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안녕하세요. 노유진이라고 해요.”
수환은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며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뭐라고 해야 하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조강지처가 실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아한 인상을 풍기는 남자였다.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수환은 순간 멍해졌다.
하긴, 그렇게 망나니짓을 했던 진수환도 겉모습만큼은 멀쩡한 편이었다. 망나니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이마에 자기가 망나니라고 써 붙이고 다니진 않으니까 말이다.
애써 미소를 지으며 수환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노유진 씨. 진수환이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미남이시네요.”
“아, 네, 감사합니다. 노유진 씨도… 음,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남자 오메가에게 미남이라고 칭찬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수환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우물쭈물하는 수환을 보며 유진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훗, 하하. 죄송해요.”
“어…….”
“수환 씨 되게 재밌는 분이시네요.”
“……?”
뭐가 그렇게 웃긴지, 유진은 한동안 손으로 입을 가리고 큭큭거리며 웃었다. 수환이 당황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사실 오늘 되게 긴장하고 온 거였거든요. 근데 수환 씨는 생각보다 자상한 분이신 거 같네요.”
“아.”
아마 유진에게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진수환의 소문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유진 역시 그런 자신과 선을 보는 게 부담스러웠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수환은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눈앞의 유진은 도무지 사람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버리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맑은 웃음소리가 금세 수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아무래도 우리 서로 긴장 많이 한 것 같죠?”
“그러네요.”
유진의 장난기 섞인 말에 수환이 동의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필요한 맞선 자리에 길게 있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수환이 흠, 하고 짧게 헛기침을 한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유진 씨, 정말 죄송한데요.”
“네?”
“아시다시피 저에게는 약혼자가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반대하고 계시지만, 저는 그 사람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오늘은 할아버지가 성화를 부려서 나온 것뿐이고요.”
“아…….”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 일어나야 할 것 같아요.”
고개를 숙인 수환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어차피 나쁜 놈이 될 거, 시간을 질질 끌어 봤자 더 나쁜 놈이 되는 것뿐이다. 그래서 수환은 그냥 속전속결로 이해를 구하고 나가려고 했다. 비록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이해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잠깐만요!”
“네?”
그러나 나가려는 수환을 유진이 붙잡았다.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유진이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빨리 가시면 제 체면이 뭐가 되겠어요?”
“아, 그게…….”
“그러지 마시고, 곧 음식 나올 텐데 식사만 하고 가세요.”
“…….”
“네?”
수환이 곤란해하며 유진을 쳐다봤다. 그러자 유진의 눈꼬리가 아래로 축 처졌다. 그가 울먹거리는 듯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수환 씨가 그렇게 가버리시면… 집에 돌아가서 어떤 말을 들을지 몰라요.”
“…….”
“저희 집이 좀 엄격해서…….”
유진이 눈물까지 글썽거리자, 수환은 차마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가 없었다.
어쩔 줄을 모르며 손안의 호출기를 꽉 잡았다. 플라스틱 특유의 단단하고 반들반들한 감촉이 느껴졌다.
하민에게 들은 걸 화련에게 말했었다. 화련은 수환과 마찬가지로 진 회장이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진 회장이 목표를 위해서라면 얼마나 집요해지는지 화련 역시 익히 알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수환에게 경호원을 붙여 주었다.
이곳은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프라이빗 룸이었다. 경호원들이 대놓고 있으면 티가 나니까 지금은 바깥에 손님인 척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호출기를 눌러 부르는 형식이었다.
경호원들도 있으니까 조금 안심하고 시간을 더 보내도 괜찮으려나. 수환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유진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얼굴에서 다른 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걱정돼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던 승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직 승현의 아르바이트가 끝날 시간은 아니지만, 그가 안심할 수 있게 일찍 만나러 가고 싶었다. 수환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안 될 것 같아요.”
“…….”
“정말 죄송…….”
“아, 진짜.”
순식간에 안색이 변한 유진을 보며 수환이 눈을 크게 떴다. 유진이 얼굴을 한껏 찡그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짜증 나게, 씨발.”
“……!”
“순진한 척하는 거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뭐야? 그럴 필요 없었어?”
수환은 순간 할 말을 잃고 유진을 쳐다봤다. 순한 양 같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야차처럼 변했다.
“무, 무슨.”
“회장님은 적당히 맞춰 주면 하룻밤 보낼 수 있을 거라더니, 이게 뭐야.”
짜증스럽다는 듯이 인상을 쓴 유진이 주변에 서 있던 호텔 직원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들이 수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윽……!”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지.”
수환에게 다가온 호텔 직원들이 양쪽 팔을 붙잡았다. 놀라서 굳어 있던 수환은 그만 손에 들고 있던 호출기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작은 호출기가 땅바닥을 굴렀다.
“이게, 윽, 무슨 짓입니까!”
“그러게 얌전히 좆이나 내놓았으면 좋았잖아요.”
비릿한 미소를 지은 유진이 옴짝달싹 못 하는 수환을 즐거운 눈으로 쳐다봤다.
솔직히 생긴 건 그다지 취향은 아니었다. 게다가 열성 알파라니, 평소라면 유진이 눈길도 주지 않을 남자였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배경이 만만치 않았다. 무려 화명이지 않은가.
뭐, 화명의 안주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 혀로 입술을 핥은 유진이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수환을 보며 말했다.
“시작해.”
다소 반항하더라도 꼭 하룻밤을 보내라고 한 건 진 회장 쪽이었다. 유진이 하고 있는 짓은 모두 그의 묵인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유진의 명령에 호텔 직원이 주사기를 빼 들고 수환에게 다가갔다.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수환이 뒤늦게 주사기를 보고 기겁했으나, 그때는 이미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그의 피부를 꿰뚫은 뒤였다.
“이게, 무슨……! 윽.”
“저도 이런 과격한 방식은 싫은데, 어쩔 수 없잖아요. 얌전하게 밥이나 먹으면 되었을걸.”
혀를 쯧쯧 찬 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주사를 맞은 수환이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대로 그의 몸이 털썩,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그를 내려다보며 유진이 빙긋 웃었다.
“그래도 주사가 약효는 빨리 도니 편하긴 하네.”
“으윽.”
아득해지는 정신을 애써 붙잡으며 수환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겨우 눈을 들어 유진을 노려봤다.
“할아버지가, 아시면…….”
“하하, 뭐야. 컨셉이 아니고 진짜 멍청한 거였어?”
깔깔 웃은 유진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수환의 뒷머리를 꽉 붙잡았다. 수환의 입에서 아픈 신음이 튀어나왔다.
“윽……!”
“당연히 진 회장님이 허락한 일이죠.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그쪽이랑 자라고 했거든. 그게 내 전문이고.”
유진의 눈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수환의 얼굴을 훑었다.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서 러트 유도제는 구하지 못했지만, 대신 성능 좋은 흥분제를 썼다. 아무리 그래도 손자랍시고 싸구려 약은 쓰지 못하도록 진 회장이 성화를 부린 탓이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정액만 취하면 얼마든지 방법이 있으니까. 굳이 번거롭게 몸을 맞대지 않아도 아이를 가질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데려가.”
손을 놓자 수환의 머리가 다시 테이블 위로 고꾸라졌다. 머리가 핑핑 돌고 식은땀이 났다. 수환은 지금 혼자서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밭은 숨을 내쉬는 그에게 호텔 직원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수환은 그들에게 붙잡힌 채 어디론가 질질 끌려갔다.
“흐흥.”
그 모습을 보며 유진이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해도 되겠지.
유진은 느긋하게 와인을 마셨다.
***
“하…….”
온몸이 뜨거웠다. 수환이 뜨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억지로 데리고 간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질질 끌려가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억……!”
“무슨…, 윽!”
“……?”
그러다 얼마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지지대가 없어진 수환은 그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엎드려서 헉헉대는 수환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형, 괜찮아요?”
“하아, 하.”
“정신 좀 차려 봐요.”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듯했지만, 수환은 여전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혀를 차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서 들리고, 수환의 몸이 일으켜졌다.
승현이 혀를 차며 수환을 부축해 걸었다.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예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진짜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불쾌한 기분에 인상을 찡그린 승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 알바를 일찍 끝낸 승현은 화련이 보낸 경호원들과 마찬가지로 호텔 레스토랑 근처에서 수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수환이 나오지 않았다. 혹시 그 오메가가 마음에 든 게 아닐까. 그래서 시간을 더 보내려는 건가. 어쩌면 혹시…….
그런 부정적인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수환이 자신을 두고 그럴 리 없었다.
아마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나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든 승현은 조금 더 기다리다가 위치 추적 앱을 켰다.
그랬더니 앱에 뜬 수환의 위치가 레스토랑이 아니었다. 지도를 언뜻 보면 같은 호텔 안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 위치를 보니 엉뚱한 곳이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승현이 무작정 호텔 룸 쪽으로 걸어갔다. 위치 추적 앱은 층수까지 알려 주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비상구 계단으로 갔다. 그러자 그곳에서 희미한 페로몬 향이 느껴졌다.
그 페로몬을 따라가니, 일반 손님들은 다니지 않는 직원용 통로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곧 호텔 직원 두 명이 수환을 양쪽에서 붙잡고 걸어가는 게 보였다.
그때는 순간 눈앞에서 불꽃이 일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환을 데려가던 호텔 직원들을 막 때려눕힌 참이었다. 치한 대비용으로 합기도를 배운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내친김에 단증까지 줄줄이 따서 유단자가 된 승현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런데 이대로는 집에 돌아가기가 힘들었다. 끙끙거리는 수환을 내려다보던 승현이 곧 무언가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형, 잠깐만 일어나 봐요.”
“으응.”
“여기 마스터키 가지고 있죠?”
“응……?”
수환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 익숙한 문이 보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집 드나들 듯이 살았던 호텔 룸이었다. 이곳의 마스터키는 오로지 수환만 가지고 있었다. 재벌가의 특혜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응, 있어.”
바지 뒤쪽 주머니를 가리킨 수환이 두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승현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마스터키 카드를 찾아냈다.
디리릭, 하고 문이 열렸다. 룸 안으로 들어간 승현은 우선 응접실 소파에 수환을 앉혔다.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가요. 시원한 물 마실래요?”
“으응.”
“형, 수환이 형. 내가 누군진 알겠어요?”
대체 무슨 약을 먹였길래 이렇게 된 거지. 승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멍한 얼굴의 수환을 살펴봤다. 그리고 그런 승현을 보면서 수환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승현이……?”
“네, 저예요.”
“하, 승현아…….”
“……!”
손을 뻗은 수환이 승현의 목덜미를 끌어안고 확 잡아당겼다.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승현의 입술에 제 입술을 비비며 달뜬 한숨을 내뱉었다.
“형, 좀 진정, 윽.”
“하아, 승현아.”
키스를 하며 수환의 입속이 평소보다 뜨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척 봐도 수환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키스해 오는 수환을 차마 뿌리칠 수가 없었다. 적당히 키스에 호응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던 승현은 수환이 무게를 실으며 매달리자 몸이 점점 뒤로 밀려났다.
“윽……!”
결국 뒤로 넘어졌으나 바닥에 푹신한 러그가 깔려 있어서 아프지는 않았다. 승현이 눈을 살짝 찡그리며 위를 올려다봤다. 어느새 수환이 그의 허리 위에 올라타 있었다.
“승현아, 나…… 몸이 너무 뜨거워.”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수환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사를 맞기 전의 기억이 흐릿했다. 아니, 주사를 맞은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몸이 너무 뜨겁다는 것, 그리고 눈앞에 승현이 있다는 것뿐만이 그가 인식하는 전부였다.
“형, 정신 차려 봐요.”
“승현아아, 아…….”
맞닿아 있는 아래쪽에서 불길이 일어나듯 열이 확 번져왔다. 바닥에 누워 있는 승현의 허리 위에서 수환이 신음하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윽.”
대체 무슨 약을 먹인 거야. 승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주변에 자욱하게 깔린 알파의 페로몬은 이미 잔뜩 흥분해 있었다.
그러나 러트가 온 것과는 다른 느낌의 페로몬 향이었다. 수환의 러트를 한 번 경험했기 때문에 향만 맡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러트 유도제는 아니고 평범한 흥분제인가. 하지만 그것조차 너무나 불쾌한 일이었다. 이렇게 흥분하게 만든 다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너무나 명백했으니까.
“젠장.”
“으응.”
작게 욕설을 내뱉은 승현이 자신의 위에서 헐떡이는 수환을 응시했다. 이대로 그냥 해도 되지만……. 왠지 제정신이 아닌 수환을 덮치는 건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화명의 호텔 룸에서는 안심하고 밤을 보낼 수가 없었다. 승현은 어떻게든 수환을 정신 차리게 하려 했다.
“물 좀 가져올게요. 잠깐만 나와 봐요.”
“…싫어.”
“네?”
확, 하고 알파의 페로몬이 다시 짙게 깔렸다. 순간 아무리 승현이라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방비한 상태로 알파의 페로몬을 맞닥뜨렸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도무지 풀지 않아 난감하기까지 했던 페로몬이었는데, 약을 먹은 지금은 흥분해서 그런지 조절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환이 두 손을 뻗어 승현의 어깨를 꾹 누르며 말했다.
“나… 너랑 하고 싶어.”
“읏, 형.”
“승현아.”
형형한 두 눈을 올려다보며 승현은 몸에서 점점 힘을 풀었다. 반항해 봤자 힘의 차이가 명백하고, 애초에 반항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승현이 미소 지으며 수환의 붉어진 뺨을 매만졌다.
“형 하고 싶은 대로 해요.”
“…….”
“난 괜찮으니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환이 자신을 덮쳐 깔아뭉갰다면 치를 떨며 싫어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욕정에 차 있는 눈이 자신을 향하는 것에 안심할 정도로 그에게 푹 빠져 있었다. 만약 이 자리에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면, 승현은 질투로 머리가 돌아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수환이 고개를 숙여 승현에게 입을 맞췄다. 수환에게 쾌락을 깨우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승현이었다. 이 밑에 다른 누군가가 있었어도 수환은 승현의 환상을 보며 헐떡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 때문인지 수환은 평소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변할 수가 있었다.
“하아, 승현아.”
한숨을 내쉬며 연인의 이름을 불렀다. 상대방이 대답하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데 혼자 흥분하며 조급하게 몸을 붙였다. 키스하는 입술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방해되는 옷을 풀어 헤치며 애무를 이어갔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페팅이지만 연인의 손길에 승현은 점점 흥분해 갔다.
“형, 읏.”
“아…….”
수환의 손이 위로 곧추서 있는 승현의 페니스를 쥐었다. 아직 다 커지지는 않았지만 수환의 큰 손으로도 다 잡기 힘들 정도였다. 그걸 보던 수환이 입술을 벌렸다.
“윽……!”
뜨거운 점막이 페니스를 감쌌다. 생경한 느낌에 승현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동안 이걸 수환의 안에 수도 없이 집어넣었지만 입안에 넣어지는 건 처음이었다.
선단을 머금은 수환의 입술이 그대로 페니스를 빨아들였다. 힘줄이 불툭 튀어나온 기둥을 손으로 잡고 위아래로 살살 흔들었다.
자각은 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언젠가 승현이 자신에게 해 주었던 펠라를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고 있었다. 승현은 그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크윽, 형.”
“으음, 응…….”
입안에서 점점 커지는 페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수환이 물고 있던 끝부분을 뱉어냈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기둥을 핥으며 몸을 숙였다.
이제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더라. 멍한 머릿속으로 수환이 생각했다. 사실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손이 느릿하게 앞섶이 젖어 있는 바지를 끌어 내렸다. 하얀 셔츠만 입은 채 뽀얀 엉덩이가 드러났다.
이걸 안에 집어넣어야 해. 수환이 알고 있는 쾌락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다른 것은 몰랐다. 허리를 든 수환이 벌름거리는 구멍에 핥고 있던 페니스의 귀두 끝부분을 맞췄다.
“형, 지금은…… 윽.”
“아읏.”
그러나 선단 부분에서 딱 막혀 더는 들어가지 못했다. 저릿한 고통에 수환이 아픈 신음을 흘렸다. 허리를 내리지 못한 채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았다.
“흣, 아파아.”
아무리 그래도 젖지 않는 알파의 뒤에 막무가내로 넣을 수는 없었다. 승현이 울상을 짓는 수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형, 그러다 다쳐요.”
“흐읏.”
“그러지 말고 내 말대로 해요. 네?”
“흐…….”
승현은 수환을 살살 달래 그를 자신의 몸 위에 엎드리게 했다. 그러나 자세가 상당히 묘했다. 엎드린 수환의 머리가 승현의 아래를 향해 있고, 승현의 얼굴은 수환의 아래를 향해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수환은 자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흐앗.”
혀를 내민 승현이 수환의 애널을 핥았다. 놀란 수환이 허리를 들려고 하자, 두 손으로 허벅지를 잡아 내렸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수환은 그대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얼마 전 수환은 승현에게 제 아래를 핥거나 빨지 말라고 부탁했으나, 지금의 수환은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승현은 제 욕심껏 마음대로 구멍을 손가락으로 벌리고 쪽쪽 빨았다.
“하으응, 으응.”
애널이 빨리는 느낌에 수환은 흥분하며 신음했다. 눈에 보이지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각하지는 못했지만,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쾌감에 온몸을 덜덜 떨었다.
“흐으읏, 아앙……!”
약 때문인지 수환의 안은 평소보다 더 뜨거웠다. 애널 안에 침범한 혀를 끊어버릴 듯이 꽉 조여왔다. 승현은 집요하게 수환의 아래를 애무했다. 곧 흥분해서 팽팽하게 선 페니스가 뜨거운 정액을 분출했다.
“흐읏, 흐아아앙……!”
승현의 가슴팍이 하얀 정액으로 젖었다. 설마하니 뒤만 애무했는데 정액을 쌀 줄이야. 평소보다 예민해진 게 약 때문이라 생각하면 화가 나야 하는데, 승현 역시 흥분해서 수환의 허벅지를 손가락 자국이 남을 정도로 꽉 잡았다.
“하아… 형, 만지지도 않았는데 싸면 어떡해요. 존나 야하게.”
곧바로 승현의 손가락이 애널 안을 파고들었다. 사정하고 한껏 예민해진 내벽이 승현의 손가락을 감싸며 꽉 물었다. 승현은 자비 없이 손가락을 움직여 좁은 안을 넓혀갔다.
“흣, 아으응, 아.”
고개를 숙인 수환이 열이 몰린 아래에 신음하며 몸을 비틀었다. 그러다가 제 옆에 툭 튀어나온 성기를 보았다.
방금까지 저 페니스를 입안에 담고 있었으나, 약에 취한 수환은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승현의 성기 역시 흥분해서 힘줄이 툭 불거져 나올 정도로 빳빳하게 서 있었다. 수환은 그 모습을 보다가 자꾸만 제 뺨을 치는 굵은 성기를 입에 물었다.
“읏, 형.”
“하아, 응.”
정신없이 서로의 민감한 곳을 탐했다. 가만히 있던 수환이 다시 성기를 빨자, 승현은 더는 참을 수가 없어졌다. 눈을 찌푸린 승현이 눈앞에 있는 구멍을 노려보듯이 응시했다.
승현은 손가락을 집어넣은 수환의 애널을 크게 벌렸다. 붉은 속살이 눈앞에서 유혹하듯 찌걱하며 벌어졌다. 승현이 눈에 짙은 욕망이 서렸다.
“형, 그대로 엎드리고 있어요.”
“으응.”
사탕을 먹듯이 승현의 좆을 쪽쪽 빨고 있던 수환이 푹신한 러그 위에 두 팔과 다리를 대고 엎드렸다. 원래부터 잠자리에서 순종적인 편이었지만, 약에 취한 지금은 순종적인 데다 적극적이기까지 했다.
엎드린 수환의 뒤에 자리 잡은 승현이 제 좆을 수환의 애널에 문질렀다. 후배위는 사실 그동안 서로 선호하지 않던 체위였다. 승현은 수환의 얼굴을 보면서 하는 게 좋았고, 수환은 할 때 얼굴을 보이는 건 부끄러워했지만 승현의 품에 안기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승현까지 덩달아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침대에 가지도 못할 정도로 서로 흥분해서 바닥 위에서 몸을 겹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묘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윽…….”
“하윽.”
승현의 페니스가 여린 살을 가르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두 손으로 수환의 골반을 잡고 허리를 밀어붙였다. 평소보다 뜨거운 안쪽이 승현의 좆을 끊어버릴 듯이 조여왔다. 승현이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하…… 힘 풀어요.”
“하읏, 하아…….”
“응? 제 좆, 윽, 잘라먹을 거예요?”
“흐아아, 아아…….”
하지만 어르고 달래도 도무지 힘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토록 쾌감을 좇던 수환은 막상 낯선 것이 제 아래를 꿰뚫고 들어오자 당황하며 몸을 움츠렸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승현은 손을 들어 수환의 엉덩이 한쪽을 찰싹, 하고 내리쳤다.
“흐아앙!”
순간 놀라서 수환이 힘을 푼 틈을 타 승현은 페니스를 마저 삽입했다. 배 속을 꽉 채우는 무언가에 수환이 깜짝 놀라며 신음을 내질렀다.
“하아, 안에 너무 뜨거워……. 나 못 참겠어요.”
“흐으읏, 하으.”
“움직일게요.”
허리를 뒤로 빼자 찔꺽거리며 수환의 속살이 주륵 딸려 나왔다. 그걸 보는 승현의 눈이 번들거렸다. 곧바로 수환의 안을 짓이기듯이 성기를 박아 넣었다.
퍽, 퍽, 다소 조급하게 승현이 허릿짓을 했다. 수환은 뒤에서 밀려드는 쾌감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처음엔 조금 아프기도 했는데, 곧 딱딱한 무언가가 어딘가를 찌르자 머릿속이 새하얘질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곧 수환도 덩달아 허리를 흔들었다.
“흐앙, 아, 아앙……!”
뜨겁다. 너무 뜨거워서 머릿속까지 녹아내릴 것 같았다. 제 뺨을 부드러운 러그 위에 비비며 수환이 미친 듯이 신음을 내질렀다. 하이톤의 교성이 계속해서 룸 안에 울려 퍼졌다.
짙게 깔린 알파의 페로몬에 승현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어지러웠다. 까딱 잘못하면 이성을 잃을 것 같아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짓씹었다.
“흐응, 아, 좋아, 좋아앗, 아앙……!”
“하아, 윽, 형.”
“아앗……!”
허리를 뒤로 쭉 뺐다가 다시 박았다. 그러자 커다란 교성과 함께 수환의 페니스가 왈칵 정액을 토해냈다. 손끝 하나 대지 않았는데도 두 번이나 사정했다. 수환의 몸이 평소보다 훨씬 민감해져 있던 탓이었다. 러그에 튄 하얀 정액을 본 승현이 수환의 몸을 일으켜 자신의 다리 위에 앉혔다.
“흐앗! 앗!”
“하아… 내가, 누군진 알아보겠어요?”
“흐으, 흣.”
자신의 안을 채운 페니스가 아까보다 더 깊숙이 박히는 느낌에 수환이 숨을 헐떡였다. 승현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아듣지 못하고 투명한 침을 흘리며 신음했다. 눈살을 찌푸린 승현이 한쪽 팔을 수환의 배에 두르고 아래로 꾹 눌렀다.
“다른 놈이 박아도, 그렇게 좋아할 거예요? 응?”
“하읏! 앗! 아!”
“씨발.”
오로지 쾌락만 좇는 수환의 모습에 승현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눈 속에 숨길 수 없는 독점욕과 질투심이 뒤엉켰다. 이 호텔 안에서 수환이 다른 이와 밤을 보낼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또다시 눈이 뒤집혔다.
“당신은, 윽, 내 거야. 내 거라고.”
“하으읏……!”
위로 허리를 쳐올리면서 승현은 새하얀 목덜미에 이를 박았다. 쾌감과 함께 느껴지는 통증에 수환이 몸을 떨며 허리를 뒤로 젖혔다. 페로몬이 나오는 기관이 고장 나기라도 한 듯 목덜미에서 달큰한 향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하아, 기억날 때까지, 이 안에 쏟아내 줄게요.”
“흐읏, 흣, 하으응……!”
아랫배를 꾹 누르자 수환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자신이 만들었던 흔적 위에 다시금 입술을 대며 승현이 격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
“아……!”
무언가가 몸 안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 것과 동시에 뜨거운 것이 다시 배 속을 꽉 채웠다.
“하으, 아…….”
익숙하면서도 무척 생경한 느낌이었다. 수환이 무거운 눈꺼풀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다시 들어 올렸다.
흐릿한 시선 너머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둡게 내려앉은 갈색 눈을 보며 수환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승현…… 아.”
“…정신이 들어요?”
“흐읏, 무슨…….”
겨우 승현을 알아본 수환이 눈을 찡그렸다. 머리가 정말로 부서질 듯 아팠다.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두통에 잘 움직여지지 않는 손을 들어 이마를 눌렀다.
“읏, 아파.”
“머리 아파요?”
“으응.”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래를 꽉 채운 것이 천천히 빠져나갔다. 머리가 아픈 와중에도 흠칫 놀란 수환이 다리를 움츠렸다.
“잠깐만 기다려요.”
“흐…….”
언뜻 들리는 다정한 목소리에 수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를 움츠려도 속에 든 것이 주륵, 밖으로 빠져나갔다. 저도 모르게 아래에 힘을 주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이마와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워냈다.
“물 마셔요.”
“…응.”
수환이 물을 마실 수 있게 승현은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받치고 물이 든 컵을 입가에 대주었다. 수환은 꽤 익숙한 모습으로 승현이 주는 물을 받아 마셨다.
“하아.”
반 컵 정도 마신 수환이 입술을 떼고 한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 뜨겁게 달아올라 있던 속을 조금은 진정시켜 주었다. 안개가 낀 듯 흐릿했던 머릿속도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
“괜찮아요?”
“승현아, 여기…….”
“화명 호텔이에요.”
“호텔……? 어, 나 분명…….”
머릿속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은 분명 오늘 선을 봤었다. 그래서 호텔 안 레스토랑에서 어떤 오메가 남자를 만났고, 그와 얘기를 좀 하다가, 그러다가…….
“주사…….”
“약을 먹은 게 아니라, 주사 맞았던 거예요?”
“응.”
그리고 정신을 잃었는데, 일어나 보니 얼마 전까지 살았던 호텔 룸 안에 승현과 함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몰라 멍청히 두 눈만 깜박이다가, 뒤늦게 제 몸을 내려다봤다.
“어?”
수환의 꼴은 꽤 엉망이었다. 방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아도 환히 알 정도로 무수한 자국과 말라붙기 시작하는 정액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 주사, 흥분제였던 것 같아요. 어디까지 기억나요?”
“흥분제…….”
호텔 직원에게 주사를 맞았던 기억은 꽤 선명했다. 하지만 그 후의 기억은 거의 나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수환에게서 대답을 알아챈 승현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수환의 뺨을 손가락으로 느릿하게 훑었다.
“만약 제가 못 봤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 것 같아요?”
“어…….”
노유진이 흥분제를 쓴 이유는 명백했다. 만약 승현이 끌려가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눈을 떴을 때 보인 사람은 승현이 아니었을 것이다. 뒤늦게 그걸 생각하니 간담이 서늘해졌다.
“혹시 아쉬워요? 이 좆을 다른 오메가한테 못 넣어서?”
“흣……!”
승현이 손을 뻗어 수환의 페니스를 꽉 잡았다. 어이가 없게도 축 처져 있던 페니스가 승현의 거친 손길 한 번에 다시 흥분하며 단단해졌다. 약 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건가, 아니면 승현이 자주 말하는 대로 자신의 몸이 야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기에 못 넣은 게 아쉬운 건가?”
“아니… 야, 앗.”
승현의 손가락이 이번엔 수환의 애널 안을 파고들었다. 이미 그 안은 승현이 쏟아낸 정액으로 꽉 차 있었다. 그것들을 손가락으로 긁어내며 승현이 고개를 숙였다.
수환이 흠칫 놀라며 다리를 움츠렸다. 그러자 승현이 한 손으로 수환의 허벅지를 꽉 눌렀다. 땀으로 젖은 허벅지에 입술을 대며 핥고 깨물었다. 원래도 힘이 쭉 빠져 있었던 수환은 그것만으로도 몸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흐앗, 아…….”
“아직도 모르겠어요? 형이 어떤 꼴 당할 뻔했는지?”
“읏.”
화가 잔뜩 난 페로몬이 수환의 몸을 억눌렀다. 온몸을 짓눌린 채로 수환은 몸을 덜덜 떨었다.
“미안… 해.”
“…….”
“미안해, 승현아, 미안… 아……!”
예고도 없이 승현의 페니스가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의식이 없는 동안 쉼 없이 성기를 받아들였던 안쪽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승현의 것을 맞아들였다.
“흐읏, 앗, 아!”
가라앉았던 것 같은 불씨가 몸 안에서 확 살아났다. 젖어 있는 안쪽이 굵은 성기에 문질러져 민망한 소리를 냈다. 빠르게 오가는 승현의 페니스가 평소와 달리 거칠게 움직였다.
“아, 잠깐, 배 속이 이상… 햇, 아앗!”
배 속의 장기가 꽉 조여드는 느낌에 수환이 헐떡이며 애원했다. 그러나 승현은 속도를 늦추지 않으며 더 거세게 수환을 몰아붙였다.
“흐아앗……!”
순간 눈앞에서 밝은 빛이 터지는 것 같았다. 시야가 하얗게 점멸하고 까마득한 기분이 느껴졌다. 이윽고 수환의 페니스에서 투명한 물이 쏟아졌다.
“흣, 흐으읏.”
“윽…….”
승현은 수환이 쏟아낸 체액을 쳐다봤다. 정액이 아니었다. 한계까지 쥐어짜 내고 쾌감이 너무 심해진 탓에 분수를 싼 것이다. 승현 역시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읏, 잠깐…… 아앙.”
“역시 형은 좀 아픈 게 좋나 봐.”
뭉근하게 허리를 돌린 승현이 이를 악물며 사정감을 참았다. 계속된 정사에 예민해진 수환의 내벽이 승현의 페니스를 끊어낼 듯이 조였다. 눈살을 찌푸린 승현이 엉망이 된 수환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눈물로 젖은 얼굴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오메가가 봐도 좆을 세울 것 같은 야한 얼굴로 신음을 흘리는 입술을 노려보듯이 응시했다. 이를 바득 간 승현이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형은, 읏, 내 거야.”
“아…….”
“내 거라고, 알아요?”
“승현… 흣.”
말 그대로 입술을 물어뜯어 버릴 것 같은 거친 키스였다. 그런데도 수환의 몸은 흥분하고 있었다. 마치 아픈 걸 좋아한다는 승현의 말이 맞기라도 한 것처럼.
집착과 질투심을 내보이며 뿜어대는 승현의 페로몬은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였다. 그의 모든 것이 수환을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이게 과연 약 때문인지, 아니면 승현 때문인 건지 모를 정도였다.
“아앙, 아……!”
다시 거세게 움직이는 승현의 움직임에 맞춰 수환이 교성을 터트렸다.
***
아침 해가 뜬 룸 안은 그저 적막하기만 했다. 창밖에서 햇빛이 들어와 룸 안을 환하게 밝혔지만, 침실 안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으응.”
그때, 침대에 누워 있던 수환이 눈을 감은 채 몸을 작게 뒤척였다. 그 움직임에 줄곧 감겨 있던 승현의 눈이 스르륵 떠졌다.
아침인 데도 졸음기 하나 보이지 않는 눈이 몇 번 깜박거렸다. 긴 속눈썹이 부채처럼 퍼져 유리알 같은 눈동자를 감췄다가 다시 드러냈다. 아침 햇살에 더욱 빛을 받아 반짝이는 갈색 눈이 옆에 잠들어 있는 이에게 향했다.
“…….”
몸을 일으킨 승현이 아무 말 없이 잠든 수환을 내려다봤다. 날이 환하게 밝았는데도 세상모르고 색색 자고 있는 얼굴을 찬찬히 훑었다.
손을 들어 수환의 말랑한 뺨을 매만졌다. 승현은 잠시 손바닥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살결을 음미했다.
“응…….”
지난밤보다는 열이 내려갔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줄줄 흐르던 페로몬도 더는 나오지 않았다. 일단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혹시 몰랐다. 약이 독해서 아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병원을 먼저 데려가야 하려나.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병원을 우선 검색해야 한다. 그 점을 깨달은 승현이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벗어나 핸드폰을 찾았다.
“……이런.”
하지만 핸드폰을 찾기 위해서는 침실을 나와야 했다. 서로의 옷을 찢기듯이 벗긴 장소가 침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승현이라도 아침이 되니 조금은 민망한 기분을 느끼며 응접실로 걸어갔다.
곧 승현은 러그 위에 나동그라져 있던 핸드폰을 찾았다. 무의식적으로 주워서 들어 올렸는데, 화면을 보니 자신의 핸드폰이 아니었다.
그러나 화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화련누님]
무음으로 설정한 핸드폰은 화면 위에 발신인의 이름만 떴다. 그리고 곧 끊어졌다. 멍하니 있다가 전화를 받지 못한 승현이 놀란 얼굴로 알림에 뜬 글자를 응시했다.
부재중 전화 56.
화련이 밤새 수환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 숫자였다. 자신도 똑같은 짓을 여러 번 하긴 했지만, 화련의 집념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만큼 연락이 끊긴 동생이 걱정된다는 거겠지. 어제 맞선을 보는 수환에게 경호원까지 붙여 주었는데 행방불명된 데다가 연락까지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시 화면에 화련의 이름이 떴다. 승현은 이번엔 바라보기만 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환이니?
낮은 목소리를 가진 여자가 다급한 음성으로 물었다. 화련은 승현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질문을 퍼부었다.
―하, 대체 무슨……. 전화를 왜 이렇게 안 받았니?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 응? 지금 어디 있고?
“…….”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물음에 승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
그제야 화련은 통화 상대가 수환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잔뜩 굳은 음성으로 물었다.
―당신 누굽니까.
“저는…… 수환 선배와 약혼한 이승현이라고 합니다.”
―…….
이런 식으로 승현과 통화를 하게 될 줄은 몰랐던 듯, 화련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수환을 걱정하는 마음이 다시금 커져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수환이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지금 화명 호텔에 저랑 같이 있습니다.”
―하…….
승현의 대답에 안도한 듯, 화련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게…….”
승현이 침착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
“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대표님!”
월요일 아침부터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진길영 회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감히 화명의 회장이 있는 곳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다니.
무슨 일이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려는데, 그때 마침 회장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헉, 회장님…….”
열린 문 사이로 진 회장의 비서실장인 도운이 쩔쩔매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어깨를 밀치며 화련이 회장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게 무슨 짓이냐?”
눈살을 찌푸린 채 진 회장이 물었다. 그가 짜증스러운 눈길을 뒤로 보냈다. 막무가내로 들어오는 화련을 어쩌지도 못하고 서성이던 도운과 경호원들이 눈치를 보다가 문을 닫고 나갔다.
지금까지 화련이 이렇게 무례한 방식으로 진 회장을 찾아온 적은 없었다. 회사에서는 누구보다 진 회장에게 깍듯하게 굴었던 화련이었다. 화명 계열사의 대표인 그녀는 회장이 할아버지라고 할지라도 항상 미리 미팅 약속을 잡는 등 철저한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이렇게 다짜고짜 쳐들어오다니. 화련답지 않은 짓에 진 회장은 불쾌함보다는 의아함을 더 느꼈다.
진 회장 앞에 선 화련에게서 서늘한 페로몬이 풍겼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 같은 분노를 숨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습니까.”
“무슨 헛소리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진 회장이 찌푸린 얼굴을 더 일그러트렸다. 그 모습을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화련이 말을 이었다.
“수환이 말입니다.”
“…….”
“더러운 방법으로 그 아이를 팔아치우려고 하셨죠.”
재벌들이 정략결혼으로 서로 이득을 보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진 회장이 별 볼 일 없는 HS의 차남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압적인 방법으로 혼처를 바꾸려고 하다니. 진 회장이 한 짓은 도를 넘어도 한참을 넘었다.
그러나 화련의 비난에도 진 회장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뻔뻔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화련에게 되물었다.
“지금까지 그놈이 언제 한번 집안에 도움된 적이나 있었냐? 결혼이라도 잘해서 보탬이 되어야지.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자신이 예상했던 말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내뱉는 진 회장을 보며 화련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말의 죄책감도 없으시군요.”
“하, 죄책감?”
그런 감정을 느끼기에는 진 회장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실망에 실망을 거듭해 왔다. 이제 그가 수환에게 바라는 건 딱 하나였다. 그나마 쓸모 있는 몸뚱이로 집안에 보탬이 되는 것.
진 회장은 삐딱한 시선으로 화련을 올려다봤다. 수환과는 달리 그녀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후계자였다. 그리고 그런 화련 역시 지금까지 경쟁자인 수환에게 한껏 무심하지 않았었나. 진 회장이 그 점을 꼬집었다.
“그러는 너야말로 언제부터 그놈한테 관심이 있었다고 이 난리야. 어?”
화련과 수환이 어쩌다가 사이가 틀어진 건지 진 회장은 몰랐다. 사업 말고는 집안일에 영 관심이 없었던 그였다. 진 회장은 줄곧 화련이 수환을 싫어하고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화련의 비난은 그에게 있어서 이치에 맞지 않은 짓이었다.
“관심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다만.”
화련이 조용히 고개를 떨궜다. 지레 겁을 먹고 수환을 피하기만 했던 과거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쳤는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저에겐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수환이 자신에게 실망하고 화가 나 있을 거라 착각하던 화련은 줄곧 어리석은 짓을 했다. 먼저 다가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기어코 그 아이가 먼저 손을 내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누구라도 수환을 힘들게 만든다면 더는 가만있지 않을 거다. 상대가 설령 진 회장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회장님께서 저와 혜진이의 결혼을 허락해 준 건, 제가 진행한 프로젝트가 성공해 어마어마한 이익을 봤기 때문이었죠.”
“…그렇지.”
갑작스러운 화련의 말에 진 회장이 탐탁지 않은 어조로 대답했다. 그가 강력하게 반대했던 화련의 결혼 상대가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엔 둘의 사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화련이 성공한 프로젝트는 정략결혼보다 훨씬 큰 이익을 가져다줬으니까.
“그럼 수환이도 그만한 성과를 낸다면 원하는 상대와 결혼할 수 있는 겁니까?”
“뭐라고?”
화련의 물음에 진 회장이 코웃음을 쳤다. 정말로 우스운 말이었다.
“하, 당연하지. 그놈한테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기에 진 회장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화련의 프로젝트는 지금도 기업인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가 될 정도였다. 지금은 정세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고, 웬만한 성과는 취급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망나니짓이나 하고 돌아다니는 수환이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깔보는 눈빛을 마주 보며 화련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 말씀 똑똑히 기억하셔야 할 겁니다.”
“그래, 그러마.”
“앞으로 수환이와 약혼자 아이, 털끝도 건드리지 마세요. 저도 더는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 말에는 대답도 듣지 않고 화련이 휙 몸을 돌렸다. 유유히 문을 열고 나가는 화련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진 회장이 혀를 쯧쯧 찼다.
“흥, 건방지기는.”
한동안 욕설을 구시렁거리던 진 회장이 팔을 뻗어 전화기의 내선 번호를 눌렀다.
“김 실장, 들어와.”
―예, 회장님.
곧바로 도운이 문을 열고 회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화련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한껏 당황했던 그는 아직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바짝 긴장한 채 진 회장의 앞에 섰다.
“그 오메가, 히트 예정일이 언제라고 했지?”
“예?”
진 회장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도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어가 빠진 물음에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진 회장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HS의 오메가 말이야.”
“아, 이승현 씨 말입니까.”
“그래.”
“그건 갑자기 왜…….”
“잔말 말고, 대답이나 하지.”
“예…….”
불안한 기분이 느껴졌으나 도운은 어쩔 수 없이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승현을 조사했던 파일을 열어서 눈으로 쭉 훑었다.
“……이승현 씨는 우성이라 히트가 세게 오지만, 다행히 약이 잘 듣는 체질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 거 말고, 예정일이나 말하라니까.”
거북한 기분을 느끼며 도운이 다른 정보를 눈으로 훑었다. 그동안 승현이 히트 사이클을 일으켰던 날짜를 쭉 보고 입을 열었다.
“매달 말일에서 초 사이입니다. 곧 예정일이 다가오실 것 같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생각에 잠긴 진 회장을 도운이 조마조마한 얼굴로 응시했다. 수환의 마지막 맞선을 지시에 따라 준비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이번엔 또 뭘 하시려고. 곧 열리는 진 회장의 입술을 도운이 긴장하며 쳐다봤다.
“그 오메가, 히트 오면 수환이 놈이랑 떨어트려서 격리시켜.”
“네?”
진 회장의 말에 놀란 도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난감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렇게까지 하는 건 조금…….”
“그러다 까딱 애라도 들어서면 곤란해.”
“물론 위험하긴 합니다만.”
수환이 열성이긴 하지만 우성인 승현에게 히트 사이클이 오면 혹시 몰랐다. 젊은 두 사람은 아마도 짐승 같은 본능을 거스르기 힘들 것이다. 하물며 두 사람은 동거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도련님께서 싫어하실 텐데요.”
그걸 알면서도 동거를 허락한 건 다름 아닌 진 회장이었다. 수환이 뭘 하든 금방 질리는 성격이라는 걸 아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허락했던 것뿐인데, 그 가볍게 여긴 마음이 길게 이어지는 데다가 제법 질기기까지 하니 기가 막힐 정도였다.
“그놈이 싫어하면, 뭐? 그럼 히트가 온 오메가랑 단둘이 두라는 건가? 응?”
“그건…….”
대답을 하지 못한 도운이 고개를 숙였다. 수환이 그 어떤 망나니짓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진 회장에게 있어서 단 하나 용납하지 않는 건 히트가 온 오메가와 놀아나는 거였다. 그러다 잘못해서 코가 꿰이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말이다.
하물며 파혼해야 할 상대와 히트를 보내고 임신까지 시킨다면 일이 더욱 복잡해진다. 진 회장이 짜증 섞인 음성을 내뱉었다.
“알았나?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하는 수 없이 도운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휘휘 내젓는 손길에 미적거리다가 밖으로 나갔다.
3권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