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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85화 (85/176)

85.

벤자민 클라우디안은 덩치가 큼직하고 사내답게 생긴 놈이었다.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거칠어 본래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많아 보였는데, 눈 색이 유난히 밝아 어두운 곳에서 마주하면 흑호나 흑표를 보는 듯했다.

녀석은 무재도 뛰어나 열다섯 나이에 일류 무사의 수준에 올랐다. 그 무예 실력만큼 완력이 좋아 건초 더미를 옮기는 일을 참 잘했다.

하지만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것 다음의 일들은 혀를 내두를 만큼 안쓰러웠다.

비반 오티프는 첫 수업 시간에는 말들에게 건초와 당근을 챙겨 주며 얼굴을 익히는 것으로 족하다 했다.

학생들은 저마다 저는 여기에서부터 여기까지를 맡겠다, 그럼 저는 이 녀석들을 챙기겠다 하며 저들 편한 대로 자리를 잡았다.

쉐이든과 벤자민,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아이들의 수보다 말의 수가 조금 더 많아 우리 셋이 총 다섯 마리를 맡게 되었다.

가뿐하게 옮겨 온 건초 더미들을 바로 말구유에 넣어주는 대신에 한 움큼씩 쥐어 말들의 입 앞에 대고 손의 냄새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 첫 단계였다.

“⋯자.”

벤자민이 건초를 들고 말 앞에 갈 적마다 말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아예 목을 집어넣고 제가 뱀이라도 된 양 구석진 곳으로 피해 고개를 처박은 놈도 있었다.

벤자민이 사나운 눈매를 최대한 누그러트리고 조심하는 태를 양껏 내어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남들이 모르는 사이 살기라도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기감을 돋웠으나 전혀 아니었다.

클라우디안 가문도 백작가인 만큼 말 한두 마리 구입하는 것은 일도 아닐 텐데, 여즉 소년이 승마를 할 줄 모른다 하는 말을 이해했다.

확실히 이 정도까지 짐승들이 두려워하고 피한다면 중한 고민거리가 될 만했다.

반면에 내가 맡은 말은 내가 건네는 것이라면 건초도 당근인 양 와삭와삭 잘도 받아먹었다. 몇몇 녀석은 정답게 내 어깨나 뺨에 고개를 들이밀고 비비기도 하였다.

벤자민이 맡은 녀석들이 특별히 겁이 많은 것인가 싶어 자리를 바꾸어 보았으나 조금 전까지 내 손을 핥으며 강아지처럼 굴던 놈들이 애타게 내 쪽을 바라보며 끙끙 힝힝 난리도 아니었다.

기가 찼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저 모르는 새에 여기 와서 말 한 마리 잡아먹었습니까?”

“⋯아닙니다.”

“클라우디안 영식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도 아니야. 자, 봐.”

쉐이든이 장난스럽게 벤자민의 어깨를 콩 때리는 시늉을 했다. 벤자민은 쉐이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몰라 얼떨떨한 낯으로 묵묵히 서 있다가, 얼른 아픈 시늉을 하란 소리에 맞은 부위를 감싸며 서너 걸음 물러섰다.

말들이 큰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자, 팔을 때리던 것이 등짝을 두드리고, 멱살을 잡아 흔들고⋯.

우스운 짓을 반복할수록 시선이 모이는 것이 낯 뜨거워 뒤늦게 쉐이든이 하는 짓을 말렸다.

“그런다고 알아듣겠습니까?”

“우리 집 말들은 다 알아듣던데. 더 때려 달라고 응원도 해.”

“아니⋯. 다른 방법을 써 보죠.”

이번에는 내가 한 움큼 건초를 쥐어 내 앞에 있는 말에게 먹였다.

이마에 흰 점이 있는 튼실한 수말이었다. 녀석은 잘 받아먹으면서도 힐끔힐끔 벤자민 쪽을 의식하듯 바라보았다.

그러다 내가 벤자민과 손을 겹친 채 건초를 쥐자마자 먹는 것을 멈추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건 우리 힘으로 어찌 되지 않는다 싶어 오티프 교수를 호출했다.

비반 오티프는 우리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마사의 말들은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있으니 그럴 리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교수는 벤자민을 가지고 몇 번을 실험해 보고 나서야 말들이 소년을 무서워한다는 말을 믿었다.

그러는 동안 처음 맡았던 말들뿐 아니라 마사에 있는 모든 말 앞에 당근을 쥐고 흔들다가 또 외면당해야 했던 벤자민의 낯빛은 한껏 어두워져 있었다.

녀석의 어두운 낯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드래곤은 내가 아니라 클라우디안 영식인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벤자민이 단단히 토라져 달래느라 애를 썼다.

그렇게 첫 번째 수업은 별 소득 없이 끝이 났다.

비반 오티프는 학생들에게 건초를 주거나 물을 챙겨 줄 날짜를 정해 주었는데, 그 끝마디에 벤자민을 따로 불러 매일 시간이 나는 대로 마사에 와서 말들과 얼굴을 많이 익히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 정도 되는 무인이면 말과 힘 씨름을 해도 당장 큰일이 있진 않을 것이고, 말들이 클라우디안을 향해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라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니 두렵지 않은 상대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 먼저라는 말이었다.

“뒷발에 차이는 것만 조심하면 될 것 같아. 일단 마사의 칸막이 안쪽으로 들어가는 일만 없도록 하자. 그리고 이왕이면 혼자 마사에 오는 것보다 다른 친구들이 좀 도와주면 좋겠는데⋯.”

“저희가 함께 오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안심이야. 말들이 겁먹어서 식사를 못 하면 큰일이니까.”

“⋯.”

쉐이든이 냉큼 끼어들어 대답하자 비반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벤자민의 낯이 한층 더 어두워진 것을 보고 그를 달래려 등을 몇 차례 쓸어 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함께 식사하며 찬찬히 들어 보니, 벤자민 클라우디안은 아주 어릴 적부터 동물이나 어린아이들에게 까닭 없는 미움을 샀다고 했다.

클라우디안 후작가의 인물들은 죄다 묵묵하고 올곧은 성정을 지니고 있는데, 그 탓에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사납다는 인상을 주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사람도 아니고 짐승들이 외양을 따지면 얼마나 따지겠는가.

호랑이도 새끼는 귀여운 법이었다.

아직 어린 벤자민 클라우디안은 내 눈에는 그저 덜 자란 짐승같이 귀엽고 어여쁘기만 했다.

까슬하고 올이 굵은 머리 터럭 아래로 선이 굵고 뚜렷한 얼굴은 그 콧대가 높고 턱이 강건한 것이 의로운 상이었다.

내가 관상을 볼 줄은 모르지만, 뼈대가 굵고 표정이 단단한 소년은 중원에서였다면 꽤 인기가 좋았을 것이었다.

특히 소림이나 종남 같은 묵직한 무공을 사용하는 곳이나, 하북팽가처럼 든든한 근력과 도를 사용하는 곳이면 서로 데려가지 못해 안달을 할 터였다.

때문에 쉽게 수긍하는 쉐이든과 달리 나는 분명 다른 연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클라우디안 후작가의 이들은 전부 생김새가 많이 닮았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럼 양친과 형제자매들도 모두 말을 못 탑니까?”

“⋯으음, 아뇨. 아버지는 젊었을 적에 종종 승마를 즐기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실례지만, 아버지와 클라우디안 영식은 외양이 닮은 편입니까?”

“⋯어?”

벤자민의 눈이 크게 뜨였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작다 싶은 금색 동공이 확연하게 놀라는 빛을 띠고 있었다.

벤자민은 더듬더듬 자신은 아비와 꼭 닮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나는 과연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외양의 문제는 아닌 모양이니, 천천히 다른 이유를 찾아봅시다.”

벤자민이 적잖이 감동한 표정을 하고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잘 부탁한다 몇 번을 부탁하기에 나 또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옆에서 덩그러니 앉아 있던 쉐이든도 겹친 손 위에 제 손을 더하며 저도 한몫하겠다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얹었다.

* * *

목요일 고급 검술 시간에는 지난번처럼 좌우의 아해들과 비껴서 움직이는 것과 더불어, 앞뒤의 아이들까지 신경 써야 했다.

어느 적을 상대하여 이렇게 빼곡하게 붙어 움직여야 하는가 싶었으나 하다 보니 재미가 붙어 열을 내어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여즉 여름이 다 물러나지 않은 계절이었다. 아침이라고 해도 볕이 뜨거웠다.

게다가 두 발을 완전히 땅에 붙이고 상체만 쓰는 탓에 다른 아해의 검로를 신경 써 피하려다가 허리와 어깨를 과하게 젖히는 일이 종종 있어 금방 온몸이 땀에 젖었다.

처음 시작은 다들 느린 속도로 초식을 전개하도록 하여 그나마 피할 여력이 충분했다. 한 차례 자리를 바꾼 뒤에도 서로의 검로에 익숙해진 듯했다.

그러자 곧장 검초의 전개 속도를 빠르게 하라는 주문을 받았다. 또다시 챙, 챙하고 검 부딪치는 속도가 요란했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검로가 복잡해지고 정신이 사나워지는 탓에 상대의 검을 비켜 가려다가 다른 아해들의 뺨이나 팔을 긋는 아해들도 왕왕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으나, 대련을 멎게 했던 것과 꼭 같은 방법으로 마엘로 샌슨이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돕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도대체 어떤 경지에 이르러야 저런 식으로 기운을 사용할 수 있는가 싶어 아득한 마음이 들었다.

집중하여 움직이다 보니 나를 포함한 아해들이 전보다 빠르게 지쳐서, 오늘은 쉬어 가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총 세 시간의 수업 시간 중에 사십 분을 식을 전개하고, 이십 분을 쉬는 식이었다.

수업 중간의 쉬는 시간이 규칙적이고 분명한 것 또한 아카데미에 입학한 뒤에 배운 것이었다. 배워 익히는 것의 맺고 끊음이 분명하여 마음을 다스리기에 좋았다.

바닥에 정좌하고 앉으니 그 앞으로 동무들이 동그랗게 마주 앉았다. 가운데에 둥그런 탁자라도 두면 딱 좋을 모양새였다.

다들 지쳐서 숨만 색색 몰아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루실라가 제 다리를 앞으로 쭉 뻗더니 몸을 반으로 접기에 깜짝 놀랐다.

“⋯뭘, 하는 겁니까?”

“스트레칭.”

“스트⋯?”

화들짝 놀란 것은 나뿐이었다. 어찌나 유연한지 루실라가 허리를 굽히자 발끝에 손목이 닿았다.

그렇게 몸을 굽힌 채로 몇 번 반동을 주어 꾹꾹 누른 뒤에는 양팔을 번쩍 들어 제 팔꿈치를 머리 뒤로 눌렀다.

기지개를 켠다고 팔다리를 쭉 늘이는 일이야 몇 번 해 본 적이 있지만, 이런 식으로 몸을 반으로 접었다가 폈다가 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어 신기했다.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해 루실라가 한 것과 같이 양발을 앞으로 뻗고 허리를 숙였다.

무릎을 잡는 것까지야 쉽게 하였으되, 발목을 움켜쥐려 하였더니 잘 안 되었다.

나 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던 벤자민이 솥뚜껑만 한 손으로 내 등을 꾹 눌러 몸을 굽히는 것을 도왔다.

“윽.”

“턱을 당겨야지, 미카엘.”

재미있는 놀잇감을 찾은 것처럼, 루실라가 벌떡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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