로 항해하던 배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그곳의 선원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하며 메이브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메이브는 결국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콘라드를 기다렸다. 그리고 메이브가 집을 떠나온 지 정확하게 6개월이 지났고, 콘라드가 돌아오지 않은 지 3개월이 지났을 때 콘라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생각했다.

메이브는 결국 콘라드가 돌아오면 당황해하지 않게 책상 위에 ‘걱정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라는 쪽지를 남겨 놓고 급하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설마.”

한참 짐을 챙기고 있던 메이브는 삼 개월 전 에보니 영지를 갔었을 때 자신을 찾고 있던 누군가가 생각났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무시했었으나, 이제는 무시하면 안 될 듯했다.

아직 다비드가 자신을 찾고 있다면, 콘라드는 어쩌면 다비드에게 붙잡혀 갔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메이브는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가 탁탁, 이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하지만 메이브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저 의혹일 뿐이고 가설일 뿐이었다. 하지만 만일이라는 것이 있었다. 만약에, 콘라드가 에보니로 향했고 무사히 도착한 뒤 편지를 부치려다가 붙잡혔다면? 수많은 가설이 메이브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마, 콘라드의 성격상 누군가가 자신의 위치를 물어보았을 때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긴 시간 동안 콘라드가 오지 않는 것이 이해가 갔다. 그가 만약 에녹가에 편지를 무사히 붙였다면 자신이 안전하게 여행을 하고 있다고 부모님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콘라드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콘라드가 저택까지 향했다면 그동안 자신이 혼자일 것을 알고 있는 부모님은 다른 누군가를 보내 주었을 테고, 그게 아니었다면 콘라드를 보냈을 테니 말이다.

“내가 착각한 거라면 좋겠는데…….”

메이브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한동안 생활할 수 있도록 짐을 챙긴 가방을 메고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평소에 평화로웠던 마을이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하다고 느꼈다. 메이브는 급하게 걸음을 옮겨 부두에 서 있는 배에 올라탔다. 선원에게 뱃값을 준 후, 뱃머리 앞 난간을 움켜쥐고 급히 떠나야 하는 험프리 섬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발 에보니 영지로 갔을 때 자신을 찾고 있는 누군가가 사라졌기를 바랐다.

메이브의 불안한 마음과는 다르게 부두에 선박 되어 있던 배가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부두가 점점 멀어지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배가 험프리 섬으로 선박하려는 것이 보였다.

메이브는 고개를 살며시 돌려 반대편에서 스쳐 지나가는 배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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