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촬영장으로 돌아가자 정말로 피디가 나와 있었다. 그는 상당히 목이 뻣뻣한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저자세로 나왔다. 예상 외로 그는 진심으로 이진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듯 보였다.
“이진 씨, 우리 같이 방송한 지도 꽤 됐는데 이제 내 스타일 알잖아요. 나는 절대 참가자한테 불리한 연출 같은 거 안 해요. 다 똑같이 부모님을 데려오면 너무 뻔하니까 그냥 신선한 그림을 보여 주려고 그런 거예요. 할머니, 동생, 누나, 형. 다들 많이 왔다니까요? 이진 씨는 외동이고 가족들보다 선생님 쪽에 먼저 연락이 닿아서 그쪽으로 섭외했는데, 둘 사이가 안 좋을 줄은 나도 몰랐죠. 어쨌든 미안해요.”
긴 변명 끝에야 사과의 말이 나왔다. 학부모 상담이라는 기획에서 가족이 아닌 사람을 부른 것부터 악의적 의도가 느껴졌지만 먼저 내민 화해의 손길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나한테 불리한 연출은 아니겠지. 오히려 의외의 약한 모습을 팔아먹을 기회일 테니까.’
이진은 냉정한 현실과 함께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다행히도 촬영을 진행 중이던 1층 상담실 앞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대부분 참가자들은 오늘 방문한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즐기러 갔고 방금 막 촬영이 끝난 사람들만 자리에 남아 있었다. 눈치로 보아 그들은 이진이 왜 갑자기 뛰쳐나갔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미열의 말대로 승현은 선생님의 곁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릎에는 일곱 살 난 남동생 수현을 앉힌 채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승현이 말을 멈추고 이진을 바라봤다.
“안녕, 수현아.”
“우웅.”
“선수현. 안녕하세요, 해야지.”
수현이 수줍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승현이 무릎에서 내려놓고 배꼽 인사를 시켰다.
“됐어. 너는 촬영 끝났어? 동생은 혼자 온 거야?”
“아뇨. 어머니도 오셨어요. 지금은 잠깐 차에 가 계시고 이따가 식사할 때 나오실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아 계신 선생님을 바라봤다. 이진이 할 말이 있어 보이자 승현이 일어나 자리를 피해 줬다. 이진은 승현이 앉았던 의자에 앉아 입을 뗐다.
“선생님, 우선 와 주신 건 감사해요. 제가 요즘 예민해서 날카롭게 굴었어요. 죄송합니다.”
“아니야, 이진아. 충분히 이해한다.”
잠시 건조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피디와 선생님, 둘 모두 악인은 아니다. 그들이 저마다의 욕심을 채울 때 거리낌 없이 상대를 이용할 수 있는 이기적이고도 평범한 사람이며 안타깝게도 이진이 그들이 이용하기에 적당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적어도 선생님은 나름의 도리를 지켰다. 덜컥 세상에 홀로 남은 제자를 위해 도울 수 있는 일에 힘을 아끼지 않았다. 의도를 따질 것 없이 감사해야 할 일이다.
“어떤 이유로 오신 건지 더 묻지는 않을게요. 어쨌든 제 얘기를 공공연히 하고 다니진 않으신 것 같으니까.”
“이진아, 나는.”
“선생님. 저는 더 이상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이진이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처받은 사람은 언젠간 누군가를 다시 상처 입히고 만다. 그 누군가는 타인이 될 수도,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그는 둘 모두를 끊임없이 상처 입히며 살아왔다. 슬픔의 연쇄를 끊어 내기 위해서는 상처를 숨길 것이 아니라 반드시 드러내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
“동정받고 싶지도 않고, 남의 입으로 제 얘기를 듣고 싶지도 않아요.”
“그때는 내가 생각이 짧았어. 선생님이 정말 미안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면 응원해 주세요.”
이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결코 쉽지 않았던 결심을 입 밖으로 냈다.
“이번엔 제가 직접 말할 거예요.”
카메라 앞에서 과거를 고백하기란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각오했던 순간들이 끝나고 나니 그렇게 느껴졌다.
이진은 피디와 협의한 끝에 중단됐던 촬영을 재개했다. 상담실에 들어가 추억거리에 대해 가볍게 대화를 나누다가 이진이 자신의 희망 진로를 얘기하면 선생님이 응원하는 식의 대본이었다.
“이진이 넌 그때도 당장 데뷔해도 좋을 만큼 특별했지. 집안 사정만 아니었더라면 지금보다 몇 년은 일찍 가수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솔직히 제가 유복하게 자랐더라면 과연 가수를 꿈꿨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TV에 나오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상담실 소파에 앉은 두 사람은 전에 없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타고난 재능이 이렇게 출중하니까 언제가 되었든 재능이 꽃피는 시기가 왔을 거야. 선생님이 얼마나 널 질투했는지 모를 거다. 그리고 그만큼 많이 아꼈어.”
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본대로 선생님이 휴지로 눈물을 찍어 내기 시작했다.
“부모님 장례식에서 교복 입고 우두커니 앉은 널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드디어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진실된 감정이 이진에게도 전해져 왔다. 그러나 이진의 눈가는 물기 하나 없이 건조했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네가 정말 잘못될 줄 알았어. 이렇게 훌륭히 이겨 내서 정말 다행이고, 고맙다.”
이진은 대답하지 않고 선생님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그에 비해 훨씬 작은 체구가 품에 쏙 들어왔다. 눈물을 거둔 선생님이 다시 한번 이진을 응원한 뒤 촬영이 일단락됐다.
문득 몸이 다 자라고 난 뒤에 한 번도 엄마를 이렇게 안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몸이 차가웠는지 따뜻했는지, 딱딱했는지 부드러웠는지. 이보다 더 작았는지 아니면 조금 더 꽉 차게 두 팔을 벌려 이진을 마주 안아 주었을지 이진은 알지 못했다. 새삼 그것이 아쉬웠다.
그 후 이진은 곧바로 개인 인터뷰 세트로 이동해 그동안은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을 담담한 어조로 털어놓았다.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가난한 집, 딱 그 정도였어요. 하나 다른 게 있다면…….”
하나 다른 게 있다면, 행복하지 않았다는 점일까. 드라마처럼 단칸방 하나에 오순도순 모여 단란하고 소박한 삶을 꾸리며 작은 일에서도 웃음을 찾는 그런 가족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성실했지만 정에 약해 늘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생활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면 신기하게도 주변에 일이 생겼다. 그럴 때마다 이진 가족은 관성처럼 원래의 구질구질한 삶으로 돌아왔다.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견디고 돌아온 부모님은 하나뿐인 아들을 살갑게 보살필 여력이 없었다.
“어렸을 땐 가난하다고 무시도 많이 받았어요. 시험을 잘 보면 대우가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매일같이 열심히 공부했고요. 덕분에 성적은 늘 좋았어요.”
처음으로 학교라는 커다란 사회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진의 세계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약자를 배려하는 법을 몰랐고, 이진의 사이즈가 큰 운동화나 오래 입어 소매가 헤진 티셔츠는 그들의 좋은 놀림감이 되었다.
그곳에서 이진은 아무런 장점이 없는 소년이었다. 한글을 배우지 못해 제 이름도 읽지 못하는 골칫덩어리였다. 차라리 시끄러운 말썽꾸러기였다면 좀 나았을까. 그는 말수가 적고 얌전해 반 분위기에 쉽게 섞이지도 못했다.
자리를 바꾸는 날, 어떤 여자애가 이진과 짝이 되기 싫다고 훌쩍이며 울기까지 했다. 이진은 그때 처음으로 수치심을 배웠다. 그의 잘못이 아님에도 쏟아지는 경멸 섞인 시선에 서 있기가 버거웠다. 선생님의 중재 끝에 이진은 맨 뒷자리에 홀로 앉게 되었다.
그날부터는 매일 도서관에 가서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책을 빌려가 똑같이 베껴 썼다. 한글을 온전히 못 읽는 거지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었기에 헷갈리는 단어가 있으면 문맥을 파악해 대충 찍어 맞췄다. 어린이용 동화책은 사용하는 어휘가 꽤나 겹치는 편이라 책 다섯 권쯤을 서로 비교해 보면 모르는 단어의 반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이진이 학급에서 유일하게 받아쓰기 만점을 받았을 때, 그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뒤집혔다.
“그래도 혼자 있을 땐 시간이 굉장히 많이 남잖아요. 그럴 땐 집에서 아무 채널이나 틀어놓고 계속 TV만 봤는데 그때부터 막연하게 꿈꾸게 됐어요. 가수가 되고 싶다고.”
이진이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처음 고백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냉담했다.
‘언제나 말했지만 자고로 사람은 성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단다. 연예인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면 결국 남는 것이 하나도 없어.’
아버지의 말에 상심한 어린 이진에게, 어머니는 ‘성실한 게 제일이라고 했으니 너 혼자라도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결과가 있겠지.’라고 속삭여 주었다. 이진은 그 말 하나만을 믿고 간절히 노력했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잠시, 시설에서 지냈어요. 오래 머물진 않았지만 그때 부모님에게 많은 거리감이 생겼어요. 음…… 그리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이선경 선생님을 만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게 되었죠.”
자신의 인생을 몇 마디로 정리하면서 느껴지는 감상은 ‘아, 나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였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손에 쥐어진 게 너무 보잘 것 없이 느껴져서 매번 그렇게 슬프고 화가 났구나. 그래도 남을 너무 미워하지는 말걸. 내가 가지지 못했다고 남을 미워해서는 안 됐는데…….
“사실 부모님이 끝까지 이 길을 반대하셨거든요. 그래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그때부터 미움에게 마음을 갉아 먹히고 있었다.
‘이진아, 사람은 성실한 게 제일이란다. 그냥 때 되면 돈 또박또박 나오고 책상 앞에 앉아 몸 쓸 일 없는 직업을 가져야 해.’
‘……저도 부모님처럼 살기 싫어요. 저도 다 아니까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애초에 나한테 관심도 없었으면서 왜 이제 와서 이러냐고 따지지 않은 걸 잘했다고 생각했다. 더 심한 말을 쏟아 내고 싶은 걸 억누르고 집 밖으로 나와 찬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그때는 선생님의 말처럼 성공만 하면 언젠간 효도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날이 바뀌었는데도 부모님께는 연락이 없었다. 이진은 새삼 부모님이 단 한 번도 이진이 밤늦게 나가는 일을 말려 본 적도 입 밖으로 내어 걱정한 적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또 서러웠다.
“그리고 대학 시험 결과가 나오기 전에 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길고도 짧은 이야기에 매듭을 짓고 나자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정신이 멍해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카메라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충분한 시간이 흐른 후 이진은 한 번도 입 밖으로 내 본 적 없는 속마음을 꺼내 놓았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걱정이 돼요. 아직도 제가 이 길을 걷는 걸 원하지 않으실까 봐.”
가깝지도 힘이 되어 주지도 않았던 부모님이지만 그럼에도 그 무심한 이들을 사랑했다. 한심하게도 이진은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말은 하지 말걸. 그렇게 짜증 내지 말걸. 조금만 더 많이 기억할걸. 그동안 이진의 발목을 잡고 놔주지 않던 한 줄짜리 후회들을 이제야 덜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아, 물론 반대하신다고 해도 그만두진 않을 거예요. 그냥 다, 미련인 거죠. 하하.”
이진은 애써 웃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과거를 털어놓기란 정말로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동안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게 어이없을 만큼, 딱 현재를 살아가는 만큼만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