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0화> (90/136)

<90화>

이지환? 그게 누구……, 아! 슬기의 오빠를 얘기하는 거구나.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라 하마터면 누군지 못 알아들을 뻔했다.

제게는 반가운 이름이긴 한데, 도겸의 앞에서 막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거짓말이라는 걸 이제는 다 들켰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날 말싸움 비슷한 지경까지 갔었기에 나쁘게 인식이 자리 잡았을 듯했다.

“아, 아뇨. 그분 서울 올라가신 거로 아는데…….”

“행방을 알아? 너 걔랑 아직도 연락해?”

“연락하는 게 아니라……! 그, 그때 잠깐 시골 내려온 거라고, 금방 서울 올라간다고 했었어요.”

뒤를 돌아 시선을 마주하며 해명하고 싶었지만, 도겸이 제 어깨에 턱을 올리면서 못하게 됐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잠시간 흐르는 침묵과 손장난을 치던 손길이 느려진 게 쌀쌀맞아진 느낌이었다. 서원은 슬금슬금 그의 눈치를 보며 그를 달랬다.

“정말 아무런 사이 아니에요. 알잖아요……. 그거 다 거짓말이었던 거.”

“…….”

도겸은 이번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서원이 슬쩍 곁눈질로 보니, 그는 퉁명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도 서원과 지환의 사이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그래도 이지환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영 별로인 눈치였다.

서원은 지환과 그때 몇 번 대화를 나눴던 게 전부이니 떳떳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에게 거짓말을 했던 터라 눈치가 보였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도겸의 기분이 풀릴지 고민하는데, 뒤늦게 도겸이 입을 열었다.

“알긴 아는데, 그 새, 아니……. 그놈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잖아.”

어……. 이지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른다고? 설마 이지환이 저에게 흑심이라도 품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연인으로서의 질투라면 귀엽게 봐줄 만하지만, 그날 이지환이 제게 특별한 반응을 보였던 것도 아니고. 큰 오해였다.

“그, 그런 생각은 안 해도 돼요. 저 그렇게 인기 많지도 않고요……. 그리고 이지환 씨랑 만난 건 그때가 두 번째였고요. 몇 번 보지도 않았어요. 절 좋아할 틈도 없었을걸요…….”

“…….”

“진짠데…….”

서원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몇 번 만나지 않았으니 그가 제게 호감을 품을 만한 시간도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어째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나 싶기만 했는데, 순간 질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저 또한 그의 이복동생을 오해하고 질투했었으니까.

저는 그나마 가족이라는 말에 바로 오해를 인정하고 질투를 거둬들였지만, 이지환은 충분히 도겸을 자극할 만한 사내였다. 생판 남이기도 하고, 데이트하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 줬고, 제게 잘해 주는 알파이기도 하니까…….

그가 지환을 아니꼽게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그의 질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도겸이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꺼냈다.

“너 그때 거짓말 잘하더라.”

“……네?”

“그때 그 새……, 그놈이랑 다방 갔을 때 말이야. 좋아하는 이유 말할 때, 쑥스러워하길래 진짜인 줄 알았어.”

갑자기 무슨 말을 하나 싶었더니만……. 그날 다방에서 지환과 나눴던 대화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때 이지환은 도겸에게 들으라는 듯이 제 어떤 점이 좋냐고 물었었고, 저는 당황해하면서도 대답했었다.

멋있고, 기대하게 만들어서 좋다고 했던가. 사실은 이지환을 보고 아무 말이나 지껄인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대답한 속사정이 있어, 서원은 입술을 우물거리다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사실은……, 그거 도련님 생각하고 말한 거예요.”

“……나?”

도겸이 의아하게 물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대답이 나왔다는 표정이었다.

왠지 고백하는 느낌이라 쑥스러웠으나, 제 마음은 들킨 지 오래됐고 사귀기로 했으니까……. 그의 질투를 잠재우기 위해서 이 정도 부끄러움을 감수하는 건 괜찮지 않나 싶었다.

“그때, 지환이가 자기의 어떤 점이 좋냐고 하니까 아무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보통 사람들이 어떤 점을 보고 반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

“저는 살면서 좋아해 본 사람이 도련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도련님 생각하고 대답한 거였어요.”

“……내가 기대하게 만들고 그랬어?”

서원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하자, 잠시간 말이 없던 도겸이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에 서원은 조금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냥, 저 혼자 기대한 거죠. 제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도련님이 더 잘 알기도 하고, 아플 때 챙겨 주시기도 하고 그랬잖아요. 많이 신경 써 주셨으니까요.”

“…….”

“제가 그냥 도련님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 엇…….”

진지하게 대답하던 서원이 순간 말을 뚝 멎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엉덩이 뒤쪽으로 크고 단단한 것이 닿았기 때문이었다.

굳이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아도, 위치며 익숙한 촉감에 뭔지 알아챌 수 있었다. 위치상 닿는 것까지는 이해한다지만, 평범한 상태가 아니라 발기한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고 또 세우는 게 말이나 되나? 우성 알파라 이것저것 다 뛰어난 체질을 가졌다는 건 아는데, 정력이 도대체…….

서원은 조금 사색이 된 얼굴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지금 밑에…… 뭐예요?”

“네가 귀여운 소리를 하니까…….”

귀여운 소리? 그래서 아래를 세우기라도 했다는 건가? 애초에 제가 언제 귀여운 소리를 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 더는 못 해요.”

“알아. 나도 더는 안 할 거야.”

“…….”

그런 것 치고는 아래가 너무 혈기왕성하신 거 아닌가요…….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안 한다고 하니 모르는 척하던 대화나 이어 가고 싶었지만, 온 신경은 그의 것에 쏠린 지 오래였다. 무시하고 싶어도 존재감이 뚜렷하다는 게 문제였다.

“이, 이제 그만하고 일어날까요?”

대화도 꽤 나눴으니, 이제 반신욕은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서원이 그럴 생각으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혹사당한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다. 게다가 몸을 겹칠 때 다리를 계속해서 벌리고 있어서 그런지, 허벅지에 힘이 풀리기까지 했다.

“으으…….”

서원은 옅은 신음을 흘리며 일어나려다 말고,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금 주저앉고 말았다.

일어나려고 하자마자 힘이 풀린 것이라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의도치 않게 그의 것을 엉덩이로 비비적거리는 꼴이 됐다는 거였다.

움찔. 그의 성기가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서원이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는데, 순간 겨드랑이 사이로 손이 쑥 들어오더니 제 몸을 강제로 일으켰다.

“앗……!”

촤아악! 몸 위에 있던 물들이 아래로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어냈다.

갑자기 일으켜진 것도 놀라운데, 도겸에게 밀려 어쩌다 보니 벽까지 밀려났다. 반사적으로 서원이 벽을 손을 짚었다가, 어리둥절한 낯으로 뒤를 돌아봤다.

“도, 도련님……?”

앞서 그의 것이 엉덩이에 닿았었기 때문에 너무 흥분한 게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조심스레 돌아본 거였으나, 의외로 도겸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이었으나, 서원은 그의 모습에 조금 동요하고 말았다. 아까는 몰랐는데, 그도 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검은 머리칼 끝에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여차하면 물에 빠진 생쥐처럼 우스워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으나, 도겸에겐 아니었다. 연예인이 바다에서 화보를 찍은 것처럼 어울렸다.

게다가 반신욕의 열로 조금 발갛게 익은 얼굴이 조금…… 색정적으로 보였다.

목덜미와 귓가로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제가 반응하면 어쩌자는 거야. 묘하게 이상해지는 분위기에 서원이 가만히 있는데, 도겸이 단단한 가슴을 제 등에 바싹 붙였다. 방금까지 함께 반신욕을 하고 있었던 터라 제 몸도, 그의 몸도 비슷한 체온으로 젖어 있었다,

“서원아, 왜 또 도련님이라고 불러?”

그리고 그의 목소리 또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서원은 참지 못하고 얼굴까지 확 붉게 물들여 버렸다. 이, 이 사람이 작정했나? 안 그래도 좋아하는 목소리였는데, 나른하게 말하기까지 하니 심장이 간질거리다 못해 쿵쿵 뛰었다.

저 말고 다른 오메가는 만나 본 적도 없다고 했는데, 이런 목소리를 내는 건…… 사람을 꼬시는 데 너무 타고난 거 아닌가? 서원은 제가 과할 정도로 도겸을 좋아하는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못하고, 그가 너무 대단한 거라고 탓을 돌렸다.

서원은 불에 덴 것처럼 후다닥 앞으로 고개를 돌리곤 소심하게 대답했다.

“입에 안 붙는 걸 어떡해요…….”

“그럼 내가 도와줘야 하나?”

“그걸 도와주신다고요? 갑자기요?”

부르다 보면 익숙해질 거고, 굳이 그가 도와줄 이유도 없었다. 그야 형이라고 불리는 게 좋을지 모르지만, 제게는 딱히 좋을 것도 없는데?

게다가 도와주겠다고 하는 타이밍이 좀 이상했다. 반신욕 하다가 말고 갑자기? 나누던 대화에서 제가 그를 계속해서 도련님이라고 부른 건 아는데, 너무 생뚱맞지 않나?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허벅지 사이로 뜨거운 살덩이가 밀고 들어왔다. 아까부터 부피를 키우고 있던 그의 성기였다.

고환에 그의 것이 비벼졌다. 야릇한 느낌에 서원이 “흣…….”하며 작게 신음을 흘리는데, 도겸이 허리를 굽혀 서원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박을 때마다 형이라고 부르는 거,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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