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이러저러해서 거창한 설명을 끝마친 볼더가 골렘의 목 뒤에 손을 대고 술식을 읊조렸다.
골렘은 주섬주섬 몸을 움직여 가부좌를 틀었다. 또다시 헛구역질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메이지 볼더는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자, 그럼 에른하르트 영식! 진기도인을 해 주세요!”
저 괴상한 것에 손대고 싶은 마음이 깨알만큼도 들지 않았다.
한 걸음을 내디뎠다가 반걸음을 도로 돌아왔다.
버러지가 생긴 것이 징그러워 가까이하기 싫다던 시어런 아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게 큰 해를 끼치지 않더라도 눈에 보기에 징그럽고 끔찍한 것은 근처에만 가도 소름이 돋는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내가 망설이며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니 마엘로 샌슨이 다시 한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저도 모르게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가,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더글라스 머스탱이 한껏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이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에른하르트 영식이 하기 싫은 일을 강권하는 것은 어쨌든 계약 위반이니까⋯.”
“예에? 아니, 몸에 해를 입는 것도 아닌데요! 그냥 인체 모형에 대고 진기도인을 할 뿐이지 않습니까! 이건 폭거입니다! 말도 안 돼요!”
“⋯그으.”
“하지만 애가 저렇게 싫어하는데.”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눈앞에서 어린애 취급을 받고 나니 등골이 서늘했다.
그래, 이 무슨 아이 같은 짓이냐. 볼더가 저 나름대로 몇 날 며칠을 고심하여 만든 전용 골렘을 그 생김새가 괴악하다고 하여 피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다.
눈을 질끈 감고 골렘의 등 뒤에 섰다. 그 뒤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 것이 거북스러웠으나 할 수는 있었다.
세상에 끔찍한 일이 어디 이것뿐이랴. 심기일전하기 위하여 몇 차례 심호흡을 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골렘의 내장이 꿀렁꿀렁 움직이는 것이 보여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골렘의 등 뒤에 양손을 가져다 댔다.
그 촉감 또한 사람의 살갗을 지나치게 닮아 있어 소름이 돋았다. 헉, 헛숨을 삼켰다. 나도 모르게 골렘의 등에서 손을 떼 버린 채였다.
손에 남은 감각을 털어 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더글라스가 아주 안쓰럽고 가여운 것을 보듯, 어리고 작은 짐승을 대하듯 나를 얼렀다.
“에른하르트 영식, 정말 못 하겠으면 못 하겠다고 해도 돼요.”
“⋯아닙니다.”
마엘로 샌슨이 벽을 붙잡고 숨죽여 웃느라 어깨를 들썩였다. 그것을 보고, 내가 정말 우스운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흡 숨을 삼키고 다시 손을 뻗었다.
아무리 기괴한 상황에 놓여도 운기조식을 시작하면 정순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남궁의 도였다.
내공을 끌어 올려 천천히 일주천을 하니 술렁이던 심상이 가라앉았다.
장심을 통해 골렘에게 기운을 밀어 넣었다. 골렘의 등가죽에서부터 파랗고 반짝거리는 빛이 화하게 번지기 시작했다.
처음 골렘이 작동할 때의 미약한 푸른 빛이 아니라, 마치 남궁의 연무장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청명한 색이었다.
골렘이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 한켠이 울렁거렸다.
무인의 안법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사람의 몸속을 이런 식으로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화경의 무인인 마엘로 샌슨이 내 단전을 눈으로 보거나 의심하지 못했던 것도 그 탓이었다.
창궁대연신공의 내공이 푸른 빛으로 도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신비한 경험이었다.
볼더가 골렘의 혈도에 푸른색으로 빛나는 수식을 걸어 두었을 수도 있겠으나, 그저 내 눈으로 그리운 빛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것이 역겨운 기분을 눌러 참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진기도인에 보통 사용하지 않는, 축기의 도를 사용하여 기운을 회전시켰다.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기에 다칠 것을 염려하지 않고 일반인이라면 뚫리지 않았을 혈도를 그대로 사용하여 운기했다.
두 바퀴를 돌고 기운을 정리했다. 낮게 심호흡하여 숨을 골랐다.
진기도인을 끝마친 골렘은 더 이상 푸르게 빛나지 않았지만, 처음처럼 징그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좋습니다! 완벽해요! 제대로 기록이 되었네요!”
⋯착각이었다.
볼더가 골렘의 열 손가락에 박힌 다 사용한 마석을 또각또각 빼낼 때에는 다시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보고 싶지 않았고 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볼더는 골렘에게 새로운 마석을 갈아 끼운 뒤 무어라 영창을 했다.
골렘이 스스로 운기하기 시작했다.
골렘이 끌어들이는 기운은 무척 미약했으나, 내가 일러준 그대로 반복하여 움직이는 기운에 푸른 빛이 반짝반짝 별 무리처럼 섞여 들었다. 손가락 틈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볼더가 명랑한 목소리로 설명을 덧댔다.
정신없는 와중에 내 손에도 보고서 하나가 쥐어졌다.
“운기조식 골렘 제1호는 이제부터 스스로 마나를 끌어 단전을 생성할 때까지 작동이 멈추지 않을 예정입니다! 끌어들인 마나의 일부를 마석의 충전에 사용하도록 해서 마석을 갈아 끼워 주지 않아도 되는 게 정말 천재적이죠! 무한히 반복해서 운기할 수 있고, 만약 폭발 위험이 있다면 큰 소리로 벨이 울리도록 설계되어 있답니다!”
“⋯벨이라면.”
“여기 성대를 움직여서 소리를 내겠죠? 성대가 있으니까요.”
“⋯아.”
“어쨌든 운기조식 골렘 1호는 일반 마법사가 에른하르트 영식과 동일한 방법으로 반복해서 운기조식을 했을 때 단전을 생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여부를 테스트해 볼 겁니다. 맥시멈 기간은 한 달로 잡겠습니다. 사람의 경우 대략 하루 3시간 가능한 운기조식을 24시간 쉴 새 없이 하는 거니까, 한 달을 팔 개월로 치환할 수 있을 것 같고요.”
나는 더글라스의 교수실 바닥 한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골렘을 바라보았다.
“⋯한 달을, 여기서요?”
“예? 당연하죠. 운기조식 중에는 움직이거나 건드리면 안 되잖아요.”
“아니.”
이 끔찍한 녀석을 교수실 한가운데에 앉혀 두고 한 달이나 피해 다녀야 한다니, 어이가 없어 절로 턱이 벌어졌다. 더글라스는 언제나처럼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래 마법사들은 다 이래요. 전 괜찮습니다.”
“⋯.”
마엘로 샌슨이 벽에 이마를 부딪치며 웃는 모습을 멀거니 보았다. 에드윈 키아드리스는 이보다는 더 상식적인 녀석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지금껏 잊고 있었지만, 그 녀석이 앞으로 메이지 볼더와 같은 놈이 되지 않도록 간간이 들여다보아야겠다 다짐했다.
* * *
수요일. 초급 검술 수업을 듣는 내내 마엘로 샌슨이 나와 눈만 마주치면 웃는 통에 다른 학생들에게 수상한 시선을 받았다.
쉐이든과 벤자민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기에 아무 일도 없었다 대답했다.
둘 다 망설이지 않고 마엘로에게 찾아가더니 사정을 듣고 크게 웃었다.
아이들이 궁금하다 하기에, 다음에 더글라스에게 허락을 맡고 그 괴상한 것을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내심 나 혼자만 이런 괴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부당하다 여기고 있어 기꺼운 마음으로 허락할 수 있었다.
제국의 계보 수업 시간. 칼립스 아그리젠트 교수를 유심히 살폈다.
그는 일전에 크게 앓은 일이 거짓인 것처럼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내심 마음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기분이 되어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마치고 명마 예찬론 수업을 듣기 위해 마사로 향했다.
제국의 계보 수업을 마친 직후에 바로 마사로 온 것이기에 여유 시간을 낙낙하게 두었는데도, 벤자민이 일찍 도착해 말의 갈기를 빗어 주고 있었다.
여전히 말들 중 몇은 벤자민을 두려워했지만, 벤자민이 크게 공을 들이는 빅토르 그 녀석만큼은 더 이상 벤자민의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았다.
도리어 여기도 빗어라 저기도 빗어라 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틀어대는 모습이 상전이 따로 없었다.
빅토르가 앞발을 턱 하니 들어 벤자민의 손 위에 얹어 두면, 벤자민은 거북해하거나 무거워하지 않고 튼실한 다리의 위쪽부터 아래쪽까지 솔로 살살 긁어 엉겨 붙은 건초를 말끔히 털어 냈다.
기가 막혀 절로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습니까?”
“어쩌다 보니 점심 식사를 일찍 마쳐서요. 좀 먼저 왔습니다.”
“와⋯. 빅토르가 빛이 나네, 빛이.”
쉐이든이 혀를 내두르며 탄성을 흘렸다.
내가 보기에도 한 시진이 넘게 공을 들여 털을 빗어낸 말은 반들반들한 것이 잘 관리된 태가 풀풀 났다.
벤자민이 제가 칭찬을 들은 것처럼 우쭐대며 기뻐하기에 여러 차례 멋지다 잘생겼다 말의 외양을 칭찬해 주었다.
그동안 까닭을 모르고 짐승이 저를 싫어하면 저 또한 도망을 쳤다는 벤자민이 전부 내 덕이라며 순하게 웃었다.
한 학기의 절반이 훌쩍 지났기 때문에, 벤자민 뿐만 아니라 승마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말을 잘 다루게 되었다.
고삐와 안장을 채울 때에는 만약을 위해 비반 오티프 교수가 옆에서 지켜보았으나, 마사 바로 옆에 있는 너른 들판에서 말을 타고 풍경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이 각기 맡은 말을 타고 들로 나갔다.
싱그러운 가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아카데미 내에 있는 완만한 언덕 가득한 푸르른 풀들이 말의 발목을 스치며 와삭바삭 소리를 냈다. 언덕을 빙 두른 갈대가 보송보송하게 피어난 꽃이 무거워 고개를 흔들었다.
티 없이 맑게 웃는 아해들이 말을 이리저리 이끌었다.
등 뒤에 웃음 가득한 아해들을 태운 말들은 느리게 걷거나, 때맞춰 피어난 가을꽃 내음을 맡거나, 더러 싱그러운 풀을 뜯어 먹으며 앞으로 나가지 않고 버티며 딴청을 피우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나를 태운 말이 여유롭게 걸으며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 또한 말과 같은 곳을 바라보다가 손을 내어 고운 갈기를 느리게 쓸었다. 말이 웃는 소리를 들으니 따라 웃게 되었다.
사나운 짐승을 도살했던 손이었다. 이렇게 순하고 아름다운 짐승을 어르고 돌보고 있는 지금의 평화가 믿기지 않았다.
쓰다듬는 손이 멎자 나를 태운 말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타박타박 걷는 걸음마다 웃자란 풀들이 드러누웠다.
멀찍이서 말의 목을 그러안고 무어라 애원하는 목소리를 내는 벤자민을 보았다.
능숙하게 말을 어르고 달래 훌쩍훌쩍 뛰어다니며 다른 동무들에게 기마술을 자랑하는 쉐이든도 보았다.
어느 아이는 말에서 내려 함께 거닐었고, 어느 아이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말과 함께 달음박질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고삐를 잡아 아이들 쪽으로 말을 몰았다.
폐부 속으로 훅 들어오는 시린 공기가 달아 혀끝에 침이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