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 번도 쉼이란 것이 없던 인생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하기에 급급했다. 해 왔던 일들이 많았지만 그중 원해서 시작한 일은 없었다.
영력을 다루는 수련을 한 것도, 퇴마사가 되어 전국을 떠돌게 된 것도 자의보단 타의가 앞선 일이었다. 그래, 어쩌면 ‘그 선택’도 온전한 그의 선택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리 어리석은 선택을 타의로 할 정도로….
‘나는 내 삶이 없었던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눈앞이 환해지며 눈이 떠졌다.
“…….”
눈을 몇 번 감았다 뜨자 익숙한 천장이 눈에 보였다. 이곳이 어딘지 단박에 알아챈 해월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기운이 없긴 했지만 못 버틸 수준은 아니었다. 아직은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옷은 언제 갈아입힌 건지 백야장의로 바뀌어 있었다. 새하얀 옷을 보고 있자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과거 해월은 퇴마사라는 직업 때문에 늘상 하얀 옷을 입었다. 백색이 정화의 상징인 까닭이었다. 다시 깨어난 뒤엔 산도적마냥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을 훔쳐 입느라 옷의 색 따위를 가릴 처지가 못 되었다.
그리고 이젠 하얀 옷을 입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퇴마사로서 실격이니까.
영력을 수련하는 자가 금술에 손을 뻗었다는 것부터 자격 미달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억의 편린을 떠올리는 것조차 제 과오와 마주하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여기는 강씨 세가의 본관이군.’
연진이 왜 저를 이곳에 데려왔는지 의도가 뻔히 보였다. 해월은 눈가를 짚으며 한숨 지었다.
“하아….”
곧바로 빠져나가려 문 쪽으로 시선을 옮긴 해월은 또다시 착잡한 기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문을 열고 연진이 들어왔다. 해월은 반가우면서도 반갑지 않은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어색한 기류를 먼저 깬 것은 연진이었다.
“정신이 들었나.”
“…그래.”
마치 초면이었던 그 시절처럼 제게 하대하는 연진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러려니 했다. 지금 연진에게 저는 그저 사부의 몸에 빙의한 악귀에 불과할 테니.
“용케 안 도망갔네.”
뻔뻔스러운 연진의 말에 해월은 어이가 없었다.
“누굴 놀려? 저 문에 붙어 있는 부적이나 떼고 말해.”
“보통 악귀 눈에는 안 보일 텐데, 역시 사부의 몸이라 그런가.”
“…….”
저렇게 강력한 부적을 쓰는 법도, 그걸 타인의 눈에 안 보이게 하는 술법도, 다 제가 연진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요긴하게 쓰고 있다니 기뻐해야 하나.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했다.
연진은 해월보다 반 척(약 15cm) 정도 키가 컸다. 십 년 전 연진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눈높이가 나름 비슷했는데, 그 사이 꽤 컸는지 이제는 상당히 차이가 났다.
해월은 자리에서 일어났음에도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연진을 올려다보아야 했다.
아래에서 본 연진의 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예전에는 눈만 보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는데, 지금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열아홉이었던 그가 이토록 장성할 때까지 전혀 보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연진은 딱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데 말이야. 아무리 강한 악귀라도 빙의된 자의 옛 능력을 그리 완벽하게 구사할 수는 없어.”
“…….”
“지금껏 보았던 자들 중 너만큼이나 망자의 능력을 그대로 구현해 내는 악귀도 없었고. 이리 사악한 기운을 가진 마물도 없었지.”
“…될 대로 생각해.”
해월은 고개를 푹 수그리며 답했다. 차마 연진의 얼굴을 똑바로 본 채 거짓을 말하기 민망한 까닭이었다.
“그래, 그러도록 하지.”
연진은 예상외로 시원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질문을 시작했다.
“넌 왜 하고많은 시신 중에 사부의 몸으로 들어간 거지?”
“…….”
그야 이게 내 몸이니까. 들어간 게 아니라 나가지 않은 거니까.
‘언제까지 되지도 않는 빙의귀 흉내를 내야 하나.’
어쨌든 저질렀으니 수습도 해월의 몫이었다.
“그저 비어 있는 몸에 들어왔을 뿐이야.”
거짓말에 능숙한 편은 아니었지만, 필요하면 하는 편이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거짓이 필요할 때고.
“보통의 빙의된 육신은 악취가 진동하고 핏기가 없어서 도무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 근데 넌 꼭 살아 있는 것 같아. 마치 죽은 적 없는 육신처럼.”
시신에 생전 주인의 혼백이 일부 남아 있기에, 악귀가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신에 빙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빙의귀의 육신은 대부분 썩어 악취가 났다.
해월은 제 몸에, 제 혼백으로 부활한 것이기에 경우가 달랐다.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이 몸은 확실히 죽었었어.”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전부 피가 나왔다. 한참을 피를 흘리고 또 토하고 그렇게 죽어 갔다.
의식이 들었을 때 해월은 혼백으로서 그의 무덤에 서 있었다. 그렇게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부의 혼백은… 본 적 있어?”
“…없어. 천도했겠지.”
해월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해월은 이 저주를 풀고 안식에 들고 싶었다. 지난 삶이 너무 고되어서 이제 그만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하나 천도하지 않으면 환생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선 원한을 푸는 일이 급선무이다.
그런데 원한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고 참을 수 없는 분노도 느껴졌지만, 그 대상을 알 수 없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것도, 무언가를 없애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아니, 둘 모두이기도 했다. 누구든 죽이고 무엇이든 없애고 싶었다.
그냥 이 모든 것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남김없이 전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해월의 머리 위로 나직한 음성이 떨어졌다.
“이봐.”
“…어?”
깜짝 놀란 해월이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제야 먹먹했던 귓가가 맑아지고 연진의 음성이 흘러들어 왔다.
“내 말 들었어?”
“…무슨 얘길 했지.”
“그 눈이랑 머리칼은 어떻게 된 거냐고.”
“아….”
보통의 마물은 양쪽 눈에 붉은색을 띤다. 그런데 해월은 이례적으로 한쪽 눈만 홍색이었다. 흑청색의 왼눈과 달리 오른눈은 선명한 빨간색을 띠었다.
해월은 제 오른 눈가를 매만졌다. 어째서 한쪽 눈만 붉어진 것인지는 그조차 몰랐다. 본래 짙은 흑색이었던 머리칼이 백발이 된 까닭도 알 길이 없었다.
“몰라, 나도.”
“싱겁군.”
연진이 방 한편에 마련된 상석에 앉았다. 해월은 연진을 잠시 바라보다 이내 목소리를 냈다.
“…다 물어 봤으면 이만 나를 보내 줘. 악귀가 있어 봐야 음험한 기운만 몰려들 거야.”
“가주가 퇴마사인데 얕보면 안 되지. 음기나 잡귀가 몰려들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악귀답지 않게 걱정하지 마.”
“…자신을 과신하지 마.”
“고작 잡귀 따위에게 당하기라도 할까.”
고작 잡귀.
연진의 말이 맞았다. 잡귀는 웬만해선 눈에 띄지도 않을뿐더러 인간에게 유별난 해악을 끼치지도 않는다.
게다가 연진은 자신의 힘을 강하게 믿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이 있는 것이다.
하나 해월도 그랬었다. 자신의 능력을 믿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냈다. 모든 일이 수월했으며, 아니라고는 했지만 속으론 자만했었다.
그러나 한계란 있는 법. 언젠간 그것과 맞닥뜨리게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믿었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순간을 과연 연진이 버틸 수 있을까.
해월은 그러지 못했다.
자신의 나약함을 깨닫고, 모든 믿음이 깨지는 순간을 맞이했을 때, 무너지고 말았다. 해서 작금의 연진이 걱정스러웠다.
젊은 혈기와 패기로도 안 되는 일이 있다고, 그런 사실을 연진은 평생 몰랐으면 했다.
“됐고, 문이나 열어.”
부적이 잔뜩 붙어 있는 문에 아무런 준비 없이 손을 댔다간 뼈도 못 추릴 게 뻔했다.
“싫다면?”
“질문에 답도 했고, 내가 여기 더 있을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그 몸은 엄연히 내 사부의 것인데, 네 것인 것처럼 굴면 곤란하지.”
“그래서, 내놓고 가기라도 하라는 거야?”
‘아, 정말 끈질기네. 그냥 좀 보내 줘라.’
애당초 연진과 이리 길게 대화하고,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계속 마주하고 있다간 정체가 드러날 게 뻔했다.
“…그건 아니야.”
“그럼 뭔데.”
“생각을 좀 해 봤어. 널 어떻게 해야 할지.”
연진은 제 짧은 흑발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그제야 연진의 머리칼이 짧다는 것을 제대로 인지한 해월이 흠칫 놀랐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더니… 머리는 언제 잘랐대.’
연진은 무인 가문의 귀족치고는 몸을 소중히 여기는 편이었다.
작은 생채기만 나도 곧바로 연고를 바를 정도로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소중히 생각하던 연진이 머리칼을 자르다니.
꼭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귀족이 천민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는 일이 없던 터라 해월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연진의 반듯한 이마가 훤히 드러나며 짙은 시선이 해월에게 꽂혔다.
“이대로 밖에 나가면 또다시 인간의 혼백을 잡아먹고 다닐 게 뻔한데, 내버려 둘 수야 없지.”
“…결론이 뭔데?”
“여기 있으면 돼.”
“나더러 여기 살란 말이야?”
미친 건가.
미치지 않고서야 지금 연진이 하는 말을 설명할 수가 없다. 마물을 데려온 것도 모자라서 여기 살라니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말이던가.
“바로 알아들었네.”
“…뭔가 착각하나 본데, 내가 여기 못 빠져나갈 것 같아?”
비록 마물이 된 몸이지만 해월은 여전히 영력을 다룰 수 있었다. 이 방을 나서는 것쯤은 가능할 터였다.
“못 빠져나갈걸.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보아하니, 사부가 갖고 있던 지병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수로 도망가려고?”
“…….”
해월은 제 옷깃을 움켜쥐며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저의 폐가 안 좋다는 것을 아는 이는 몇 되지 않는데 연진도 그중 하나였다. 돌아보니 참 많은 비밀을 아는 제자였다.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바가 있다면 빨리 충족시켜 주고 나가야겠단 생각이었다.
“원하는 거라… 그저 단순해.”
해월은 줄곧 의문이었다. 연진이 이렇게 행동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굳이 백해무익한 일을 해 가며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드는 저의가 궁금했다.
하나 이윽고 들려오는 진심에 해월은 가슴 한편이 착잡해졌다.
“난 내 사부를 보고 싶은 것뿐이야.”
“…….”
‘십 년이나 지났는데….’
연진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를 버려두고 간 건 자신이었으니까.
그래서일 것이다. 지금 이 상황을 뿌리치지 못하고 계속 그에게 휘말리고 마는 것은.
“…내가 이곳에 남아서 네가 얻는 이득이 뭐지?”
과거야 어찌 되었든, 지금의 해월은 인간의 기와 혼백을 먹지 않고서는 연명할 수 없다. 자칫했다간 이성을 잃고 육신이 뒤바뀌는 요괴가 될 것이 분명했다. 조금이라도 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언제 깨져서 물이 샐지 모르는 장독대나 다름없는 자신을 단지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에 두겠다고?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
“생혼이 아닌 사혼을 흡수해. 요괴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지.”
“살아 있는 자 말고, 죽은 자를 해치란 말밖에 안 되잖아.”
“맞아.”
연진은 조금의 변명도 하지 않고 수긍했다. 되레 해월 쪽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사혼으로 연명하는 데엔 한계가 있어.”
“알아. 살아 있는 사람의 혼을 흡수하는 게 몇 배는 더 나을 테지. 그래서 제안을 하나 더 할까 하는데….”
“무슨 제안?”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내 기를 흡수하도록 해. 보다시피 기가 강하단 소리를 많이 들었거든. 네 허기 정도야 채울 수 있겠지.”
“…….”
‘얘가 진짜 미쳤구나.’
악귀더러 머물라는 것도 모자라서 자신을 흡기하라고 하다니.
해월은 진심으로 연진이 걱정되었다.
가주의 일이 힘들어서 미쳐 버린 건가. 아니면 약에라도 거나하게 취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건가.
해월이 보내는 시선의 뜻을 알아챘는지 연진은 느긋하게 웃었다.
“안 미쳤어.”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제안이잖아.”
“뭘 망설이는 거지? 요컨대 기운만 흡수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데.”
“…….”
솔직히 인정한다.
연진이 한 제안들은 해월로서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언제까지 별 힘도 없는 인간들의 기를 빨며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딘가 정착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은 오로지 ‘인간’으로서 한 생각이었다. ‘요괴’로서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인간으로부터 생기를 빨아들이는 행위. 즉, 허기를 채우고 싶은 욕구를 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쯤은 요괴인 제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며 그들에게 조금의 해악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역시 안 되겠다고 얘기하려 입을 열던 찰나, 두통이 느껴진 해월은 휘청거리며 주저앉아 바닥에 손을 짚었다.
“윽…!”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장기가 뒤죽박죽 섞이는 것처럼 끔찍한 통증이 일었다.
“헉, 헉….”
기력이 거의 바닥난 모양이었다. 하긴, 지금껏 서 있던 것도 기적이었다.
“……!”
다급하게 일어난 연진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해월의 어깨를 감쌌다. 힘이 빠진 해월은 뿌리쳐야 한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고스란히 연진의 품에 안겼다.
“정신 차려!”
연진은 해월을 붙잡고서 세게 흔들었다. 그런데도 해월은 축 늘어져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으으….”
온몸이 들끓는 것 같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야가 흐릿하고 귓가는 먹먹했다. 눈앞에 투명한 점토가 뭉개진 것 같았다.
해월은 어떻게든 정신을 잃지 않으려 떨리는 손으로 연진의 옷깃을 그러쥐었다. 연진이 무어라 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
이유를 알 수 없는 수마가 몰려들었다.
‘졸려.’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죽기 직전의 감각과도 비슷했다.
그래도 지난번과 다른 것은 눈앞에 환상 따위가 아닌 실제 연진의 얼굴이 있다는 것이다.
‘진아….’
해월은 그것에 만족했다. 어쩌면 이것도 제 원한 중 하나였으리라.
이대로 잠이 든다면 영영 깨어나지 않길 바랐다.
그렇게 해월은 무거운 눈꺼풀을 감았다. 그리고 꿈속을 헤맸다.
아주 머나먼 과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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