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4/136)

<114화>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푹푹 꺼지는 진흙 위를 걷는 것처럼 무거웠다.

도겸이 매일 같이 데려다주던 길을 멍하니 걷다 보니 코끝도, 귀도, 손도 춥고 시렸다. 비단 온도가 낮고 바람이 차가운 게 아니라 마음마저 서늘하다 보니 바람이 더욱 칼날처럼 날카롭게 느껴졌다.

비척비척 걷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지만, 제가 달리 어디를 간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었다.

일단 집에 들어가서 생각을 해 보자며 안으로 들어가는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서원이니? 마침 잘 왔다. 엄마가 간을 보고 있었는데 잘 알 수 없어서. 한번 와서 먹어 봐.”

집에 엄마가 있었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부엌에서부터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하면서도, 또 감정이 울컥 차올랐다. 그 탓에 서원은 부엌으로 걸음을 옮기지도, 대답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아랫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

“……”

“서원아?”

좀처럼 반응이 없자, 엄마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국자를 내려놓고 터벅터벅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그녀는 현관 앞에 서 있는 서원을 보자마자, 깜짝 놀란 듯 눈을 커다랗게 확장하더니 성큼성큼 다가왔다. 발치까지 다가온 그녀는 서원의 양쪽 뺨을 손으로 감싸며 걱정스레 물었다.

“어머, 얼굴빛이 왜 이래? 어디 아파? 병원 가야 할 것 같은데. 잠깐, 엄마가 불 끄고 올 테니까 기다려.”

“아뇨……. 안 아파요. 병원, 안 가도 돼요.”

당장이라도 병원에 데리고 갈 기세에, 서원이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힘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서원이 말리자, 그녀는 할 말 많은 시선으로 서원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 죽어 가는 낯빛은 뭔데? 그러고 보니까 오늘 사모님이랑 회장님 뵙고 온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불편해서 체하기라도 한 거야? 엄마가 손 따 줄까?”

“……엄마.”

“응, 서원아.”

엄마는 눈썹을 팔 자로 늘어트린 채 무슨 말이라도 좀 해 보라며 간절한 시선을 보냈다.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듣고 싶은 기색이었다.

서원은 순간 차라리 제가 아프거나 체한 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암담했다. 서원은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 어떡해요?”

서원의 입에서 나온 말에 엄마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서원이가 회장님이나 사모님이 격렬하게 반대해서 걱정이 많다든지, 이런저런 일로 곤란에 처했다든지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도련님에 대한 걱정의 말이 나오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도련님이 왜? 무슨 일인데?”

“형이…… 갇혔어요. 이제 못 보게 될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소리야? 갇혔다니?”

갇혔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범법자라도 되어 구치소에 들어가기라도 했단 말인 걸까? 재벌가의 사람이기도 하고 뉴스에도 몇 번 나오기도 하는 대기업이라 그런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서원을 진정시키며 다시금 물었다. 그러자 서원이 방황하듯 두 눈동자를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기색으로 대답했다.

“저랑 형이랑 헤어지지 않는다고 했더니, 회장님께서 형을 데려가 버렸어요. 저는 저택에서 내쫓고……. 형이랑 연락도 안 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형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면 어떡하죠?”

서원이 말을 마칠 때쯤엔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명쾌한 해답이라도 내놓기를 원하는 눈빛에, 그녀는 조금 당황했다가 일단 그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서원아, 진정해. 내가 사모님한테 연락해 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자식한테 해코지할 부모가 어디 있어.”

“…….”

그녀의 말에 서원이 입술을 우물거리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사모님은 몰라도, 제가 본 회장님은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무슨 짓이든 할 것처럼 보여서 더 두려운 것이었다.

엄마의 위로에도 서원이 좀처럼 우울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자,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마저 말을 이었다.

“그리고 회장님은 몰라도, 사모님은 너도 잘 알잖아. 아들 끔찍이도 사랑하시는 거.”

“그건 그런데…….”

“회장님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셔도 사모님은 그렇게 안 놔두실 거야. 일단 기다려 보자.”

그녀의 말에 서원이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은 몰라도 서원이 아는 사모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긴 했기에 조금 안정됐다.

엄마 말대로 기다려 보자. 마냥 기다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만, 냉정하지만 제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사실이었다.

그 안에서 도겸도 방안을 궁리하고 있겠지. 서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도겸을 다시 만나게 될 날만을 기다렸다.

* * *

“제기랄…….”

도겸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곳에 감금된 지 며칠이나 됐더라.

도겸은 어렸을 때 제가 지냈던 방에 가둬지게 됐다. 워낙 넓고 좋은 공간에 맛있는 밥까지 잘 나오는 덕분에 다른 사람이 보면 호텔과도 다름없어 보였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바깥과 연락이 닿을 수단이 없다는 점이었다.

핸드폰은 이곳에 가둬지는 동시에 빼앗겼고, 원래 이 방에 있던 컴퓨터도 치워져 있었다. 애초에 아버지는 저를 가둘 생각으로 이곳으로 부른 모양이었다.

벽에 걸린 달력을 보니 아마 그날로부터 이 주일이나 넘게 지나 있었다. 서원과 연락을 하지도 못하고 일도 못 하고 대화할 사람도 없다 보니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미쳐 버리는 것 같았다.

문을 아무리 두드려 봐도 밖에서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반응이 없었다. 집이 쓸데없이 튼튼한 바람에 문을 부수는 건 실패했고, 2층에서 뛰어내려도 크게 다치진 않을 거라며 창밖으로 뛰어내려 봤지만 마당에 덩치들이 쫙 깔려 있어 다시 잡혀 오기를 부지기수였다.

도겸도 우성 알파에 체격이 좋은 편이라 한두 명 정도는 제압할 수 있었는데, 쪽수로 밀리니 어쩔 수가 없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몇 번 그 짓을 반복하니 의욕이 떨어졌다. 서원을 보고 싶은 마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으나, 며칠 서원을 못 보게 되니 몸도 머리도 아프고 점점 힘에 부쳤다. 일방 각인 때문이었다. 오전에 가정부를 통해 받은 진통제를 먹었으나, 예전에도 효력이 없었는데 지금이라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달칵하고 문이 열렸다. 이 시간에 들어올 사람이라고는 어머니밖에 없었기에 도겸은 눈길도 주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시체처럼 가만히 늘어져 있는데, 침대 매트리스 한쪽이 눌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머니가 침대맡에 살짝 앉은 것이었다.

“도겸아.”

“…….”

어머니가 다정하게 부르며 손을 뻗어 도겸의 머리를 정리해 주었으나, 도겸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만 감았다 뜨며 살아 있다는 신호만 보이자, 어머니가 답답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며칠째 이러는 거야. 그냥 아버지한테 잘못했다고 빌어.”

“…….”

어머니의 말에 도겸이 한쪽 입술을 비뚜름하게 올렸다. 잘못한 게 없는데 뭘 빌라는 건지.

식사 자리에서 서원이 말했던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저를 사업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건 없었기에, 도겸은 크게 개의치 않았었다.

그런데 그게 이러한 결과를 초래할 줄은 몰랐다. 늘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왔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겠다고 한 번 그의 뜻을 거스른 게 이런 결과를 초래할 줄은 몰랐다.

도겸이 그런 건 하지 않겠다는 듯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어머니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도겸을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사실 오늘 찾아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는 듯이 운을 띄웠다.

“……도겸아. 사실은 할 말이 있어.”

“…….”

“서원이 이야기야.”

도겸이 움찔, 몸을 떨었다. 서원이 이야기라고?

다른 이야기라면 흘려들을 수 있겠지만, 서원의 이야기라면 달랐다. 연락이 닿지 않았던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근황을 알려 주려는 걸까 싶어, 도겸은 그제서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어머니와 눈을 맞췄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무척이나 궁금한데, 그녀는 먼저 운을 띄워 놓고서는 난감하다는 듯이 아랫입술을 말아 물고 있었다. 그 모습에 도겸은 전하려는 소식이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서원이가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그게……. 서원이, 새벽에 병원에 실려 갔대.”

도겸이 말을 재촉하자, 어머니가 어쩔 수 없겠다는 듯이 참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그게 무슨……. 서원이가 병원에 실려 갔다고?

단순히 병원에 갔다고만 들어도 걱정되는데 무려 실려 가기까지 했다니. 어디가 아파서? 왜? 제가 없던 한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충격적인 소식에 도겸은 순간 몸에 핏기가 싹 가시는 듯했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도겸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주먹을 꽉 쥐었다 피며 입을 열었다.

“병원은 왜, 어디가 아픈 거예요? 설마……, 아버지가 해코지라도 한 거예요?”

“아니야! 그런 거…….”

“그러면요.”

도겸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갇혀 있던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아버지가 서원이에게 해코지하지 않으리라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자식을 한 달 동안 방에 감금할 만큼 냉혈한 사람인데 서원에게는 더 심한 짓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해코지한 게 아니라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세세하게 말해 달라는 도겸의 요구에 어머니는 저도 자세히는 모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한테 들었는데, 서원이가 집에 있다가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실려 갔대. 아마 조산기가 보이는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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